〈 13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리고 그것은 공선자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때문에 공선자는 과거 홀로 세계를 상대할 때 ‘장점을 뚜렷하게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약점을 없애는 일’이었다.
결코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 약점을 보이는 순간 이미 그는 자신이 적으로 돌린 전 세계의 무력 단체에게 죽을 목숨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그 무엇보다 뚜렷한 약점이 되어버리는,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제대로 싸울 수조차 없게 만드는 포지션에 특화된 전투 방식’이라는 것을 극히 혐오했다.
이것이 만약 공선자가 아침의 공선자가 아닌 밤의 공선자였다면 기필코 파티 가입을 거절했을 이유 중 또 다른 이유에 해당하는 것.
……허나, 지금의 공선자는 아침의 공선자였다. 그렇기에 설령 자신에게 약점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사람에게서 정을 주고 정을 받고 싶다는 욕망을 뿌리치지 못하고 파티 가입을 받아들인 것.
……아니, 어쩌면 그건 공선자가 무의식적으로 ‘파티 가입은 가입이고 자신이 성장할 방식은 성장할 방식이다,’ 라고 파티에 자신의 성장 방향을 맞출 생각이 없다는 의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공선자는 무의식적으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탱커, 딜러, 힐러와 같은 포지션에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공선자에게 그런 게 정말로 효과가 있어? 라고 물어본다고 해도 대답을 돌려주는 게 매우 미묘해질 수밖에 없는 것.
“뭐가 되었던지 일단은 시도해 볼 수밖에 없지 않나? 딱히 우리한테 그것 외에 떠오르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니까 즉, 우선은 그 딜러인지, 딜x인지 하는 포지션대로 역할을 나누면 된다 하는 거지?”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통용될지 알 수 없는 포지션을 통한 전문화였지만 당장 효율적으로 파티의 전력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떠오르는 게 그것밖에 없는 상황.
그렇기에 밀리언이 일단을 시도라도 해보자! 라는 의미로 입을 열었을 때 고그 역시 일단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단지, 뜬금없이 나온 고그의 젠장 맞은 섹드립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심지어 웬만해서는 어버버 거린다고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그런 식의 표정을 짓는 공선자조차 ‘이건 뭐하는 저질이야?’ 라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할 말 다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런 고그의 저질스러운 섹드립에 일괄된 대응 방식을 취하기로 하는 다른 네 사람. ……요컨대 자신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단은 누가 어떤 포지션을 할 건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보통은 어떤 식으로 포지션은 결정하지?”
다행이라는 점은 프로아의 이어진 발언이 밀리언의 말에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그의 발언에서 이어지는 말이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들렸기에 고그는 자신의 섹드립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 그, 그게 보통은 각자 재능이 있거나 실력이 있거나 하는 분야로 포지션은 잡지 않을까요?”
“그렇군.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전투조차 치러본 적이 없는 우리들한테 실력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같은 맥락으로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어떻게 알지?”
밀리언의 지적대로 여기에 보인 다섯 사람은 각자의 재능이나 실력에 대해 쥐꼬리만큼도 알 기회가 아직까지 없었던 이들이었다.
그야 어제 플라워 차원에 떨어졌고 이제 막 모험가로서 활동하기 위해 파티를 짠 이들인데 뭘 바라는가?
그런 의미에서 포지션을 짜는 것에 애로사항이 꽃피는 것도 정해진 수순이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일단은 대충 막 결정해볼까? 누구는 딜러, 누구는 탱커, 누구는 힐러라는 식으로 말이야. 아니면 각자 하고 싶은 포지션이라든가 있어?”
“쿠루미는 힐러. 강력하게 힐러를 주장. 힐러 외의 포지션은 단호하게 거부하겠음! 만약 나에게서 힐러를 빼앗겠다면 힘으로 뺐어보셈!!!”
프로아가 일단은 뭐가 되었던지 한 번 결정해보자, 라는 느낌으로 입을 여는 순간 여태까지의 만사태평했던 눈동자에 이글이글 타오를 정도의 정열을 불태우며 쿠루미가 가장 먼저 힐러에 입후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의 게으름뱅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열적인 반응. 그런 쿠루미의 기세에 순간적으로 고그를 포함한 네 사람 전원이 압도당해 반론을 꺼낼 생각조차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허나, 이내 쿠루미가 어째서 힐러에 입후보한 것인지 눈치챈 프로아가 가자미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묻는 것이었다.
“힐러를 하면 굳이 싸우지 않고 상처만 치료해줄 수 있기 때문에 힐러 하려는 거지? 싸우는 게 귀찮으니깐 말이야.”
“……단호하게 부정함. 쿠루미는 그저 남들을 상처 입히는 것보다 치료해주는 게 성격에 맞기에 힐러를 주장했을 뿐.”
정곡을 찌르는 프로아의 발언에 순간 어깨를 흠칫 떠는 쿠루미였지만 훗날의 편안함을 생각해 얼굴에 철판을 깔 생각인 것인지 뻔뻔하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쿠루미의 성격이 전투에서 상대를 상처 입히는 것보다 상처를 치료하는 쪽이 어울린다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기는 했다.
단지, 그것이 마음이 여리기 때문……, 이라는 이유보다는 ‘공격보다 치료 쪽이 덜 움직여서 편하다!’ 라는 이유가 99%이기 때문일 테지만 말이다.
“뭐, 좋아. 딱히 내가 힐러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니깐 말이야. 혹시라도 쿠루미를 대신해서 내가 힐러를 하겠다! 라는 사람은 없는 거지?”
프로아의 질문에 자신이 힐러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공선자를 비롯한 세 사람 중 누구도 없었다.
즉, 그것은 쿠루미가 힐러 포지션은 맞는 것에 반론을 제시하지 않겠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일단 힐러 포지션은 쿠루미에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딜러와 탱커.
“그……, 보, 보통 게임에서는 5명에서 6명 정도의 인원수라면 탱커가 한 명에서 두 명 정도. 힐러가 한 명, 그리고 나머지는 딜러를 맡으니까 저희도 그렇게 하면 될까요?”
“즉, 우리 네 사람 중 2명이 탱커, 2명이 딜러를 하거나, 1명이 탱커 3명이 딜러를 해야 한다는 거지?”
거기에 일단 게임 지식이 있는 공선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설명을 하자 프로아가 머리를 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난 딜러다. 애초에 포지션이라는 거 결정하는 이유가 기초 장비를 통한 무기를 뭐로 받을지 결정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잖아? 미리 말했다시피 난 이미 진작 무기를 받아놓은 상태라고.”
고그가 마치 통보하는 것처럼 툭 내뱉는 것이었다. 그 발언에 공선자가 그가 무슨 소리를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를 제외한 세 사람은 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다는 얼굴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생각해보니까 저 녀석 우리들의 말도 듣지 않고 멋대로 사나이는 대검이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며 기초 장비를 지급해주는 상자를 개봉했었군. 완전히 잊고 있었다.”
“으으, 대검을 무기로 사용하면 역시 탱커는 힘들까? 방어를 전담하게 된다면 역시 방어구 위주로 장비를 맞춰야 할 테니 일단 방패가 필수일 거 아니야? 그런데 당장 기초 장비 셋트로를 통해서 방패를 지급 받으면 방패가 방어구가 아니라 무기 취급이 되는 건지 다른 무기를 지급받지 못하니깐 말이야.”
확실히 기초 장비 셋트를 지급해주는 그 박스는 기초적인 가죽 경갑옷과 하나의 무기를 지급해주었다.
아니,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죽 경갑옷 셋트와 주력으로 사용할 ‘장비’를 지급해준다고 해야 할까?
즉, 무기나 방어구나 구분 없이 주력으로 사용할 장비라면 ‘무조건 하나’밖에 지급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무기에 해당하는 검이나 창 같은 장비를 얻으면 반대로 방어구에 해당한다고 해도 방패나 권갑, 전투 장화와 같은 장비를 함께 얻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역으로 방패나 권갑, 전투 장화와 같은 장비를 얻게 된다면 검이나 창, 활과 같은 장비를 습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탱커의 포지션을 담당하려면 방패를 습득하는 게 정석인 상황에서 이미 대검을 습득해버린 고그가 탱커를 받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
“어? 어……? 고, 고그씨는 벌써 기초 장비 셋트를 개봉한 상황이었던 건가요?!”
“아, 말하지 않았었나? 맞아. 이 녀석 파티를 하기로 한 우리랑은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멋대로 자기가 원하는 무기를 선택해서 이미 상자를 개봉해버린 상황이라는 거야. 그것도 ‘사나이라면 크고 아름다운 대검이지!’ 라는 영문 모를 주장과 함께 말이야.”
“그렇기에 쿠리미들은 블러드가 이미 상자를 개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 블러드가 입고 있는 가죽 경갑, 고그를 통해서 이미 확인했었던 거임.”
단지, 고그가 이미 멋대로 무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혼자서 모르고 있었던 공선자가 당황하고 있을 때 프로아와 쿠루미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에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고그가 ‘전부 꺼져! 나는 나 꼴리는 대로 한다! 이 크고 아름다운 대검으로!’ 라는 소리와 함께 대검을 선택하고 상자를 개봉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
……그리고 직후, 거대한 대검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고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는 고그의 모습을 떠올리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뭐?! 왜?! 내가 쓰고 싶은 무기, 내가 골랐을 뿐인데 뭐 불만이야?! 썅! 그러는 너도 들어보니까 이미 상자를 개봉한 상태잖아?!”
“아, 아니, 저는…….”
그리고 공선자의 그런 눈빛에 으르렁거리며 반발하는 고그의 목소리에 확실히 자신도 이미 상자를 개봉한 상태였기에 움츠러들며 시선을 피하는 공선자.
“블러드는 너랑은 다르지! 파티에 가입하기 전에 연 거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때는 우리들이랑 파티를 짜기로 결정된 것도 아니니까 포지션이니 뭐니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틀린 이야기는 아니군. 그에 비하여 네 녀석은 우리랑 함께 움직이기로 했으면서 우리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기 좋을 대로 고른 거니깐 말이지.”
단, 공선자와 고그는 사정이 달랐다. 공선자는 어디까지나 ‘혼자서’ 활동할 생각으로 자신에게 알맞은 무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 사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인 이야기. 허나, 고그는 애초부터 프로아들과 함께 움직이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상황 같았다.
그런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자기 멋대로 무기를 결정했다는 느낌.
그러니 당연하게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공선자와 다르게 고그가 몰매를 맞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이것들이 왜 아까부터 나만 가지고 지랄이야?! 내가 우습냐?! 우스워?! 앙?! 한 번 제대로 묵사발을 내줘?! 엉?!”
“어……, 음……. 솔직히 약간 우습긴 함. 그야 대검을 선택한 주제에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지 않았음?”
캬오오! 하는 의성어가 들릴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치는 고그의 발언에 쿠루미는 솔직하게 대답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에 더욱더 머리에 피가 쏠린 것인지 붉게 충혈이 되어버린 눈으로 쿠루미를 노려보는 고그. 당장에라도 그녀의 멱살을 붙잡을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보다 못한 밀리언이 나섰다.
“그만, 그만. 여기에 우리들만 있는 것도 아니니깐 그쯤 해둬라. 이미 벌어진 일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보다는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게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그는 딜러 포지션으로 결정짓도록 하지.”
밀리언이 나서서 말리자 일단 고그는 팔짱을 낀 뒤 못 이기는 척 쿠루미를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쿠루미가 이야기한 것처럼 대검을 선택한 주제에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창피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고그는 딜러고……, 남은 사람은 나랑 블러드, 그리고 밀리언인데……. 일단 블러드도 고그처럼 이미 기초 장비 셋트를 개봉한 거지?”
“아……, 네. 저는 그 다, 단검으로…….”
프로아의 질문에 본래 단검을 선택한 이유인, ‘어떤 용도로든 사용하기 좋고, 또 자신이 전문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무기에 나이프가 있었기에 단검을 선택했다,’ 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채집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라는 이유를 입에 담는 공선자.
프로아는 공선자의 그런 설명에 딱히 크게 의심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공선자가 리치가 짧은 단검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여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