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 글자를 확인한 공선자는 밤의 자신이 쌈닭을 홀로 사냥할 때와 다르게 소량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파티를 하면 파티원의 수만큼 n등분되어 경험치가 분배된다.
균등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고 프랜들리 시스템을 통해서 파티를 맺고 있는 이들이 몬스터와 같은 존재를 사냥했을 때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를 따져 기여도에 따라서 경험치가 분배되는 것.
허나, 아무리 기여도를 따진다고 해도 파티를 맺은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n등분 해지는 비율이 높아지니 한 명에게 들어오는 경험치의 양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프랜들리 시스템은 시스템에 따라 뭉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적의를 가진 상대와 생사투를 벌이는 난이도가 낮아진다고 판단한 것인지 습득하는 경험치 자체에 페널티를 주었다.
파티의 경우에는 10% 저하, 섹션은 30% 저하. 레기온은 무려 50%의 경험치 저하가 붙게 되는 것.
즉, 파티인 상태로 몬스터를 사냥하면 1명이 받아야 하는 경험치의 90%를 또다시 파티원의 숫자에 따라서 n등분 하여 받게 된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평균 무력 레벨이 5인 쌈닭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강한 것인지 무력 레벨이 6인 쌈닭을 사냥했음에도 밤의 공선자가 보던 대량이나 그냥 경험치가 아닌, 소량의 경험치를 습득했다는 로그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벨은 오르지 않은 건가……. 하긴, 레벨 3을 찍은 뒤로 쌈닭을 몇 마리밖에 사냥하지 못했으니까 레벨이 오르면 그게 이상한가.’
소량의 경험치가 객관적으로 어느 수준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장 공선자의 남아있는 경험치 바를 채워줄 수준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소량의 경험치……. 이거 적어도 쌈닭을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숫자로 잡아야지 레벨 업 할 수 있다는 거겠지?”
공선자가 그렇게 뇌리에서 홀로 고민하고 얻은 정보를 무의식에 가깝게 정리하고 있을 때 프로아가 피로감이 느껴지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설마하니 이번 전투에서의 유일한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경험치 역시 레벨을 올리는 것이 힘들 수준에 불과할 줄은 몰랐기 때문.
적어도 레벨이 올라 추가 스텟을 받으면 이후의 전투가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못해도 하루 동안 10마리의 쌈닭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이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
허나,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그들은 단 한 명도 레벨을 1도 올리지 못했다. 당장 공선자를 비롯한 전원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상황이라는 게 그 증거.
그럴 것이 레벨이 상승하면 그에 맞춰서 신체상태가 원상태로 회복될 테니 말이다. 체력과 피로도는 회복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정신력의 고갈과 체력의 고갈은 남아있지만 적어도 현재 그들의 전신을 욱신거리게 만드는 근육통만큼은 회복시켜준다는 이야기.
그렇게 되면 정신력과 체력이 바닥이라고 해도 레벨이 올라 얻게 된 스텟 포인트를 투자하는 것으로 쌈닭 한두 마리는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허나, 그런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그들은 누구도 레벨 업을 겪지 못했다. 이미 레벨이 3인 공선자를 비롯한 전원이 말이다.
이러니 결국에는 얄짤 없이 도시로 돌아가서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 1번의 전투로 단 하나의 전리품도 얻지 못하고 말이다.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고그와 밀리언이었지만 이내 현실을 인정한 것인지 고개를 숙인 상태로 어떻게든 주저앉아 있던 포장된 길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으으……. 조금만 더 여기서 쉬었다가 가면 안 됨? 쿠루미는 지금 손가락 까딱하기 힘들 정도의 녹초임.”
“결국 도시로 돌아가서 오늘 하루는 쉬어야 한다면 길바닥이 아니라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쉬고 싶군. 공짜로 그 여관에서 묵는 것도 앞으로 6일 뿐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본전을 뽑아둘 수 있을 만큼 뽑아두고 싶군.”
어차피 쉬어야 한다면 조금만 더 고생한 뒤 더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에서 쉬고 싶다고 이야기는 밀리언의 발언에 쿠루미도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길바닥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공선자와 프로아 역시 일단은 도시로 돌아가야 했기에 언제까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는 동의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서식지에서 벗어난 뒤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이 이후에는 어쩔 것인지 의견을 나누던 다섯 명은 결국 일단 도시로 돌아가 오늘 하루는 쉬기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결국에는 내일 하루 동안 쌈닭 10마리를 사냥해야지 의뢰를 달성할 수 있다는 거네? 가능하겠냐?”
“무리겠지. 쌈닭을 사냥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지만 당장 우리들의 상태를 봐. 한 마리 사냥했는데 기진맥진. 아무리 경험이 쌓였다고 해도 소모되는 체력이나 정신력이 그렇게까지 줄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어.”
물리적인 가능성만 따지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밤의 공선자만 해도 하룻밤 동안 홀로 21마리의 쌈닭을 사냥해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밤의 공선자보다 숫자가 많은 다섯 명이라면 물리적으로는 가능할 것. 허나, 오늘 몬스터의 살기라는 것은 경험하고 저항해본 프로아는 물리적인 사실만 따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기라는 모종의 현상에 저항하기 위한 정신력 역시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이 정신력은 체력보다 소모가 격렬했다.
그들이 좀 더 몬스터의 살기라는 현상에 익숙해진다면 모를까 이제 막 간신히 저항해낼 수 있게 된 상태가 아닌가?
아직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될 터. 그리고 그때까지는 아마 지금처럼 한두 마리만 잡아도 기진맥진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프로아의 예상.
거의 본능의 영역에서 직감하게 되는 결과였다. 그리고 그것은 쌈닭의 살기를 경험해본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밤의 공선자처럼 살기의 영향을 아예 안 받으면 체력적인 요소만 생각해 아마 조금만 무리하면 10마리의 쌈닭을 하루 안에 잡는 것은 가능할 터.
허나, 그들은 쌈닭의 살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쌈닭과 싸울 때마다 필요 이상의 정신력이 고갈되고 그 결과 하루에 10마리의 쌈닭을 처리하는 것은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이, 일단 도시에 돌아가서 몇 시간 정도 쉰 뒤에 나중의 일을 생각하죠. 지금은 다들 서 있는 것도 한계잖아요?”
그런 현실을 깨닫고 눈에 띄게 침울한 분위기가 되어버린 네 명의 모습에 간신히 이제야 호흡을 고를 수 있게 된 공선자가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제안에 아무도 반론을 입에 담지 않고 터덜터덜 지친 걸음으로 도로를 걸어 자신들이 왔던 도시, 소나타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
처음에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던 고그와 밀리언도 결국에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아니면 그저 당장 입을 열 힘도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방금 전까지는 막 도망친 직후여서 아직까지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지만 잠깐 동안 쉬는 과정에서 머리까지 치솟았던 열기가 가라앉아 내정해지자 현실을 깨닫고 덤으로 강렬한 피로가 덮쳐오기 시작했다는 느낌?
그 결과 일행들은 한동안 우울한 분위기를 두른 채로 쌈닭과 전투 과정에서 몇 번이고 바닥을 구르느라 먼지로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도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모험가라는 직업.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혹한 직업이구나. 지금 머물고 있는 여관에서 나가야 하는 6일 뒤에 우리들이 모험가로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까?”
“모르겠군. 그래도 뭐, 우리들이 있는 이 대륙은 겨울이 매우 춥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8월 달. 일단 당장은 여름에 해당하는 계절이다. 6일 뒤에 여관에서 쫓겨나 제대로 머물 곳을 못 찾는다고 해도 얼어 죽지는 않겠지.”
“쫓겨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임. 그렇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여관에 숙박비를 내지 못해서 내쫓기는 것 같지 않음?”
도로를 걸어 도시로 돌아가던 길에서 프로아가 앞날이 걱정이라는 목소리로 내뱉은 발언에 밀리언이 그나마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단지, 그의 말투에 의해서 그다지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게 우습다고 해야 할까? 쿠루미 역시 자신들의 엄청나게 처량한 신세처럼 느껴지니 좀 더 순화해서 말하라고 따지고 들었으니 말이다.
“흥! 더 길게 머물 돈이 없어서 나올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잖아? 그럼 뭐 별로 다를 것도 없지.”
“그러니 그전에 6일 후부터 머물 여관을 알아보고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숙박비로 써야겠지. 여기에 삼시세끼 역시 우리들이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하니 그를 위한 돈도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당장 옷을 사야 하기도 하고 말이지. 아무리 당장 입을 옷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몰려다니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니 말이다.”
당장 챌린저들이 입고 있는 옷 자체는 큰 문제는 없었다. 디자인이 통일되었다는 것만 빼면 옷감에 의한 착용감은 무난한 편이었고 디자인 자체도 크게 눈에 띄는 점은 없었으니까.
허나, 그 단 한 가지 문제, 디자인이 통일되었다는 게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니 좋은 요소인 것.
요컨대 결국 챌린저들은 당장 식주는 해결되어도 의에 사용할 돈, 그리고 6일 뒤에는 식주에도 사용할 돈을 모아야 하는 신세라는 것.
그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모험가라는 직업이었지만 정작 그 모험가로서 실력이 부족하여 큰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니 앞날이 걱정될 수밖에 없는 것.
“그러고 보니 쿠루미들, 일단 세계 멸망이니 하는 것도 막아야 하지 않음?”
“지, 지금의 저희들로 세계 멸망이니 하는 걸 신경 쓸 여유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에요. 당장 먹고 사는 것만 해도 막막한데.”
쿠루미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는 말투로 이야기하자 공선자가 조금 자조적인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받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죽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허나, 그들과는 다르게 공선자는 단순히 죽고 싶지 않다, 가 아니라 죽을 수 없다! 라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존에 관련된 요소에서 느끼는 감각 자체가 달랐다. 평범한 이들이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에 두려움과 초조함을 느낀다면 공선자는 그 위협 요소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것.
공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초조함 역시 존재했다. 허나, 그 이상으로 자신의 반신이 남겨준 자신의 목숨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것과 같은 감정을 담아 현재의 자신의 상황을 입에 담는 공선자였던 것.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 빠르게 강해져서 세계의 멸망인지 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정작 자신은 먹고사는 것도 막막해하고 있으니 그 사실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니, 아니! 그렇게 걱정만 해서는 끝이 없어! 결국 모험가로서 실력만 갉고 닭을 수 있다면 돈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일단은 레벨을 올리고 당장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의뢰를 달성해가면서 모험가로서의 경험을 쌓고 실력을 키우는 걸 목표로 하자!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세계의 멸망이라는 것도 막고 우리들이 잃어버렸던 기억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때 공선자의 발언에 섞인 그 자신의 자괴감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그가 앞날을 걱정하여 부정적인 발언을 내뱉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프로아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었다.
당장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한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모험가가 주로 몬스터를 사냥해 소득을 올리는 직업이라고 들었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다.
허나, 쌈닭이라는 몬스터를 경험해보고 나서야 간신히 실감할 수 있었다. 모험가로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거기에 쌈닭은 고위 몬스터도 아니었다. 하급 중의 하급. 최하급에 해당하는 몬스터. 그런 몬스터조차 전력을 다해야 간신히 사냥할 수 있는 자신들의 실력을 새삼스럽게 재인식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눅이 들지언정 절망하지는 않았다. 그래, 가혹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죽으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들은 토벌 증표를 수거하지 못했다고 해도 분명히 쌈닭을 한 마리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 마리씩이라도 좋아. 쌈닭을 사냥해 나아가다 보면 우리들의 실력도 늘 거 아니야? 그렇게 되면 분명히 나중에는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씩 사냥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강해지다 보면 더더욱 나중이 되어서 쌈닭보다 더 고위의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게 될 거고. 그렇게 점점 강해지다 보면 분명 나중에 가면 세계의 멸망이니 하는 것에도 도전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