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들은 거의 전원이 같은 섹션에 소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섹션 내에서도 파티가 나누어졌기에 그렇게 나누어진 파티에 맞춰 각각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여관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그래? 난 솔직히 두 사람처럼 따라야 한다, 따르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거나 하지는 않더라. 굳이 이야기하자면 중립?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아마도 나는 너랑은 다르게 이게 보통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응, 원래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거지. 때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느낌이고.”
“나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상당히 나은 상태라는 느낌일까? 그러니 섹션장은 이대로만 우리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고.”
“아니, 그럼 지금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라는 소리야?”
“그건 아니지 않을까? 아마도 잃어버린 기억에 관계해서 각자 느끼는 게 다른 것 같으니깐 말이야. 굳이 이야기하자면 과거에 평민이었는지, 귀족이었는지, 뭐, 그런 차이가 아닌 걸까?”
상당히 짙은 피로가 느껴지는 얼굴로 식사를 입으로 옮기며 자신들이 속하게 된 섹션을 화제로 삼아서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챌린저들.
몇몇은 오늘 처음으로 경험한 몬스터들의 살기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몸서리치며 그것을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들의 경우에는 내일부터, 혹은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난 뒤에 또다시 그 지독한 살기를 뿌리는 괴물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진절머리를 치며 창백한 안색으로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챌린저들을 목숨을 로비 바깥에서 빼꼼 로비로 고개를 내밀어 확인한 공선자는 아직까지 자신의 파티원들이 로비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긴, 아직 약속 시각까지 조금 더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공선자가 가장 먼저 로비에 도착했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늦어서 공선자가 방에 없을 때 파티원들이 방으로 그를 데리러 오는 상황이 펼쳐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터.
그렇게 생각한 공선자는 일단 로비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역시나 몸에 배인 버릇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을 포함에 이후에 도착한 파티원들도 앉을 만한 테이블을 물색하면서도 사소한 정보라도 수집하기 위해서 다른 챌린저들의 대화를 귀를 쫑긋 세우며 엿듣는 것이었다.
“즉, 과거에 여유롭게 살던 녀석들은 무의식중에서 지금 상황에 되게 빡빡하게 느껴지는 거고 반대인 녀석들은 여유롭게 느껴지는 거지.”
“비슷하게 산 녀석들은 그러려니 하는 느낌이고 말이지? 좋아. 알았어. 요컨대 너희들 앞에서는 아무리 섹션장의 욕을 한다고 해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는 이야기군.”
“오히려 불편하다는 느낌이지. 거기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말도 있잖아? 케엑! 보라고! 채팅으로 바로 호출이 떨어졌잖아!”
“뭐야? 왜 날 봐? 이후의 로테이션이 우리 순서여서 어차피 호출이 떨어질 예정이었잖아? 마치 내 탓이라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렇게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 이후 파티원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다른 챌린저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공선자는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정세라는 사람은 그다지 인망이 넘치는 타입은 아닌 모양이야. 굳이 이야기하자면 무력으로 사람을 이끄는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리더라는 느낌보다는 무장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무장도 경우에 따라서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었다.
전쟁 시와 같이 강압적으로라도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그런 순간이라면 말이다. 허나, 평화로운 시기에서는 결코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는 재목인 것.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며 현재 챌린저들은 전시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 억지로라도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리더들이 필요한 상황에 더 가깝다는 점일까?
그런 의미에서 고정세와 같은 타입의 리더가 당장 챌린저들의 입장에서는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으리라.
문제가 있다면 그 나쁘지 않은 리더가 이끄는 섹션에서 공선자를 비롯한 파티원들이 제외당해 버렸다는 것이었지만!
뭐, 공선자의 입장에서는 애초에 저렇게 사람들이 몰려 있는 단체에 참여할 생각도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외로움에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웠던 공선자라고 해도 허락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기에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와 합의를 볼 수 있었던 것이지 몇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소속된 단체에 들어간다?
개인으로서 움직이는 것에 특화된 밤의 공선자가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특기 같은 것을 따지기 이전의 이야기였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도 사람을 결코 신뢰하지 못하는 공선자에게 인연을 맺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것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소수와의 사람과 인연을 맺을 때는 그만큼 지속적으로 의심을 품어야 하는, 요컨대 행동거지에 주의해야 하는 순간이 비교적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숫자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접촉하는 시간이 적어 혼자 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이니 말이다.
혼자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무의식에 깊게 각인되어 자신도 모르게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게 되는 공선자라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행할 때 자체는 제대로 의식조차 못 하기에 괜찮을지 몰랐다. 허나, 행한 뒤에는 언제나 약간의 양심의 가책과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것.
무엇보다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야 공선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약탈해간 존재가 다름 아닌 사람이었으니까 무서워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늘 언제나 사람에게 미약한 두려움을 품게 되는 것. 그런 만큼 사람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그 대신에 외로움을 느끼게 되기에 스트레스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상태가 현재의 공선자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이야기.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최대한 합의점을 찾아내 다수가 아닌 소수의 인간과 함께 활동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 아닌가?
다수의 챌린저들이 속한 고정세의 섹션은 무리라고 해도 프로아들과 함께 파티로써 행동하는 것은 아직까지 견뎌낼 만은 했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선자는 자신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희망을 품는 것이었고 말이다.
‘……뭐, 당장은 그런 희망 이전에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처지지만 말이야. 밖은 조금 쌀쌀한 수준의 날씨인데 이게 여름 날씨인 건가.’
겨울이 왔을 때 제대로 숙박할 만한 거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얼어 죽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위기감을 느끼며 공선자가 다시금 챌린저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파티원들이 로비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운이 좋은 건지 사망자는 없다는 모양이네. 고정세라는 지휘 쪽으로는 확실히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데 그게 이유인가? 챌린저가 되기 전에는 뭐하는 사람이었을까?’
과거 사람들과 어울리지는 못했어도 사람의 약점을 찾는 것에는 도가 텄던 공선자였다. 요컨대 사람을 관찰하여 그 사람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만큼은 남다르다는 이야기.
막 챌린저가 되어 이쪽 세계에서 깨어났을 때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일단 고정세의 인상에 대한 기억은 조금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그 기억에 남아있는 인상을 토대로 조심스럽게 그가 군 관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예측을 하는 것.
그의 행동거지도 그렇지만 그가 군의 간부였다면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지휘 능력이 남다른 이유 역시 설명할 수 있을 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죽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도 과연 그럴까? 당장 고그씨하고 밀리언씨도 몇 번 정도 죽을 뻔했고.’
그리고 그것은 고정세의 섹션에 속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터. 그 사실을 상기하면 공선자의 표정을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챌린저들은 몰라도 공선자만큼은 기억한테 멋대로 죽었던 자신들을 살려내고 이용하는 천사들의 얼굴이.
뭐, 공선자의 경우에는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천사들이, 정확히는 그 뒤에 있는 위대한 존재가 챌린저들을 이용해 무엇인가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멋대로 살려낸 주제에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다. 심지어 이 플라워 차원은 멸망이 예정된 세계.
……도대체 이런 세계에 챌린저들을 떨어트려 놔서 위대한 존재라는 존재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거기에 새삼스럽게 죽음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문뜩 자신의 한쪽 팔에 시선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나, 죽기 전에 분명히 팔 한 짝이 떨어져 나갔었지?’
사지결손. 부상들 중에서도 상당히 심각한 쪽에 속하는 부상.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후유증이 남는다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손이 한쪽밖에 남지 않으면 전투 능력에 상당히 치명적으로 작용할 터.
죽기 전에야 어차피 살 생각도 없었으니 떨어져 나가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되살아난 지금에 와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었다. 설령 팔을 희생해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뒤가 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팔을 잃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이 급할 터인데, 과연 그렇게 급감한 전투력으로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비를 해야 할까?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해도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죽기 전에 떨어져 나갔던 팔이 죽고 되살아나니까 붙어 있는 것처럼 사지를 잃어버려도 회복할 수 있는 계열의 스킬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까?’
허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당장 반신 인격만 해도 죽기 전에 한쪽 팔을 희생하고 싶어서 희생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 물론 어차피 죽을 테니까 굳이 팔을 지키려고 연연하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팔을 지키면 크나큰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가장 원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새롭게 팔이 생겼고 그 팔을 지키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팔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과연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미안하지만 공선자는 그렇게 낙천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인생을 살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어찌 된 것이 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도 그보다 더 최악의 상황에 처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 공선자가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이라는 녀석이었던 것.
그런 의미에서 사지가 결손 되어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구비해두는 것은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공선자가 살던 21세기 지구에서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기술이 사지 회복이라는 기술이었지만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이야기고, 당장 공선자가 활동하던 어둠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불가능하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잘렸던 팔을 붙일 정도의 의료 기술은 확보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잘려나간 팔이 완전히 소실되면 재생시키는 건 무리였지만 그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팔을 이식하는 기술’은 존재했기에 아예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21세기의 의료 기술로도 가능했던 일을 과연 물리법칙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만드는 ‘권능’이, 그리고 그 권능의 편린인 모조권능(스킬)이 해내지 못하겠는가?
당장 공선자가 죽었다가 살아났고 덤으로 팔도 멀쩡한 것만 봐도 사지결손에 의한 후유증을 ‘이능’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그러니 나중에 SP에 여유가 생기면 사지결손을 회복시켜주는 스킬을 습득해두기로 하는 공선자였다.
무엇보다 사지결손도 결국에는 부상. 즉, 부상을 회복시켜주는 스킬을 얻으면 사지결손 외에도 장기결손이나 그 외의 부상에도 대응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아까 전까지만 해도 로비에서 부상에 끙끙거리면 챌린저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모험가라는 직업은 부상을 달고 살아야 하는 직업인만큼 자가 회복 계열의 스킬을 배워둔다고 해도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
“……뭐야? 네놈밖에 없는 거야? 칫. 아주 빠졌구먼. 약속 시간 10분 전에는 나와 있는 게 상식이라는 거 모르는 거냐? 이 자식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