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물론 이 외에도 핸더나 마이스터 계열의 병과가 존재했고, 또 어쌔신 병과라고 해도 딜러가 아니라 그 외의, 함정이나 사냥 및 수색 등으로 활약하는 병과로 분류되기도 했다.
즉, 무조건 각 병과들을 딜러, 탱커, 힐러로 구분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라는 소리. 허나, 확실히 병과에 따라서 활약할 수 있는 포지션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고르는 무기에 따라 높은 확률로 나중에 습득하게 될 직업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 포지션에 맞춰서 무기를 선택하게 된다면 결국 나중에 고르게 될 직업 역시 포지션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 직업이 속하게 된 병과 역시 포지션에 맞게 선택하게 되겠죠.”
그럴 게 기초 장비 셋트를 통해서 공선자처럼 단검을 제공받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레벨 10이 될 때까지 열심히 단검을 사용했는데 레벨 10이 되었을 때 사용하던 단검을 버리고 자신이 열심히 사용하던 단검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캐스터 병과에 속하는 직업을 선택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여태까지 단련한 단검을 다루는 기술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높은 확률로 어쌔신 병과, 그중에서도 어위잇덜(암살) 병과에 속하는 직업을 선택할 것이라는 소리.
물론 쿠루미와 같이 어디까지라 레벨 10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기를 고르고, 레벨 10을 달성하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얻은 뒤 그 직업에 맞는 무기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었다.
힐러 병과나 마이스터 병과, 핸더 병과에 속하는 직업들은 애초에 처음부터 각 병과에 맞는 무기를 선택하는 게 힘드니 오히려 쿠루미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게 정석이었다.
허나,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 지금 고르는 장비에 맞춰 나중에 습득하게 될 직업도 결정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공선자는 그런 자신의 추측을 앞으로 파티를 맺게 될 그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보다 신중하게 초기 장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요컨대 지금 고르게 되는 무기 선택이 일종의 직업 선택의 전초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군. 일리가 있어.”
밀리언은 공선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한 문장으로 요약한 뒤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 역시 공선자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하고는 보다 신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
그야 당장 무기를 바꿀 정도로 여유가 넘쳐나는 상황이 아닌 만큼 초기에 어떤 무기를 제공받는가에 따라서 레벨 10을 달성할 때까지 그 무기만 사용하게 될 테니 공선자의 이야기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야! 야! 난 이미 진즉에 골라서 그런 경고를 이제 와서 해준다고 해도 의미 없거든?! 그 말은 즉, 나는 결국 직업을 선택할 때도 파이터 병과에 속하는 직업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거잖아?!”
“무, 무기를 바꿀 여유가 되면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은 무기를 바꿀 여유가 되지 않으면 얄짤 없이 파이터 병과를 선택하라는 소리지?! 제기랄!”
물론 공선자의 경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아직까지 기초 장비 셋트를 개봉하지 않은 이들에 한정되었다.
가오 좀 잡겠다고 아무 생각 없이 대검을 선택해버린 고그에게는 일절의 해당 사항도 없는 것! 그 사실에 고그가 짜증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그야 고그는 어디까지나 대검이 멋있어 보여서 선택한 것인지 나는 나중에 파이터 계열의 직업을 선택하겠어! 라는 생각에 대검을 골랐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린 선택이 자신의 장래를 결정지었으니 짜증이 나도 이상할 것은 없는 것.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그의 잘못이었지만 말이다.
“일단 직업은 레벨 10을 달성해야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너무 연연하거나 하지 말자. 블러드의 이야기대로 우선은 생각해둬야 할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직업에 연연하다가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수도 있으니깐 말이야.”
고그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내는 모습에 프로아나 진정하라는 의미를 담아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프로아의 목소리가 고그를 진정시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 짜증이 어린 시선으로 ‘남 일이라고 아주 쉽게 이야기한다?!’ 라고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프로아 역시 고그가 그렇게 쉽게 진정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의 시선에도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이며 무시하는 것이었다.
이제 만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서로에 대한 취급이 익숙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쪽에서 고그가 으르렁거리는 것을 방치하고 일단 공선자의 경고를 받아들여 곧바로 기초 장비 셋트를 개봉하지 않고 한 10분 정도 더 각자 착실하게 고민해보는 세 사람.
“고민을 해보기는 했지만 역시 여기서는 원래 계획했던 대로 초기 장비를 지급받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 같군. 지금 지급받는 무기에 따라서 레벨10 때에 선택할 수 있는 최초의 직업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이해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당장 스스로에게 맞는 직업은커녕 장비조차 어떤 장비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이지.”
그런 만큼 스스로가 사용할 장비 이전에 나중에 얻게 될 직업조차 이게 나한테 딱 맞을 거다! 라는 확신을 결코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결국 포지션에 따라서 무기를 선택하려는 지금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나중에 자신이 선택할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무기를 선택한 뒤 그에 맞춰서 직업을 선택했다고 생각해보자.
허나,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어? 이 직업 나한테는 영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일이 발생할 확률은 충분히 존재하는 것.
그렇다면 당장 모험가로서 활동하는 것이 급한 상황인 만큼 자신에게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해도 모험가로써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우선적으로 지급받는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 레벨10 때에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어디까지나 ‘최초’의 직업에 해당한다. 직업이라는 건 직업 레벨을 올려 직업 레벨이 만렙을 달성하면 다른 직업을 다시 선택하여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 같으니 말이야. 그러니 처음으로 지급받은 무기의 영향을 받아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그 직업이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 해도 얼마든지 다른 직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소리지.”
밀리언의 설명대로였다. 심지어 직업을 바꾼다고 해도 그 전에 성장시켰던 직업에 의한 보너스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즉, 자신이 성장시켰던 직업과 완전히 다른 계열의 직업을 키운다고 해도 전혀 페널티가 없다는 이야기.
아니, 페널티가 완전히 없는 것을 아닐 것이다.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직업들로 특화해 나갈 시간에 자신은 조금 헤매게 되어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다는 느낌?
요컨대 게임에서 어떤 이들이 일점 특화해 나갈 시간에 이것저것 키우느라 잡캐가 된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허나, 경우에 따라서는 잡캐로 키우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야 플라워 차원과 에볼루션 시스템은 게임이 아니었다. 엄연한 현실.
그렇기에 잡캐로 키워 평소에는 쓸데가 없는 능력이었다고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는 현실인 만큼 어느 순간에 도움이 되는 능력으로 탈바꿈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소리.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업을 얻어두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 쉽게 이야기해서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것은 병과와 직업뿐 아니라 무기에도 적용되었다. 기초 장비 셋트로 지급되는 무기는 어디까지나 잘 만들어진 양산품 수준.
그러니 나중에 가서 영 맞지 않는다 싶으면 그때 가서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려면 무기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겠지만 정 안 맞아서 무기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할 정도의 상황에서 그 정도 여유가 없겠는가?
여유가 없다고? 그럼 어쩌겠는가. 그냥 사용해야지. 그럴 때는 그냥 자신의 운이 더럽게 없었다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혹시 모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는 것에 집중하자는 거다.”
밀리언이 지금까지 설명한 것과 같은 취지를 담은 이야기를 끝내자 그의 의견을 듣고 있던 프로아와 쿠루미가 공감이 간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고그는 혼자서 성질을 내다가 지친 것인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혼자서 코를 후비고 있었다.
공선자의 경우 그가 병과와 직업에 대해 언급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나중에 혹시라도 그들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경고를 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밀리언처럼 어느 정도 깊게 고민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자는 결론은 내린 것이라면 그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더 이상 첨언을 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밀리언의 강행하자는 주장에 반발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선자의 경고를 끝으로 드디어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이 지급받기로 한 방패, 활, 그리고 슬링 샷을 기초 장비 셋트를 통해서 지급받는 것이었다.
“오! 나왔음. 그런데 이건 도대체 무슨 구조로 선택에 따라 바뀌는 무기를 지급해주는 거임? 박스 내부에서 챌린저가 선택한 무기를 즉석에서 제조하는 방식?”
“흠, 그거 일리가 있군. 박스를 열 때 뿜어져 나오던 수증기는 어쩌면 그게 원인일 수도 있겠어.”
“뭐가 되었던지 상관없잖아? 중요한 건 제대로 우리가 원하던 장비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지! 자자! 그런 일단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장비를 착용한 뒤, 30분 후에 여관 앞에서 만나는 걸로 하자!”
각자 인벤토리에 보관되어 있던 기초 장비 셋트를 지급해주는 예의 그 박스를 꺼낸 뒤 그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무기를 설정하고 개봉하는 세 사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그가 자신이 섣부른 행동을 후회하는 것인지 신음성을 삼키고 있었고 공선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딴죽을 거는 것이었다.
‘아니, 로비에 우리들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더 있는데 그렇게 막 이상한 박스 같은 걸 함부로 열어도 되는 거야?!’
과연 공선자와는 살아온 세계가 다르다는 것인지 조심성이라는 분야에서부터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고 한다면 현재 이 여관에 머무는 이들은 전원이 챌린저들에 해당했다.
그러니 로비에 있는 이들 역시 아마 전원이 챌린저들일 터. 그런 만큼 너무 심각하게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 고정세의 섹션에 가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챌린저들이 왜 여관 로비에서 죽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로비에 있는 이들이 하나같이 전원 챌린저일 것이라는 점. 그러니 그렇게까지 자잘하게 숨기지 않아도 될지도 몰랐다.
허나, 공선자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자신에 대해 숨기는 게 버릇이 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대놓고 박스를 개봉하는 모습에 얼이 빠지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자, 그럼 30분 뒤에 늦지 말고 여관 앞까지 나오는 거다! 곧바로 길드 회관으로 가서 쌈닭에 대한 의뢰를 받을 테니깐 말이야!”
공선자가 그렇게 다른 파티원들과 자신의 차이에 실감하고 있을 때 프로아가 박스를 개봉하고 손에 넣은 장비를 품에 안고 활기찬 목소리로 이야기한 뒤 자신의 방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에 공선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 역시 일단 자신들의 장비를 착용해보기 위해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공선자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남은 시간은 앞으로 30분. 일단 이쪽 세계에도 시계는 존재했다.
중세 시대 수준의 문명이라고 해도 여기에 마법이 끼얹어지니 중세보다는 근대에 가까운 문명 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 정확히는 마법이 적용될 수 있는 특정 분야는 근대에 가까운데 그 외의 문명은 아직도 중세에 머문다는 느낌.
그리고 다행히도 시간분야는 인류가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분야여서 그런지 제대로 마법에 대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계 장치에 해당하는 물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기에 공선자 쪽에서 늦지 않는 이상은 약속을 지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터.
‘어, 어……. 이, 일단 나도 준비를 해야……. 내가 가진 장비는 장비 셋을 통해서 슬롯이 등록되어 있으니까 굳이 직업 입을 필요는 없고……. 아, 그 대신에 갑옷에 묻은 피를 닦고 있자!’
그렇게 남은 30분 동안 공선자 역시 이제부터 함께할 파티원들을 기다리며 자신의 장비를 점거하며 기다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