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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75/194)



〈 17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의 따지고 드는 듯한 말투는 그렇다 쳐도 그가 너무 정확하게 핵심을 찌른 게 바로 그 이유였다.

일단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기에 모인 전원 같았다. 어떻게든 앞날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를 통해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문제는 어떤 식으로 비전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점이었다. 일단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 비전을 계획을 세울 것인지가 영 마땅치 않은 것.

잘못된 계획은 차라리 세우지 않은 것보다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식으로 계획을 세워야 제대로 된 계획이라 확신을 가질 수 없으니 누구도 먼저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괜히 잘못된 계획을 세워서 파티원들 전원을 끌어들이면 도대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겠는가?

자신의 앞날뿐만 아니라 함께 모험가로서 활동할 파티원들의 앞날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지금부터 제시할 계획인 만큼 고그조차 함부로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것.

계획이 잘못된다면 단순히 자신의 실수로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파티원들 전원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요컨대 지금 여기서 계획을 제시하는 이는 암묵적으로 ‘이 계획이 실패하면 책임을 내가 지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

“……으으! 뭐야! 다들 하나같이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꾹 입을 다물고 있고! 좋아, 이렇게 되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겠어!”

그런 이유로 몇 분 정도 공선자들은 그저 깨작깨작 저녁 식사를 먹으며 조용히 서로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는데 그 침묵을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인지 프로아가 나서는 것이었다.

그에 마치 누군가가 폭탄을 떠맡아주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가장 먼저 나선 프로아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파티원들.

그들의 시선에는 프로아가 어떤 계획을 꺼낼지를 기대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그럼 책임은 네가 짊어지는 거다?’ 라는 의지가 담겨 있었는데 그런 그들의 시선을 꿋꿋하게 받아내는 프로아였다.

즉, 요컨대 암묵적으로 ‘그래! 이 계획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짊어지면 되잖아!’ 라고 대답을 돌려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

그렇게 프로아가 무려 5명의 목숨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중대사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자 그제야 파티원들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약간이지만 약해진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흥, 어디 한 번 얼마나 대단한 계획인지 들어보도록 하자고. 일단 우리는 지금 모험가로서 토벌형 귀속 의뢰로 쌈닭을 이틀 안에 10마리 사냥해야 하는 처지다. 여기에 사이드 스트림인지 하는 걸로 아무리 길게 잡아도 일주일 안에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귀속 의뢰를 하나 달성해야 하지.”

이런 상황에서 어떤 계획을 세워 자신들의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 한번 말해보라는 어조로 고그가 말을 꺼내자 프로아가 콧방귀를 한 번 뀌더니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사이드 스트림은 몰라도 토벌형 귀속 의뢰를 지금의 우리로 달성하는 건 무리인 게 당연하잖아? 이미 알고 있고 돌아오면서도 다들 이해한 이야기를 뭘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고 있는 거야?”

너무나도 당당하게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프로아의 태도에 고그가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그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서 좀 더 기동찬 계획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야?!”

당혹스러워하며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고그가 따지고 들었지만 프로아는 결코 고그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로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아니,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거잖아? 내가 무슨 세기의 대천재도 아니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그런 발상의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어, 그러니까……, 따, 딱히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그걸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요?”

당당하게, 그것도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며 이야기하는 자신의 옆에 앉은 프로아의 행동에 공선자가 조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

그러나 그런 공선자와 다르게 의외로 밀리언은 그런 프로아의 단언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아니,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건 당당해해도 될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괜히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그, 그렇기는 하지만…….”

“으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꿀릴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밀리언이 그런 식으로 칭찬해주니까 뭔가 아닌 것 같아.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졌어.”

밀리언의 발언에 공선자는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프로아가 그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양손을 자신의 얼굴을 가리자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라는 깨달음은 얻고는 남몰래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저기, 그래서? 쿠루미들은 결국 어떻게 해야 하는 거임? 일단 모험가 의뢰의 실패는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사항인 거임?”

“아, 큼큼! 그럼 다시 이야기해 볼까! 쿠루미가 물은 대로, 모험가 의뢰의 실패는 이미 우리들로써는 어쩔 수 없는 확정사항이야. 오늘 쌈닭을 사냥해본 결과 당장 우리들로는 아무리 많이 사냥한다고 해도 당장은 하루에 한 마리도 힘들잖아?”

프로아의 물음에 서너 마리도 문제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인 고그였지만 오늘 경험한 것이 있었기에 도저히 허세를 부릴 수가 없었다.

허세를 부리기에는 고작해야 덩치 큰 닭, 잘 쳐줘도 타조 수준이겠거니 했던 쌈닭과의 전투가 너무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있었기 때문.

약간 무리를 한다면 하루에 2~3마리 정도는 샤낭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부상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진짜로 목숨을 걸고 하려고 한다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루에 5마리……, 응, 5마리 정도는 어떻게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해. 거기에 당장 오늘은 더 이상 사냥을 못하잖아?”

그러니 남은 시간은 내일과 내일모레의 오전 정도였다. 의뢰를 받고 48시간 안에 실패든 달성이든 보고를 하러 가야 하니 결국 내일과 내일모레 오전 안에 쌈닭 10마리를 사냥해야 한다는 이야기.

오늘은 아무리 그래도 무리였다. 당장 몬스터와의 첫 번째 전투였기 때문에 신체의 피로도 전부 풀리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특히 심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몬스터의 살기의 영향으로 제대로 밤을 잘 수가 없어 내일까지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생각해둬야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내일이랑 내일모레에 최소 5마리씩은 사냥해야 한다는 건데 말했다시피 목숨을 걸면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아무리 우리 사정이 급하다고 해도 꼭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이 의뢰에 도전할 이유는 없잖아?”

그 말과 함께 인벤토리에서 자신들이 받았던 쌈닭의 토벌형 귀속 의뢰서를 꺼내는 프로아.

프로아의 그와 같은 이야기에 공선자와 고그를 포함한 네 명의 파티원들은 부정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다름 아닌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었다. 고작해야 자존심, 아니면 처음 수주받은 의뢰를 실패로 장식하고 싶지는 않아! 라는 등등의 감정 가지고 프로아의 이야기를 부정할 정도로 그들은 고집쟁이가 아닌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든 안전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라고…….”

단지, 고그가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고 늘었지만 ‘냐하하! 나는 무리! 다른 사람 알아봐!’ 라고 이야기하며 딱 잘라 버리는 프로아의 대꾸에 결국 포기하는 것.

혹시 몰라 다른 파티원들을 살펴봤지만 공선자는 시선을 피하며 식사를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고, 밀리언은 콧방귀를 뀌었으며, 쿠루미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라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 ‘이건 글렀군,’ 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떠올린 고그가 포기하는 것도 어떤 의미로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의뢰 실패는 결정사항으로 두고 그 뒤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군?”

“아니, 내가 쉬면서 생각해봤는데 굳이 따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의뢰를 실패한 페널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모험가 등급이 최하위인 우리가 굳이 신경 쓸 만큼은 아닌 것 같더라고. 생각해봐.”

그렇게 고그가 결국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야기의 중심을 그다음에 있을 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귀속 의뢰를 실패하면 페널티가 주어지니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건이라 생각했던 밀리언이었지만 프로아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의뢰 실패의 페널티는 자신의 등급에 맞는 의뢰를 달성하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프라우트 등급에는 수주받으면 실패하는 게 힘든 일들이 잔뜩 있었다.

다름 아닌 잡일 의뢰. 그 잡일 의뢰를 달성하면 잡일이라고 해도 스프라우트 등급인 만큼 스프라우트 등급의 모험가인 그들은 충분히 페널티를 지울 수 있는 것.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는 잡일을 하는 걸로 페널티를 지우자는 이야기가 되었는데 생각해보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더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프로아는 뭐가 되었던지 결국 우리는 쌈닭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며 그러면 당장의 귀속 의뢰는 불가능해도 쌈닭을 토벌하는 자유 의뢰는 달성할 수 있지 않으냐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굳이 모양 빠지게 잡일 의뢰 따위를 맡을 이유가 없지! 그냥 쌈닭 한 마리 잡아서 자유 의뢰를 해결하면 되잖아!”

프로아의 그 설명에 잡일을 해야 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고그가 횡재했다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험가라는 직업을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꽤나 널널한 직업인 것 같군.”

“응, 생각보다 페널티가 가벼움. 이왕이면 한 번 크게 한탕 하면 1년은 놀고먹을 수 있게 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음.”

직후, 밀리언과 쿠루미 역시 프로아의 설명이 일리가 있다는 얼굴로 모험가라는 신분을 유지하는 것 자체는 여유롭다는 얼굴로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공선자 만큼은 달랐다.

“……그만큼 위로 올라가는 게 어렵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의뢰 실패의 페널티를 그 등급에서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상위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경력을 쌓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으니까요.”

공선자가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올린 것을 입에 담자 프로아의 설명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던 파티원들이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확실히 그렇다고 수긍을 표하는 것이었다.

의뢰를 실패할 경우 어떤 등급의 의뢰를 실패한 것인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쌓아두었던 경력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의뢰를 달성한 경력이 깎여나간다.

다음 등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등급에 맞는 의뢰가 아닌, 자신이 올라가고 싶어하는 등급의 의뢰를 일정 개수 이상 달성해야 했다.

스프라우트에서 노비스 등급으로 올라가려면 여러 조건이 있었지만 그중에는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50개 이상 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 것.

모험가는 모험단이나 그 이상의 규모를 지닌 조직을 꾸리면 공동으로 의뢰를 수주받을 수 있고 그 규모에 따라서 한 단계에서 세 단계 위까지의 의뢰를 수주받아 달성할 수 있기에 존재하는 제한.

요컨대 등급을 올리고 싶으면 자신이 그 등급의 의뢰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조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렇게 등급을 올리려는 이들에게 의뢰 실패 페널티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사람들을 모아서 간신히 1단계 위의 의뢰를 달성했는데 혼자서 진행했던 동급의 의뢰에 실패했기에 간신히 달성한 1단계 위의 의뢰 경력이 사라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험가의 경력 제도는 등급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도 등급이 올라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제도인 것.

‘마치 떠나는 사람은 붙잡고 올라오는 사람은 최대한 쳐낸다는 느낌.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주기는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방식으로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건가.’

……부조리한 수준은 아니었다. 적어도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고 모험가들을 부려 먹고 있으니 말이다.

허나, 적어도 보다 괜찮은 대우를 받고 싶다면 그만큼 녹록지 않은 모험가 활동을 해야 하기도 하다는 이야기.

“뭐, 일단 당장 우리는 등급 상승이니 하는 건 신경 쓸 여유도 되지 않으니까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지금은 그것보다 향후 어떤 식으로 모험가 활동을 이어나갈 것인지를 결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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