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전신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 공선자. 그야 공선자는 사람의 온기를 원한다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이들과 함께 행동하기로 했지만 그것이 이들을 신용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 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각성 스킬은 단순히 특이 능력이라는 것을 넘어서 공선자의 ‘아이덴티티’에 크나큰 영향을 주는 요소인 것.
그와 같은 요소를 오늘 막 만난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정도로 공선자의 마음의 벽은 얇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사실을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어떻게 변명을 해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지가 생각이 안 나서 식은땀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 그게……. 전 딱히 각성 스킬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은데요……. 애초에 저 자신도 왜 방금 전의 그 이상한 사람의 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건지도 잘 모르겠고…….”
아니, 애초에 공선자는 각성 스킬을 지닌 사람이 4명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각성 스킬 소유자였다면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이들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고 주장을 하면서.
……실제로는 각성 스킬 소유자인 주제에 자신의 일에만 바빠서 다른 사람들 능력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자신을 포함해 각성 스킬 소유자가 4명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기에 공선자의 주장에는 신빙성이 존재했다.
“……흐음, 확실히 각성 스킬 소유자라면 상점 시스템을 통해서 자신이 지닌 각성 스킬 외에 무슨 각성 스킬이 존재하는지 살펴봤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존재가 확인된 각성 스킬은 상점 시스템을 통해서 스킬 포인트를 소모해 습득할 수 있다고 했었다.
즉, 이것은 다시 말해서 챌린저들 중에서 누군가가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각성 스킬이 상점 시스템에 등록되어 스킬 포인트만 지급하면 다른 챌린저들도 습득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상점 시스템에 등록된 각성 스킬은 챌린저들 중 누군가가 처음부터 소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각성 스킬 소유자가 4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구나!’
상점 시스템에 등록된 각성 스킬이 4개라면 그 4개의 각성 스킬을 처음부터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4명이라는 추측도 가능할 터!
……자신의 각성 스킬에만 정신이 팔려 다른 각성 스킬을 살펴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공선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허나, 그 모르고 있었다는 ‘진실’이 공선자의 ‘거짓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자신도 어째서 프로트의 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는 ‘진실’과 자신은 각성 스킬을 지닌 사람이 4명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진실’로 자신은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짓말’을 최대한 포장하려고 하는 것.
이것은 공선자가 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무의식 속에 쌓여 있는 경험이 어떻게든 지금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그도 모르게 거짓말을 진실로 꾸미고 있는 것이었다.
“……흐음,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으니까 진짜로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건가? 하지만 그러면 어째서 네 녀석이 혼자 그 정신 나간 녀석의 각성 스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인지가 설명이 되지 않은데?”
도저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공선자의 필사적인 변명. 무엇보다 고작 몇 시간 전에 만난 사이라고는 하지만 공선자의 성격은 그 몇 시간만으로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던 밀리언이었다.
아니, 밀리언뿐 아니라 공선자가 조금이라도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었던 그들은 눈앞의 소심하기 그지없는 청년이 도저히 뻔뻔하게 거짓말을 주워담을 수 있을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할 터.
그야 당장 진실을 이야기할 때도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이야기하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을 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공선자 자신이 당장 거의 본능에 가깝게 거짓말을 포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게 된다면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목을 조르는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도 모르게 버둥거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의식의 영역에 각인된 본능이 위기감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숨기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게 정보 조작을 실행하고 있다는 느낌인 것.
이것은 과거 전설의 에이전트로 활약했을 때 공선자의 본능 깊은 곳에 뿌리내린, 척추 반사에 가까운 반응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밀리언을 포함해 공선자가 각성 스킬을 지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렸던 다른 파티원들 전원 자신들이 착각한 건 아닌지에 대한 쪽으로 생각의 추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흐음……. 어떤 의뢰를 수주받으실 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다가 어째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단은 제가 의견을 한 말씀 드리자면 이분은 다른 분들과 비교했을 때 정신 방벽이 상당히 강하신 분인 게 아닐까요?”
허나, 정작 공선자가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라는 쪽으로 생각의 추가 기울자 그렇다면 어째서 공선자는 프로트의 각성 스킬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인지? 라는 새로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에 수주받으라는 의뢰는 수주받지 않고 왜인지 갑자기 이상한 대로 관심이 쏠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간판 아가씨가 착실하게 자신이 떠올린 가능성을 이야기해주는 것.
아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저 간판 아가씨도 상당히 공조하지 않았는가? 정신 간섭 계열의 단점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거기에 공선자가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는가, 있지 않은가에 대한 이야기는 의뢰를 수주받는 것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니었다.
프로아가 주장한 것처럼 파티원의 전력을 알아두는 쪽이 몬스터와 싸울 때 여러 가지 선택지를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테니 말이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공선자가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째서 프로트의 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가에 대한 의견을 간판 아가씨가 내보이자 밀리언들이 그녀에게 다시금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 정신 방벽이라는 거 정신력에 따라서 강도 같은 게 달라지는 거지? 그러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야! 사람에 따라서 정신력은 천차만별이니깐 말이지. 정신 방벽의 강도도 천차만별일 거 아니야? 그렇다면 블러드의 정신 방벽이 우리들의 정신 방벽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다는 가능성은 있어!”
간판 아가씨의 의견에 프로아가 그럴듯하다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공선자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쪽보다, 그저 우연히 공선자의 정신 방벽이 다른 이들보다 강하다는 가능성이 더 마음에 들었던 모양.
그 반응이 그녀가 얼마나 사람 좋은 타입인지 알려주고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공선자는 괜히 양심이 찔려 차마 똑바로 프로아를 바라보기가 힘든 것이었다.
“아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녀석이 우리들보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말도 안 되잖아?! 봐봐! 조금만 노려봐도 움츠러드는데?!”
허나, 고그는 그 주장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처럼 거세게 반발하는 것이었다. 그야 어떻게 봐도 유약해 보이는 공선자보다 자신의 정신력이 낮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든 것이겠지.
그뿐만이 아니라 쿠루미와 밀리언도 ‘그건 쫌 아닌 것 같은데?’ 라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딱히 고그처럼 자신이 이런 쫄보보다 아래에 있다니 인정할 수 없다! 라는 의미로 고그와 같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었다.
좀 더 순수하게 공선자의 정신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하는 눈치인 것이었다. 그에 간판 아가씨가 이해한다는 의미가 담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소심한 사람이라고 정신력이 약하다는 편견은 버리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오히려 조심하기에 남들보다 정신력이 강하고 정신 방벽이 강력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니깐 말이죠.”
아니,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소심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 라는 표정으로 도저히 간판 아가씨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세 사람의 모습에 간판 아가씨가 보다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소심한 성격을 지닌 분들은 보통 남들을 보다 강하게 거절하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이 타인을 강하게 거절하는 정신력이 정신 방벽에도 크게 영향을 주어 다른 분들의 정신 방벽보다 정신 간섭에 대한 내성이 강력한 경우도 두루 있죠.”
또한 소심한 성격이라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고난을 겪는 이들이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살아가는 이들보다 정신력이 더 단련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그렇기에 의외로 소심한 성격의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정신력이 더 강한 경우가 많다고 간판 아가씨는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 기준도 절대적인 건 아니에요.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으니깐 말이죠. 단지, 설령 소심한 성격의 사람이라고 해도 할 때는 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 괜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조언을 드리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간판 아가씨가 그렇게 설명을 끝마치자 고그를 포함한 밀리언과 쿠루미가 의외라는 시선으로 공선자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설마하니 뭐만 하면 저렇게 위축되는 성격의 공선자가 자신들보다 정신력이 강하고, 정신 방벽이 두꺼울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그 시선에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 것 외에는 돌려줄 만한 반응이 떠오르지 않는 공선자. 실제로는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기도 했으니 더욱더 양심의 가책이 찔리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나 정신 방벽이 두꺼운 게 아니라 일야몽의 파생 스킬인 몽계불침으로 정신 방벽의 내구력이 100배 상승한 상태잖아?!’
그러던 중 문뜩 떠오른 사실에 공선자는 다시금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는 어째서 자신이 프로트의 각성 스킬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인지 그 이유가 짐작이 되지 않았었다.
허나, 정신 방벽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간판 아가씨의 설명을 들으니 순간적으로 떠오른 스킬이 바로 몽계불침.
몽계불침의 스킬 설명에 정신 방벽의 내구력이 강화된다, 라는 설명이 있었으니 조건 반사적으로 그 스킬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공선자는 자신이 어째서 프로트의 각성 스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
그래, 다른 사람들에 비교했을 때 몽계불침에 의해서 내구력이 100배 상승해 있는 공선자의 정신 방벽을 이제 막 각성 스킬을 깨닫고 공선자보다 오라의 최대치도 적을 터인 프로트가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공선자의 거짓말을 포장하고 있던 하나의 진실이 효력을 다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어째서 프로트의 스킬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라는 진실이 이 순간부터 거짓이 되어버린 것.
……다행이라는 점은 이미 진실로 포장된 거짓으로 인하여 파티원들이 이미 납득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허나, 본의 아니게 사실을 각성 스킬의 영향으로 프로트의 각성 스킬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것을 거짓말로 숨기게 된 공선자는 더욱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는 것.
딱히 공선자의 정신 방벽이 간판 아가씨의 설명대로 강력해서 프로트의 능력을 막은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밀리언의 지적대로 각성 스킬을, 정확히는 각성 스킬의 파생 스킬을 통해서 막아낸 것이니 정신 차려보니까 거짓말로 거짓말을 포장하고 있는 상황이니 당장에라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어지는 공선자였다.
‘거기에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각성 스킬 소유자가 4명이라도 추측하는 건 상점 시스템에 등록된 각성 스킬이 4개이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 중 각각 1개씩의 각성 스킬을 지닌 2명이 고정세라는 사람의 섹션에 가입한 상태라는 거고?’
그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남은 2개의 각성 스킬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2명의 각성 스킬 소유자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상황이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