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죽어도 상관없다는 공선자의 의식이 적어도 살기의 영향으로 초래된 몸의 마비에서만큼은 벗어나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허나,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허나, 전투를 할 수는 없었다.
죽어도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에서 완전히 면역이 된 것은 아니었다. 죽는 게 무섭다는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대로 싸우게 된다고 해도 공선자는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를 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열심히 도망치는 것이 한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 이상 그 죽음에 대한 공포에 저항할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공선자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초래할 상대에게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피하는 것을 선택할 테니까.
그렇기에 다시 한 번 공선자의 본능은 거기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냈다. 그의 무의식의 영역에 쌓여 있는 경험이. ……그의 반신의 흔적이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일야몽. ……각성 스킬인 일야몽이 내 정신에 간섭해서 공포라는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치환시키고 있어.’
죽음을, 죽고 싶어 하는 자살 충동을 통해 받아들였다고 해도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가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법.
그것을 공선자는, 그의 무의식은 각성스킬 일야몽을 응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일야몽은 상상을 현실에 투영시키며 정신에 간섭하는 계열의, 명실상부 정신을 매개로 한 구현과 간섭이 가능한 각성스킬.
이 각성스킬을 본능적으로 발휘한 공선자는 자신의 정신에 간섭하여 살기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생명체로서의 ‘본능에 의한 공포’를 다른 감정으로 ‘치환’시켜 버린 것이었다.
……파생스킬, 감정치환. 오라를 소모하여 자신, 혹은 타인의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치환시키는 일야몽의 파생스킬.
공선자는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고 있는 그 힘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자신도 모르게 울분을 토해내는 것처럼 내질렀던 포효 직후 들려왔던 효과음.
그 효과음은 다름 아닌 공선자가 새로운 파생스킬을 작성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에볼루션 시스템이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분명히 난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죽고 싶다는 자살 충동을 이용했어, 그리고 동시에 죽고 싶어도 결코 죽어줄 수 없는 의무감을 통해서 싸울 수 있도록 내 감정을 재구축하고자 했고.’
그것은 무의식에서 벌어진 일. 모든 일이 끝마친 뒤에야 간신히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과정.
허나, 그 과정을 이해한 순간 공선자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깎여나가는 것 같은 기분은 감정 치환을 위해서 오라가 소모되고 있기 때문인가. 그리고 현재 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치환되고 있는 감정은……, 혐오감.’
당장 눈앞의 쌈닭이 미친 듯이 혐오스러웠다. 당장에라도 이 세상에서 없애지 않으면 구역질이 치밀 것 같은 감정.
공선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공포를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은 감정으로 치환시킨 것이었다.
쌈닭이 혐오스럽다. 그렇기에 죽이지 않으면,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능에 가까운 영역에서 그렇게 유도하는 것으로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죽음의 공포를 전투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감정으로 치환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이해하자 공선자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입술을 깨물고 참아내는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공선자가 해낸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무의식,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국 공선자의 ‘반신’이 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선자의 깊은 곳에 쌓여 있는 반신이 남겨준 경험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공선자를 인도해준 것이었으니깐 말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공선자는 자신은 도움만 받기만 한다고 한탄하며 지금도 자신의 가슴 속에서 자신을 위해 헌신해주고 있는 반신의 존재를 느끼며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린 것.
허나, 참았다. 그야 지금을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신체는 자유로웠다. 감정 또한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거기까지다. 그래, 공선자는 이제야 간신히 ‘시작점’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을 뿐이었다.
“끼르르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동족의 피 냄새가 옅게나마 풍기고 있는 공선자가 자신의 살기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한 모습에 쌈닭은 더욱 강한 경계심을 보이며 울음소리를 높였다.
그래, 그런 것이다. 공선자는 아직까지 바로 눈앞에서 쌈닭과 대치하고 있었다. 거기에 다른 파티원들은 아직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실질적으로는 혼자서 쌈닭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즉, 전황은 여전히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것.
“저기, 블러드. 미안하지만 조금만 혼자서 버텨줄 수 있어?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어떻게든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공선자에게 이를 악물며 부탁하는 프로아를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 역시 그와 같은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도대체 공선자가 무슨 수단을 사용한 것인지 쌈닭의 살기에서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어렴풋이 아마 공선자는 이번이 쌈닭의 살기와 마주하는 것이 두 번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하고 파악하고 있는 것.
여하튼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서 공선자 뿐이라는 사실.
그렇기에 프로아가 파티원들을 대표해서 그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달라고.
어느 정도 살기에 대항하는 방법에 감이 잡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쌈닭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
적어도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도망을 치든지 함께 싸우든지를 선택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프로아의 부탁에 공선자는 침을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공포라는 감정이 혐오라는 감정을 치환되어 솔직히 말해서 지금이라면 쌈닭에게 정면으로 달려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허나, 공선자는 그러지 않았다. 프로아의 부탁대로 할 수 있는 한 시간을 끌어볼 생각인 것. 이유는 간단했다.
‘……오라가 부족해.’
그래, 오라가 부족했다. 당장 뇌 부근에서 느껴지는 미지의 힘. 아직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오라라는 힘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감정치환도 결국에는 공선자의 일야몽에서 파생된 파생스킬. 즉, 사용하는 것에 오라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인피니티 패시브 계열이 아닌 소유자가 이능의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능을 사용해야 하는 액션 패시브 계열의 능력으로 추정되었으니 말이다.
일야몽을 통해서 자신이 작성해낸 파생스킬이었다. 그렇기에 사용방법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라가 필요한 것은 필수불가결인 능력.
……그렇기에 이대로 계속해서 감정치환을 사용하고 있게 된다면 결국 2115라는 수치에 불과한 오라가 빠르게 바닥을 드러낼 터.
때문에 공선자는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감정치환을 해제했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감정치환을 사용하지 못할 수는 없었기 때문.
그런 이유로 오라를 아끼기 위해서 감정 치환을 해제한 공선자는 순식간에 자신의 정신을 좀먹기 시작하는 죽음의 공포에 이가 떨리고 같은 심정이 되었다. 허나…….
‘우, 움직일 수는 있어.’
그래, 움직일 수는 있었다. 죽음 그 자체에 공포를 느낀다고 해도 처음과는 달랐다. 전신이 완전히 마비된 것 같았던 처음과는 다르게 몸 그 자체는 움직인다.
‘……내, 내가 몇 시간 전에 쌈닭과 조우했을 때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이게 이유구나!’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본래라면 쌈닭과 마주하는 순간 전신이 마비되어 일방적으로 당했을 아침의 공선자.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의 공선자가 된 뒤 처음으로 쌈닭과 마주했을 때 공선자는 공포에 울고 불며 꼴사납게 도망치기는 했어도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적어도 몸을 움직여 도망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공선자는 그게 가능했던 이유를 지금에 와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당시의 공선자도 살아남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자살 충동을 이용, 적어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만큼은 만들어냈던 것.
그렇기에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단, 그 직후 찾아온 생명체로서의 죽음의 공포만큼은 견디지 못하고 꼴사납게 울며 도망쳤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결코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공선자는 다시금 똑같은 방식으로 지금처럼 살기에 의해 초래된 죽음의 공포에 몸이 마비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으니까.
‘지, 지금이라면 싸우지는 못해도 도망치면서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프로아의 부탁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살기에 대항하여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될 때까지 시간을 끌어달라는 것.
그래, 혼자서 쌈닭을 쓰러트려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당장 감정치환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정말로 중요한 순간, 그 순간을 위해서 오라는 아껴둔다. 아니, 애초에 오라는 일야몽뿐 아니라 시안을 사용할 때도 소모되는 힘이었다.
아낄 수 있다면 최대한 아껴두는 쪽이 좋았다. 그런 이유로 공선자는 어떻게든 스스로의 의지로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견뎌내며 슬쩍 쌈닭이 있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었다.
“끼륵!!”
그리고 그런 공선자의 행동에 쌈닭이 반응하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말이다.
“허억! 허억! 뭐? 뭐야? 저 괴물 자식이 물러났어?”
“후욱! 후욱! ……거, 겁을 먹은 건 아닌 것 같고, 경계를 하고 있는 건가? 블러드를? 어째서? 아니지, 우리랑 다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경계를 할 만한 이유로는 충분한가.”
공선자가 침을 삼키며 잔뜩 겁먹을 얼굴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놀랍게도 쌈닭이 그대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공선자와 거리를 벌린 것이었다.
그 모습에 어떻게든 쌈닭의 살기에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던 파티원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고그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었고, 밀리언은 일단 어떻게든 쌈닭의 반응을 분석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살기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위에 눌리는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것과 비슷했다.
의지만 강력하다면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단지, 그만큼 시간이 요구되는 것.
그렇기에 이제는 파티원들 전원이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살기의 영향에서 벗어난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고그의 어그로와 공선자가 무의식적으로 내지른 포효에도 눈앞의 쌈닭 외에 다른 쌈닭들이 몰려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
그렇기에 이렇게 시간만 끌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정작 살기의 근원인 쌈닭이 공선자와 거리를 두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
“어, 어어……. 어, 어떻게 하죠?”
그 모습에 당사자인 공선자 역시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일단은 어떻게든 쌈닭의 시선을 끌고 최대한 도망 다니며 시간을 벌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쌈닭은 당장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고 계속해서 공선자에게 경계심만 드러내고 있는 상황.
그러니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 수가 없어 공선자가 파티원들에게 의견을 묻자 프로아가 잠깐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니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일단은 이대로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 우리한테는 나쁜 일이 아니야. 조금만 더 있으면 움직일 수 있게 될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일단 그대로 있어봐.”
“어, 하지만…….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저도 모르게 내지른 고함소리에 다른 쌈닭들이 올지도 모르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