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인턴이면 노비스, 노비스면 스프라우트 등급까지 내려간다는 이야기. 여기서 더 이상 내려갈 건더기가 없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경우에는 마이너스 성과가 10 쌓이게 되면 아예 모험가 자격이 박탈되어 증명패를 몰수하게 된다고 한다.
“……흐음, 그러면 일단 당장 의뢰를 실패하게 된다고 해도 곧바로 모험가 등급이 깎이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소리군?”
“응, 거기에 설령 의뢰를 실패해서 마이너스 경력이 쌓인다고 해도 당장 스프라우트 등급인 우리라면 스프라우트 등급의 잡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이너스 경력을 지울 수 있음.”
간판 아가씨의 설명에 따르면 마이너스 경력을 지우기 위해서는 무조건 현재 자신의 등급 이상의 의뢰를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는 설령 페널티를 받는다고 해도 잡일 의뢰를 해결하면 마이너스 경력을 지울 수 있다는 이야기.
“그야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는 새내기들인 걸요. 그런 만큼 그들의 실패를 너무 심각하게 몰아붙일 정도로 모험가 길드의 도량이 좁지는 않답니다.”
이제 막 모험가 활동을 시작한 초보자인 만큼 스프라우트 등급에 한해서는 상당히 너그러운 처사를 내린다는 간판 아가씨의 설명에 프로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의뢰에 실패할 생각을 하는 것은 좋지 않았지만 적어도 스프라우트 등급에 머물고 있는 한 어느 정도 의뢰 페널티가 완화된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허나, 워낙 뒤쪽 세계에서 살아온 경험이 많은 공선자는 딱히 떠올리고 싶어서 떠올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가정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
‘저거, 말이 너그러운 처사지, 실제로는 모험가로서 활동할만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잡일을 떠맡기는 식으로 부려 먹겠다는 이야기 아니야?’
모험가로서 성장할 재능이 없는 이들은 스프라우드 등급의 의뢰조차 계속해서 실패할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모험가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법한 의뢰를 수주받아야 한다.
즉, 잡일을 해야 한다는 소리. 즉, 모험가로서 성장할만한 재능이 없는 사람은 이 굴레에 갇혀 모험가 그 자체를 포기하기 전까지는 결국 잡일 담당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
실제로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들에게는 상당히 너그러운 처사일지도 몰랐지만 그 이면에는 모험가로서 성장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은 잡일 담당으로 돌린다는 어두운 일면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어떤 일이라도 겉만 보는 것이 아닌 이면을 살피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 공선자가 깨닫는 순간 상당한 긴장감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럴 것이 밤의 공선자라면 모를까 아침의 공선자,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파티원들 역시 지금 공선자가 떠올린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장담을 결코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아니, 에볼루션 시스템이 있는 만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성장해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모험가로서의 실력을 쌓아가는 것도 가능할 거야. 문제는 그럴 만한 시간이 있을 것인지…….’
그럴 게 플라워 차원은 언제인지는 몰라도 멸망이 예정된 세계인 것이다. 당장은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이 소나타라는 도시조차도 공선자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는 것.
거기에 세계가 멸망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그 전조가 발생할지 전혀 예측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전조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지금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
무려 세계가 멸망하는 전조이니 적어도 세계적인 스케일로 난장판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혹시 눈을 떠보니 세계 멸망! 이라는 계열의 멸망이라면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세계가 멸망해버릴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계열의 멸망은 막는 건 솔직히 말해서 무리가 아닌가?
그러니 양심이 있다면 적어도 전조는 발생하는 그런 멸망일 터. 그리고 그 전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에서 과연 천천히 힘을 기를 시간이 있을 것 같은가?
‘잘못하다가는 의뢰 실패와 잡일 수주의 굴레로 인해서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세계 멸망과 함께 죽어버릴 수도 있겠는데…….’
공선자가 그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살짝 안색이 창백해지고 있을 때 그와 다르게 페널티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일면을 눈치채지 못한 밀리언들은 실수해도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푸는 것.
그리고서는 결국 실패해도 페널티가 없는 자유 의뢰가 아닌, 프로아가 수주받자고 했던 귀속 의뢰를 수주받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잡일 의뢰를 달성하며 마이너스 경력을 지울 수 있으니 한 번 도전해보자는 느낌으로 귀속 의뢰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애초에 모험가로서 살아갈 것이라면 언젠가는 귀속 의뢰를 해볼 수밖에 없으니 귀속 의뢰를 수주받는 경험을 쌓아보자는 의도도 있었고 말이다.
“……좋아! 그럼 역시 이 의뢰를 수주받는 거다? 다들 불만은 없지? 실패해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마음 편히 먹고 하자!”
“저기, 제 입장에서는 실패를 전제로 의뢰를 수주받으려고 한다면 매우 곤란한데 말이죠. 이왕 하실 거면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기세가 아니면 안 돼요!”
“냐, 냐하하! 아뇨, 그렇다고 실패하는 게 전제라는 게 어디까지나 너무 긴장하고 가지 말자는 의미에서…….”
공선자가 혼자서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 이미 의견을 모은 상태였기에 별다른 불만 없이 귀속 방식의 의뢰를 수주받기로 결정을 내리는 파티원들.
단지, 너무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기에 간판 아가씨가 살짝 딴죽을 거는 것.
그에 프로아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내젓자 그 모습을 보던 간판 아가씨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후후, 그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페널티가 가벼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페널티가 없는 것은 아니죠. 그러니 너무 긴장을 풀지 마시라는 생각에 제 입장에서 드리는 가벼운 조크였을 뿐이었으니 말이죠. 그럼 이 귀속 의뢰를 수주받으시는 거죠? 수주 처리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따라와 주세요.”
그렇게 이야기한 뒤 게시판에 붙어 있던 의뢰가 적힌 종이를 때어낸 간판 아가씨가 그녀들을 이끌고 자신이 맡은 카운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프로아를 필두로 그녀를 따라 카운터로 가는 파티원들.
그 후, 쿠루미들은 간판 아가씨의 도움을 받아 모험가가 어떤 식으로 귀속 의뢰를 수주받는 것인지 그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애초에 간판 아가씨는 이제 막 모험가 활동을 시작하는 챌린저들을 전담하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익숙하다는 것처럼 그들에게 모험가가 의뢰를 수주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설명해주는 것.
“……는 식으로 의뢰를 수주받으시면 됩니다. 의뢰를 수주받는 방식 자체는 어려울 게 없습니다. 조금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있다면 오히려 의뢰의 달성 보고와, 혹은 제한 시간 내에 의뢰를 달성하지 못했거나, 모종의 이유로 더 이상 의뢰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실패 보고 쪽이죠.”
그렇게 착실하게 앞으로 고그들이 모험가로서 수월하게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모험가가 의뢰를 수주받을 때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간판 아가씨.
본래라면 행정 업무를 보는 사무원을 하나의 파티가 이렇게까지 오래 차지하고 있으면 주변에 민폐였지만 간판 아가씨는 일주일 동안 챌린저들을 전담한다는 공고가 붙은 지 오래였기에 딱히 주변에서 문제로 삼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편하게 그녀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모험가가 어떤 식으로 의뢰를 수주받고, 달성 보고나 실패 보고를 하는지 배우게 된 그들은 최후로 수주받기로 했던 쌈닭의 토벌형 귀속 의뢰를 수주받는 것으로 의뢰 수주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 마무리 지은 것이 아니라 하려고 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공선자가 어버버버 하는 사이에 어느새 귀속 의뢰의 수주가 끝나가는 그 순간, 공선자를 포함한 다섯 명의 귓가에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효과음이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띠링!
“음? 이 소리……, 어디서 들어 본 소리인데? 너희들도 들었어? 이거 나만 들은 거 아니지?”
고그가 가장 먼저 그 소리에 반응하여 다른 파티원들을 보며 묻자 그들 역시 같은 소리를 들은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에 공선자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함께 파티를 짜기로 했던 네 사람 모두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어, 저기, 이거 스, 스트림이 발생한 것 같은데요? 그러니 일단 스트림 시스템을 열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한 효과음을 들은 기억이 있었던 공선자는 그 기억을 기반으로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처음 지금 그들이 있는 도시인 소나타에 도착했을 때도 여기 있는 다섯 명뿐 아니라 함께 있던 50명의 챌린저들도 같은 효과음을 들었던 것이었다.
“스트림이라면 그 퀘스트 비스무리한 녀석? 응, 확실히 스트림이 등록되어 있음. 파티로 모험가로서 귀속 의뢰를 달성해라! 라는 이름의 사이드 스트림임.”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공선자가 자신에게 스트림이 발생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프로아들이 곧바로 자신들의 스트림 창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의뢰를 수주받다 말고 갑자기 허공을 향해 손짓을 하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밀리언들의 행동에 주변의 다른 모험가들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시선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간판 아가씨만큼은 딱히 얼굴 표정을 바꾸고 있지 않았지만 현재 프로아들을 그런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가 않은 상태였다.
“아, 나도 같은 스트림이 발생했어! 어디 보자……, 사이드 스트림으로 프랜들리 시스템을 통해서 2명 이상의 인원수로 파티를 맺고 모험가로서 1개의 귀속 의뢰를 달성하라는 게 달성 조건이네. 난이도는 노멀이고.”
쿠루미에 이어서 프로아가 자신의 스트림 시스템을 살펴보며 이야기하자 공선자를 포함한 다른 이들 역시 똑같은 사이드 스트림을 받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메인 스트림, 서브 스트림, 사이드 스트림, 오브젝트 스트림의 뚜렷한 기준을 알기는 어려운 상황.
아니, 기준 자체는 도움말 시스템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그 기준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애매한 기준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소리였다.
당장 다섯 사람이 동시에 맞은 이 스트림이 어째서 서브나 오브젝트가 아니라 사이드로 분류되는 건지도 확실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거기에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스트림이 발생한 거지? 모험가로서 의뢰를 진행했던 것은 밤의 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밤의 내가 의뢰를 진행할 때는 딱히 스트림 같은 건 발생하지 않았었는데……?’
혹시 당시에 공선자가 진행했던 것은 수주받는 과정이 필요가 없었던 자유 의뢰였기 때문일까?
확실히 그럴 수도 있었다. 스트림의 발생 조건이 직접 사무원을 통해서 수주받는 과정이 요구되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귀속 의뢰를 수주받은 이 순간에 그에 맞춰서 스트림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는 것. 공선자가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밀리언이 입을 여는 것이었다.
“흐음, 딱 지금 우리가 수주받은 의뢰랑 같이 진행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군. 아니, 오히려 소정의 경험치와 1T를 보상으로 지급해주니 추가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거기에 설령 이번 의뢰에 실패한다고 해도 다른 의뢰를 달성해도 클리어로 쳐주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단, 변동률을 생각하면 시간제한은 약 일주일 정도라고 생각된다고 이야기하는 밀리언. 보다 정확하게는 변동률이 올라갈수록 스트림이 사라지거나 변질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니 실질적인 시간제한은 이틀에서 삼일 수준일 것이다.
그야 변동률이 50%를 넘으면 변동률이 100%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순간에 스트림이 변질될 확률이 50%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빠르게 스트림을 클리어한다고 주장하는 밀리언. 그의 의견에 다른 이들 역시 전원 동의하는 것인지 방금 전보다 더욱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크핫! 결국에는 이 의뢰를 보기 좋게 달성하면 해결되는 소리 아니야. 좋아! 잽싸게 끝내고 잽싸게 보상금을 받아서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글쎄? 딱히 우리에게 그 정도 여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말이지. 당장 이 의뢰를 달성한다고 해도 손에 들어오는 건 고작해야 13만 원 수준이고 말이지. 이건 5등분 하면…….”
끽 해야 한 명 당 2만 6천원 상당의 돈을 받는 것이었다. 하루 일당이라고 해도 부족하기 그지없는 수준.
일주일, 정확히는 앞으로 6일간은 의식주로 돈이 나갈 일이 없다고 해도 도저히 많이 번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