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렇다고 공선자의 생존에 대한 의지가 거짓인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설령 의무감이라고 해도, 책무라고 해도 공선자는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 자신은 죽어서는 안 되었다. 결코, 죽을 수 없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몸이었다.
설령 살아가는 게 지옥이라고 해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었다.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자신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사라져버린 자신의 단 하나 뿐인 형제의 의지를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만큼은 결코 할 수 없으니까!
“으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기에 공선자는 전신에 힘을 주었다. 공포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었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의 자신에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내라.
그래, 생각해봐라. 애초에 공선자 자신은 죽고 싶어 환장한 존재였다. 죽음으로 이 빌어먹을 인생을 끝내고 싶어 했던 존재였다.
살고 싶다는 열망 이상으로 죽음에 대한 열망 역시 강했던 존재였다. 결코 죽을 수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무.
실제로는 죽고 싶었다. 죽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이 괴로운 인생을 끝내고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렇다면 딱히 죽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죽음을 왜 두려워할 필요가 있지? 그래, 공선자라는 존재는 깊은 곳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결코 죽어줄 수는 없지만, 죽을 위기라면 살기 위해서 끝까지 발버둥칠 것인지만 감정적으로 그는 자살지망생이었으니까.
그러니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성을 결코 죽고 싶지 않다고, 아니, 죽을 수 없다고 소리치지만 감정만큼은 딱히 죽어도 상관없잖아? 라는 상태를 유지한다.
그를 통해서 살기에 저항하는 것이 아닌, 살기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라.
난 이 자리에서 죽어도 상관없다. 허나, 결코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공선자는 억지로 자신의 정신을 무장했다.
그의 이성이, 그리고 감정 중 단 하나의 감정인,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의무감이 순간적으로 모든 감정을 웃돌았다.
그렇게 다른 감정을 짓누르는 공선자의 의무감과 이성이 단지 이 순간만이라도 좋으니 스스로의 감정을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띠링!!
그 순간 머릿속에 공선자만이 들을 수 있는 효과음이 울렸다. 허나, 공선자는 그런 것을 신경 쓰고 있을 수조차 없었다.
“어……? 어어? 브, 블러드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 녀석 살기에 정신이라고 나간 건가?!”
바로 방금 전에 고그에게 괜한 어그로를 끌면 쌈닭들이 몰려올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던 주제가 갑작스럽게 포효를 내지르는 공선자.
그런 공선자의 모습에 어떻게든 살기에 저항해서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던 파티원들이 당황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쌈닭은 살기만 쏘아낼 뿐 살기로 인하여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들에게 덤벼오지 않았다.
아니, 이유는 존재했다. 다름 아닌 아직까지도 공선자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밤의 공선자가 쌈닭을 20마리 넘게 잡으며 축적된 쌈닭의 피 냄새.
여관을 출발하기 전 장비를 착용할 3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공선자는 그 30분 동안 자신의 방에서 최대한 가죽 경갑옷에 있는 피와 몸에 묻는 피를 닦아낸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이게는 말끔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엷은 피 냄새가 배여 있는 것.
그런 이유로 쌈닭은 살기만 쏘아낼 뿐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프로아들은 쌈닭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몬스터의 살기에 저항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가 없는 상황. 그런데 갑작스럽게 공선자가 고함소리를 내지르니 파티원들은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한 명을 상대로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쌈닭들이 몰려온다면? 농담이 아니라 막 모험가 활동의 시작부터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후우! 후우! 후우!!”
때문에 공선자가 갑작스럽게 고함을 내지르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그들은 직후 일어난 일에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티원들 중에서도 가장 살기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이 그였다. 당장 네 사람은 서 있기라도 하는데 공선자는 사지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허나, 아직도 파티원들이 살기에 완전히 저항하지 못해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을 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공선자가 일어선 것이다.
서있는 것이 가능해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네 사람. 허나, 지금의 공선자는 자신의 힘으로 주저앉아 있던 상황에서 일어선 것이다.
즉,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던 공선자가 쌈닭의 살기를 받으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들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공선자는 바라보았다.
쌈닭의, 몬스터의 살기가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 살기에 노출되어 이제 간신히 어느 정도 살기에 저항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손가락 정도를 움직일 수 있게 된 그들이 직접 체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공선자가, 그들 중에서 가장 상태가 심각했던 공선자가 마치 살기에 완전하게 저항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처럼 주저앉아 있던 상태에서 일어났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
“휴우……. 어, 어?”
갑작스러운 고함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공선자. 그 광경을 조금 얼이 빠져서 지켜보던 파티원들.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살기를 쏘아내고 있던 쌈닭 또한 공선자에게 시선을 모으는 것이었다.
……허나, 정작 그렇게 몬스터와 파티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공선자는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다른 파티원들과 자신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깨달은 순간 공선자는 반발했다. 본능적인 반발감.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에서 촉발된 일종의 분노. 마치 자신의 책무가 파티원들의 생존본능보다 못하다는 것처럼 느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울화.
그 울화가 터지는 순간 공선자는 스스로 의식하고 일을 저지른 게 아닌, 무의식적으로 일을 저질렀다.
인정한다, 자신이 저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의무감이, 죽고 싶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족쇄가 저들의 생존본능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의무감을 기반으로 살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히는 살기에 저항할 자신만의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살기에 저항하는 것이 아닌, 죽어도 상관없다고, 오히려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감정을 이용하여 살기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사용했다.
죽을 수 없지만 죽어도 상관없다는 감정을 이용하여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공선자가 무의식적으로 찾아낸 살기에 저항, 아니, 살기를 받아들이는 방법. 허나, 공선자는 무엇인가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야. 공포라는 감정이 무엇인가 다른 감정으로 치환되고 있는 거야.’
살기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살기에 의해서 공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공선자가 무의식적으로 처음 시도했던 살기에 대한 대항법은 그것이었다.
허나, 이 방식이 성공했다면 공선자는 애초에 살기에 의해서 초래되는 공포 그 자체를 느끼지 못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공선자는 지금도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럴 것이 아무리 죽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도 죽음에 대한 공포 그 자체를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죽는 게 무섭다. 그것은 설령 살아가는 게 괴로운 이들이라고 해도 생명체라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공포.
그래, 설령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죽음의 공포 그 자체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공선자의 시도는 본래라면 실패로 돌아갔어야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자신의 신체가 자유를 되찾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끌어 올라온 울분. 자신의 의무감은 결코 생존본능과 비교했을 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그 울분을 토해내듯이 무의식적으로 내지른 포효.
그 포효가 끝난 순간 공선자는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신체가 살기에서 자유로워져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지금까지 설명해온 모든 과정이 공선자가 의식적으로 일으킨 과정이 아니었다.
공선자의 이성이 전혀 관계하지 않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벌어진 현상. 그렇기에 공선자의 이성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때문에 자신이 어째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신체를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살기에 의해서 가빠졌던 호흡을 정돈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체가 움직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멍한 표정을 짓는 것.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거임? 쿠루미들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말임. 뭐, 기합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임? 그래서 소리를 내지른 거임?”
그리고 그런 공선자를 바라보는 파티원들 또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 즉, 여기에 모인 5명 정원이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는 소리.
거기에 정면에서 쌈닭이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공선자에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묻는 쿠루미였다.
여유가 넘치는 것인지, 아니면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인지. 살기에 짓눌려 아직까지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보면 확실하게 후자일 것이지만 말이다.
당장 공선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쿠루미의 질문에도 황당함이 섞여 있지 않은가? 공선자가 저지른 일이 워낙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보니 지금 자신들의 처한 상황마저도 순간적으로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 그게……, 실은 저도 잘…….”
그런 쿠루미의 질문에 공선자는 제대로 된 대답을 돌려줄 수 없었다. 그래, 분명히 자기 자신이 살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시도한 방법은 실패했다.
무의식적이라고 해도 공선자는 뒤늦게 자신이 본능적으로 어떤 일을 벌이려고 했던 것인지 이해할 것이다.
허나, 실패했다.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공선자는 공포를 느끼고 있을 터. 그리고 살기에 의해 초래된 공포는 신체를 마비시키기 마련.
그런데 공선자는 도대체 어떻게 신체를 움직일 수 있을까? 그 자신도 당장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는…….
‘아니야. 생각해봐. 그래, 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 그래, 당연히 이해할 수 있지. 이건 내 능력인걸!’
……줄 알았는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공선자는 또다시 본능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정의 치환. 살기에 의해서 발생하는 공포를 자신의 ‘각성 스킬’을 통해서 다른 감정으로 치환하여 공포 그 자체를 절제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선자가 본능적으로 찾아낸, 살기에 대응하는 그 자신만의 방법이었다. 공선자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허나,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죽음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실을 반은 성공했던 것.
온전히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몸이 마비될 정도의 공포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