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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66/194)



〈 166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러나 공선자와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그들은 공선자가 자신들의 무기를 노획하여 사용하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Z바이러스의 배양을 막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인지 공선자가 자신들의 무기를 이용할 수 없도록 자신들의 무기는 물론 탄창과 같은 장비에 기폭장치를 설치하여 그가 무기를 노획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

그 결과 공선자는 전투를 벌일 때마다 탄약을 노획하지 못해 그저 소모만 해야 한다는 상황에 처했었고, 덕분에 최후에는 총 없이 그저 암살만으로 적을 쓰러트려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린 것이었다.

아니, 사실 단순히 포위망을 뚫거나 버티는 것이었다면 상관이 없었을 것이었다. 공선자만큼 암살에 능한 에이전트를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

허나, 문제는 공선자가 해야 하는 일이 바이러스의 배양 시설을 지키는 ‘수성전’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적의 진입을 막기 위한 화력을 필수. 때문에 탄약이 전부 고갈되어 갈 때는 여러 가지로 끝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신약 제조 공장인 만큼 이것저것 설비도 다양하게 있었고, 화학 재료들도 넘쳐났던 덕분에 어떻게든 탄약을 스스로 제조해서 버틸 수 있었지.’

정말이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피가 토해질 것 같은 심정이었다. 전투가 끝나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자신이 사용해야 하는 탄약을 미친 듯이 양산해내는 시간.

그야말로 당시 이주일은 공선자, 정확히는 반신 인격에게 지옥이나 다름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허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보급이 없이 단지 화학적인 재료만 주어진 상황에서도 공선자는 장약을 제조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장약을 제조한 뒤에 탄환으로 만드는 일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위험한 화학 용품을 보관하기 위한 용기의 제조에 사용되는 설비가 있어서 그걸 이용해 탄두를 만들고 회수해두었던 탄피에 결합해서 탄약을 제조할 수 있었지.’

이것이 공선자가 설비와 기초 재료만 충분하다면 총기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의 의미였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설비와 기초 재료가 충분할 경우’라는 부분이었다.

여기서 설비란 못해도 21세기 지구에서 근대로 분류되는 수준의 설비를 지닌 공방을 의미하며, 기초 재료는 총기의 프레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강도를 지닌 물질, 장약, 요컨대 무연화약, 혹은 최소한 흑색화약을 제조할 수 있게 해주는 기초 재료를 의미하는 것.

그리고 이런 설비와 기초 재료는 당연하게도 근대는커녕 중세 수준의 과학 기술을 지니고 있는 중세 문명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었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당장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할 경우 자원과 돈만 충분하다면 5년 정도의 시간을 소모하면 양산화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다른 건 몰라도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상황을 워낙 자주 경험했던 공선자였기에 총기에 대한 지식은 말했다시피 석사 수준으로 가지고 있었다.

다른 화학 지식과 물리 지식은 부족해도 총기와 관련된 지식들만큼은 빠삭하게 가지고 있는 것.

그렇기에 오로지 총에 관련된 지식만을 동원한다면 당장은 불가능해도 상당한 수준의 자금과 년 단위의 시간만 투자한다면 총기의 양산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허나, 그게 과연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인가? 적어도 기초 재료만 충분하다면 몰라도 기초 재료조차 존재하지 않는 문명.

그 기초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만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며 설령 기초 재료를 준비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 체계를 잡는다고 해도 그 체계를 감당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금이 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21세기 지구라면 고작해야 수백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를 과정을 중세 시대의 문명이라면 무려 수억 단위의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할 수도 있었다.

당장 상점 시스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문명의 수준에 따라서 고작 몇만 원에 구할 수 있는 와이어가 수십, 수백만 원까지 뛸 수도 있는 것.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총기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장약. 그중에서도 좀 더 난이도가 낮을지 모를 흑색 화약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질산칼륨과 황, 숯이라는 기초 재료가 요구되었다.

이 재료들은 황과 숯이라면 현재 공선자가 살고 있는 플라워 차원에서도 어렵지 않게 수급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허나 질산칼륨은 아니었다. 질산칼륨은 정제해내기 위해서는 못해도 근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것.

중세 시대의 기술력으로 질산칼륨은 어지간해서는 정제하기 어려운 물질인 것이었다. 천연에서 실빈이라는 암염을 캐내던가 해수에서 제염법으로 정제해내어 수용액으로 만든다.

그 수용액에 지구에서는 칠레 초석이라 불리는 질산나트륨을 첨가하여 복분해 과정을 거친 뒤 염화나트륨을 분리하고 냉각시키면 질산칼륨을 석출할 수 있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흑색 화약의 조합에 사용할 수 있는 질산칼륨을 정제할 수 있는 것.

과연 이 과정을 중세 시대의 기술력으로 재현하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장 냉각시켜야 한다는 부분을 생각해봐라. 현대에서야 냉동고를 이용하면 되었지만 중세에서는? 냉동고? 그딴 게 있을 것 같나?

애초에 중세에서는 ‘급속 냉동’이라는 현상을 재현할 기술이 없는 것. 그러니 하려고 한다면 추운 겨울에 염화나트륨을 분리한 수용액을 바깥에 놔두는 식으로 냉각할 수밖에 없는 것.

즉, 흑색 화약을 ‘언제든지’ 제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냉동 기술’부터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설령 이 과정들을 전부 달성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장약’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장약을 만들었으면 이제는 장약을 사용할 탄피와 탄두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컨대 이제는 구리를 가공할 기술력이 필요해진다는 이야기. 그렇게 탄두와 탄피를 만들어내면? 그다음은 당연히 총기의 본체를 만들 기술력이 요구되지 않겠는가?

특히 장약의 폭발을 견뎌야 하는 약실과 총열의 내구력이 매우 강력해야 하기까지 했다. 아니, 단순히 튼튼한 것을 넘어서 고온에 의한 잦은 수축과 팽창에도 견딜 수 있는 성질을 지녀야 했다.

과연 그런 금속을 제조하는 기술이 중세 시대에 있겠는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아예 제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공선자의 지식에는 총기 제작에 사용되는 금속 가공에 대한 지식도 들어 있으니 말이다. 허나, 그를 위해 필요한 기술력이 어느 수준인지 알겠는가?

……결국 그런 것이었다. 하나의 총기를 제작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기술력은 단순히 총기 제작 기술력만이 아니었다.

냉동 기술, 금속 가공 기술, 화학 용품 제조 기술 등등. 그야말로 각종 기술들이 산재되어 요구되는 것.

즉, 애초에 총기 제작 기술이란 각종 기술들을 베이스로 깔아 둘 수 있을 만큼의 문명 발달을 기반으로 쌓아올리는 기술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현대에 동원되는 모든 기술들이 그러했다. 마치 하나의 나무가 수많은 뿌리를 뻗는 것처럼, 하나의 기술을 성립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다른 기술들이, 그것도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처럼 생각되는 기술들이 그 전제 조건으로서 성립해야 하는 것.

그렇기에 총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에 해당하는 기술들을 먼저 ‘성립’시킬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라고 공선자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공선자는 그 뿌리에 해당하는 기술에 대한 지식을 상당 수준 소지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자금과 시간만 존재한다면 총기 제작 시설을 재현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을 터.

그러나 한계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서 앞서 언급된 냉동 기술. 이 냉동 기술도 총기 제작 기술처럼 몇몇의 기술들을 뿌리로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술들이 얼마나 발전했는가에 따라서 냉동 기술에 동원되는 ‘자금’의 수준, 즉, ‘가치’가 달라진다.

21세기 지구에서 냉동고 기능이 포함된 냉장고는 집에 하나씩은 존재하는 게 당연한 물건이었다.

허나, 그게 20세기로 간다면? 거슬러 올라가면 거슬러 올라갈수록 냉동고라는 기술력의 가치는 올라간다.

시간에 따라서 냉동고를 성립시키는 기술의 발전도가 발전했기에, 보다 쉽고 저렴하게 냉동고 기술을 재현할 기술들이 발견되었기에 그런 기술들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의 냉동고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제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중세 시대에서 과연 냉동고 기술을 재현하는데 얼마나 많은 자원이 소모되겠는가?

그 외의 기술들은? 금속 가공 기술이나 화학 용품 제조 기술들은 어떻겠는가? 그런 것이었다.

설령 기술을 ‘재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 재현한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자금’이 소모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들을 성립시키는 전반의 기술들의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존재했지만…….

‘나한테 그 정도 수준의 지식은 존재하지 않아.’

과학 문명이란 ‘인류가 다 함께 발전시키는 문명’이지 홀로 발전시키는 문명이 아니었다.

정말로 돌연변이에 가까운 천재가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며 당연하게도 공선자는 그 정도의 천재가 아니었다.

지금 그가 가진 지식도 어디까지나 ‘살아남아 복수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익혔기에 남아있는 지식들인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공선자의 지적 수준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어야지 간신히 저 정도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 박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는 소리.

‘결국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도 아무리 짧게 잡아도 5년 안에 간신히 총기 생산 라인을 만드는 게 한계라는 소리. 심지어 그마저도 유지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모해야 하니 생산성이 바닥이나 다름없는 수준.’

거기에 설령 그렇게 무리를 해서 총기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총기의 성능은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닐 것이었다.

중세 시대 기술력으로 재현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합의를 봐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이야기. 잘 해봐야 리볼버 수준의 권총을 만들어내는 수준?

허나, 총을 주력 무기로 사용하던 공선자에게는 그 정도도 감지덕지일 터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총알 한 발을 쏠 때마다 수만 원씩,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수백만 원씩 날아간다면 아무리 총기가 주력무기라고 해도 그걸 쓸 수 있겠는가? 돈이 넘쳐나 휴지 대신에 쓸 정도의 부자가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리고 공선자는 당연하게도 그 정도 부자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공선자는 일단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곳 중세 시대에서는 ‘총기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허나, 에볼루션 시스템의 상점 시스템에 존재하는 제작 계열 마스터리 스킬들을 확인하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지금 내가 떠올린 모든 과정을 스킬로 대처할 수 있다면?’

……총기를 ‘혼자서’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냉동 기술을 빙결 관련 스킬로 대체한다.

화약 작성 마스터리 스킬을 배운다면 보다 손쉬운 과정을 거쳐서 장약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에 총기의 본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무기제작 마스터리 스킬로 대처한다면? ……제작 계열 마스터리 스킬들을 확인하는 순간 공선자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던 것.

‘본래라면 현대 수준의 문명이 쌓아온 기술이 필요한 과정을 스킬을 통해서 생략할 수 있다면……, 근본이 되는 재료들만 수급하여 생산 라인을 구축하지 않아도 나 혼자서 사용할 수준의 총기와 탄약을 제조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거기에 이쪽 세계에는 과학 대신 ‘마법’이라는 이능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마법이 발전함에 따라서 본래 중세 시대의 과학 기술로는 불가능할 터인 ‘샤워기’조차 개발하여 숙박시설에서도 도입해낸 상태가 아닌가?

스킬과 마법. 이 요소들에 공선자의 지식을 십분 활용하면 대량 생산은 무리라고 해도 자기가 쓸 만큼의 탄환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공선자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단검을 사용할 줄 알기는 하지만 역시 내가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건 총이야! 그런 총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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