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고정세의 섹션에 가입한 상태에서 정체를 숨기는 것인지, 아니면 고정세의 섹션에 가입하지 않은 극소수로서 따로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데…….
‘아니, 그거 나잖아?! 난데요?! 나라고?! 빼도 박도 못하고 난데?! 심지어 2명 중 한 명인 것도 아니라 그 두 명 전부 난데?!’
……그럴 것이 각성 스킬 소유자들 중에서도 공선자는 특히 특이한 타입의 소유자였으니 말이야.
그야 다른 이들이 1개의 각성 스킬을 소유하고 있을 때 공선자는 시작부터 무려 2개의 각성 스킬을 소유하고 있는 것!
즉, 상점 시스템에 등록된 상태인 4개의 각성 스킬 중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2개가 공선자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각성 스킬에 해당한다는 소리였다!
그래, 각성 스킬 소유자는 애초에 4명이 아니라 3명이었던 것! 그야 공선자가 4개 중 2개의 각성 스킬을 소유하고 있으니 당연한 이치!
요컨대 4명의 각성 스킬 소유자 중 2명이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 3명의 각성 스킬 소유자 중 공선자 혼자서만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언빌리버블한 상황을 깨닫게 된 순간 공선자는 이쯤 되면 현기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이런 거짓말에 거짓말이 쌓이는 상황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는 의미로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의 공선자.
허나, 여기서 쓰러지면 더욱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 분명했기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반신의 인격이었던 존재는 잘도 자신을 대신해서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줬다고 새삼스럽게 감탄과 그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조언 감사드려요. 그러면 일단 각성 스킬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애초에 블러드가 진짜로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걸 숨긴다는 건 블러드에게 모종의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야. 그걸 이제 막 함께 행동하기로 한 우리들이 억지로 파고드는 것은 괜한 오지랖일 수도 있잖아?”
보다 긴밀하게 파티원들끼리 연계하기 위해서 서로 간의 전력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허나, 그것을 이유로 개인이 숨기고 싶어 하는 요소를 억지로 밝혀낸다는 것도 쫌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프로아도 처음 공선자에게 각성 스킬에 대해서 물었을 때 ‘말할 수 있으면 말해 달라는,’ 전제를 붙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것은 앞으로 같이 행동할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말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라는 배려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이기에 일단 공선자가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자 이 이상 공선자를 추궁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하긴, 이 녀석이 뭘 제대로 숨길 수 있을 것 같은 녀석도 아니고. 설령 숨긴다고 해도 괘씸한 것만 빼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깐 말이야.”
“거기에 방금 전의 그 양아치 녀석의 각성 스킬만 봐도 각성 스킬 자체가 그렇게까지 밸런스 파괴적인 힘을 지닌 건 아닌 것 같으니 당장은 전력이 된다고 생각하기도 힘들겠지. 그렇다면 딱히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가 크게 전력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도 않군.”
고그는 다시 말해서 보니까 공선자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밀리언의 경우에는 프로트의 각성 스킬의 단점에 대해 간판 아가씨에게 설명을 들으니 각성 스킬이 뭐 대수인가, 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모양.
“흐음……. 소유자가 밝혀지지 않은 각성 스킬의 이름이 분명 시안이랑 일야몽이었잖음? 솔직히 어느 쪽을 가지고 있든 이름 자체가 애매해서 전력이 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거임. 각성 스킬은 제대로 된 스킬 설명이 표시되지 않으니 이름만으로 판단해야 해서 더욱 애매함.”
쿠루미 역시 밀리언과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단지, 상점 시스템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각성 스킬에 대한 정보를 논리의 근거로서 들고 나왔을 뿐.
그리고 그런 쿠루미의 이야기에 공선자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점 시스템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각성 스킬에 대한 정보는 습득 전제 조건, 페널티, 영향, 마지막으로 이름뿐 그 외에 자세한 스킬 설명을 습득하기 전까지 표시가 되지 않는다는 모양.
이것은 아마 처음부터 각성 스킬을 각성한 상태인 원소유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하는 공선자였다.
각성 스킬은 거의 모든 게 공평한 에볼루션 시스템에서 유일하게 챌린저들의 시작지점을 다르게 만드는 요소였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를 추구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자질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기에 에볼루션 시스템에 포함되는 요소.
단, 말했다시피 에볼루션 시스템 자체가 워낙 밸런스를 따지다 보니까 자질을 가지지 않은 이들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것이 상점 시스템에서 각성 스킬을 스킬 포인트로 습득할 수 있는 제도인 것. 허나, 그 과정에서 원래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에 대한 정보가 빠져나가는 것은 원소유자들에게 불합리한 처사로서 느껴질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상점 시스템에서는 각성 스킬을 습득할 수는 있지만 해당 각성 스킬에 대한 정보가 미공개 처리가 되어 있는 모양.
각성 스킬을 제외한 다른 스킬들은 전부 제대로 된 스킬 설명이 표시되고 있었다. 그야 원소유자라는 개념이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각성 스킬을 2개 가지고 있는 공선자는 자신의 각성 스킬에 대해 이름을 제외한 다른 정보들이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말이다.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거……, 은근히 사소한 부분에서 밸런스를 추구한단 말이지.’
과연 신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만든 시스템이라는 것인지 빈틈을 찾기가 힘든 시스템이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 블러드를 추궁하는 건 그만두고 본래 우리의 목적으로 돌아가서……! 이거, 이 토벌 의뢰를 하기로 결정하자!”
여하튼 그런 과정을 걸쳐 결국 공선자가 각성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쪽으로 결론으로 내린 프로아들은 다시금 자신들이 길드 회관에 찾아온 용건에 집중하기로 하는 것.
그래, 애초에 그들은 이 길드 회관에 웬 양아치와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 혹은 정신 간섭 계열의 이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또는 공선자가 각성 스킬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추궁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 결단코 아니다!
그들이 길드 회관을 찾아온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쌈닭과 관련된 의뢰를 수주하고 최초로 몬스터를 사냥해본다는 쾌거를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흠, 이틀 안에 쌈닭은 10마리 토벌해오는 귀속 의뢰로군요.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를 지원하고 경력도 쌓아주고, 거기에 쌈닭의 숫자도 줄일 겸 길드에서 제시해둔 의뢰죠. 취지만 보자면 여러분같이 이제 막 모험가를 시작한 분들에게 적당한 의뢰이기는 한데…….”
그런 이유로 화제를 돌려 간판 아가씨가 골라준 의뢰 중에서 적당한 의뢰를 선택해 파티원들에게 의견을 묻는 프로아의 목소리에 다른 파티원들도 그녀가 선택한 의뢰를 확인하고 나쁘지는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프로아 덕분에 더 이상 추궁당하지 않게 된 공선자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쩍 그녀가 고른 의뢰를 확인하고는 눈을 조금 크게 뜨며 괜찮은 의뢰라는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럴 것이 밤의 공선자가 달성하려고 했던 토벌형 자유 의뢰보다 보상금이 30% 정도 더 붙어 있었기 때문.
요컨대 1만 원이었던 보상금이 1만 3천 원으로 책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수주 방식이 자유였던 자유 의뢰와 다르게 이 의뢰는 달성해야 하는 숫자가 한정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 한정된 숫자만큼은 자유 의뢰보다 30% 더 비싼 값으로 의뢰 달성금을 얻어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밤의 자신은 어째서 이 의뢰를 그냥 지나쳤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 아마도 워낙 의뢰가 많았다 보니까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허나, 의외로 공선자조차 괜찮은 의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의뢰를 선별해주었던 간판 아가씨가 조금 난색을 표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었다.
“에? 혹시 이 의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뇨, 의뢰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모험가로서 최초로 의뢰를 수주받을 때는 역시 귀속 의뢰보다는 자유 의뢰 쪽을 추천 드리고 싶어서 말이죠. 귀속 의뢰의 경우에는 수주받은 뒤에 다른 사람과 의뢰 겹칠 일이 없다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의뢰를 실패하게 되면 모종의 페널티를 받게 되니깐 말이죠.”
그러니 아직까지 의뢰를 달성해본 경험이 없는 초심자들은 실패한다고 해도 딱히 페널티가 없는 자유 의뢰를 추천한다고 이야기하는 간판 아가씨였다.
무엇보다 당장 프로아가 고른 의뢰는 ‘시간 제한’까지 붙어 있는 상태가 아닌가? 자유 의뢰에 비하여 귀속 의뢰의 보상금이 30%나 더 비싼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으으음……. 확실히 혹시라도 실패했을 때를 생각하기는 해야 하는데…….”
“핫!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냐? 그냥 받아! 설마 아무리 그래도 이틀 동안 덩치만 큰 타조를 10마리도 못 잡겠냐?”
간판 아가씨의 조언에 프로아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다시금 고민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프로아의 반응과 다르게 고그는 간판 아가씨의 조언에도 자신들은 전혀 꿀릴 것이 없다는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것.
확실히 혼자라면 모를까 일단 쿠루미들은 공선자를 포함해 다섯 명인 것이었다. 성인 남성 혼자라도 장비가 제대로 갖춰진다면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는 쌈닭을 이틀 동안 10마리 사냥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이는 것.
“흐음, 확실히 쌈닭을 잡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막 모험가를 시작한 새내기라도 해도 장비, 그것도 무기만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이틀 동안 쉬지 않고 10마리를 사냥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죠. 하지만…….”
그리고 간판 아가씨 역시 그 객관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주일 동안이라고는 해도 자신이 담당하게 된 챌린저들에 속하는 프로아들을 위해서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쌈닭의 무력만을 이야기했을 때의 이야기에요. 쌈닭, 아니, 모든 몬스터들은 ‘살기’라는 이름의, 생명체를 본능적으로 공포에 질리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지간히 정신력이 강하지 않는 이상은 몬스터의 살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제대로 싸우기도 힘들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역시 여러분들이 차분하게 몬스터들의 살기에 익숙해져 나아갔으면 좋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이틀이라는 시간제한은 너무 촉박하다는 게 간판 아가씨의 주장이었다. 몬스터의 살기에 익숙해지기 전이라면 하루에 3마리를 사냥하는 것도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니, 처음 몬스터의 살기를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니 첫날에는 한 마리를 사냥해도 분전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간판 아가씨의 그 충고에 공선자를 제외한 다른 파티원들의 시선이 공선자에게 모이는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다시금 자신에게 모이는 시선에 공선자가 당황하는 것이었지만 딱히 그들은 공선자에게 무엇인가를 추궁하려고 그를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까 확실히……, 이 자식, 겁에 질려서 냅다 도망쳤다고 했지? 쯧, 그게 단순한 엄살은 아니었다는 거네?”
“으으으. 그럼 역시 자유 의뢰 쪽을 받는 게 좋을까? 아무리 그래도 처음 받는 의뢰에 실패해서 페널티를 받는 건 쫌…….”
“그 페널티라는 거,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위험한 종류임?”
고그가 미심쩍어하는 시선으로 공선자를 바라보았고, 프로아는 소심하다고 해도 자신보다 정신력이 강할지도 모른다는 공선자가 살기에 겁을 먹어 도망치기 급급했고, 마지막에는 여관에 도착해 기절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머리를 감싸 쥐는 것이었다.
쿠루미의 경우에는 간판 아가씨에게 의뢰에 실패할 경우 받게 되는 페널티가 무엇인지 그 구체적인 예를 묻는 것.
“일단 하나의 의뢰를 실패할 때마다 다음 등급으로 승급하기 위해 쌓이던 성과가 깎여나가요. 요컨대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10개 성공시키는 것으로 쌓여 있는 성과가 하나의 의뢰를 실패하면 9개 성공했던 것으로 깎여나가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등급의 의뢰를 실패했든지 간에 쌓인 성과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성과가 깎여나간다는 것이었다.
노비스 등급을 10개, 인턴 등급을 10개 성공한 상태에서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1개 실패한다고 해도 인턴 등급 쪽이 9개로 깎여나간다는 이야기.
“거기에 더 이상 깎여나갈 의뢰가 없는 상태에서 의뢰를 실패하면 마이너스 성과로 계산되고 그 마이너스 성과가 5개 쌓이게 되면 모험가의 등급이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