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자신들은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약한 게 당연했다. 약하다면 이제부터 강해지면 된다. 조금씩 조금씩.
하루에 한 마리씩밖에 쌈닭을 사냥하지 못해도 좋았다. 그렇게 한 마리씩이라도 사냥하며 경험치는 모으다 보면 분명히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천천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처럼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프로아의 발언에 파티원들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것이었다.
“훗! 그때까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돈이 바닥나지 않아 제대로 먹을 걸 먹고, 입을 것을 입으면서 지낼 수 있게 될 때의 이야기겠지만 말임.”
“으, 으윽! 그 부분은 어떻게든 아껴 쓰면서 지내면 되지 않을까? 일단은 자유 의뢰 쪽으로 쌈닭의 토벌을 달성하면 하루에 1만 원은 벌 수 있는 거잖아?”
“칫! 그것 또 다섯 명이서 쪼개 써야 하고 말이지? 그럼 하루에 2천 원인가? 그럴 거면 차라리 잡일을 하는 쪽이 더 벌리겠다!”
조금 장난기가 가미된 말투로, 그러면서도 진지함 역시 담은 어조로 쿠루미가 프로아의 희망찬 플랜의 빈틈을 지적하자 프로아가 신음을 흘리며 어떻게든 대답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에 고그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어조로 투덜거리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고그의 투덜거림에 밀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먹고 살려면 결국 우리로서는 잡일을 수행하는 의뢰도 해야겠지. 애초에 당장 수주받은 의뢰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이상 페널티를 없애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지.”
“그, 그런 의미에서 쌈닭을 사냥해서 경험치를 벌고 정신력이 한계에 도달하면 잡일을 하며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라는 말씀이신가요?”
공선자가 밀리언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아차리고 그를 대신해서 말을 해주자 밀리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뭐, 그런 식으로 해서 과연 언제 강해져 멸망이라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가 그 정도인데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지. 그나마 제자리에 멈춰서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만은 프로아가 말한 것처럼 희망적인 관측 아닌가?”
처음에는 앞으로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에 침울했던 분위기도 프로아를 시작으로 점차 희망적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그래, 아예 절망만 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이제 막 이 플라워라는 차원에서 살아가기 시작했을 뿐이니 말이다.
챌린저로서 정신을 차린 지 이제 막 이틀째가 지나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은 약한 것이 당연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정체하는 것이 아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렇게 절망 끝에 미약한 희망을 가지게 된 공선자들은 그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도시, 소나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쿠루미들, 도시에서 벗어난 지 고작 1시간이 간신히 지날 정도밖에 지나지 않지 않았음? 고작 그 시간 만에 대차게 깨지고 돌아가는 거임. 문지기들이 보면 어지간히도 웃길 듯?”
“으으으으!! 간신히 분위기가 괜찮아진 상태에서 쿠루미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잖아!”
객관적으로 현재 자신들의 모습이 상당히 꼴사나운 모습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파티원들이 쿠루미가 문뜩 떠올랐다는 것처럼 지적한 발언에 다시금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잽싸게 여관에 도착하여 씻고 그냥 침대에서 자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성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
즉, 아무리 싫어도 문지기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문지기들에게는 자신들의 꼴사나운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여기에 어지간히도 기억력이 나쁘지 않으면 고작 1시간도 안 되어서 성문을 통과해 당당하게 모험가로서 첫 번째 의뢰를 수행하러 갔던 공선자들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이 고작 1시간도 안 되어서 먼지투성이가 되어서 터덜터덜 돌아온다? 어떻게 봐도 무슨 일을 겪었는지 대충 답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니 고그들을 문지기들이 최하급 몬스터인 쌈닭조차 제대로 사냥하지 못한 자신들을 내심 비웃을 거라는 생각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던 것.
허나, 그렇다고 고작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워서 도시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야 플라워 차원은 공선자가 살던 지구와 다르게 밤이 ‘물리적’인 의미로 위험한 세계인 것이었다.
몬스터라는 다른 종족에게 무조건적인 적의를 보이는 괴물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런 세계에서 밤에 성벽 밖에서 노숙을 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의미인지 어제 막 이쪽 세계에서 의식을 찾은 챌린저들이라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
그렇기에 그들은 문지기들의 비웃음을 감내하고 성문을 지나 도시에 들어가 여관에서 쉰다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 이 고그님이 고작해야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쓸 것 같아?! 거기에 우리는 뭐가 되었든지 쌈닭을 한 마리 사냥했어! 그건 즉, 고작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고 쌈닭을 사냥했다는 이야기지! 오히려 시간이 짧게 걸리면 걸릴수록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생각해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뭐, 좋아.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 꼴사나운 것이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좋을 대로 비웃으라고 하도록 하지.”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속뜻을 파악하면 결국에는 신경 쓰인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는 고그.
그리고 냉정하게 자신들의 꼴사나움을 인정하는 밀리언의 발언에 다시금 분위기가 침울해지는 일행들.
이번에는 아까까지처럼 절망감에 몸을 움츠리는 것이 아닌, x팔림에 몸을 움츠러트리며 발생하는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결국 간신히 조금 밝아지나 싶었지만 다시금 어두워진 분위기를 두른 채로 쌈닭을 사냥하러 출발했을 때와 비교해 2배 정도 더 걸리는 시간 끝에 소나타의 성문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야 피로에 지친 몸이었으니 출발할 때보다 돌아올 때의 시간이 더 걸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성문을 도착한 공선자들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문지기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음? 너희들은 분명히 몇 시간 전에 불과했던 새내기 녀석들 아니야? 분명 쌈닭을 사냥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 꼴을 보아하니……,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짐작이 가는군.”
“어? 그러고 보니까 확실히 이 녀석들이 지나갔던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한데……. 즉, 이 녀석들 오늘 처음 몬스터를 상대해본 초짜들이라는 거지? 그러면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도 이해할 수 있기는 한데…….”
일단 공선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문지기들은 증명패를 제시하고 성문을 지나가려고 했던 공선자들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야 그들이 지나간 지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허나,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문지기들이었다.
처음에는 공선자들의 행색을 살펴보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그들 전원을 훑어보더니 직후 어딘지 대견하다는 시선을 보내오는 것.
내심 비웃고 있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분명히 이야기해서 그들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어 밀리언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성문의 치안수호대들이 친절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정신력이 상당한 녀석들인 모양이네? 몬스터와 처음 마주해서 살기를 경험하면 대부분의 새내기들은 얼이 빠지거나 운이 나쁘면 아예 돌아오지를 못하니깐 말이지. 그런데 정신줄을 놓고 있는 녀석들이 아무도 없다니……. 장래가 기대되는 녀석들이군.”
“확실히 어제하고 오늘 사이에 이 녀석들하고 비슷한 새내기들을 몇 번 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다른 쪽 성문에서도 비슷한 녀석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새내기들이 늘어나면 나중에 던전 브레이크라도 일어났을 때 전력이 되어줄 테니까 고맙단 말이지.”
그런 그들의 이야기에 순간적으로 쿠루미들의 표정을 밝아지는 것이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친해질 일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웃음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으로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
단, 그것은 어디까지나 증명패를 제시하고 도시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앞으로도 포기하지 말고 모험가 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문지기들의 격려를 받으며 성문을 통과한 일행들은 직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국 방금 전에 문지기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들의 해야 하는 모험가 활동이 그만큼 빡세다는 거 아님?”
“……부정할 수 없군. 우리들로써는 꼴사납다고 생각했던 모습이 그 문지기들에게 있어서는 새내기 모험가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모습에 불과했다는 소리니깐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보통은 살기라는 것에 아예 정신줄을 놓는다고도 했고 말이지.”
거기에 파티원들은 언급하는 것을 꺼려하는 느낌이었지만 운이 나쁘면 아예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은 즉, 의뢰를 수행하던 도중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그 누구도 죽지 않고 끝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운이 나빴다면 누구라도 죽거나 그에 준하는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실제로 밀리언과 고그는 쌈닭의 부리에 몇 번이고 신체를 관통당할 뻔한 위기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하니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직업을 활동 영역으로 삼은 것인지 이해가 되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차마 문지기들이 자신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모습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워낙 어려운 시험이어서 합격점이 지나치게 낮았던 결과 자신들은 낙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낮은 점수도 합격이었다, 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기에 그들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기준점이 매우 낮을 정도로 어려운 시험을 늘 치러야 하는 위험천만한 직업을 선택해버렸으니 말이다.
아니, 선택도 아니었다. 그녀들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그거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들에게는 다른 수가 없었던 것.
“……휴우, 일단 도시로 돌아왔으니까 여관으로 돌아갈까? 그 뒤 3시간 정도 각자 휴식을 취한 후 1층의 로비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으면서 이후의 행보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게 어때?”
허나, 도시로 돌아오면서도 이야기한 것이었지만 아무리 앞날이 암울하다고 해도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때문에 프로아는 도시에 도착한 뒤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파티원들에게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런 프로아의 제안에 딱히 이의는 없었기에 전원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파티원들.
아침의 공선자 역시 한동안은 이들과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한 만큼 앞으로의 행보에 관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에는 이의를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단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이후 완전히 해가 지고 밤의 공선자로 변화했을 때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조금 예상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침의 공선자와 밤의 공선자는 다른 인격 같은 게 아니었다. 인격은 확실하게 하나. 허나, 거기에 아침의 공선자는 감정이 자유롭고, 밤의 공선자는 감정이 완벽하게 제어되어 오로지 이성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차이점.
그렇기에 본래라면 설령 다른 사람이나 다름없게 느껴지는 차이를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는 같은 사람이니 밤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예측이 되었어야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의 공선자는 밤의 공선자의 반응이 예측이 가질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침의 공선자는 이성과 비교했을 때 감정이 너무나도 풍부했기 때문.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그 결과 밤의 공선자와의 괴리감이 너무나도 커서 밤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 예측하기가 힘들었던 것.
……아니, 어쩌면 그 풍부한 감정 때문에 그저 예측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럴 것이 밤의 공선자에게 부정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성에 자신의 감정이 부정당한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다른 인격에 자신이 부정당하는 게 나을 지경. 그럴 것이 이성에 감정이 부정당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자기혐오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