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고그가 입에 담은 금액에 이번에는 프로아가 조금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한 달에 50만 원.
공선자가 살던 세계에서도 괜찮은 숙박 시설에서 지내려면 3일 머무는데 최소 6만 원을 필요했었다.
쉽게 말해서 하루 머무는데 2만 원. 한 달이면 60만 원은 나오는 것. 심지어 이 최소로 잡은 것도 어디까지나 정말로 ‘괜찮다’라는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수준이니 더 좋은 시설에서 지내려면 한 달에 100만 원은 넘는 숙박비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숙박 시설에서 한 달을 내내 지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차라리 월세를 구해서 살 것이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아의 이야기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한 달에 50만 원.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나쁘다, 라는 수준은 아니어도 그렇게까지 질이 좋은 여관을 잡기에도 조금 애매한 금액인 것.
그러나 프로아가 정말로 질색한 것은 숙박비로 책정된 금액 때문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아니, 숙박 시설은 어떻게 조금만 무리를 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기는 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개인 자금으로 20만 원밖에 책정하지 않은 건 조금 적지 않아?”
“맞음. 단순히 모험가 활동을 위해서 모으거나 개인적인 용도로만 쓰는 거라면 괜찮은 금액이라 생각함. 하지만 거기에 ‘옷’을 살 돈이라는 전제가 들어가면 무리임! 30만 원, 아니, 40만 원은 있어야 함!”
……옷, 즉, 의(衣)에 대한 내용 때문이었다. 그래, 여관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사실 50만 원 수준이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도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된 여관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프로아가 이야기한 빡빡하다는 것은 여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무려 의(衣)가 개인자금을 통해서 각자가 알아서 구매해야 하는 품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아니, 식주(食住)는 같은 방에 머물거나 함께 요리를 해 식사하는 것으로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기는 했다.
그에 비하여 의(衣)는 확실히 개인이 입을 옷이니 개인이 골라야 하기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자금을 통해서 의를 구하라는 밀리언의 이야기도 딱히 큰 문제인 것은 아닌 것.
여기서 문제는 의가 포함되는 개인자금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여자인 쿠루미와 프로아는 못해도 20만 원은 더 추가해야 제대로 된 옷을 사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아니, 고작 옷을 사는데 왜 그 정도의 돈이 필요한 건데? 내가 웬만해서는 이놈의 비웃기 위해서 동조해주고 싶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금 막 나가는 거 아니야?”
그리고 쿠루미와 프로아의 그와 같은 주장에 반발을 당한 금액을 꺼낸 당사자인 밀리언이 아닌, 어디 한 번 얼마나 잘난 금액을 입에 담나 보자! 하고 벼르고 있던 고그가 당황하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성 측과 함께 ‘하하! 결국 네놈이 이야기하는 것도 나랑 별반 다를 게 없잖아!’ 하고 밀리언을 비웃어주고 싶었다.
허나, 그러기에는 여성 측의 주장이 고그로써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 그렇기에 그가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따지자 쿠루미가 쯧쯧 혀를 차는 것이었다.
“칫!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함. 여자의 옷은 기본적으로 아무리 싸도 남성복보다 비싼 거임!”
“정확히는 싼 옷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자들보다 사야 할 게 많다고 해야 할까? 당장 소, 속옷 쪽만 해도 그…….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여러 가지로 있고.”
부끄러웠기에 차마 자세하게는 묘사를 하지 못하고 그저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프로아.
단지, 그로 인하여 남자 측은 그녀가 무엇을 묘사하고자 한 것인지 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유가 있으니 남자와는 다르게 여자는 음식과 주거지는 몰라도 옷에는 확실히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쿠루미와 프로아.
물론 남자인 밀리언과 고그, 특히 공선자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밀리언과 고그는 기억이 없기도 하니 이해하지 할 수도 있지만 공선자는 기억도 있는데 어째서냐고?
그야 말했다시피 공선자에게 있어서 여자라는 존재는 ‘죽이거나’ 결코 ‘관계될 일이 없거나’하는 두 종류의 존재였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여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만큼 공선자는 에이전트로서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여자의 옷 사정과 다를 바 없이 무지하다는 느낌인 것.
여하튼 그런 이유로 여자 측의 주장에도 남자 측은 전혀 공감도 안 가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설령 여성복이 남성복보다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해도 한 달에 20만 원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말이지. 부족하다 싶으면 몇 달 정도 모아서 사면되는 거 아닌가?”
“에엑?! 그, 그 말은 우리 보고 지금 같은 옷을 한 달 내내 입고 있으라는 이야기인 거야?!”
“아니, 그 정도 수준은 아니고 대충 두세 벌 정도 산 뒤에 그걸 며칠씩 돌려 입으면…….”
프로아가 밀리언의 발언에 ‘어떻게 인간이 그런 말을! 이 변태! 짐승! 인간도 아니야!’ 라는 의미가 담긴 시선을 보내오자 밀리언이라고 해도 당황해서 첨언을 붙였다.
프로아뿐 아니라 쿠루미까지 같은 시선을 보내오니 프로아 개인이 아니라 여자라는 이들 전체에게 어째 잘못된 이야기를 건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무리, 최소한 하루에 한 벌씩. 일주일마다 돌려 입을 수 있게 7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함.”
“이, 일주일에 일곱 벌이나 필요하다고? 아니, 무슨 옷을 매일매일 갈아입어?! 대충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4벌이면 되겠는데!”
프로아에 이어서 쿠루미가 주장한 발언에 고그가 기겁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을 보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
공선자 역시 내심 고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야 그는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할 때 임무 때문에 일주일은커녕 몇 달을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지냈으니 말이다.
특히 Z바이러스를 통해서 세계를 멸망시킬 계획을 실행했을 때에는 정부를 배신하는 그날부터 죽기 직전까지 계속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말이다.
매번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적들의 피와 살점으로 옷이 아무리 더러워져도 신경도 쓰지 않고 움직였으니 당연한 이야기.
그런 공선자인 만큼 이번만큼은 고그의 의견에 지극히 공감할 수 있었는데 그런 공선자와 고그를 바라보며 쿠루미와 프로아가 마치 컬쳐 쇼크를 경험한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직후 지극히 불결한 생물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차마 묻고 싶지 않지만 도저히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깊은 고민 끝에 묻는 것이었다.
“서, 설마……, 그, 소, 속옷도 일주일마다 갈아입는다는 건 아니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속옷은 매일매일 갈아입어야 하는 법이지. ……뭐, 가끔씩은 이틀마다 갈아입거나 하기는 하는데 말이야.”
매일매일 갈아입지 않을 때도 있다는 말에 두 소녀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
“……그거 안 갈아입는다고 죽거나 하지는 않잖아?”
……깊은 침묵을 지키며 시선을 피하는 공선자와 당당하게 이야기하고는 싶지만 조금 찔리는 게 있는 것인지 약간의 침묵 끝에 변명하듯이 입을 여는 고그의 행동에 현기증이 온 것 같은 행동을 취하는 프로아.
“마, 말도 안 돼. 설마 속옷을 매일 갈아입지 않는 사람이 존재했다니! 아니,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기는 한가?!”
“미친?! 아무리 그래도 인간 취급을 안 하는 건 아니지! 제대로 씻기는 씻으니까 문제없잖아?!”
“많거든! 불결해! 그런 건 짐승이나 다름없어! 반론을 받지 않겠어! 무조건 속옷은 7장 이상을 사서 매일매일 갈아입도록!”
“어……, 그래도 역시 여유가 없기도 하니까 서너 장만 사서 그때그때 빨아가면서 갈아입는 게…….”
프로아가 결코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외치는 포효에 공선자가 조금 겁을 먹으면서도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요컨대 매일매일 갈아입으면 되는 것이니 굳이 7장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주자. 그러나 프로아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습해서 빨래가 안 마르는 날이 있으면?! 보나마나 갈아입을 게 없다고 입고 있을 거잖아?! 그러니 무조건 7장 이상! 할 수 있으면 더 많이 사도록! 어차피 인벤토리가 있으니까 보관은 문제가 없잖아!”
……저렇게까지 강력하게 주장을 하니 차마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고그도 일단 위생에 관계가 된 문제인 만큼 강짜를 부리기도 힘들어하는 것 같고 말이다.
프로아뿐 아니라 쿠루미 역시 세균이 어쩌고, 바이러스가 어쩌고, 전염병이 어쩌고 하니 단순히 불결하다는 것을 넘어 생존에 관계될 수도 있는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흐음……. 일단 프로아와 쿠루미의 의견을 알겠다. 공감은 힘들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그 정도 금액을 옷을 사는 것에 책정하는 건 이해가 안 되는군? 매달 옷을 사 입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베이스가 되는 옷만 구매하면 일단 그 옷을 최소 몇 달은 빨아 입을 수 있으니 결국 옷은 잘해봐야 몇 달에 한두 벌씩 구매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를 담아서 밀리언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자 역시나 소녀들이 이 녀석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여성복의 수명은……, 그렇게 길지 않은 거임.”
“분명히 오래 입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종류에 따라서는 한 달마다 바꿔줘야 하지 않을까? 품질이 좋으면 반년은 쓸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사정으로 그렇게 좋은 물건을 구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쿠루미와 프로아의 주장에 결국 공선자와 밀리언, 고그는 ‘여자라는 건 정말로 귀찮은 생물이다!’ 라는 사실 하나로 납득해주기로 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지만! 옷은 물론 속옷은 한 번 장만하면 품질이고 나발이고 착용만 할 수 있으면 1년은 거뜬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남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정 그러면 일단 10만 원을 옷을 위한 금액으로 따로 빼두지. 개인자금까지 합쳐서 30만 원. 이 정도면 어떻게 납득이 가겠지?”
밀리언이 이 이상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기색을 보이며 이야기했다. 그야 그들은 비싼 옷을 사 입기 위해서 모험가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비싼 장비라면 몰라도 옷은 역시 그냥 적당한 거나 사 입으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
“으음……, 그 정도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는 해. 그렇지?”
“응, 조금 무리를 해서 아껴 입고 조심조심 빨면 될 거임. ……패션은 포기해야 할 것 같지만.”
“지금 우리 사정을 생각하면 그 부분은 어떻게든 합의를 봐야 하지 않을까?”
30만 원 전부를 옷을 사기 위해서 쓰지도 못했으니 쿠루미와 프로아가 만족한 표정이 아닌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러나 챌린저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이 정도 수준도 감지덕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프로아와 쿠루미였다.
“그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내가 생각한 금액은 의식주, 그리고 개인 쓸 돈까지 합쳐서 80만 원에 해당한다. 상당히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끄응. 나보다 20만 원 좀 적게 부른 것 가지고 생색내기는 얼마 차이도 안 나잖아?”
“그냥 먹는 것만 생각하고 금액을 책정했던 네 녀석과는 다르게 나는 나름대로 구체적이지 않나?”
“먹는 게 뭐 어때서?!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하잖아! 옷하고 자는 장소가 안 좋아도 당장 죽을 건 아니어도 음식은 굶으면 죽는다고!”
밀리언과 고그가 또다시 사소한 언쟁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툭하면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게 서로에게도 조금 지침으로 다가온 것인지 곧바로 서로 입을 다무는 것으로 중단하는 것이었다.
“……하아, 쓸데없는 말싸움을 그만하지 그보다 너희 세 사람은 각자 얼마 정도의 금액을 생각하고 있지?”
“으음……, 나도 밀리언하고 비슷한 수준일까? 조금이지만 여유를 생각한다면 고그랑 비슷하게 100만 원? 빡빡하게는 80만 원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처음 이야기했을 때와 같나. 그럼 거기 소녀는?”
“쿠루미는 못해도 150만 원으로 태평한 생활을 보내고 싶은 거임. ……뭐,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음.”
쿠루미의 희망 사항에 밀리언이 이 녀석도 참 마이페이스라는 의미를 담아 조금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뭐야? 그거 결국 생각해 놓은 게 없다는 거잖아?”
그리고 고그의 경우에는 그런 쿠루미의 발언에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는데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쿠루미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럼 남은 사람은 블러드, 너뿐이군. 너는 어느 정도의 금액을 생각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