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러나 그런 밀리언의 반응과는 다르게 프로아와 쿠루미는 의외로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확실히 그것도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딱히 누가 챌린저인지 확인하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닐 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조심하면서 챌린저가 아닌 척하면 우리가 챌린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쿠루미도 그렇게 생각함. 완전히는 무리라고 해도 사람들이 시선이 모이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겠음?”
프로아와 쿠루미의 발언에 밀리언 역시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확실히 의외로 나쁘지 않은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의외라는 시선으로 고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시선에 잠깐 의기양양한 얼굴을 짓는 고그. 그러나 직전에 자신을 바라보던 밀리언의 표정을 떠올리더니 다시금 심기가 상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야 자신이 말했을 때는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내온 주제에 두 소녀의 말에는 그럴듯하다는 반응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그, 결과적으로 고그씨의 발언 덕분에 해결책을 찾았다는 걸로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는 게…….”
공선자가 그런 고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꺼낸 이야기에 이미 한 번 밀리언에게 말빨로 처참하게 발린 경력이 있는 고그는 공선자가 제지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들어준다는 것 같은 느낌으로 굳이 밀리언에게 따지고 들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럼 일단 블러드 덕분에 위기의식을 가지게 된 우리 다섯 명만이라도 우선은 어느 정도 이 도시에서의 정보가 모이기 전까지는 챌린저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감추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지. 그러면서도 다른 챌린저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 할 수 있으면 챌린저 출신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말이야.”
아마 높은 확률로 고정세의 섹션에 속한 챌린저들은 그렇게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지금 프로아들이 위기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기억을 잃지 않은’ 공선자가 위기의식을 일깨워주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고정세의 섹션에는 공선자와 같이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이도 없을 터이니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위기의식을 각성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그리고 그 결과 챌린저들의 특수능력, 에볼루션 시스템의 이능은 결국 늦든 빠르든 다른 이들에게 알려질 것이었다.
그들의 능력이 이 플라워 세계에서도 그렇게까지 특이하지 않은 능력이라면 상관없지만 특이하기 그지없는 능력일 경우 개인이나 단체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것.
그럴 경우에는 그저 챌린저라는 이유만으로 납치를 당하거나 협박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할 수 있다면 챌린저 출신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게 좋다는 이야기.
……사실 설령 챌린저가 가진 에볼루션 시스템이 이쪽 세계의 사람들의 시선을 별로 끌지 않는 능력이라고 해도 공선자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감추고 싶었다.
애초에 살아온 인생이 인생인 만큼 자신의 패는 최대한 많이, 그러면서도 최대한 감춰둔다는 방식이 버릇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는 공선자였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령 챌린저들의 능력이 플라워 차원에서 그렇게까지 대단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해도 공선자는 다른 챌린저들 때문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타인에게 새어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던 것이다.
“으음……. 다른 챌린저들하고는 당장 우리들이 따돌림당하는 입장이나 다름없으니 크게 관련될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우리들이 챌린저라는 사실을 숨기고 챌린저로서의 특이능력을 최대한 감춘다고 해도 우리가 챌린저라는 사실 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잖아?”
그런 만큼 역시 완벽하게 감추는 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프로아. 실제로 모험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불가항력적으로 에볼루션 시스템에 의한 힘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프로아의 걱정에 쿠루미도 동의를 표하였지만 고그는 애초에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지 50% 이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고, 밀리언의 경우에는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완벽하게 속이는 건 힘들다고 해도 우리들이 조심하면 챌린저들이 노려진다고 해도 그렇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거다. 당장 6일 뒤에는 챌린저들은 이 여관에서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그대로 개별적인 활동에 들어가야 하니깐 말이지. 뭐, 고정세의 섹션은 규모가 규모인 만큼 자신들의 행적을 숨기기는 힘들겠지만…….”
밀리언들은 아니었다. 인원수가 적은 만큼 챌린저와 관계가 없는 일반 모험가로서 가장하고 활동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
즉, 행적을 숨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챌린저들의 능력이 당장 다른 사람들에게 노려질 정도로 알려지지는 않았을 터.
설령 챌린저들의 능력이 희귀능력에 속해서 노려진다고 해도 그것은 조금 더 그들의 능력이 소문이 된 뒤의 이야기.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쿠루미들이 모험가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지켜본 사람이 아닌 이상은 그들이 챌린저 출신의 모험가들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는 어려울 터.
애초에 모험가라는 직업 자체가 보증인이 없을 경우에는 범죄자만큼은 철저하게 판별하지만 보증인이 있을 경우에는 범죄자인지 조사조차 안 하는 경우가 있을 만큼 출신을 불문하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직업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당장이라면 모를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험가로서 활동하는 프로아들의 출신을 파악하기는 어지간한 스토커가 아니면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
“그런 고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부터 우리가 알아서 조심하면 챌린저라는 사실을 어지간해서는 들킬 일이 없겠지. 거기에 사실 에볼루션 시스템이라는 이능이 그렇게 희귀한 이능이 아니라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말이야.”
그러니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이야기하는 밀리언. 그에 프로아와 쿠루미는 조금 안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그 역시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조심하면 큰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이해했는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행동거지 조심하라는 거지?’ 라고 대꾸를 해오기도 했고 말이다.
‘……일이 그렇게 좋게좋게 풀리기만 했으면 좋겠지만 사람의 집념이라는 게 때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결코 밀리언처럼 낙천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공선자였다. 그는 에이전트로서 활동하면서 인간의 집념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직접 경험을 해온 당사자였으니 말이다.
당장 스스로가 저지른 일도 저지른 일이었지만 그 외에도 정보를 다루는 인간들은 고작해야 몇 개에 텍스트에 불과한 문자를 통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파악해내기도 했었다.
확실히 일반인의 범주에 불과한 이들로 한정하여 이야기한다면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밀리언이 주장한 것처럼 프로아들이 챌린저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는 이들은 없어질지 몰랐다.
그러나 과연 챌린저의 능력이 희귀능력이라 밝혀진 뒤 그 능력을 노리는 이들이 범인의 범주에 머무는 이들일까?
그들 중에서 과연 공선자가 떠올린 정보를 다루는 몇몇의 인간들처럼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서 전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 없을 것 같은가?
아니, 공선자는 결코 일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이 그가 세계를 멸망시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분명히 챌린저들의 능력이 희귀능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어떻게든 그 힘을 노리고 밑바닥부터 샅샅이 정보를 수집해 그 정보를 토대로 정보의 뿌리를 타고 올라가 평범한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공선자들이 챌린저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 공선자의 확신에 가까운 예측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역시 가장 좋은 수단은 단 한 파편의 정보조차도 입수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괜히 공선자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 정보를 다루는 인간들은 공선자가 보여준 약간의 능력만으로도 그의 능력의 전체적인 출력과 한계, 거기에 약점까지 파악하는 괴물들이었으니 말이다.
지들이 무슨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인 셜록 홈즈의 환생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사람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 솔직히 공선자가 가장 상대하기 꺼려하던 계열의 인물들 중 하나인 것.
그런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머리싸움을 걸어서 상대에게 넘어가는 정보를 왜곡시키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애초에 넘어가는 정보 자체가 ‘없게’ 만들어야 하는 법.
아무리 정보를 취급하는 솜씨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정작 취급할 정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선자 역시 이쪽 분야로는 상당한 스페셜리스트였다. 정보를 왜곡시키는 것도 나름대로 할 줄 알았지만 무엇보다 상대에게 정보가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문제는 지금의 나와 이쪽 세계의 환경을 생각하면 도저히 제대로 된 공작 활동을 펼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거야.’
공선자가 정보를 차단하는 방법 중 가장 특기로 삼았던 것은 다름 아닌 정보의 흐름을 ‘말살’하는 방식이었다.
요컨대 결국 암살이라는 이야기. 하지만 당장 공선자는 암살을 행할 수 있을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거기에 공선자가 살던 세계와 세계 그 자체가 다르니 섣불리 암살을 행하기도 위험한 상황인 것.
당장 이 소나타라는 도시의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은 현재의, 아니, 과거 타임 룰러라는 코드명으로 활동하던 전성기의 공선자의 실력으로도 도저히 암살이 불가능해 보이는 강자였다.
익스퍼트 어쩌고저쩌고했는데 추측건대 마법이든 무술이든 어느 쪽의 이능이든 상당한 수준으로 통달해낸 강자라는 이야기.
최소 상위권의 초능력자와 동급으로 계산을 해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암살할 수 있는 수단이 극단적으로 적어진다.
그리고 그 수단들은 죄다 현재의 공선자로써는 준비할 수 없는 수단들인 것. 아니, 과거의 반신 인격이라고 해도 지구가 아닌 플라워 차원에서는 준비할 수 없는 수단들뿐.
그러니 암살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쪽 세계에는 그런 강자들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었다.
즉, 그 수준의 강자가 몇 명이나 더 있을지 예상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범죄 행위가 분명한 암살을 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리스크가 컸다.
지구처럼 CCTV 같은 물건이 없는 플라워 차원에서 정보란 결국 목격자인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정보의 흐름을 차단한다는 것은 그 목격자를 지우는, 암살로 이어지는 일들이 거의 대다수일 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설령 아무리 흔적 없이 암살을 행하여 자신들이 챌린저라는 사실을 목격한 이들을 전부 지워버린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선자가 알고 있는 상식’의 기준에 해당하는 ‘정보말소’에 해당할 뿐이었다.
공선자가 알지 못하는, 그의 상식에서 벗어난 정보 수집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코 단언할 수 없는 것.
초능력자(권능사용자)들 중에서는 사물의 기억을 잃는 사이코메트리도 존재했다. 그처럼 마법이나 무술을 통해서 공선자가 모르는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암살은 위험했다. 아무리 깔끔하게 행했다고 해도 그의 범죄행위가 언제 어떤 식으로 흘러나갈지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당장 공선자의 정신 상태도 정신 상태였지만 환경이 도저히 공선자의 특기인 공작을 행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결국 공선자를 비롯한 파티원들이 챌린저라는 사실을 아무리 스스로 조심해서 숨긴다고 해도 알아내려고 하면 못 알아낼 것은 없다는 게 공선자의 판단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공선자는 이미 익숙한, 그러면서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모순된 무력감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그저 운에 맡겨야 한다는 상황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질 만큼 경험한 공선자였지만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는 무력감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저 밀리언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운에 맡길 수밖에 없으려나?’
어쩌면 공선자 자신이 너무 세상을 나쁜 쪽으로만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도 과거 그가 겪었던 일들이 세상은 밑바닥 아래에 밑바닥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기에 도저히 희망찬 생각을 떠올릴 수가 없는 것.
그렇기에 무력감에 휩싸여 허기에 열심히 입으로 운반하던 식사까지 잠깐 멈추고 있던 공선자.
하지만 이 이상 이쪽 문제는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감만 더 커질 뿐. 그렇기에 어차피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면 그저 운에 맡기고 신경을 끄는 쪽이 정신 건강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