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렇게 당당하기 그지없는 걸음걸이로 쌈닭의 서식지를 가로지르던 공선자들. 하지만 너무 대놓고 기척을 흘리고 다녀서 그런 것인지 한동안 쌈닭은커녕 야생동물 한 마리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 야생동물이라면 모를까 몬스터인 쌈닭이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고 피해 다닐 일은 없을 터이니 단순히 공선자들이 쌈닭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저기, 블러드. 정말로 여기가 쌈닭의 서식지인 거 맞아? 그런 것치고는 여태까지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어, 저기……, 아직 서식지에 들어온 지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요?”
프로아가 상당히 굳은 얼굴로 갑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오자 조용히 주변을 경계하며 파티원들의 뒤를 따라가던 공선자가 당황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처럼 아직 그들이 쌈닭의 서식지에 발을 들인지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을 것. 운이 좋으면 곧바로 쌈닭 한 마리에 조우할 수 있을 법한 시간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을 경우의 이야기.
밤의 공선자도 나무 위를 넘나들며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을 사용했음에도 운이 나쁠 때는 몇십 분 동안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던 적도 있으니 그렇게 이상한 상황도 아니었다.
“에……? 아직 그 정도밖에 시간이 안 흘렀어? 으으, 긴장을 해서 그런가? 시간이 엄청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 들어.”
“확실히 이대로는 전투 전에 쿠루미들이 먼저 지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임.”
“하지만 그렇다고 몬스터의 서식지에서 긴장을 풀 수는 없지 않은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체력을 보존하는 것 역시 결국에는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이겠지.”
아무리 겁쟁이인 정신이라고 해도 공선자가 쌓은 경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디 가기는 했다.
제정신이 아닐 때는 그 경험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허나, 적어도 아직 정신줄을 제대로 붙들고 있는 지금의 공선자는 어느 정도 자신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인 것.
그렇기에 정신줄만 제대로 붙잡고 있는 공선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체내 감각을 이용해 상당히 정확하게 시간 경과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공선자가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잔뜩 긴장한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공선자가 이상한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시간감각을 파악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프로아를 포함한 다른 네 사람은 진작 서식지에 들어온 뒤로 30분은 지난 것 같은 감각을 맛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덕분에 아직 제대로 된 전투도 치러보지 않았는데 괜한 체력이 점점 소모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아, 진짜! 우리가 무슨 소풍 나온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렇게 걷기만 해야 하는 건데?! 젠장! 차라리 뭐라도 좋으니까 아무거나 튀어나오라고오오오오!!!!!!!!!!!!!!!”
그렇게 그저 지쳐가는 상황이 더 이상 참기 힘들었던 것인지 고그가 결국에는 일을 터트리고 말았다.
대놓고 기척을 흩뿌리며 다니고 있는 것도 공선자는 위험하게 느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주 작정하고 존재감을 어필하는 샤우트를 전방을 향해 갈겨버린 것이었다.
그 행동에 공선자는 그야말로 기겁을 하며 그를 말리려고 드는 것.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공선자뿐이었다.
다른 일행들도 슬슬 지친 것인지 저렇게라도 해도 쌈닭이 등장해주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그에 공선자가 허겁지겁 고그를 말리면서 그에게 일이 잘못되면 어떤 상황에 처할지에 대한 경고를 해주는 것이었다.
“자, 잠깐만요?! 쌈닭들 중에서는 서너 마리씩 무리를 짓고 다니는 녀석들도 있다고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가 그런 무리가 다수 출현해서 열댓 마리한테 둘러싸이면 어쩌실 생각이에요?!”
“어……? 어?! 싸, 쌈닭이라는 녀석들 몰려다니기도 하는 거냐?!”
그런 공선자의 경고에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표정을 고그가 당혹스러워하며 방금 전의 당당함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허세에 죽고 허세에 사는 그라고 해도 아직 만나본 적도 없는 몬스터라는 존재가 한 마리도 아니고 십 수 단위로 자신들을 둘러싸는 상황에 대해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던 모양.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고그의 어그로에 이끌려 쌈닭이 나와 주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일행들의 안색도 창백해지는 것이었다.
그들 역시 쌈닭이 그렇게 대놓고 몰려올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 하긴, 그들의 반응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긴 했다.
사전에 공선자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쌈닭은 주로 혼자서 다니는 몬스터라고 들었으니 몰려다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겠지.
……하지만 공선자의 설명은 어디까지나 ‘주로’ 1마리씩 다닌다는 것이었다. 즉, 모든 쌈닭이 1마리씩 따로 다닌다는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실제로 밤의 공선자가 쌈닭을 사냥하러 다닐 때 드문드문 서너 마리씩 몰려다니는 쌈닭들을 확인한 적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밤의 공선자는 아마도 가족 단위로 몰려다니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었다. 몬스터라고 해도 생식을 해야 할 테니 짝이 있을 테고, 생식의 결과로 새끼가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은 것.
그리고 그렇게 서너 마리씩 몰려다니는 쌈닭들을 발견할 경우 밤의 공선자는 당연하게도 무시했던 것이다.
밤의 공선자라고 해도 혼자서 사냥할 수 있는 쌈닭의 숫자는 한 마리가 최대였으니 당연한 판단.
그런데 지금 고그는 밤의 공선자도 피해 다녔던 몰려다니는 쌈닭의 무리에게 대놓고 어그로 수치를 올리는 짓을 저질러 버린 것이었다.
“그, 그런 사실은 진즉에 알려줬어야지?! 어, 어쩔 거야?! 이미 저질러버렸는데?! 두 자리 숫자로 몰려오면 네놈 탓이니까?!”
자기가 저질러놓고서 당황해서 공선자의 멱살을 붙잡으며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고그의 행동에 공선자는 속으로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아니, 고작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걸 못 참고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은 이 녀석이 아닌가?!
아무리 소심한 성격의 공선자라고 해도 저 정도 적반하장이라면 당연히 무의식적으로 욕지거리가 올라 올만 한 것.
물론 그것을 입 밖으로 낼 정도의 담력은 그에게는 없었지만 말이다. 심지어 그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조차 직후에 덮치기 시작한 공포에 그대로 다시 무의식의 영역에 가라앉고 말았고 말이다.
“이, 일단……, 이, 이 자리에서 벗어난 뒤에 뒷일을 생각하는 게……?”
당장 여기에 있으면 쌈닭이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며 이야기하며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는 공선자.
“그, 그래! 우선 여기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 수십 마리의 쌈닭에게 둘러싸인다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거야!”
그에 프로아를 필두로 다른 일행들도 누구의 책임이냐고 따지기 전에 공선자의 의견대로 일단은 이 장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당장 움직이기도 시작하는 프로아들. 수십 마리한테 둘러싸인다는 것은 조금 과장된 것 같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우선은 공선자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은 고그는 그대로 땅에 던져두었던 대검을 들어 올리며 움직일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 씨x! 이놈의 검은 도대체 왜 이렇게 무거운 건데?! 누구야?! 이따위 검을 초기 장비로 고른 건?!”
“명실상부 그런 바보짓을 저지른 건 네 녀석인데 말이지? 설마 그것조차 다른 사람 탓으로 할 생각이냐?”
“아씨!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짜증이 나니까 그냥 해보는 말이잖아?! 그걸 네놈은 왜 일일이 따지고 드는 건데?!”
“쯧, 그럴 짜증을 낼 시간이 있으면 빨리 움직여라! 네 녀석의 그 쓸데없이 우렁찼던 샤우팅 때문에 언제 쌈닭들이 몰려올지……”
어떻게든 대검을 들고 질질 끌며 이동하려는 고그와 그런 고그를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밀리언.
……허나, 그런 밀리언의 말은 도중에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것이 이 정도까지 소란을 피우고 있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누구한테도 눈치 채이지 않길 바라는 것은 너무 무모한 바람이었으니 말이다.
“끼륵?”
……그래, 당연하게도 고그의 샤우팅 소리에 이끌려 이 영역에서 살아가는 몬스터, 쌈닭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숲을 구성하는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머리부터 들이밀며 등장하는 거대한 닭. 등장하기 직전까지는 공선자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허나, 나무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직후 공선자들과 대놓고 눈이 마주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어불성설.
쌈닭과 동시에 파티원들 역시 상대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었다. 그렇게 약 1초 정도, 서로 눈을 마주친 뒤 강막을 통해서 전해져온 시각정보를 해석하여 자신의 눈에 비친 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기까지 시간을 소모했다.
그리고 직후,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한 쌈닭과 파티원들은 각각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파티원들은 무의식중에 뒷걸음질쳤다.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흉악한 모습……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방심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정확히는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허를 찌르는 것처럼 등장해버린 쌈닭의 존재에 당황해서 자신들도 모르게 거리를 두려고 한 걸음 물러났다는 것에 가까울 터.
“끼르르륵!!!!!!!”
그리고 그런 파티원들의 반응에 맞춰서 쌈닭은 그들을 ‘적’이라고 인식하고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곧바로 몬스터 특유의 ‘살기’를 그들을 향해서 쏘아내기 시작했다.
적을 죽이겠다는 살의. 그리고 그 살의가 모종의 힘에 담겨 쏘아지는, 형태는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무형의 기운. 그것이 바로 몬스터들이 기본적으로 갖게 되는 특성.
‘살기’라는 이름의, 상대를 공포에 빠트리고 자신이 사냥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깊게 자각시켜주는, 아직까지 공선자들에게는 미지에 해당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미지의 현상을 정면에서 쏘아 맞게 된 일행들은 순간적으로 전신의 솜털들이 곤두세워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단순히 소름이 돋는 것처럼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넘어 당장에라도 목을 꿰뚫을 것 같은 칼날이 턱밑에 들이 대어진 것 같다는 감각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명확하게 죽음을 인식하게 해주는 현상. 그 현상에 의해서 처음에는 그저 턱밑에 칼이 들이 밀어진 것 같은 기분이 점점 더 심각한 수준에 치닫기 시작했다.
그야 당장 턱밑에 칼을 들이밀거나 미간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을 해봐라. 막 흉기가 자신의 급소를 노리는 처음에는 일단 공포보다 당혹스러움이 먼저일 것이었다.
그럴 것이 초기에는 제대로 된 상황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닐 테니깐 말이다.
허나, 약간의 시간이 흘러 자신의 급소에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갈 수 있을 수준의 흉기가 들이 밀어져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공포였다. 이 흉기가 언제 자신의 목을, 미간을 꿰뚫을지 알 수 없다는 ‘미지’에서 찾아오는 극심한 공포.
쌈닭의 살기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일행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살의가, 그리고 그 살의를 전달해주는 미지의 기운이라는 매개체가 언제라도 쌈닭이 그들을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 착각이 당장 자신들의 급소에 흉기가 닿아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고, 그 착각이 공포심을 조장했다.
자신들은 언제든지 사냥당할 수 있는 사냥감이라는 공포심을 조장하여 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이미 두 번째 경험해보는 공선자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고, 다른 이들 역시 처음 겪어보는 죽음의 공포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쿠루미의 경우에는 살짝 휘청거렸을 정도.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공선자처럼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리는 이들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