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본래 공선자 자신이 기척에 예민해지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스테이터스 시스템으로 감각 스텟의 비율을 높인 것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공선자의 대답에 밀리언이 확실히 그 수가 있었다는 것처럼 수긍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공선자의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이기도 했기에 프로아를 바라보고 밀리언이 단언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로서는 한 마리도 상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쌈닭들까지 증원되어보면 답이 없어! 농담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 일단은 도망쳐야 한다!”
밀리언의 그와 같은 발언에 쿠루미도 반론은 없었기에 프로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프로아가 입술을 깨물고 잠깐 자신들이 쓰러트린 쌈닭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들이 받은 의뢰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쌈닭을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쌈닭의 토벌 증표인 부리를 가져갈 필요가 있었다.
허나, 정신을 차려보니 새로운 쌈닭이 출현하고 거기에 다수의 쌈닭이 접근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자신들이 쓰러트린 쌈닭의 부리를 회수할 틈이 있을 리가 없는 것.
즉, 자신들이 그렇게 힘들 게 사냥한 쌈닭은 그냥 이대로 두고 떠나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프로아는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울분에 휩싸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판단을 그르치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1만 3천 원에 해당하는 부리. 그 부리를 얻겠다고 괜히 목숨을 거는 짓을 할 정도로 어리석어서야 앞으로 모험가로서 사아갈 수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까.
“으득! 그래, 도망쳐야지……. 하지만 어떻게? 당장 쌈닭이 눈앞에 있는데? 이대로 도망치면 곧바로 달려들 거야!”
“그래도 어쩔 수 없음! 밀리언이 후열에서 최대한 막아주면서 서식지 밖으로 달려가는 거임.”
허나, 도망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당장 쌈닭 한 마리와 고그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고그가 거대한 대검을 들고 서 있었기에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그와 같은 상황에서 고그가 등을 보여 도망치기 시작할 때도 달려들지 않을 리가 없는 것.
그렇기에 프로아가 어떻게 도망쳐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쿠루미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에 그나마 괜찮은 생각 같았기에 그 의견을 채택하기로 한 프로아. 당사자인 밀리언은 자신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일단 다른 수단이 없었기에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애초에 혼자 도망간다고 해도 쌈닭이 따라오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 그렇다면 결국 자신이 쌈닭의 공격을 막으며 혼자 도망치는 것이나, 파티원들과 다 함께 도망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그! 도망칠 거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내 뒤로 와라! 네가 내 뒤까지 물러나면 그다음부터는 그냥 냅다 뛰어!”
“제기랄! 내가 이따위 닭대가리가 무서워서 도망쳐야 하다니……! 아, 아니! 무서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 물러나는 거니깐 말이지?!”
“그런 거 딱히 아무도 안 물어봤음. 프로아. 쿠루미가 도울 건 없음? 뛰면서 슬링샷으로 견제할 수 있을 것 같음.”
“아니, 슬링샷으로 견제한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이동 속도에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아. 거기에 쿠루미, 뛰면서 쏘는데 맞출 수 있겠어?”
전투가 끝난 뒤의 여파인지 전신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를 악물고 다시 방패를 들어 올리는 밀리언.
그리고 그런 밀리언의 외침에 따라서 슬금슬금 밀리언의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는 고그와 당장이라도 뛸 준비를 하는 쿠루미와 프로아.
그 상황에서 마지막에 입을 열었던 프로아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공선자와 시선을 맞춘 뒤에 다시금 그에게 부탁했다.
“블러드, 블러드는 감각 스텟을 높여서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라고 했지? 그렇다면 선두에 서서 최대한 쌈닭들의 기척을 피해서 서식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들을 유도해줘! 부탁할게!”
“제, 제가요? 아니, 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할 수야 있는데 아, 아무리 그래도 제가 실수를 안 한다는 보장이…….”
당장 자신의 목숨을 건사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하물며 파티원들의 목숨까지 떠맡게 되어버린 상황.
만약 공선자가 실수라도 해서 쌈닭들이 있는 방향으로 파티원들을 유도한다면 그 자리에서 전원 죽을 목숨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공선자만 살아남을 수도 있는 것. 그야 당장은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공선자의 무의식에는 분명하게 평범한 사람을 초월하는 경험을 쌓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정말로 목숨의 위기가 찾아오면 꾸역꾸역 살아남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는 공선자였다. 차라리 자신의 목숨만 걸려 있으면 모를까 생판 타인의 목숨까지, 아니, 목숨‘만’ 걸려 있는 상황이니 이런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는 공선자는 부담스럽다 못해 부담감에 목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엿 같네! 뭘 쫑알쫑알 시끄럽게 굴고 있어?! 죽고 싶지 않으면 냅다 길 안내 하라고! 혹시라도 실수하면 씨x! 내가 죽기 전에 네 녀석 뚝배기를 두 쪽 내 버릴 테니까 실수할 걱정을 하기 전에 길이나 안내해!”
“네, 넵!!!”
그리고 그처럼 부담감에 잔뜩 겁을 먹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공선자의 모습에 짜증이 나다 못해 열불이 터진 것인지 고그가 당장이라도 그를 씹어 먹을 것 같은 어조로 외치는 것이었다.
그에 히익! 하는 비명소리를 내면서도 당황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공선자 잽싸게 주변의 기척을 탐지하기 시작하는 것.
그렇게 공선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쯤에는 고그가 어떻게든 방패를 들고 있는 밀리언의 등 뒤까지 이동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즉시 대검을 자신의 인벤토리 공간에 수납하는 고그. 더 이상 싸울 일이 없는 만큼 무거운 대검을 들고 다니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부담스러웠기 때문.
무엇보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도망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달리는 대에 방해가 되는 대검을 양손에 들고 다니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 아닌가?
그렇기에 고그는 주저 없이 대검을 인벤토리 공간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일단 장비 셋을 통해서 대검을 등록해둔 상태였기에 꺼내고 싶을 때 즉시 꺼낼 수 있는 상황.
본래라면 인벤토리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으로 몇 초 정도 걸쳐서 장비를 꺼낼 필요가 있었지만 장비 셋에 등록해주면 곧바로 꺼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굳이 내달려 도망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검을 꺼내 들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
프로아와 쿠루미 역시 자신들의 활과 화살, 그리고 슬링샷을 인벤토리에 보관해두는 것.
프로아가 이야기한 것처럼 두 사람에게는 달리면서 상대에게 화살과 돌멩이를 맞출 정도의 기량이 없었으니 견제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니 괜히 달리면서 뒤돌아 활과 슬링샷을 쏘는 뻘짓을 하는 게 아닌 오로지 달리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무기를 인벤토리에 보관해주는 것.
그렇게 신호를 주는 순간 냅다 달릴 준비를 맞춘 파티원들은 공선자가 선두에 서서 최대한 기척이 나지 않는 방향으로 그들을 유도하기 시작하자 즉시 그의 뒤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억?! 뭐, 뭐야?! 너희들 뭐가 그렇게 빨라?! 자, 잠깐만 조금만 속도 좀 줄여서 달리라고! 못 쫓아가잖아?!”
“네 녀석이 느린 거다! 미치겠군! 네 녀석 때문에 나도 속도를 낼 수가 없지 않은가?! 잔소리할 시간이 있으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달려!”
허나, 달리기를 시작한 직후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직면하는 파티원들. 다름 아닌 대검을 휘두르기 위해서 세부 스텟을 조절한 고그가 일행들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달리는 속도가 느렸던 것.
스텟 조절에 의해서 속도라는 개념 그 자체가 바닥을 치고 있는 고그의 달리기 속도가 느린 것은 당연한 이야기.
허나,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그 사실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일행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밀리언이 방패를 들고 최대한 뒤쫓을 신경 쓰며 자신의 앞을 달리고 있는 고그의 등짝을 미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더 골치가 아프니 차라리 넘어지라고 있는 힘껏 밀고 싶은 것을 참으며 최대한 속도를 낼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밀리언.
그 덕분에 약간 고그의 속도가 빨라진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해봤자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것에 불과한 수준.
당연히 고그로 인하여 파티원들의 속도 그 자체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쌈닭이 충분히 파티원들의 뒤를 따라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쌈닭의 속도는 세부 스텟을 조절하여 다른 파티원들에 비해서 이동속도가 빠른 공선자와 비슷한 수준.
즉, 세부 스텟을 건들지 않는 수준이라면 단순한 달리기 속도로는 금방 따라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그 때문에 전체적인 파티의 이동 속도가 느려졌다? 그와 같은 상태의 파티원들을 그냥 놔주면 쌈닭이 몬스터라고 불릴 이유가 없는 것!
“크윽?! 쌈닭이 추격해온다! 일단은 한 번 막을 테니까 속도 늦추지 말고 달려라! 이 빌어먹은 자식아!”
밀리언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그에게 가속력을 붙여주기 위해서 냅다 민 뒤에 즉시 한 바퀴 돌아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오는 쌈닭을 향해 자신의 방패를 내밀었다.
어깨가 욱신거리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여기서 막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다. 마음 같아서는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녹록지 않았다.
그야 현재 밀리언은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라 열심히 달리던 도중인 것. 그로 인하여 옆으로 몸을 날리기에는 관성의 법칙을 작용해 힘들었다.
거기에 설령 억지로 몸을 날린다고 해도 타이밍을 잘못 가늠하면 그대로 쌈닭이 돌진의 궤적을 틀어 몸을 날린 밀리언을 추격해올 수 있는 것.
밀리언으로서는 도저히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 쌈닭의 공격을 막기로 한 것.
키기기기깅!!!
한 번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에 달리던 속도를 완전히 죽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며 쌈닭의 공격을 막은 순간 밀리언은 눈을 부릅 뜰 수밖에 없었다.
‘……막을 만한데?’
생각 이상의 충격이 찾아왔기 때문이 아니라 예상 이하의 충격이 방패를 통해 팔에 전달되었기 때문.
그리고 직후 그 이유를 눈치채는 밀리언. 정면으로 돌진해오는 쌈닭의 공격을 가만히 서서 막는 게 아니라 뒤로 물러나며 막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내달리던 밀리언과 쌈닭. 그 상황에서 밀리언을 따라오는 쌈닭을 막기 위해서 등을 돌려 방패를 들었다.
허나, 달리던 속도를 완전히 죽일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 뒷걸음질을 치며 쌈닭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는데 같은 방향으로 적용되는 힘이었기에 어느 정도 충격이 상쇄되었던 것.
잘못 균형을 잡았으면 그대로 땅바닥을 나뒹굴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밀리언이 쌈닭의 공격을 균형을 잃지 않고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던 것.
허나, 그 악운이 우연치 않게 상대의 공격에 맞춰서 몸을 뒤로 빼는 것으로 충격을 흘려보내는 원리의 방패술의 기술을 재현해내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서로를 보고 달리는 자동차가 충돌하며 서로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만 역으로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리는 자동차가 충돌하려고 해도 앞에서 달리는 차의 속도가 더 빠르면 애초에 충돌 자체가 불가능하다거나 하지 않은가?
혹은 앞에 다리는 차의 속도가 더 느려도 어지간히 속도의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은 달리는 도중에 부딪혀도 차의 균형을 잃지 않는 이상은 큰 충격을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왜 영화 같은 곳에서 레이스 액션을 할 때도 가끔 나오지 않는가? 달리고 있는 차를 같은 차들이 포위한 뒤에 밀착한 뒤 브레이크를 밟아서 멈춰 세우거나, 달리던 차의 뒤를 들이박은 뒤에 뒤에서 들이박은 차가 앞의 차를 그대로 밀며 나아간다거나.
그처럼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물체에게 시속 105킬로미터로 달리는 차는 상대적으로 시속 5킬로미터로 달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
무려 100킬로미터라는 속도에너지가 서로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로 상쇄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