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9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39/194)



〈 139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공선자들과 다를 게 없는, 요컨대 새내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들조차도 대부분이 스프라우트 등급이 아니라 노비스 등급에서부터 시작하려는 것인지 그쪽 게시판에 모여 있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에 모여 있는 이들은 혼자거나 아니면 제대로 된 장비조차 지니고 있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인 것.

그에 비하여 같은 새내기라고 해도 장비를 제대로 챙겨 입고 거기에 최소 6명 이상의 숫자로 구성된 모험단을 이루고 있는 모험가들은 스프라우트 등급을 건너뛰고 노비스 등급부터 시작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는 공선자들과 같은 가죽 경갑옷을 챙겨 입고 있는 이들, 즉, 고정세의 섹션에 속해 있는 다른 챌린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그는 그런 그들을 알아보고는 자신들은 스프라우트부터 시작하는데 저것들은 노비스부터 시작한다는 게 배알이 꼴렸는지 그들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자자, 진정해. 그래도 덕분에 우리들이 받으려고 했던 의뢰가 이미 마감되어 있다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잖아? 그러니까 저쪽은 저쪽, 우리는 우리라는 마인드로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확실히 프로아의 이야기처럼 오히려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에 사람이 몰리는 게 적은 쪽이 그녀들에게 유리할 수도 있었다.

노비스 등급처럼 저렇게 사람이 몰려 있으면 자유 의뢰라면 모를까 귀속 의뢰의 경우에는 의뢰를 수주받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쟁 요소로서 작용할 테니 말이다.

고그 역시 프로아의 이야기를 이해했고, 또 짜증을 낸다고 해도 대부분의 챌린저들이 속해있는 고정세의 섹션에 시비를 걸 정도의 용기는 없는지 그저 혼자서 분을 삭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그가 감정을 진정시키는 것을 기다리던 프로아들은 괜히 다른 사람들을 보고 열등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취지로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 게시판을 살펴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공선자가 이야기한 쌈닭이라는 몬스터와 관련된 의뢰를 찾아보기 시작하는 다섯 사람. 의뢰 게시판 자체가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고, 거기에 의뢰가 적힌 종이의 수도 워낙 많았기에 다섯 명 전원이 열심히 눈을 굴려야 했다.

“으윽! 뭐가 이렇게 많아? 우리 그냥 쌈닭인지 하는 덩치 큰 닭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슬라임이나 고블린 같은 거 잡으면 안 되냐?”

찾고 있는 쌈닭에 관련된 의뢰는 안 보이고 여기저기 다른 몬스터에 대한 의뢰가 붙어 있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실에 의뢰를 찾기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도 투덜거리기 시작한 고그의 목소리에 프로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안 돼.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는 쌈닭뿐이라고. 거기에 블러드의 경우에는 직접 본 적도 있다고 하니까 처음으로 사냥한 몬스터는 무조건 쌈닭이야. 그쪽이 1%라도 더 안전성을 높일 수 있어.”

“제길……. 그래 봤자 스프라우트 등급의 토벌 의뢰로 나오는 몬스터들이 그게 그거지. 그냥 대충 눈에 띄는 거…….”

“킥킥! 그래,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에서 또 뭘 고를 게 있다고 그렇게 열심히들 고르고 계시나?”

허나, 프로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납득의 기색을 보이지 않던 고그. 그러나 그의 말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파티원이 아닌, 웬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고그가 말하던 도중 끼어들어 그의 말을 끊고 자기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뱉고 있었으니 말이다.

“넌 또 뭐하는 녀석……. 윽?!”

“당신을 분명히 그때 고정세의 섹션에 가입했던……. 갑자기 무슨 용무신지? 저희들하고 그쪽은 딱히 접점이 없습니다만?”

아니, 정정하자. 어디까지나 공선자만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그 외의 다른 파티원들은 갑자기 끼어든 남자에 대해서 아는 눈치였다.

당장 고그만 해도 갑자기 자기의 말을 끊고 끼어든 사람한테 분노를 표하려고 하다가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고 얼굴이 굳었으며, 프로아 역시 평소의 친근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노골적으로 경계심이 담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두 사람뿐 아니라 밀리언과 쿠루미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밀리언은 귀찮은 사람이 아는 척을 할 때 지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쿠루미는 대놓고 혐오스러워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으니까.

“어……, 저기……? 여러분들이 아시는 분인가요?”

그런 그들의 반응에 공선자는 도대체 딱 봐도 양아치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외모의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슬쩍 옆에 있던 밀리언에게 묻는 것이었다.

일단 키는 170cm를 넘는 것 같았고 생김새는 의외로 멀쩡했다. 여기서 ‘의외’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생김새는 깔끔한데 어째 짓고 있는 표정이 그 멀쩡한 생김새를 생 양아치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

대놓고 상대를 얕잡아본다고 해야 할까……, 눈앞의 이들이 무조건 자신보다 아래라고 절대적으로 결정짓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그런 표정을 넘어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은 장난감을 바라보는 느낌도 섞여 있는 것.

저런 표정의 대상이 되어버린 만큼 공선자가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눈앞의 남자에게 좋지 않은 첫인상을 갖게 되는 게 당연했다.

“……고정세의 섹션에 가입한 상태인 챌린저들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특히 우리들을 떨거지라고 개무시를 하던 녀석들 중 한 명이지.”

“쿠루미랑 프로아보고 몸을 팔면 가입시켜준다는 멍멍이 소리를 하던 사람이 바로 저 사람임. 우리랑 똑같이 기억을 잃은 주제에 아무리 각성 스킬 소유자라도 뭔 배짱으로 저렇게 막나가는 건지 모르겠음.”

밀리언과 쿠루미의 설명에 순간적으로 공선자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일단 상대가 자신들과 같은 챌린저라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그야 그들처럼 기초 장비 셋트를 제공하는 상자를 개봉한 것인지 똑같은 형태의 가죽 경갑옷을 입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설마하니 스쳐 지나가듯이 말해줬던, 고정세의 섹션에 가입하려고 했을 때 쿠루미들이 겪었던 고초의 원인이 되는 주인공이 저 남자일 줄은 몰랐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몸을 팔라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라는 정도로밖에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니 공선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거기에 당사자들 역시 딱히 당시의 일은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러니 설마 갑작스럽게 현실에서 어디 동인지에서 나올 법한 대사를 친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라도 이상하지 않지 않은가?

허나, 그것 이상으로 공선자를 경악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저 남자가 공선자와 같은 ‘각성 스킬’ 소유자라는 이야기.

각성 스킬, 본래 공선자가 가지고 있던 초능력, 즉, 권능이 에볼루션 시스템에 의해서 다운그레이드 되어버린 능력.

그것은 다시 말해서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본래 권능(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권능사용자(초능력자)라는 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본래부터 권능사용자였던 공선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첫인상이 어떻게 봐도 그냥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 양아치로밖에 안 보이는 저 남자가 자신과 같은 권능사용자였다는 사실에 살짝 충격을 받는 그.

하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야 공선자가 타임 룰러로서 활동할 때도 도저히 권능사용자(초능력자)처럼 안 보이는 주제에 강력하기 그지없는 권능을 다루던 권능사용자들도 꽤 있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권능(초능력)이라는 것은 결국 자질이 전부인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 자질에는 소유자의 인격 따위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말이다.

그러니 저런 생 양아치로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운만 좋으면 선천적으로 권능을 각성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

단지, 권능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각성 확률이 극악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하마터면 그 극악의 확률을 양아치가 꿰뚫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니, 아니지.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돼. 겉모습을 저렇지만 의외로 괜찮을 사람일 수도……, 잠깐만? 겉모습은 멀쩡하잖아? 그 피부가 꽤 타기는 했지만 그것 외에는 겉모습은 멀쩡해. 문제는 겉모습은 멀쩡한데 오히려 행동거지가 양아치라는 점이지! 그러면 이미 어떻게 생각해도 커버 치는 게 불가능하지 않아?! 저건 그냥 양아치가 맞잖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공선자였는데, 그가 그렇게 살짝 혼란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이미 구면인 프로아들과 양아치는 자기들끼리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방금 전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해서 와봤는데 떨거지들의 무리가 모여 있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조언이라도 쫌 해줄까 하는 생각에 찾아왔다는 거지.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조언은 개뿔! 자기도 우리랑 다를 게 없이 이제 막 모험가 활동을 시작하려는 주제에 뭘 잘난 게 있다고……!”

“하핫! 뭐 잘난 있냐고? 당연히 있지. 난 너희들과는 다르게 무려 ‘각성 스킬’ 소유자라고? 4명밖에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각성 스킬’ 소유자 중에 한 명! 애초에 너희들하고는 시작점부터가 다르다는 거야!”

노골적으로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 양아치의 발언에 고그가 이를 갈며 대꾸하자 진심으로 바보를 목격했다는 시선으로 고그를 바라보는 양아치.

그 시선에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화산처럼 머리에 피가 쏠리는 고그였지만 의외로 너 죽고 나 살자! 라는 식으로 상대에게 덤벼들지는 않았다.

고그의 성격이라면 당장이라도 덤벼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은데 이를 악물며 그 자리에서 화를 삭이고 있는 것.

“뭐야? 그렇게 꼴아보면 뭐 어쩔 건데? 한 대 칠 것 같다? 왜? 쳐보지? 자자, 그렇게 열불만 내지 말고 속 시원하게 한 대 쳐봐. 맞아줄 테니까. 아니지, 그러고 보니까 너희들은 하나같이 주먹도 제대로 쓸 줄 몰랐지? 그래서 괜히 주먹질하면 자기들 손이 다칠까 봐 겁나서 못 휘두르는 거려나?”

고그들은 무술을 할 줄 몰랐기에 고정세의 섹션에 가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지적하며 고그를 도발하는 양아치였지만 고그는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할 뿐 실제로 손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고그의 약을 올리던 양아치는 시시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흥미가 다했다는 것처럼 고그에게서 시선을 떼는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이번에는 프로아와 눈을 마주치더니 그대로 그녀의 전신을 한 번 훑어보는 것.

그 시선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더러워진 그녀가 한 걸음 물러나며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뭐야? 그 눈빛은? 설마 또 어제 같은 웃기지도 않은 제안을 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거기에 애초에 넌 고정세가 아니어서 우리들을 섹션에 가입시켜줄 권한 같은 것도 없었잖아?”

방금 전까지는 그나마 어느 정도 예의를 차리던 말투를 사용하던 프로아였지만 양아치의 시선에 더 이상을 참지 못한 것인지 노골적으로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상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뭐? 하! 권한이 없어? 말했을 텐데? 난 4명밖에 없는 각성 스킬의 소유자 중 한 명이라고! 거기에 과거의 내가 뭐하던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수준급으로 무술을 쓸 줄도 알아서 말이지. 킥킥! 인재를 아주 중요시 여기는 우리 섹션장 나리가 그런 나한테 그 정도 권한도 안 줬을 것 같아?!”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프로아의 발언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시종일관 비웃음을 띄우고 있던 양아치가 인상을 구기며 날이 선 시선으로 프로아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허나, 이내 떨거지들한테 화를 내봤자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금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짓고 있던 비웃음으로 표정을 가장한 뒤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한테는 그럴 만한 권한이 있다는 거지. 하지만 미안하지만 어제 그 제안은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다. 생각해보니까 굳이 수박도 아니고 너희들 같은 호빵하고 절벽 때문에 도움도 안 되는 짐을 떠맡는 건 아니다 싶더라고.”

다시금 자신은 각성 스킬 소유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런 자신이기에 이미 섹션 내에서 자기 좋다는 여자가, 그것도 프로아와 쿠루미와는 비교도 힘들 정도의 미녀들이 줄을 섰다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양아치.

“……호빵? 후, 후후후……! 여태까지 들었던 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내 인내심을 한계를 시험하게 만드는 발언이었어!!”

“절벽인 건 인정. 허나, 그렇다고 해도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 것임! 무직한 팩트는 주먹을 부르는 것임!!!”

여기에 자신들을 호빵과 절벽에 비유하는 양아치의 태도에 두 소녀들이 당장이라도 초사이언으로 각성할 것 같은 분위기를 내비치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