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자신들한테 몸을 팔라는 미친 소리를 태연하게 제안했을 때부터 눈앞의 양아치를 여자의 적이라고 결정지은 두 소녀였지만 지금은 단순한 여자의 적이 아닌 불구대천지의 원수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양아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소녀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슬쩍 뒤로 빠진 고그와 밀리언에게 다가가온 공선자가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저기, 그래서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우리한테 다가와서 저렇게 시비를 털고 있는 건가요?”
“몰라, 자식아! 그걸 나한테 물어도 내가 어떻게 아냐?! 그 각성 스킬인지 뭔지 때문에 정신머리가 이상해졌나보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가지고 놀면서 희열을 느끼는 타입일 수도 있고 말이다. 어느 쪽이 되었던지 귀찮은 이야기야. 아무리 성격이 더러워도 각성 스킬 소유자니깐 말이지. 당장은 우리들이 적대할만한 대상이 아니야. 고그 녀석이 꾸역꾸역 참은 것도 덤벼봤자 아무것도 못 하고 깨질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말이야.”
공선자의 질문에 고그는 신경질적으로 오히려 자기가 묻고 싶다는 식으로 윽박을 질렀고, 밀리언은 그런 고그를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밀리언의 발언에 고그가 욱하는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그럼 넌 저 빌어먹을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꽂을 수 있냐?!’ 라고 따지고 드는 것.
그에 밀리언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내가 왜 그런 생산성 없는 짓을 해야 하는 거지?’ 라고 뻔뻔한 대답을 돌려주는 것이었고 말이다.
“흥, 떨거지인 네 년들이 아무리 꺄꺄! 거려 봐야 하나고 무섭지 않거든? 그것보다는……, 그래, 잊을 뻔했군. 조언이다, 조언. 시선이 느껴져서 와봤는데 역시나 떨거지들은 떨거지들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운이 좋았던 건지 자기들이랑 같은 떨거지를 한 명 더 구한 것 같기는 하다만 그래 봤자 다섯 명에 불과하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슬쩍 공선자를 바라보는 양아치. 그 양아치의 마치 자신을 품평하는 것 같은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움츠러든 공선자를 바라보며 그는 공선자에 대한 품평을 끝낸 모양이었다.
노골적인 조소를 입에 머금으며 공선자까지 포함해서 이 자리에 있는 다섯 명을 싸그리 떨거지라고 단언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노비스 등급이 아니라 이런 잡일이나 해야 하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
“확실히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가 상당수 잡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토벌 계열의 의뢰도 존재하거든?!”
“하핫! 아무리 토벌 의뢰라고 해도 스프라우트 등급인데 잡일하고 다를 게 뭐가 있겠어? 차라리 노비스 등급의 채집 의뢰 쪽이 더 난이도가 있겠군.”
프로아들이 고작해야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하러 왔다는 사실에 조소를 금치 못하는 양아치의 모습에 공선자는 다른 의미로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스프라우트 등급이 노비스 등급보다 안전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 봤자 한 등급 차이인데? 도대체 노비스 등급이 스프라우트 등급보다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다고 저렇게 유세야?’
상당히 짙은 경험을 쌓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공선자조차 눈앞의 양아치와 같은 타입의 인물은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긴, 짙은 경험이라고 해도 사람과 사람끼리 어울리는 경험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공선자였다.
그가 겪은 경험이라고 해봤자 죄다 총탄과 폭탄이 난무하는 전투에 관한 경험뿐이었으니 말이다.
사람과 어울리는 경험은 전투 중에 적과 몇 마디 나누는 수준의 경험을 포함해서 쥐꼬리만큼의 경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 공선자이기에 전투 경험은 하늘을 찔러도 사람과 어울리는 경험은 미천하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그.
그렇기에 공선자는 새삼스럽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숫자의 이상한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감탄하게 되는 것이었다.
경험은 많지만 그 많은 경험이 죄다 전투에 치중되어 있으니 저런 이상한 인간들과 엮이는 일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니, 엮여도 전투 쪽으로 엮었으니 상대가 이상한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전에 문답 무용으로 생사투를 벌였을 터였다.
각설하고 그런 의미에서 자기도 고작해야 노비스 등급인 주제에, 심지어 그 노비스 등급도 어디까지나 파티원의 숫자로 도전하는 주제에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수주한다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양아치를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선자.
“……하아, 그래서 그쪽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스프라우트 등급에 도전하는 우리한테 주제 파악이라도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이왕 도전할 거면 스프라우트가 아니라 노비스에라도 도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
더 이상은 듣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인지 밀리언이 나서 당장 본론을 이야기하라는 의미를 담아 점잖은 말투로 묻자 양아치가 콧방귀를 뀌더니 대답을 입에 담았다.
“흥,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그래, 원하는 대로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자. 너희들이 착용하고 있는 갑옷, 나한테 내놔라.”
“……허?”
그 직후 들려온 믿을 수 없는 개소리에 공선자를 포함한 다섯 명 전원이 자신들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양아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방금 전 프로아의 전신을 훑어보던 것은 호빵이라고 칭하던 그녀의 몸을 살펴본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그녀가 착용하고 있던 가죽 경갑옷을 살펴보던 것 같았다.
하지만 설마하니 다짜고짜 자신들의 장비를 내놓으라고 이야기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 심지어 그게 당연하다는 것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니 웬 미친놈을 바라보는 것 같은 눈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시선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자신은 딱히 이상한 걸 말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을 이야기했다는 태도로 양아치가 말을 이어간다는 점이었다.
“뭘 이상한 헛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을 짓는 거지? 제대로 들은 거 맞다. 난 지금 너희한테 그 갑옷하고 장비를 전부 넘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아하니 기초 장비를 지급해주는 상자를 열어서 얻은 게 맞겠지?”
“……이 녀석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너 어디서 약하고 왔냐? 자기가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구분이 안 가냐?”
얼마나 어지간하면 다섯 명의 파티원 중 가장 또라이 취급을 받는 고그가 저렇게 반응하겠는가?
허나, 그런 고그의 태도에도 양아치는 오히려 고그를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며 계속해서 자신이 어째서 그들의 장비를 가져가야 하는 것인지 그 논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너희들이 하려는 의뢰의 등급은 스프라우트 등급이 아니냐? 고작 그 정도 의뢰를 하러 가는데 굳이 그렇게 장비를 차려입을 필요가 있냐? 해봤자 잡일밖에 더 안 할 텐데? 그러니 너희한테 필요 없는 장비를 나한테 넘기라는 거지. 기초 장비라고 해도 팔면 짭짤하게 벌 수 있겠지. 그렇게 번 돈은 이 프로트님이 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사용해주겠다, 이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하는 그의 발언에 공선자는 이제는 자신의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에 잠기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이계인이기에 공선자가 알아듣기 힘든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닐까?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공선자에게는 에볼루션 시스템의 번역 시스템이 존재했다. 이계인의 이계 언어 정도야 번역을 해줄 터.
그렇다면 이계인이 아니라 외계인? ……아니, 하지만 에볼루션 시스템은 외계어도 번역해줄 것 같은데?
공선자가 그렇게 자신이 제대로 인간의 언어를 접하고 있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프로아가 어이가 없다 못해 상대해주는 것도 바보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나 보다.
“하아……. 어울려주는 게 바보 같기 시작했어. 이 사람은 무시하고 그냥 빨리 의뢰나 수주받고 나가자.”
프로아의 발언에 고그조차도 공감한다는 것처럼 더 이상은 못 어울려주겠다는 것처럼 자신을 프로트라고 이야기한 양아치를 무시하고 하던 의뢰 찾기를 다시금 이어가려고 하자
“어허…….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면 안 되지. 미안하지만 난 결코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그럴 게 너희들 같은 떨거지들이 그런 장비를 사용하는 것보다 나 같은 ‘각성 스킬’ 소유자가 그 장비를 판 돈을 십분 이용해주는 게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잖아?”
어차피 챌린저들은 이 플라워 차원의 멸망을 막아야 했다. 그러니 그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높은 자신을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프로트.
그런 양아치의 주장에 이제는 공선자조차 슬슬 귀가 썩어간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그냥 정신 건강을 위해 저 병신을 무시하기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공선자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사상 자체를 지극히 혐오하는 타입이었다.
그야 전에 살던 세계에서 그렇게 세계를 위해 희생된 소수가 바로 공선자, 자신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결국에는 소수였던 자신의 복수를 위해 다수를 보기 좋게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았는가?
그런 이유로 공선자마저도 헛소리를 지껄이는 프로트를 병신 취급하며 무시하려고 하자 프로트가 혀를 차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쯧,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군. 그냥 좋게좋게 넘겨받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힘을 쫌 써야겠군.”
“……너 설마?!”
갑자기 무슨 힘을 쓴다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공선자. 설마하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
심지어 이제 막 모험가를 시작하는 새내기인 자신들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건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실력자들이 우글우글 거리는 이 장소에서 폭력을 사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갑자기 프로트가 무슨 힘을 사용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공선자가 머리 위에 물음표 마크를 띄우고 있을 때 다른 네 명은 프로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챘는지 인상을 구기며 당장에라도 그에게 달려들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쓰읍! 폭력을 좋지 않지. ‘그 자리에서 멈춰’라!”
그러나 직후, 프로트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놀랍게도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들려고 했던 밀리언과 고그, 그리고 프로아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서는 것이었다.
그 광경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공선자. 허나, 직후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럴 것이…….
‘이건 설마 초능력?! 아니, 권능인가?! 그러고 보니까 각성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고 했지? 설마 지금 그 각성 스킬을 사용한 건가?!’
……공선자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초능력자가 초능력을 사용할 때 퍼져 나가는 무형의 파장이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초능력자(권능사용자)로서 초능력자(권능사용자)를 몇 번이고 상대해본 공선자는 초능력자가 초능력을 발동시킬 때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미묘한 파장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공선자는 그때 당시 자신이 느낄 수 있었던 그 파장이 다름 아닌 ‘오라’의 파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초능력, 즉, 권능을 발동시키는 근본적인 힘은 ‘오라’였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권능을 발동시킬 때 퍼져 나가는 무형의 기운을 오라일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현재 공선자는 어렴풋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 오라를 감지하는 감각을 개화한 상태이기까지 했다.
여기에 이야기한 것처럼 과거 초능력자들이 초능력을 발동시킬 때 몇 번이고 느낄 수 있었던 무형의 파장에 대한 기억까지 오버랩 되니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
권능(초능력)을 발동시킬 때마다 퍼져 나가는 무형의 기운은 오라였고, 지금 눈앞의 상대에게서 미세하지만 오라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 것을 통해서 상대가 권능, 정확히는 권능이 다운그레이드 된 각성 스킬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는 ‘착용하고 있는 장비를 조용히 벗어서 나한테 넘기도록’ 해! 떨거지에 불과한 너희들을 대신해서 내가 잘 사용해주도록 하지!”
희희낙락하며 자신의 파티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양아치. 그리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도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려고 하는 파티원들.
그 모습에 공선자는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깨닫고 당혹스러워하는 것이었다. 아마 양아치가 가진 각성 스킬은 언어를 통해서 상대를 강제하는 계열의 각성 스킬로 보였다. 그리고 그 각성 스킬을 사용해서 지금 자신들의 장비를 겉으로 보기에는 ‘건네받는 것’ 같은 방식으로 강탈해가려고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