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왜인지 너무나도 설득력이 넘치는 쿠루미의 설명에 프로아와 밀리언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공선자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건 조금은 공선자의 잘못도 있는 게 아닌가? 라는 그 시선에 공선자가 억울하다는 기분을 잔뜩 담아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만드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진실성이 담긴 그 눈빛에 프로아와 밀리언도 자신들이 조금 심했나? 하는 표정을 짓는 것.
그리고서는 직후, 어쩔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한숨을 내쉰 프로아는 쿠루미의 팔목을 붙잡더니 그대로 자신이 끌고 가기 시작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아아! 정말! 알았어! 내가 씻겨주면 되는 거지?! 정말로 어쩔 수 없이 해주는 거니깐 말이야! 이대로 있으면 쿠루미, 네가 블러드한테 민폐를 끼칠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해주는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어쩐지 진짜로 어쩔 수 없이 해주는 걸 텐데 해주고 싶어서 해주는 걸 부끄러워서 숨기는 것처럼 들림.”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알몸으로 같이 샤워하면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거든?!”
공선자에게 쿠루미가 엉겨 붙게 만들 바에는 자신이 나서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인지 그대로 쿠루미를 끌고 가는 그녀.
그 과정에서 쿠루미가 조금 멍한 느낌으로 내뱉은 발언에 찔리던 게 있었던 것인지 뺨을 붉히며 자폭을 해버리자 쿠루미가 두 눈을 끔뻑이더니 이내 깨달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거임. 프로아는 은근히 츤데레 기질이 있었던 거임. 그래서 사실을 쿠루미를 씻겨주고 싶었는데 안 그런 척했던 거임.”
“아, 아니거든?! 아니, 씻겨 주고 싶다니 하기 전에 이제 막 알게 된 사람한테 알몸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운 건 당연한 일이잖아?!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래서 거절했던 건데?!”
부끄러움도 그런 쪽의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이야기. 알몸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던 것이지 씻겨주고 싶었던 게 부끄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같이 활동할 예정이니 할 수 있다면 친목을 다지고 싶었던 것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도 알몸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가? 그러니 거절했던 것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변명하고 나니 이 이유는 이 이유대로 츤데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프로아.
번역 시스템이라는 녀석은 설령 언어가 달라도, 표준어가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서로 상대가 하는 말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니 참 열일을 한다고 할 수 있었다.
“아아! 말하다 보니까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아! 됐고! 난 쿠루미랑 같이 씻으러 갈 거니까 3시간 뒤에 로비에서 집합이야! 늦지 마! 파티원들의 방 번호는 제대로 알아둔 상태니까 늦으면 찾아갈 거야!”
“그래, 수고하도록.”
“아, 네.”
이제는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하는 쿠루미를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프로아에게 밀리언이 조금 안 되었다는 의미가 담긴 것 같은 어조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공선자 역시 딱히 억지로 늦거나 할 생각은 없었기에 쿠루미를 이끌고 먼저 여관 안으로 사라진 프로아에게 무난한 대답을 돌려주는 것.
그렇게 프로아와 쿠루미가 먼저 여관으로 들어간 것은 확인한 공선자가 깊게 숨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씻겨달라는 폭탄 발언을 했던 쿠루미가 사라지는 것으로 긴장이 끈이 완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도 가보도록 하지. 3시간 뒤에 늦지 않게 로비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네, 네……, 그럼 저도 이만…….”
그 뒤 연이어서 먼저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밀리언을 따라서 공선자 역시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건 상당히 심한 상황인데?’
그러던 중 1층의 식당 겸 휴게실로 쓰이는 공간이 조금 소란스러운 것은 느낀 공선자가 방으로 돌아가던 중 무슨 일인가 하고 슬쩍 휴게실 쪽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후, 휴게실의 상태를 확인한 공선자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는 것. 그럴 것이 그 장소에는 공선자와 같은 챌린저로 보이는 이들이 여럿 크고 작은 부상을 가진 상태로 서로를 보살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보이는 것만으로는 목숨에 지장이 없어 보이는 수준에다가 어느 정도 치료를 받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바닥을 구르느라 흙투성이가 되었을 뿐 부상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던 고그들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심각해 보이는 모습인 것은 분명한 것.
여기저기 붕대로 보이는 흰 천을 두르고 있는 5명 이상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아마도 고정세의 섹션으로서 처음으로 의뢰 달성에 나섰다가 부상을 입어서 공선자들처럼 조금 따르게 여관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고정세의 섹션의 숫자는 40명 가까이 된다고 했는데 1층의 로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10명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도 모험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심각할 정도의 부상을 당한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저쪽도 우리랑 비슷하게 고생하고 있구나.’
그 증거로 휴게실에서 서로의 상태를 살펴주고 있는 챌린저들의 표정을 그다지 밝지 않았다. 저들 역시 모험가로서 몬스터와 마주친 것은 오늘이 처음일 터.
그렇다면 얼굴이 어두운 것도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자신들이 쌈닭과 같은 괴물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주눅이 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운이 좋게 상처 없이 귀환할 수 있었던 공선자들과 다르게 그들은 부상까지 입은 상태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아예 없다는 느낌은 아닌가. 그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들보다 사정이 나은 것 같네. 의뢰달성은 성공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얼굴이 어두울지언정 절망감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적어도 억지로 만들어낸 희망이 아닌 자연스러운 희망을 목도한 사람들과 같은 분위기인 것.
그 사실에 공선자는 자신들과 다르게 그들이 부상을 입었을지언정 모험가로서 수주받은 의뢰는 달성해낼 수 있었다고 추측하는 것이었다.
공선자들과 다르게 스프라우트 등급이 아닌 노비스 등급에 도전했을 것임에도 말이다. 그 사실에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짙은 한숨으로 내쉬는 공선자.
자신들과 다르게 의뢰를 성공하여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새삼스럽게 쌈닭을 토벌하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조차 달성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그 이상 로비를 살펴보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며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이렇게까지 주눅들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확실히 프로아와 맺은 파티로써는 제대로 된 성과를 올리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공선자 개인으로써는 확실한 성과가 있지 않았는가?
‘……아니, 그건 나지만 나의 성과라고 말하기 힘들어. 어디까지나 밤의 내 성과니까. 그것까지 지금의 내 성과로 생각하면 결국 난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게 될 거야.’
그래, 밤의 공선자의 성과 역시 공선자의 성과였지만 거기서 만족하여 이거면 됐지, 라고 생각했다가는 아침의 공선자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반신 인격이 존재할 때 근본 인격이 반신 인격에게 전부 맡겨버렸던 것처럼 아침의 공선자가 밤의 공선자에게 전부 맡겨버리는 일이 반복될 뿐이었으니 말이다.
전자와 비교했을 때 후자는 결국 같은 인격이라 상관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밤의 공선자에게 기대게 된다는 것은 결국 밤의 공선자를 만들어내는 ‘감정제어’에 기대게 된다는 이야기.
그렇게 되면 아침의 공선자. 진정한 공선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전혀 성장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아침인 상황에서 밤의 공선자였다면 해결할 수 있지만 아침의 공선자였기에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처하게 되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아침의 공선자니까 어쩔 수 없다, 라는 변명을 지껄이며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밤의 공선자의 성과는 아침의 공선자와는 따로 놓고 생각해야 했다. 아침의 공선자가 밤의 공선자에게 기대지 않도록, 아침의 자기 자신 역시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밤의 공선자의 성과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억지로라도 납득시켜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의 공선자는 지독한 겁쟁이였으니까. 무엇인가를 하려는 생각만 떠올려도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사고에 브레이크를 걸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혼란스러워하며 고민에 빠져 있던 공선자는 어느새 정신을 되찾고 보니 자신이 머무는 방의 문앞에 도착해 있는 상황.
‘……일단 씻고, 쉰 뒤에 생각하자. 지금은 피로감 때문에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태야.’
거기에 공선자 역시 쌈닭과 싸우다가 흙먼지 뒤집어쓰고 단검으로 쌈닭의 목덜미를 꿰뚫어 피까지 조금 뒤집어쓴 상태였다.
그러니 일단 입고 있는 경갑옷의 착용을 해제하고 옷을 벗어 털어낸 뒤 씻는 것으로 이 찝찝함을 절실하게 덜어내고 싶었던 그가 인벤토리에서 자신의 방문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가죽 갑옷은 장비셋 시스템을 이용해서 벗은 뒤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닦아두고……, 옷은 당장 빨면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까 아까처럼 털어서 먼지를 털어낸 뒤에 피가 묻은 부분만 닦아서 입고 있을까…….’
조용히 슬롯 원, 셋 다운이라는 명령어를 통해서 착용하고 있던 가죽 갑옷의 착용을 해제한 공선자 인벤토리에 수납된 가죽 갑옷을 꺼내어 바닥에 늘어놓았다.
씻고 나온 뒤 천으로 먼지와 피를 닦아둘 생각이었던 것. 그 뒤 옷을 벗은 공선자는 방에 비치된 샤워실에서 20분 정도 가볍게 먼지를 닦아낸 뒤 샤워실에서 나와 예정대로 자신의 옷과 갑옷을 빨고 손질해두는 것이었다.
단검 역시 물로 닦으면 녹이 슬 위험이 있었기에 일단 검과 같은 무기의 손질용 기름을 구하기 전까지는 대충 천으로 검신에 묻은 피만 닦아내는 것.
그렇게 1시간 정도 자신과 자신의 정비를 마친 공선자는 침대에 누운 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은 앞으로 2시간 정도. 그동안 뭐 하고 있지?’
아직 신체에 피로감이 남아있으니 그냥 이대로 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허나, 공선자는 살아오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매우 드물었다.
그렇기에 설령 밤의 공선자가 아닌 아침의 공선자라고 해도 이렇게 멍하니 있는 것은 도저히 성미에 맞지 않는 것.
쉴 때는 쉬더라도 잠을 자는 게 아니라면 무엇인가 신체를 쉬게 만들 수 있는 선에서 어떤 활동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골똘히 고민하던 공선자는 자신이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고 침대 위에서 누워 있는 상태로 자신의 스킬 시스템을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역시, 그때 그 효과음은 일야몽을 통해서 새로운 스킬을 작성했다는 의미의 효과음이었던 거네.”
자신의 스킬 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새로운 스킬, 감정치환이 습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공선자는 역시 방금 전의 전투에서 자신이 살기 속에서도 쌈닭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스킬 덕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스킬의 효과는 공선자가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처럼 오라를 소모해서 자신, 혹은 타인의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 일야몽의 파생스킬.
이 스킬이 있다면 밤의 공선자와 같은 수준으로 감정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중요한 국면에서만큼은 두려움에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공선자였다.
그리고 이어서 공선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 목록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소지하고 있는 아이템은 쌈닭의 부리가 1개, 사체가 20개, 공선자가 대충 화력 나뭇가지라고 부르는 나뭇가지가 1만 원 어치 정도.
거기에 밤의 공선자가 더 이상 쓰지 못할 정도의 올무와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없었던 쌈닭을 매각하는 것으로 습득할 수 있었던 3T라는 상점 시스템의 화폐.
현금으로 치자면 대충 3만 원에 해당하는 수준의 가치였다. 올무를 팔아서 1만 원, 부리를 제거했던 쌈닭의 시체를 팔아서 2만 원 정도를 번 수준.
쌈닭의 시체는 2마리가 5T였던 것은 생각하면 1마리에 2T인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토벌 증표인 부리를 제거한 만큼 공선자는 납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