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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55/194)



〈 15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여기서는 허세라도 다음부터는 안 맞추겠다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었겠지만 쿠루미는 상당히 현실적인 소녀였다.

“냉정한 자기 판단은 칭찬해주고 싶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연습을 하고 왔으면 안 되었겠나?! 실전에서 날 과녁으로 삼아서 경험을 쌓는 게 아니라?!”

그런 쿠루미의 발언에 밀리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이번에는 프로아가 대꾸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활하고 새총을 쏘는 걸 연습할 시간이 어디 있었다고 그래?!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연습하고 왔겠지! 일단 연습은 나중이야! 저 녀석, 다시 온다! 방패! 방패!!”

“크윽?! 피, 피하도록 하지! 아직 어깨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 다시 막으면 제대로 막지 못해!”

밀리언이 방패를 드는 것이 아닌 자신의 어깨를 붙잡으며 이야기하자 바닥에서 일어나 잽싸게 밀리언의 등 뒤로 이동하던 프로아와 쿠루미가 이를 악물었다.

“정말! 우리한테 뭐라고 하기 전에 너도 제대로 막아봐! 탱커라는 녀석이 어떻게 적의 공격을 한 번밖에 못 막는 거야!”

“누구 때문인데?! 아니, 그 이전에도 팔이 저린 상태였으니 어깨를 맞지 않았다고 해도 무리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이게 한계다! 그렇게 투덜거릴 시간이 있으면 피해!”

프로아와 쿠루미가 땅을 굴러 피한 직후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은 쌈닭이 속도를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파티원들이 바닥에서 일어날 때쯤에는 완전히 속도를 줄이고 그대로 방향을 전환했다.

아슬아슬하게 먼저 바닥에서 일어나 탱커인 밀리언의 뒤쪽으로 이동하고 있던 파티원들은 노리고 다시금 부리를 바짝 세운 뒤 돌진 준비를 했던 것.

그리고 그대로 다시금 이어지는 쌈닭의 돌진. 그에 기겁을 하며 밀리언이 방어의 포기를 선언하고 다시금 몸을 달려 공격을 피하자 부랴부랴 프로아와 쿠루미, 공선자도 다시금 공격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번에는 땅으로 몸을 던져야 할 정도로 갑작스럽지가 않았다는 점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쌈닭의 돌진을 피하기 위해서 전열이 흐트러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으아아아……! 우리가 무슨 투우사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렇게 피하기만 할 거야?! 밀리언! 아직도 어깨가 아픈 거야?! 도대체 언제까지?!”

“적어도 20초 정도면 어떻게 회복이 될 것 같기도 한데……. 아니, 그런데 내가 막는다고 쳐도 어떻게 공격할 거냐?! 너희의 활이랑 새총을 영 못 미덥다만?! 블러드! 공격할 수 있겠냐?!”

“노,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젠장!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은 목소리지 않나?! 역시 이렇게 되면 일단 여기서는 어떻게든 후퇴를…….”

설령 자신이 방금 전처럼 쌈닭의 돌진을 막는다고 해도 그 틈에 공격을 넣을 수단이 없다는 생각에 밀리언이 입술을 깨물고 그냥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크하하하하하하!!!!!!!! 이 몸이 돌아왔다! 이 빌어 처먹을 닭대가리 새끼야! 네 녀석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치킨으로 만들어주마!!”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완전히 잊고 있었던 고그가 드디어 세부 스텟의 조정을 끝마친 것인지 놀랍게도 방금 전까지 바닥에서 질질 끌고 다녔던 대검을 번쩍 들고 쌈닭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공선자들이 또다시 자신의 돌진을 회복한 것을 깨닫고 다시금 속도를 줄여 방향 조절을 시도하고 있던 쌈닭은 갑작스러운 고그의 참전에 놀란 것인지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굳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자신의 덩치만 한 거대한 대검을 있는 힘껏 내리치려는 고그!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참전에 프로아와 쿠루미, 밀리언이 기대에 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카앙!!!!

……허나, 고그의 거대한 대검이 쌈닭의 정수리를 쪼개줄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고그의 대검은 그대로 있는 힘껏 땅을 내려치는 것이었다.

그 광경에 살짝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던 프로아와 쿠루미, 그리고 밀리언. 그럴 것이 당연히 맞을 것 같은 공격을 쌈닭이 놀라운 움직임으로 피했다! 라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고그의 공격이 ‘너무나도 느렸기’때문이었다.

그래, 애초에 맞아야 하는 공격을 쌈닭이 피해서 놀란 게 아닌, 너무나도 당당하게 결코 맞을 것 같지 않은 공격을 실행에 옮긴 고그의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어 순간적으로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 것.

‘……역시 세부 스텟의 조정을 10%에서 20% 수준으로 조절하는 거라면 모를까 50% 이상의 큰 수치를 조절하는 건 장점보다 단점이 더 심각해지네.’

그리고 그 세 사람과 다르게 고그가 가볍게 거대한 대검을 들고 참전하는 순간 이와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공선자는 내심 새삼스럽게 세부 스텟의 조정의 단점을 확인하며 한숨을 쉬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고그는 분명히 세부 스텟을 조절하여 방금 전까지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던 대검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속도와 신속, 즉, 신경 속도 스텟을 희생한 것인지 대검을 휘두르는 공격 자체는 상당한 속도였지만 ‘고그 본인의 속도’가 너무나도 느렸다.

공격을 해오는 순간의 속도가 아니라 빨라도 그 전조에 해당하는 속도가 느려서 하품이 나올 정도라면 과연 누가 그 공격을 맞아주겠는가?

보다 알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서부의 총잡이가 총을 총집에서 엄청 느릿하게 뽑아 총을 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탄환의 속도는 아음속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공격할 궤적을 느긋하게 보여주는 그 행위에 과연 누가 탄환의 사선 위에 서 있겠는가?

그나마 총은 이야기가 나았다. 총을 뽑은 뒤에 손목을 비트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탄환의 궤도를 조정할 수 있으니까.

허나, 대검은? 아무리 대검을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근력으로 대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휘두르는 순간 결정된 대검의 궤도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준의 근력이나 대검술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이야기.

대검 그 자체의 질량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어지간히 강력한 근력이나 섬세한 무술이 아니라면 대검의 질량에 의해서 가해지는 관성의 법칙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여하튼 그런 이유로 쌈닭에게 있어서 자신을 향해서 달려들어 대검을 내리친 고그의 공격을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으나 동시에 보고 피하기 어렵지 않은 공격이었다.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몬스터가 아닌 프로아나 쿠루미들만 해도 하품을 하면서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릿한 공격인 것이었다.

그런 공격을 쌈닭이 미쳤다고 맞아주겠는가? 슬쩍 옆으로 몸을 움직여 피하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

“무, 뭐야?! 이걸 피해?! 오냐! 단순히 덩치만 큰 닭대가리는 아니라는 이야기지?! 좋아! 그럼 맞을 때까지 휘둘러주마!”

허나, 신경 속도의 수치까지 낮아진 영향인지 자신의 공격이 느리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고그는 그저 쌈닭이 자신이 공격을 피했다는 사실에 열불을 내며 다시금 대검을 들어 쌈닭을 향해 휘두르는 것이었다.

“끼륵! 끼륵! 끼르르륵!!”

너무나도 느릿한 공격. 대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대검 자체의 질량도 있으니 관성 때문에 상당했다.

허나, 그것을 휘두르는 고그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느렸다. 당연하게도 아무리 열심히 대검을 휘둘러봐도 쌈닭이 그 느린 공격을 맞아줄 이유가 없는 것.

고그가 대검을 횡으로 휘두르면 가볍게 뒤로 빠지는 것으로 피해 주고 대검을 내리치면 그대로 옆으로 한걸음 움직이는 것으로 피해준다.

제3자가 보면 마치 쌈닭이 고그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간파하여 고그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일 정도.

대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울리는 붕붕! 거리는 소리가 대검에 담긴 힘을 익히 짐작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아무리 강력한 힘이라고 해도 정작 적에게 맞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궤도를 파악할 수 있어서 도저히 맞아주고 싶어도 맞아줄 수 있을만한 공격이 아닌데!

그리고 그저 그 사실을 당사자만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고그는 열불을 내며 씩씩거리며 쌈닭을 향해 열심히 헛 칼질만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크아아아아아!!! 이 개 같은 닭대가리 녀석!!! 촐랑촐랑 작작 좀 도망치란 말이다!!!”

그렇게 몇 번 정도 쌈닭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던 고그는 결국 제 울분을 참지 못해 짜증을 내지르며 더욱 거세게 대검을 휘두르는 모습에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던 파티원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저 바보! 왜 저렇게 소리를 꽥꽥 지르는 거야?! 진짜로 다른 쌈닭들이 오면 어쩌려고?!”

“그뿐만이 아니다. 저렇게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것이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상당한 체력이 소모될 터. 저렇게 막무가내로 휘두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체력이 전부 고갈될 거다.”

정말이지 악운은 강하다는 것인지 이렇게 난리를 피우면서 싸우고 있음에도 이 소란을 듣고 새로운 쌈닭이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허나, 이런 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가 없는 것. 그런 상황에서 고그가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대검을 쾅쾅 휘두르고 있으니 기겁을 할 수밖에.

거기에 밀리언의 이야기대로 그들의 파티원 중 근거리 딜러는 공선자를 제외하면 고그밖에 없는 상황.

일격이 묵직한 타입의 근거리 딜러는 두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적어도 공선자처럼 급소를 노리는 게 아니라 어딜 때리든 일단 맞으면 치명타라는 역할을 고그밖에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자기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체력을 낭비하고 있으니 파티원들이 일단 고그부터 말리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

따악!!

“어? 맞았음.”

“으갹?! 뭐, 뭐야?! 누구야?! 척추가 부러지는 줄 알았잖아?! 이거 그 새총으로 쏜 거지?! 죽고 싶어?! 앙?! 너부터 죽여줄까?!”

허나, 어떻게 혼자서 쓸데없는 체력을 낭비하는 고그를 말릴지 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밀리언과 프로아, 그리고 공선자가 당황하고 있을 때에 돌연 새총에 돌멩이를 메긴 쿠루미가 그대로 새총을 쏘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쏘아진 새총은 보기 좋게 고그의 등짝에 적중하는 것. 쏘아놓고도 맞을 줄은 몰랐던 쿠루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

당연하게도 열심히 허공에 칼질을 하다가 등짝에 뼈가 부러질 정도의 위력을 지닌 돌멩이를 얻어맞은 고그가 쌈닭에게서 쿠루미에게 타겟을 돌려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말이다.

“죄송, 쌈닭을 노렸는데 아직 그렇게 손에 익지 않은 상태인지라.”

“크윽!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그러면 치안을 유지하는 조직이 왜 필요해?! 제길! 노릴 거면 똑바로 노리란 말이야! 이년아!”

그나마 자신을 노린 게 아니라 쌈닭을 노렸다가 실수로 쏜 것이라고 하니 차마 파티원인 쿠루미에게까지 대검을 휘두르지는 못하는 고그였다.

그 역시 밀리언처럼 몸에 직접 맞은 게 아니라 경갑옷이 막아주고 있는 부위에 맞았기에 큰 부상으로는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

‘……쿠, 쿠루미씨가 쌈닭이 아니라 어떻게 봐도 고그씨를 노리던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게 낫겠지?’

단지, 안절부절못하며 고그뿐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의 눈치를 보고 있던 공선자의 경우에는 쿠루미가 중얼거린 ‘맞았다?’ 라는 목소리가 어디까지나 ‘노린 녀석이 아니라 다른 녀석이 맞았다,’ 라는 의미가 아닌, ‘생각하지도 않게 노렸던 녀석이 맞았다,’ 라는 의미가 담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말이다.

허나, 일단은 쿠루미의 새총을 통해서 고그가 미친 듯이 쌈닭에게 검을 휘두르던 것을 멈출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파티원들끼리 불화를 만들지 말자는 의미로 자신만 알고 있기로 한 그.

“끼륵!”

그렇지만 쿠루미의 행동을 통해서 고그의 움직임을 막은 것이 꼭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피하기는 쉬웠어도 한방 한방의 위력이 도저히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었던 고그의 공격이 멈추자 피하는 것에 집중하던 쌈닭이 곧바로 반격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카앙!

“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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