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7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47/194)



〈 147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번 돈으로 술을 마시겠다고? 밀리언의 이야기처럼 도저히 그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

그와 같은 밀리언의 지적에 고그가 큭! 하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우물거리는 것에 가깝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 그러면 이 의뢰를 끝내고 바로 다른 의뢰를 수주받아서 돈을 번 뒤에 마시러 가면 되는 거잖아…….”

“아니, 애초에 아직 제대로 생활이 안정되지도 않았는데 술부터 퍼마실 생각을 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만……, 뭐, 좋아. 딱히 나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우스운가. 단, 진짜로 마시게 된다고 해도 파티에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하도록.”

“아니, 그전에 일단 우리가 이 의뢰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말이야……, 아, 죄송해요. 너무 저희들끼리만 떠들었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해서요.”

고그와 밀리언의 대화에 프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자신들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간판 아가씨의 시선을 깨닫고 그녀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스트림이 발생한 것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의뢰를 수주해주는 작업을 해주던 그녀를 본의 아니게 무시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줘 버렸기 때문.

그렇기에 프로아가 자신들에게 발생한 사이드 스트림에 정신이 팔려 있는 파티원들을 대신하여 사과의 말을 전하자 간판 아가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젓는 것이었다.

“아뇨, 길드장께서 데려오신 신입 모험가 여러분들은 어째서인지 지금의 여러분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미 익숙해졌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 간판 아가씨의 이야기에 공선자는 이미 그녀를 통해서 의뢰를 받아 모험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다른 챌린저들도 자신들과 비슷한 사이드 스트림이 등록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었다.

공선자들과 다르게 고정세의 섹션에 가입한 상태일 터인 그들은 아마도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달성하는 것이 사이드 스트림으로 등록되었을 터.

그렇기에 공선자들보다 보상 역시 더 좋을 터였다. 스트림의 난이도가 똑같이 노멀인지, 아니면 그보다 위의 등급인 하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달성 조건이 스프라우트 등급인 스트림보다 노비스 등급인 스트림이 더 어려울 테니 보상도 더 높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보다 시작이 늦어진다는 거네.’

그 사실에 공선자는 조금 기분이 암울해지는 것이었다. 딱히 다른 챌린저들과 경쟁을 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누가 되었던지 세계의 멸망을 막아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공선자였으니까.

공선자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었다. 그런 만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또 뭐든지 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대신해서 세계를 위기에서 구해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양팔 벌려 환영을 해야겠지.

……하지만 방금 전의 그 프로트라는 양아치를 경험한 덕분에 공선자는 자신과 같은 챌린저들에게조차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공선자는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프로트에 의해서 챌린저들에 대한 경각심이 더 강해졌을 뿐인 이야기인 것.

어쨌든 그런 이유로 챌린저들에게 더욱 강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 공선자는 다른 챌린저들이 앞서 나갈 때 자신은 뒤처진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어두운 세계를 잘 알고 있는 공선자는 힘이 있는 인간이 힘이 없는 타인에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챌린저라는 이들이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어떤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강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강해지기는커녕 뒤처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었다.

“냐, 냐하하! 따, 딱히 일부로 그런 건 아니에요……. 그……, 챌린저들을 대표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아아!”

어딘지 모르게 뼈가 있는 것 같은 간판 아가씨의 목소리에 괜히 찔리는 게 있었던 것인지 어색하게 웃으며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려던 프로아였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그에 후후! 하고 작게 미소를 짓던 간판 아가씨가 그녀에게 하나의 종이를 내밀어 오는 것이었다.

그 종이를 조심스럽게 받아든 프로아는 그것이 방금 전 간판 아가씨가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가 게시되는 의뢰 게시판에서 때어낸 의뢰용지라는 것을 깨닫고 간판 아가씨에게 시선으로 묻는 것이었다.

의뢰의 수주가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자신에게 이 의뢰용지를 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

“그 의뢰용지는 귀속 의뢰를 수주받았다는 증표가 되기도 하니깐 말이죠. 이후 의뢰 달성이나 실패를 보고를 할 때 함께 제출해주시면 됩니다. 거기 용지 아래에 함께 의뢰에 도전할 분들의 모험가로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죠? 그게 해당 의뢰를 이름이 기록된 분들과 함께 수주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표가 되어주는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의뢰용지는 의외로 가격이 상당한 물건이니 꼭 제출해달라는 간판 아가씨의 경고도 있었다.

막 엄청나게 비싼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처리가 되어 있어 생각보다는 비싼 물건이기에 함부로 막 사용하면 길드에서 의뢰용지를 유지하는 것에 상당한 유지비가 든다는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만약 의뢰용지를 분실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빼돌릴 경우에는 의뢰에 실패했을 때보다 더 심한 페널티가 부과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는 간판 아가씨의 설명에 프로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봐 모험가 길드의 회관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인벤토리에 보관하기로 결정하는 프로아.

“그럼 부디 여러분의 생환을 기원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드디어 이것저것 탈이 많았던 의뢰의 수주를 끝낸 공선자들은 마침내 드 회관에서 벗어나 공선자의 안내에 따라 쌈닭의 서식지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흐음……, 멀다고 해야 할지, 가깝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하려고 한다면 몇 번이고 왕복하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만 체력적인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될 수 있으면 왕복하는 횟수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군.”

모험가 길드 회관에서 프로트에 의한 작은 소란을 겪은 덕분에 액땜이라도 했는지 공선자를 포함한 일행들은 별 탈 없이 쌈닭의 서식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문을 빠져나가 몇십 분 정도 걸은 끝에 쌈닭의 서식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그들. 당초 성문을 빠져나올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던 일행들이었다.

그야 자신들의 발로 성문을 빠져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

안전한 성벽으로 보호받는 도시 안을 돌아다니는 것과 성벽 밖의,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지대를 돌아다니는 것은 긴장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거기에 말했다시피 어제 막 플라워 차원에서의 생활을 시작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이야기지만 자신들의 발로 안전한 도시를 벗어난 것은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서도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 일. 허나, 그것도 잠깐 동안이었다.

아무 일도 없이 21세기 지구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포장된 길을 걷다 보니까 저절로 풀리게 된 긴장감.

도중 도중에 몬스터의 습격이라도 있으면 몰랐을까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포장된 대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었다.

성벽을 지나올 때 아침에 성벽을 지나갔던 공선자를 알아보았던 경비병, 정확히는 치안수호대라는 조직에 속한 문지기들이 공선자를 대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있기는 했었다.

아마도 아침에 몬스터의 살기와 조우해서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던 공선자를 기억하고 있던 그들이 그런 경험을 하고서도 동료들과 함께 다시금 몬스터에게 도전하는 공선자의 모습에 감탄을 했던 모양.

그런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공선자가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했던 일을 제외하고는 대로를 걷는 사이에는 딱히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던 것.

그러다보니 아무 일도 없이 몇십 분 가까이 걷기만 하다 보니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풀어졌던 긴장감도 공선자의 안내에 따라 마침내 쌈닭의 서식지를 눈앞에 두었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조여지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 이 숲 안에 타조만 한 닭대가리들이 서식한다, 이 말이지!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이 고그님의 모험가 데뷔식을 화려하게 장식해볼까!”

쌈닭이 서식하는 숲을 눈앞에 둔 순간 다시금 조여오기 시작하는 긴장감을 떨쳐내려는 것인지 고그가 어떻게 봐도 허세처럼 보이는 대사를 입에 담으며 자신이 등 뒤에 매고 있던 대검을 양손으로 붙잡고 전투 준비를 취하는 것이었다.

……허나, 현재 고그의 근력으로는 묵직하기 그지없는 통짜 철로 만들어진 대검을 다루는 것은 무리였던 것인지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하지도 못하고 대검을 땅바닥에 질질 끌기 시작하는 것.

그 모습에 허세를 부릴 거면 적어도 그 대검이라도 어떻게 좀 주체하고 부리라는 의미를 담아 짜게 식은 눈빛을 고그에게 향하는 다른 일행들이었다.

그나마 조금 있으면 처음으로 몬스터와의 전투를 겪게 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당장 고그를 쪼기 위해서 입을 열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짜게 식은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파티원들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대검을 질질 끌며 당당한 보무(?)로 홀로 앞서 쌈닭의 서식지에 발을 들이미는 고그.

그리고 그런 고그의 뒤를 쿠루미들이 마지못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따라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뒤를 자신의 무기인 단검을 꺼내 들고 마지막으로 따라가기 시작하는 공선자. 그러면서도 그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어……? 이, 이대로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일단 들어가고 보는 거야? 우선은 기습을 할 건지, 정면에서 싸울 건지, 아니면 함정을 파고 기다릴 건지 등과 같은 전술을 짜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공선자의 고민이 우습게 파티원들은 전술이고 뭐고 일단 정면에서 싸워보겠다는 것처럼 당당하기 그지없게 서식지에 말을 들이미는 것이었다.

겁이 많다고는 해도 경험만큼은 넘치도록 많은 공선자로서는 기척도 죽이지 않고 ‘나 여기 있어요!’ 라고 대놓고 움직이는 파티원들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는 기분이었다.

아니, 확실히 정면에서 싸울 것이라면 굳이 여기서 더 무슨 준비를 하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프랜들리 시스템을 통해서 맺는 파티의 경우에는 쌈닭의 서식지에서 오는 길에 공선자를 포함한 다섯 명 전원이 파티를 맺은 상태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정면에서 싸울 거라면 더 이상의 준비를 필요하지 않았다. 일단 포지션은 전부 짜놓은 상태였고, 그에 맞춰 장비도 지급받은 상황.

무슨 세세한 전술을 짜려고 해도 기억을 대부분 잃은 상태인 챌린저들에게 그런 전문적인 지식이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었으니 도움이 되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때문에 더 이상 준비다운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할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대략적인 전술 정도는 짤 수 있지 않은가?

공선자가 고민했던 것처럼 기습을 할 것인지 함정을 팔 것인지, 아니면 정면에서 싸울 것인지 정도는 의견을 나누고 전투를 어떤 식으로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공선자를 제외한 네 명은 기습이나 함정 따위는 애초에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것처럼 당당하기 그지없는 모델 워킹(?)으로 서식지에 들어가고 있으니 공선자가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허나, 그들의 태도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야 공선자와 다르게 경험이 그들은 경험이 없었으니까.

아니, 설령 전투 경험이 풍부해도 챌린저가 되며 그 기억 대부분을 잃었을 터이니 몬스터와 싸운다는 상황에서 정면대결이라는 선택지 하나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이 암살이라는 개념에서라면 모를까 전투라는 개념에서 곧바로 정면대결에 가까운 싸움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으니 말이다.

현재 파티원들은 쌈닭과 ‘전투’를 하려는 것이지 ‘암살’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공선자에게 ‘전투’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상대의 목숨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가깝다면 다른 파티원들에게 ‘전투’란 ‘정면에서 상대를 쓰러트려야 하는 상황’에 가까운 것이겠지.

여하튼 이런 차이 때문에 그냥 대놓고 서식지를 가로지르는 파티원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공선자는 그러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하고 조용히 자신만이라도 기척을 죽인 채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아니, 기척을 죽이려고 했지만 밤의 공선자와 다르게 겁이 많은 아침의 공선자는 자그마한 풀 소리에도 흠칫흠칫 놀라 결국 다른 파티원들과 다를 게 없이 대놓고 서식지를 가로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