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밀리언은 우연히 그 원리를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흘려보내어 막아내는 방패를 다루는 무술의 일종을 재현해낼 수 있었던 것.
‘기회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쌈닭의 부리가 반작용에 의해서 방패에서 튕겨져나가지 않은 상황. 방패에 작용되어야 할 충격이 밀리언이 뒷걸음질로 상쇄되어 반작용 역시 발생하지 않은 것.
그 사실에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음을 깨달은 밀리언이 있는 힘껏 쌈닭의 부리가 달라붙은 상태인 방패를 휘둘러버리는 것이었다.
퍼억!
“끼레레렉?!!!!!”
“지금이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라!”
단순히 정면에서 쌈닭의 돌진을 막아냈을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쌈닭은 물론 쌈닭의 공격을 막아낸 밀리언도 충격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허나, 지금은 쌈닭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으로 쌈닭에게 그 반작용에 의한 충격을 준 것이 아니었다.
운이 좋게 잡을 수 있었던 기회를 이용하여 방패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쌈닭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었던 상황.
그 덕분에 쌈닭이 밀리언이 휘두른 방패에 안면을 얻어맞아 충격에 비틀거리고 있는 사이에 밀리언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곧바로 다시 등을 돌려 냅다 달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밀리언이 쌈닭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등을 돌린 순간 밀리언과 너무 멀리 떨어지는 것은 마치 그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잠깐 멈춰 섰었던 파티원들.
그들 역시 밀리언이 한순간 쌈닭을 떨쳐내고 달리는 모습을 지켜본 직후 다시금 함께 공선자의 유도에 따라서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고그! 넌 쓸데없이 멈추지 말고 그냥 달려! 제일 느리잖아! 그렇다고 블러드보다 선두에는 서지 말고!”
“미치겠네! 뭐 그렇게 바라는 게 많아?! 야! 너! 어느 쪽으로 가야지 쌈닭하고 마주치지 않는지 빨리 유도나 해!”
공선자의 유도 없이 괜히 먼저 달려갔다가 쌈닭과 마주할 것 같았던 고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파티원들의 이야기한 것처럼 공선자보다 앞서 나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공선자를 선두로 최대한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전속력을 끌어내어 서식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달리는 소녀와 청년들.
인간은 위기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다고들 하던데 그것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공선자들은 자신들의 현재 스테이터스로 낼 수 있는 속도를 조금 더 뛰어넘는 속도로 내달리는 것이었다.
“끼르르륵!!!”
밀리언의 방패 치기에 의한 반격에 한순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쌈닭. 대충 시간으로 따지면 3초 정도.
그 3초 사이에 파티원들은 그야말로 헐레벌떡 쌈닭의 서식지에 존재하는 숲 속으로 숨어들어 쌈닭의 시계에서 그 모습을 감추는 것이었다.
방패에 의해서 얻어맞은 직후 자신이 노렸던 사냥감의 존재를 잃어버린 쌈닭이 분노에 찬 울부짖음을 토해내는 것이었지만 이미 냅다 도망치고 있던 공선자들은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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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서, 서식지 밖까지 도망쳐온 상태니까 쫓아오지는 않겠지? 쫓아오면 농담이 아니라고 가뜩이나 체력이 한계인데 여기서 전투를 했다가는 전부 죽겠어!”
“재,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도망치는 도중에 쫓아오던 쌈닭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잖아?
그러니까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숨을 헐떡이는 고그를 노려보며 똑같이 숨을 고르고 있던 프로아가 단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거가 있는 단언이 아닌, 희망적인 관측을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바라는 단언이었다.
허나, 적어도 그런 프로아의 기도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일까? 서식지를 빠져나와 단체로 숨을 헐떡이며 호흡을 고르고 있는 공선자들을 따라 서식지 밖으로 모습을 보이는 쌈닭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흐엑! 흐엑! 헤엑! 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더 이상 따라오는 쌈닭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한 1분 정도 각자 호흡을 고르고 있던 공선자들은 그 1분 동안 어떤 존재도 자신들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쌈닭들이 자신들을 추격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파티원들을 쌈닭들과 마주치지 않게 해주며 숲 밖으로 유도해준 공선자 역시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믿음이 가기도 하는 것.
그렇기에 간신히 긴장의 끈을 풀 수 있게 된 파티원들이 서식지 밖으로 나와 다시금 도착할 수 있었던 대로 여기저기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히, 힘들어 죽겠음……. 당장에라도 침대로 돌아가서 한숨 푹 자고 싶음. ……프로아 이후에는 어쩔 생각이심?”
“어어……,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우리한테 남겨진 선택지는 두 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대로 다시금 서식지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금 쌈닭의 사냥에 도전한다. 적어도 방금 전에 한 마리 사냥해본 경험은 쌓였으니까 전처럼 진이 다 빠질 정도의 전투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의 선택지는 이대로 도시로 돌아가서 오늘 하루는 푹 쉴 것인가였다.
그럴 것이 당장 쿠루미가 이야기한 것처럼 프로아는 물론 다른 파티원들도 얼굴에 피로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처음 살기에 대항하느라 정신적으로는 피로했지만 신체 상태는 멀쩡했다면 지금은 그 신체 상태마저도 피로해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인하여 본래 신체가 낼 수 있는 것 이상의 스펙을 발휘하여 서식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달렸으니 피로하지 않은 게 이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달린 것 같지 않으면서도 전신이 욱신거리는 것은 그들이 신체의 한계 이상의 스펙을 발휘했다는 증거.
심신이 전부 지쳐있는 상황이니 안전을 생각하면 역시 이대로 도시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는 게 정답이리라……. 허나…….
“뭐? 이대로 돌아가서 쉬자고?! 장난해?! 우린 아직 제대로 쌈닭을 사냥하지 못했다고! 정작 간신히 사냥했던 쌈닭의 토벌 증표마저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상태란 말이야!”
그래, 프로아가 제시한 두 가지 선택지를 듣고 따지는 것처럼 그들은 아직 이 쌈닭의 서식지에 왔었던 몇 가지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단 쌈닭이라는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몬스터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한다. 이것 자체는 달성할 수 있었다.
쌈닭과 전투를 벌여 몬스터의 종족 특성 중 하나인 ‘살기’라는 현상을 제대로 경험해보았다. 거기에 극복해내는 것도 성공했다.
허나, 정작 그렇게 살기를 극복해 몬스터와 전투를 벌여서 승리를 했으면 뭐하는가? 그들이 모험가로서 수주한 의뢰의 달성에는 토벌 증표라는, 몬스터를 토벌했다는 증명이 되는 몬스터의 신체 일부분이 필요한 것.
그렇지만 직후 등장한 또 다른 쌈닭에게서 도망치느라 그 몬스터를 토벌했다는 증표도 제대로 회수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몬스터를 사냥해놓고서도 몬스터를 사냥했다고 모험가 길드에 제대로 보고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거기에…….
“……분명히 우리가 수주받은 의뢰는 쌈닭을 10마리 사냥하는 것이었지? 그것도 이틀 안에. 그런 상황에서 아직까지 우리는 1마리도 못 잡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밀리언의 지적대로였다. 당장 그들은 쌈닭을 10마리를 사냥해 10개의 토벌 증표를 모아서 제출해야 하는 의뢰를 수주받은 상황.
이런 상황에서 지쳤다고 이틀밖에 남지 않은 시간제한 중 절반을 날려버린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공선자들은 내일 하루 동안 쌈닭 10마리를 한 번에 몰아서 잡아야 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었다.
쌈닭을 고작 한 마리 사냥해놓고서 이렇게 체력과 정신을 소모한 그들이 하루 만에 그 10배인 10마리를 잡는다? 아무리 쌈닭을 1마리 사냥해서 경험이 쌓였다고 해도 요원한 이야기였다.
“헤엑! 헤엑……! 하, 하지만 지금의 저희들로는 제대로 쌈닭 1마리도 사냥하기 힘들어요. 헤엑! 그런 의미에서 애초에 저희에게 제대로 된 선택지는 1개밖에 없는 게? 헤엑……!”
다른 이들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 상황에서도 혼자서 아직까지도 헉헉거리며 이야기하는 공선자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하던 고그와 은근히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보이던 밀리언도 반박의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야 그들 전원이 당장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쳐서 나가떨어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상태로 쌈닭을 사냥하러 간다? 한두 마리는 무리를 한다면 못 잡을 것도 없을지 몰랐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너 마리는 무리였다.
아니, 한두 마리도 솔직하게 목숨을 걸어야지 간신히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수준으로 그들은 지쳐있는 상황. 무엇보다…….
“그런데 블러드. 네 녀석은 왜 아까부터 계속해서 호흡이 그렇게 거친 거지? 슬슬 회복될 때도 되지 않았나?”
“후우……! 후우……! 그, 그게 제가 세부 스텟에서 건든 스텟이 재속이다 보니까 그 영향인지 체력의 회복 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져서…….”
“으윽?! 그러고 보니까 재속이라는 거 회복 속도를 담당하는 거였지? 나도 그 스텟을 조금 건드렸는데? 그래서 어쩐지 평소보다 지친 느낌이 오래가는 거였던 거야?”
공선자의 이야기에 고그 역시 재속 스텟을 건드렸던 것인지 질색을 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스테이터스 창을 열고서는 어떻게 세부 스텟을 다시금 조작해보려고 하는 모양.
허나, 세부 스텟은 한 번 조작하면 조작한 뒤 24시간이 지나지 않는 이상은 다시금 비율을 조절할 수 없었다.
“……즉, 고그랑 블러드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소모해야 한다는 거네? 역시 이러면 오늘은 도저히 사냥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설령 몇 시간 정도 쉬는 것으로 체력을 회복한다고 해도 솔직히 이야기해서……, 다들 정신적으로 한계잖아?”
굳이 프로아가 지적하지 않아도 솔직히 말해서 공선자를 포함한 전원이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신체도 신체였지만 역시 가장 지친 것은 정신이었다. 고작해야 몇십 분 수준의 전투에 불과했다.
허나, 그 과정에서 그들이 소모한 정신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인 것. 처음 겪어보는 살기에 저항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신을 한계까지 쥐어짰다.
여기에 간신히 살기에 저항한 뒤에도 쌈닭의 살기 속에서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투를 이어갔으니 오히려 새벽에 그들이 도와줬던 공선자처럼 당장 기절하지 않는 것만 해도 장한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쌈닭과 싸운다? 아마 제대로 살기에 저항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아니, 살기 자체는 저항하는 경험이 쌓인 만큼 저항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허나, 전투 도중에 고갈된 정신력에 의한 집중력 저하로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여 누구 한 명이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 것.
아무리 이대로 돌아간다면 모험가 길드에서 수주받은 의뢰의 달성이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밀리언들은 도저히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하지 못했다.
“……휴우, 결국에는 선택지가 두 개인 것처럼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하나밖에 없다는 거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돌아가도록 할까.”
“제기랄! 뭐야! 고생을 실컷 해놓고서 결국에는 제대로 된 성과는 하나도 없다는 거잖아?! 뭐 이런 빌어먹을 경우가 다 있어?!”
“아님. 성과 자체는 존재함. 일단 경험치가 들어왔음. ……레벨 업은 못 한 모양이지만 말임. 솔직히 말해서 꽤 빡센 거 아님? 보통 레벨 1은 잡몹을 한두 마리 잡으면 레벨 업 할 수 있지 않음?”
실질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없다는 사실에 고그가 열이 받았는지 제대로 힘도 들어가지 않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고 있을 때 쿠루미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에 뒤늦게 쌈닭을 사냥하는 것으로 경험치가 들어왔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파티원들이 각자의 로그 시스템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선자를 포함한 전원의 로그 창에 무력 레벨 6의 쌈닭을 처리하는 것으로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로그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소량……. 그러고 보니까 파티를 하면 기여도에 따라서 경험치를 분배받는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