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드디어 공선자의 차례가 왔다. 이 부분은 다른 파티원들이 순서대로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금액을 말하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기에 공선자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돌려줄 수 있었다.
“……그, 그게, 50만 원……, 정도일까요?”
그리고 돌아온 공선자가 생각하던 금액의 액수에 파티원들 전원이 경악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럴 것이 이들 중에서 가장 낮게 금액을 책정했던 밀리언과 비교해도 20만 원 이상의 금액을 아래로 책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작 그 정도 돈으로 어떻게 최저한의 수준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지? 라는 의문이 담긴 의심 어린 시선에 공선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그……, 숙박비는 줄이는 게 힘들지 몰라도 식비를 최대한 적게 먹으면 한 명 당 10만 원도 안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너 제정신이냐? 아니면 미친 거냐? 미친 거지? 굶어 죽을 생각이냐?!”
공선자의 이야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고그가 장난치는 것인지 따지고 들자 공선자가 황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으, 음식이라는 게 꼭 돈을 주고 사 먹을 필요는 없잖아요?! 자급자족이라고 야생에서 어떻게든 구해 먹거나 그, 오늘처럼 사냥한 몬스터들 중에서는 식용으로 쓸 수 있는 녀석들이 있다고 하니까 그 먹을 수 있는 부위를 해체한다거나 해서……!”
“으으음? 확실히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
이어지는 공선자의 설명에 파티원들 전원이, 특히 프로아가 솔깃해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식비를 줄이고 옷을 살 돈을 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확실히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음. ……단지, 쿠루미로써는 전혀 내키는 선택지는 아니지만 말임.”
그야 사면 편하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일부로 고생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게으름뱅이인 쿠루미의 본심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선자의 의견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공선자가 꺼낸 의견이 현실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
무엇보다 아무리 게으른 쿠루미라고 해도 게으름을 부릴 부분과 부리지 말아야 하는 부분 정도는 구분하는 것.
그녀가 보기에는 식비에 관해서는 당장 게으름을 부릴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빡빡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굶는 것도 각오해야 하는 그런 상황인 것.
그런 만큼 식비를 줄일 수 있는 공선자의 의견을 자신이 싫다고 무시하기에는 힘들었던 것이다.
“케엑!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겠다고? 그게 어디 말만큼 쉬운 줄 아냐? 식재료의 맛을 논하기 전에 먹을 수 있는지, 먹을 수 없는지를 구분하는 지식부터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 그리고 식재료를 구할 시간에 차라리 잡일 의뢰를 하나라도 더 해서 돈을 더 버는 게 낫겠다!”
단지, 고그는 공선자의 주장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던 것인지 반박을 해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답지 않게 반박이 꽤나 논리정연했다.
그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공선자가 펼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어필하자 밀리언 역시 드물게 그에게 공조했다.
“흠, 확실히, 고그 녀석의 주장 역시 틀린 건 아니다. 식재료를 자급자족하려고 한다고 해도 그에 걸맞은 지식이 필요하고, 또 시간과 노력 역시 소모해야 하는 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들 목표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겠군.”
그럴 것이 그들이 소목표를 정하는 이유는 결국 대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토대를 하나하나 마련하기 위해서인 것이었다.
허나, 먹기 위해서 식재료를 구하는 것에 시간을 쓴다면 결국 하나의 소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다른 소목표(레벨을 10달성하는 것)를 등한시하는 결과가 되어버릴 것이었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쌈닭을 사냥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할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레벨을 올리는 것을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자급자족하겠다고 식량을 구하는 것에 써버리면 본말전도가 아닌가?
최저한의 금액을 잡일 의뢰로 벌어서 최소한의 생활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결국은 그다음 소목표, 레벨 10을 달성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주는 소목표였으니 말이다.
소목표를 하나씩 달성해서 결국에는 대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런데 최초의 소목표를 이루고자 다른 소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미루는 것은 결국 최종적으로 대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을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거기에 확실히 고그가 지적한 또 다른 문제인 지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지식 없이 제대로 된 식품이 아닌 이상한 것을 먹었다가는 잘못하다가는 생명에 직결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생에서 구하는 것을 식재료로 쓰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지식’이 요구되는 것.
그리고 파티원들 중에서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그렇게 된다면 결국 지식을 쌓기 위해서도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데…….
“그, 그 부분에 대한 문제라면 제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근거를 제시하는 고그의 반론에 밀리언은 물론 처음에는 혹했던 프로아 역시 얼굴을 흐리면서 ‘역시 안 되나?’ 하고 포기하고 있을 때였다.
공선자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고그가 지적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다.
“으응? 해결한다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거임?”
여기에서 설마 공선자가 또다시 의외의 발언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인지 파티원들이 하나같이 의문을 표했고 그 의문을 쿠루미가 대표로 묻자 공선자가 대답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 시, 실은 제가 식용 음식을 구분하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 정도는 가지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기억을 잃기 전에 그쪽 관련으로 조금 관계가 있던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서…….”
정확히는 제대로 된 보급도 하기 힘든 상황을 너무 많이 겪었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익힐 수밖에 없었던 지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곳이 공선자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기에 해당 지식이 완전히 통용되지는 않는다는 점.
그렇다고 해도 몸에 해로운 물질을 구분해내는 것으로 먹을 경우 몸에 해로울지, 해롭지 않을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흐음? 그럼 지식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
“네, 네……. 물론 이곳이 제가 기억을 잃기 전에 살던 세계와 얼마나 다른 환경을 지니고 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 어느 정도 환경에 관련된 지식을 따로 익혀야 하기는 하겠지만…….”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짧게 걸린다는 이야기지?! 좋아, 그거면 충분해! 적어도 어떻게든 식비를 줄일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거잖아!”
설마하니 공선자가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던 프로아가 눈빛을 빛내며 희망에 찬 목소리를 내뱉자 고그가 끄응! 거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마지막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시간은? 식재료를 구할 지식은 어떻게든 해결한다고 치자고! 그렇다고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이잖아? 역시 그 시간에 레벨을 올리거나 잡일 의뢰나 하는 게 낫지 않겠냐?”
“그 부분은 그……,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모험가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짬이 나는 대로 조금씩 채취하는 걸로……. 다, 당장 오늘 잡은 쌈닭만 해도 사체에서 식용 부위는 꽤 채취할 수 있다는 것 같으니까요.”
당장은 지식이 없어서 해체를 할 수 없었고, 그럴 바에는 그냥 인벤토리에 넣어서 사체를 그대로 들고 모험가 길드에서 처리하는 게 처리 쉽기도 했다.
그렇기에 굳이 식용 부위를 채취할 생각은 없었지만 지식을 갖게 된다면 그냥 버리던 쌈닭의 시체에서 식용 부위만 채취하여 식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을 터.
“확실히 그런 식이라면 그렇게 많은 식재료를 구하지는 못해 완전히 식비를 쓰지 않는 것이라면 몰라도 어느 정도 식비를 절감시킬 수 있는 건 가능하겠군. 그걸 가만해서 대충 식비를 10만 원 정도 깎으면……, 블러드가 이야기한 50만 원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제야 밀리언이 공선자가 50만 원이라는 현실감 없는 수치를 입에 담은 이유가 이해가 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하지만 일단 그 건을 보류로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 게 내 의견인데 말이지.”
그에 그러면 식비를 깎는 것으로 결정? 이라고 이야기하려던 프로아였지만 밀리언이 곧바로 말을 이어서 다시금 부정적인 의견을 내뱉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물론 제대로 된 이유가 존재했다. 그 이유를 곧바로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며 설명하는 밀리언.
“이유는 몇 가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를 두 가지 꼽으라면 역시 ‘랜덤성’이 짙다는 것, 그리고 블러드 한 명의 ‘시간만’ 소모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아……. 확실히 그러네. 아무리 지식이 있고, 짬짬이 식재료를 취급하려고 한다고 해도 운이 나쁘면 제대로 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할 테니깐 말이야. 거기에 블러드만 고생하는 건 공평하지 않고.”
밀리언의 이어진 설명에 프로아가 김이 빠진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수긍할 수 있는 이유였는지 그가 어째서 부정적인 의견을 입에 담은 것인지 이해한다는 반응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랜덤성이 짙다. 요컨대 아무리 공선자의 지식과 실력이 좋아도 운이 나쁘면 식재료를 얻을 수 없을 확률도 아예 부정할 수 없다는 소리.
경우에 따라서는 공선자가 식재료를 채취하지 못해서 파티원들 전원이 쫄쫄 굶는 일도 발생할 수 있었다.
여기에 아무리 짬짬이 식재료를 채취한다고 해도 결국 지식이 있는 공선자 혼자서 움직이다 보니 결국 공선자 한 명의 시간은 필히 어느 정도 소모될 수밖에 없는 것.
아무리 그래도 공선자 한 명한테 그런 희생을 강요할 정도로 파티원들은 철면피를 깔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으윽?! 난 단지 식비를 줄이면 괜히 음식량이 줄어들 것 같아서 반대한 거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반발하지 말 걸 그랬나?’
단지 네 명 중 약 1명이 공선자 혼자서 고생해서 식재료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선자의 의견에 반발한 것을 약간 후회하는 철면피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공선자 역시 밀리언의 주장이 당장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순순히 물러나는 것이었다.
애초에 일단 머릿속에 떠올랐던 의견을 입에 담아봤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실제로 식재료를 구해달라고 한다면 제대로 구해줄 생각이기는 했다.
식재료를 구할 시간에 잡일 의뢰를 하는 게 낫다는 건 식재료만 잘 채취하면 잡일 의뢰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프로아들과 파티로 함께 행동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의 도움은 줄 생각이었던 것.
그러나 그들이 저렇게 반대를 하는데 굳이 고집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단, 그렇다고 식재료를 자체적으로 채취하는 일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어느 정도 몬스터에게 익숙해지지 않은 이상 지금의 파티원들이 온종일 몬스터 사냥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즉, 필연적으로 잡일 의뢰를 하는 시간 외에도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당분간은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
몬스터에게 익숙해져 정신적으로 덜 피로하게 된다고 해도 신체의 피로 역시 무시할 수는 없을 터이니 웬만해서는 활동할 수 있는 시간 전부를 모험가 활동에 투자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거기에 잡일 의뢰도 해야 하지 않는가? 공선자의 경우에는 밤의 공선자가 벌어두는 자금이 있으니 이걸로 공동 자금 쪽을 대체하여 잡일 의뢰를 하지 않고 그 시간에 계획해두었던 제작 계열 스킬의 습득을 노려볼 생각이었다.
물론 이것도 레벨 10을 달성해야지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밤의 공선자로서 활동할 때를 생각하면 파티원들보다 훨씬 빠르게 레벨 10을 달성할 터.
그렇다면 파티원들이 레벨 10을 달성하기 전에 먼저 제작 계열의 직업을 얻어 레벨을 올린 뒤 파티원들이 레벨 10을 달성해 첫 번째 직업을 얻을 때 두 번째나 세 번째 직업을 얻어도 문제없지 않겠는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공선자가 레벨 10을 달성한 뒤의 이야기고, 그전에는 직업을 습득하지 못해 직업 제한이 걸려 있는 스킬을 배울 수가 없어 무리였다.
아니, 직업 제한이 걸려 있지 않다고 해도 직업을 얻기 전에는 스킬 포인트를 거의 습득할 수 없으니 무리였다.
그러니 결국 직업을 얻기 전에는 파티원들이 잡일 의뢰나 휴식을 취하는 동안 공선자 자신이 할 일이 필요하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