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아, 그러고 보니까 멸업 수치가 165%에 도달했네. 즉, 이거 1의 스텟 포인트나 3의 스킬 포인트로 전환할 수 있다는 거지?”
아니면 경험치나 스킬의 숙련도로 전환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직업 레벨의 경우에는 아직 직업을 습득하지 못한 상태인 만큼 논외라고 친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순간 공선자는 무엇으로 전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머리를 굴리며 이것저것 확인해보는 것이었는데, 이내 지금의 자신이 아닌 밤의 공선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로 하는 것이었다.
딱히 밤의 공선자에에 선택을 떠넘긴 것이 아니었다. 멸업 수치의 사용은 이후 어떤 스노우볼이 굴러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선택 사항인 것.
그런 만큼 아무리 밤의 자신에게 최대한 의지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침의 공선자라고 해도 억지로 지금의 자신이 선택하게 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랬다가 괜히 나중에 일이 커져 버리면 어쩌겠는가? 그럴 바에는 그냥 지금의 자신보다 판단력이 뛰어난 밤의 자신이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 옳았다.
지금의 그가 멸업 수치의 사용처를 정하는 것은 성장을 위한 시도가 아닌 단순한 고집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일단 멸업 수치는 내버려두기로 한 공선자는 에볼루션 시스템의 다른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딱히 더 이상은 살펴볼 만한 점이 없는데……. 에볼루션 시스템을 살펴보는 건 여기까지 할까. 지구에서 입던 옷처럼 괜찮은 질감의 옷이 없나 확인해봤지만 제2문명의 옷은 어지간히 비싸지 않은 이상은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하고 질감이 그다지 다른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제3문명의 옷은 지구에서는 몇만 원도 안 했을 주제에 여기서는 문명 보정을 받아 몇십, 많게는 몇백T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즉, 이제 고작 3T를 가지고 있는 공선자로써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치의 금액이라는 소리.
그렇다고 해도 갈아입을 옷으로 질감은 신경 쓰지 않고 한두 벌의 옷 정도는 사두는 것이 좋을지도 몰랐다.
특히 속옷 같은 옷은 말이다. 허나,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도시의 시장 같은 곳을 찾아가 T가 아닌 현금으로 사는 쪽이 낫지 않을까 공선자는 생각하는 것.
그럴 것이 그쪽은 직접 물건을 확인하고 고를 수 있었고, 매각 시에는 50% 싸게 매각해주는 상점의 시스템을 생각하면 섣불리 T를 소모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뭐, 생각했던 것보다 후려치는 비율이 높으면 그럴 걱정이 없는 상점에서 사는 게 나을 수도 있기는 한데…….’
허나, 상점 시스템의 T는 경우에 따라서는 현재 문명 수준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도 구할 수 있으니 역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 그래, 남은 시간 동안 잠깐 길드 회관으로 가서 나뭇가지하고 쌈닭의 시체 하나를 자유 의뢰를 통해서 처분하자.”
남은 2시간 동안은 파티원들과 따로 움직일 수 있으니 이 기회에 파티원들 몰래 슬쩍 쌈닭의 시체 하나와 나뭇가지를 처리하고 4만 원을 수중에 넣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몰랐다.
그리고 그 돈을 통해서 갈아입을 옷을 사자. 4만 원이라면 옷 한 벌 정도는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공선자는 멍하니 살펴보던 에볼루션 시스템의 시스템 창들을 닫고서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니, 아니지. 나뭇가지는 밤에 팔자. 어젯밤에 길드 회관을 지키고 있던 아저씨한테 나뭇가지를 모아온다고 이야기했잖아?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나뭇가지는 밤에 길드의 아저씨한테 전달하는 걸로 하고…….’
애초에 나뭇가지를 모은 이유가 밤의 자신을 목격한 그 아저씨가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그것을 목격해줄 아저씨가 없는 상황에서 나뭇가지를 전달하면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대신에 아침에는 쌈닭을 팔기로 결정하는 공선자. 밤과 다르게 아침에는 공선자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 다짜고짜 자유 의뢰를 달성하겠다고 쌈닭의 시체를 들이밀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야 누군가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 누군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보가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예를 들자면 저 사람의 실력은 쌈닭을 상대하기 힘들 정도다, 라는 정보가 있어야지 그 사람이 쌈닭을 사냥해왔을 때 ‘어떻게 사냥한 거지?’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겠는가?
허나,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이 다짜고짜 쌈닭의 시체를 들이밀며 자유 의뢰를 달성하게 해달라고 한다면?
그럴 경우 행정 업무를 도와주는 사무원은 ‘아, 이 사람은 쌈닭 정도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실력자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 사람이 쌈닭을 사냥해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인 만큼 처음부터 그 사람에 대한 정보로 쌈닭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소리였다.
밤의 공선자가 만났던 길드의 간판 아저씨라는 양반은 공선자가 초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이 녀석은 쌈닭을 사냥하는 게 힘들다, 라는 정보를 인스톨해둔 상황이라는 소리. 그러니 혼자서 쌈닭을 처리해서 가져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침에 업무를 보는 사무원들은 공선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 그러니 공선자가 쌈닭을 사냥해간다고 해도 ‘쌈닭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다,’ 라고 생각할 뿐 아무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공선자가 스프라우트 등급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들은 쌈닭 정도는 여유롭게 잡을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공선자가 직접 어제 막 모험가가 되었다, 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은 그냥 일상처럼 처리해오던 대로 업무를 처리할 확률이 높은 것.
‘물론 그러려면 챌린저들을 전담하는 그 간판 아가씨를 피해야겠지만…….’
그 간판 아가씨는 공선자의 얼굴을 알고 있다. 50명의 챌린저 전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들에게 의뢰를 수주해줄 때 보여주었던 기억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다면 그 간판 아가씨를 피해서 다른 사무원에게 요청해 쌈닭의 시체를 처리해야 할 텐데…….
“일단 쌈닭의 시체를 어떻게 들고 갈지도 문제인데……. 사람들 앞에서 인벤토리에서 떠낼 수는 없잖아?”
마법이 존재하니 아공간이니 하는 현상도 있을 수 있었지만 그게 희귀한지, 매우 흔한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벤토리의 존재를 아무렇게나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일단 사람들이 안 보는 장소에서 쌈닭을 꺼내서 모험가 길드 회관까지 운반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쌈닭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막 질질 끌고 갈 수 있을 리도 없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사체도 상당히 무게가 나가지 않았나? 못해도 쌀가마니 이상의 무게는 나가는 것 같은데…….’
아무리 조류이기에 덩치에 비해 비교적 가볍다고는 해도 그래도 덩치가 있으니 상당한 무게일 수밖에 없었다.
들지 못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운반하기 위해서는 꽤나 고생할 터. 거기에 쌈닭의 사체는 피도 줄줄 흘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길드까지 운반하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공선자가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돈 벌기 진짜로 힘드네. 인벤토리만 밝힐 수 있다면 그냥 길드에 가서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럴 수도 없으니.’
그냥 민폐를 끼칠 것을 각오하고 질질 끌고 가야 할까? 하고 고민하던 공선자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존재했다.
‘수레……, 같은 걸 만들어서 운반하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사기에는 당장 내가 돈이 없고.’
그러니 수레를 만들어서 쌈닭의 사체를 운반한다, 라는 생각을 떠올린 공선자는 슬쩍 다시금 상점 시스템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스킬을 파는 분야를 확인하는 공선자. 거기에서 제작 계열 마스터리 스킬에 대해서 살펴보는 공선자.
상점 시스템에서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은 그 종류가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스킬을 찾는 것도 상당한 노고가 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자신의 원하는 카테고리를 세분화하는 식으로 상점 시스템의 스킬들을 검색하기를 여러 번 마침내 5번은 카테고리를 세분화하는 작업을 거친 뒤에야 제작 계열 마스터리 스킬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마스터리 스킬이란 보정의 성질을 중심으로 이용하여 특정 분야의 전체적인 숙련도를 보조해주는 계열의 스킬들의 통칭.’
즉, 제작 계열 마스터리 스킬들의 경우에는 제작이라는 분야의 전체적인 숙련도를 스킬의 성질 중 하나인 보정의 성질을 중심으로 이용하여 보조해주는 계열의 스킬들을 의미했다.
물론 제작이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 종류는 다양했다. 요리, 드로윙, 무기제작, 방어구제작, 도구제작 등등.
거기에 이건 어디까지나 노멀 등급의 마스터리 스킬들에 해당하는 사항이고 레어, 유니크, 에픽의 희귀도로 올라가면 스킬이 더욱 세분화되거나 아니면 역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스킬이 보다 많은 ‘분야’를 커버해주는 경우도 존재했다.
통합되는 것뿐 아니라 세분화되기도 하니 마스터리 스킬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
심지어는 찾아보니 화약 작성이나 용접과 같은 현대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계열의 제작 계열 마스터리 스킬도 존재할 정도.
단, 문명 수준이 높은 기술들과 밀접하면 밀접할수록 이것저것 사전에 요구되는 요구 스킬의 종류가 다양한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화약 작성 같은 경우에는 화학 기초지식, 인화성 물질 작성 마스터리, 폭발물 작성 마스터리 등등과 같은 스킬들을 요구하는 것.
이 중에서 인화성 물질 작성 마스터리와 폭발물 작성 마스터리는 레어급의 제작 계열 마스터리 스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화학기초지식에 대해서는 당장은 알 수 없는 것. 알아내려면 작정하고 상점 시스템의 스킬 창을 뒤져야 할 터.
‘화약……. 이건 총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현재의 문명 수준으로는 단순한 과학 기술만 동원하면 불가능에 가까울 텐데.’
공선자에게는 화약, 특히 총에 장약에 대한 박식한 지식이 존재했다. 에이전트로 활약할 당시 공선자의 주 무기가 총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이야기.
아니, 당연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총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총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허나, 공선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죽기 전에 세계를 적으로 돌린 공선자가 제대로 무기의 보급이 가능했을 것 같은가?
그럴 리가. 어떻게든 보급을 하려고 한다면 그 보급처를 시점으로 공선자의 행적을 추적하여 추격자가 따라붙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덕분에 정작 보급한 무기를 추적자를 상대하느라 전부 소모하는 경우도 일상다반사였던 것.
그렇기에 공선자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기회가 된다면 스스로 무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해두었던 것.
아니,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었다. 적을 쓰러트리고 노획한 무기를 최상의 상태로 정비하고 사용하기 위해서.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 사용할 수 없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사용하기 위해서 공선자는 총기에 대해서는 석사 학위를 받아도 될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는 것.
‘덕분에 어느 정도 시설하고 최저한의 요건만 갖춰지면 총기를 제작하고 탄약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기는 했는데…….’
예를 들어 과거 공선자는 한 신약을 생성하는 공장 내부에 수많은 특수 병력에 포위당해 갇힌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거의 이주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홀로 수백 단위의 전력을 상대해야 했는데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 전투 과정에서 공선자는 며칠도 지나지 않아 가지고 있던 탄약을 전부 소모해야 했던 것.
덕분에 적을 오로지 단검에 의한 암살만으로 쓰러트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몇 번 암살에 성공하면 적의 무기를 노획하여 사용할 수 있었으니 자신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Z바이러스의 배양. 그게 완료되는 대로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려고 했으니깐 말이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