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프로아가 당장 자신들이 가진 능력, 그중에서도 에볼루션 시스템을 통해서 좀 더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의뢰 항목을 꺼내자 고그와 쿠루미가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것처럼 화색을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운반 계열의 잡일 의뢰라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 밀리언 역시 동조하는 것 같았고 말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단 한 명, 여태까지 최대한 잠자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공선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리는 것이었다.
“어……, 저기……. 화, 확실히 운반 계열의 의뢰는 당장 인벤토리가 있는 저희들이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의뢰이기는 한데, 인벤토리라는 힘을 그렇게 함부로 챌린저가 아닌 타인에게 보여주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 혹시 사람들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사용한다든가? 그, 그럼 제가 괜한 오지랖을…….”
그리고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을 꺼냈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어조로 사과를 하는 것.
그러나 공선자의 그런 발언에 파티원들은 그가 어째서 그런 발언을 꺼낸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어, 그러니까 왜 인벤토리 시스템을 챌린저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위험하다는 거야?”
“에? 그거야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허공에서 물건을 넣거나 꺼내는 모습을 보이면 위험한 게……?”
당연히 인벤토리의 힘을 타인에게 보이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공선자는 오히려 프로아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문을 해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생각을 꾸밈없이 입에 담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티원들은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면 위험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
그에 공선자는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과 다르게 이들은 지식은 있을지언정 기억이 없었다.
즉, 요컨대 ‘경험’이 없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자신들의 지식을 통해서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은 ‘이능’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 챌린저들이 대화를 몇 번 정도 엿들어본 공선자는 챌린저들 사이에서도 상식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차이가 나는 상식에 중에서는 ‘이능’에 해당하는 ‘마법’과 ‘무술’, 그리고 당사자인 공선자 역시 알고 있는 ‘초능력(권능)’에 관한 상식 역시 포함되어 있는 것.
즉, 요컨대 챌린저들 중에서는 플라워 차원에서 마법과 무술이 당연한 것처럼 마법과 무술이라는 이능이 당연하다는 ‘상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 역시 있다는 이야기.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현상도 ‘마법’으로 퉁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설령 이능에 관해서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공상’이라는 상식을 가진 이라고 해도 이미 자신이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과학적인 공상의 산물’을 가지고 있는 상태.
거기에 그들 살아갈 플라워라는 차원이 ‘마법’과 ‘무술’이라는 이능이 당연히 존재하는 게 상식인 세계인만큼 ‘자신의 상식을 고집’할 수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비상식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법과 무술과 같은 이능이 태연하게 존재한다는 비상식을.
그리고 그 결과, 원래 가지고 있던 상식이라는 벽이 얇아진다. 본래라면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잖아?’ 라는 인식이 ‘마법이랑 무술이라는 이능도 있는데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게 있을 수도 있지?’ 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
심지어 이들은 말했다시피 ‘기억’이, 즉, ‘경험’이 없었다. 그렇기에 경험이 존재했다면 ‘비상식’이기에 마법과 무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이들조차도 별 저항 없이 이능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그저 상식으로 즉,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과 ‘경험’을 통해서 체감하는 것을 그만큼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과학자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마법과 같은 이능이 어째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인지 실제로 증명을 해낸 ‘경험’이 있는 과학자와 그저 어른에게 ‘마법은 있을 수 없단다.’ 라고 이야기만 전해 들은 아이가 마법이라는 이능을 마주했을 때 똑같은 체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부조리함을 느끼며 결코 마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아이들의 경우에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라거나, ‘어른들이 잘못 알고 있었구나!’ 라거나, 혹은 ‘어른들이 거짓말을 했구나!’ 라는 식으로 보다 쉽게 마법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챌린저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마법이나 무술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마법과 무술이 비상식이라는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이 ‘지식’으로만 존재했기에 제대로 ‘실감’을 하지 못해 금세 마법과 무술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마법과 무술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세계이기에 그들은 한 가지 거대한 착각을 해버린 것이었다.
마법과 무술이라는 이능이 있으니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이능 정도야 흔하지는 않아도 드물지도 않을 것이다!’ 라는 착각을.
……아니, 착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공선자 역시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를 당장은 적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러나 ‘착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인벤토리라는 이능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을 ‘위험성이 지극히 높은 행위’라는 공선자의 인식.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경험을 잃지 않는 것으로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실제로 체감’을 해본 공선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위기의식’인 것.
그런 위기의식을 기억을 잃은 챌린저들에게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멍청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프로아의 반문을 통해서 공선자는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호, 혹시나 해서 묻겠습니다만, 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벤토리 기능을 사용하신 적은 없죠?”
“네 녀석도 장비 셋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그건 인벤토리 시스템과 연동해서 인벤토리 내에서 지정된 장비 셋트를 순식간에 꺼낼 수 있는 시스템, 즉,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이능일 텐데?”
공선자도 파티원들과 같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사용한 적이 있으면서 뭘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밀리언의 핀잔에 공선자가 사색으로 그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이며 반박하는 것이었다.
“그, 그거야 이 여관에 머무는 이들은 거의 전부가 저와, 저희와 같은 챌린저들이었으니 그런 거예요! 챌린저가 아닌 사람들 앞에서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고요!”
공선자가 약간 목소리를 높이며 꺼내 든 반론에도 불구하고 밀리언을 비롯해 고그와 쿠루미, 프로아마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어째서 공선자가 저렇게 열을 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기, 그런 적은 없지만 그러려고 했던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쌈닭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굳이 장비를 입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길 한복판에서 장비 셋 기능으로 경갑옷의 착용을 해제하려고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의 질문에는 착실하게 대답을 돌려주는 프로아. 불행 중 다행히도 ‘하려고 했을 뿐’으로 진짜로 행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공선자의 입장에서는 시도하려고 했다는 사실 자체고 그야말로 기겁할 노릇의 이야기인 것.
“어……? 그, 그건 즉, 여관 밖의 사, 사람들 앞에서 갑옷을 장비 셋을 통해서 넣거나 꺼내려고 하셨던 거예요?!”
“응, 왜 그렇게 놀라? 나 무슨 실수라도 한 거야?”
프로아가 정말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공선자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알 수가 없어 그저 어버버 거리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딱히 밖에서 장비를 착용하거나 해제한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냐? 옷의 착용을 해제해서 홀딱 벗는 것도 아니고.”
“그,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프로아에 이어서 왜 그렇게 오버를 떠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어투의 고그의 핀잔에 공선자는 자신과 다르게 위기의식이 없는 파티원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자신의 머리를 붙잡을 뿐이었다.
그래도 당장 일이 안 터진 지금이라면 수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그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최대한 머리를 굴려 설명을 짜내는 것.
“요, 요컨대 장비 셋 시스템은 에볼루션 시스템의 편린이잖아요? 그리고 에볼루션 시스템은 챌린저들만 가지고 있고. 즉, 다른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이니…….”
공선자가 최대한 요점을 정리해서 어째서 인벤토리 기능을 타인에게 보여주면 위험할 수 있는지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런 공선자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공선자의 태도에 어떻게든 그를 이해하려고 머리를 굴리던 밀리언이 간신히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깨닫고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렇군. 그 부분은 우리의 생각이 짧았어. 타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신기한 힘은 경우에 따라서는 타겟이 될 수도 있지. 아직 우리는 챌린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장비 셋 시스템과 같이 장비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빼내서 순식간에 착용하거나 반대로 순식간에 착용을 해제하여 무형의 공간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가 없다.”
만약 장비셋 시스템이 챌린저들에게만 주어진 전용 능력이라면? 당연히 그 능력을 목적으로 챌린저를 이용하려고 들거나 노리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챌린저들 특유의 능력을 노출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태도가 아닐 수도 있는 것.
그 사실을 공선자의 설명을 통해서 파악한 밀리언이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만 조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군. 챌린저가 우리들 다섯 명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야, 이거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거냐?”
“응, 쿠루미는 대충 무슨 소리인지 이해했음. 고그가 멍청한 거임.”
밀리언이 공선자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을 이해하고 다른 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
그러면서도 공선자가 제시한 문제가 자신들만이 조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의견 역시 제시하는 건.
문제는 밀리언의 추가 설명에 간신히 공선자가 무엇을 위험시했는지 깨달은 쿠루미와 프로아와 다르게 고그만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그렇기에 쿠루미가 못 말리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며 약한 핀잔을 주는 것. 그에 또다시 욱하는 고그였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입술을 깨물며 참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참지 않았겠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밀리언과 프로아, 거기에 추가로 쿠루미의 분위기 역시 심상치가 않았기에 일단 입을 다물고 상황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고 해도 다른 챌린저들이 신경을 쓰지 않아서 결국 챌린저들의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지?”
“그렇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같은 챌린저인 우리들 역시 표적이 되겠지. ……물론 이건 우리 챌린저들의 능력이 마법과 무술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도 희귀한 능력에 해당하는 경우겠지만 말이다.”
프로아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밀리언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깨닫고 구체적인 예시를 들며 자신이 생각한 게 맞는지 묻자 그에 긍정하는 것.
그러면서도 조금은 희망적인 관측도 입에 담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걱정이 무의미하게 사실 챌린저들의 능력이 별것 아니었을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도 문제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경우에는 자신들이 가진 능력이 그다지 희귀하지 않기에 자신들의 몸값을 높게 부를 수 없다, 라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지만 적어도 당장 불특정 다수에게 노려진다는 상황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당장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안이하게 희망찬 결과만을 바랄 수는 없겠지. 대비를 해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대비라고 해도 어떤 식으로 대비를 한다는 거임? 그게 사실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없지 않음?”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에 맹신하지 않으며 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밀리언, 그러나 쿠루미의 이야기대로 공선자의 걱정이 현실이 된다고 해도 그들이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니까 결론만 이야기하면 챌린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러면 그냥 챌린저가 아닌 척하면 되지 않겠어?”
고그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거 뭐 있느냐는 어조로 이야기하자 밀리언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