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당장 프로아들이 챌린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길드의 간판 아가씨나 길드장, 이 여관을 운영하는 가족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설령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효율만 생각하고 움직이는 밤의 공선자조차 ‘환경’을 생각하면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가 그저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고그들은 이미 챌린저들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결론을 내고서 다음 화제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으음……. 그럼 결국에는 운반 계열의 잡일을 할 때 인벤토리를 쓰기는 힘들다는 거네?”
“아니, 딱히 그렇지도 않다. 결국은 챌린저가 아닌 이들의 눈에 띄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블러드가 이야기한 것처럼 어디 사람들의 눈이 안 보이는 장소로 이동해서 인벤토리에 넣은 뒤 운반하고 다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꺼내면 되는 이야기겠지.”
“그러면 결국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거 아님? 그러다가 운반해야 하는 장소까지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없으면 어떡함?”
“어떡하긴, 그냥 힘으로 옮겨야지 별 수 있냐?”
밀리언, 프로아, 쿠루미, 그리고 고그 순으로 대화를 나누며 어떤 잡일 의뢰를 해야 할지 최대한 효율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는 네 사람.
그러나 결국 탁상공론에도 한계가 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아 내일 일단 다시금 쌈닭을 사냥하러 간 뒤 돌아와 잡일 의뢰를 경험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세우자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잡일 의뢰에 대한 토론을 끝낼 때쯤에 간신히 무력감에서 벗어난 공선자가 머릿속에 떠올린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 그것을 입에 담는 것이었다.
“그, 그러고 보니 일단 모험가로서 받은 귀속 의뢰는 실패 확정이잖아요? 그에 따른 페널티를 잡일 의뢰나 지금 저희들이 해낼 수 있는 귀속 의뢰로 해결하는 거고. 그렇다면 스트림을 달성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귀속 의뢰는 어쩌실 생각이신 거죠?”
이대로 내버려두면 일주일 안에 변동률에 의해서 스트림 자체가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런 공선자의 언급에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은 파티원들이 다시금 프로아에게 시선을 모았다.
떠올려보니까 프로아가 ‘사이드 스트림은 몰라도,’ 라는 식으로 발언을 했었기 때문. 그것은 쌈닭을 이틀 안에 10마리 토벌하는 귀속 의뢰는 해결할 수 없어도 사이드 스트림은 해결할 수 있다는 어조로 들리지 않는가?
그렇기에 그에 관해서는 프로아가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시선을 모으는 것.
그 시선에 프로아는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자신이 떠올린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그것도 한 가지 의견을 제시할 생각이었는데 블러드가 때마침 잘 언급해줬어! 봐봐, 사이드 스트림의 경우 달성 조건만 달성하면 되는 거잖아?”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스트림 창을 가리키는 것 같이 허공을 가리키는 프로아. 물론 다른 챌린저의 스트림 창을 볼 수는 없었기에 파티원들은 그저 프로아가 가리키는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 뒤늦게 에볼루션 시스템의 시스템 창이 자신에게만 보인다는 사실을 상기한 프로아가 자신의 실수에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크, 큼큼! ……가, 각자의 스트림 창을 살펴보면 사이드 스트림에 달성 조건이 보이잖아?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라면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건 당장 받아둔 상태인 토벌 의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스프라우트 등급의 귀속 의뢰잖아?”
즉, 다시 말해서 달성 조건만 만족하면 굳이 지금 그들이 수주받은 상태인 쌈닭을 이틀 안에 10마리 처리하는 의뢰를 달성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사이드 스트림에서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프랜들리 시스템을 통해서 2명 이상의 인원으로 파티를 맺은 상태로 스프라우트 등급의 귀속 의뢰를 1개 달성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는 굳이 그들이 원래 받았던 쌈닭의 토벌 의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애초에 ‘토벌형 의뢰’가 아니어도 되었다. ‘채집형 의뢰’나 그 외 형태의 의뢰라고 해도 스프라우트 등급의 귀속 의뢰이기만 하면 사이드 스트림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것!
“밀리언도 이야기했었잖아? 다른 의뢰를 받는 걸로 해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그 말대로, 당장 우리 실력으로도 달성이 어렵지 않은 귀속 의뢰를 하나 받아서 달성하면 충분히 내일 하루 동안 달성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지!”
당장 아무런 소득도 없었지만 쌈닭 1마리를 사냥하는 것은 성공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일단 쌈닭을 10마리 사냥하는 것이 아닌 그 이하의 숫자로 사냥하는 토벌형 귀속 의뢰를 받아 해결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것.
정 힘들 것 같거나, 혹은 쌈닭을 사냥하는 귀속 의뢰가 없으면 그냥 채집형 귀속 의뢰나 그 외의 귀속을 의뢰를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과연, 나도 내가 말해놓고서 완전히 잊고 있었군. 그래, 굳이 토벌형 의뢰에 연연할 이유는 없군. 사이드 스트림은 별문제 없이 달성할 수 있겠어.”
“칫, 처음 받은 귀속 의뢰를 실패하는 것도 꼴사나운데 여기에 사이드 스트림까지 실패하면 정말이지 꼴이 말이 아니니깐 말이야. 적어도 사이드 스트림을 성공해야지. 거기에 일단 보상도 주는 것 같고 말이지.”
밀리언이 프로아의 이야기에 뒤늦게 자신이 언급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를 하는 것이었다.
고그 역시 마찬가지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어서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러면 일단 이걸로 당장 쿠루미들 앞에 놓인 문제는 전부 해결된 거임?”
“말 그대로 바로 눈앞에 닥친 문제들만 해결한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그 외에도 남은 문제들이 산재하고……, 거기에 지금 꺼낸 계획들은 어디까지나 ‘계획’에 불과하고 이 계획들을 제대로 실행하는 건 일단 내일부터 해야 할 일이니깐 말이지. 실제로는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게 아닐까?”
쿠루미가 이렇게 일일이 계획을 세우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는 의미를 듬뿍 담아 토해낸 발언에 프로아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대로 어디까지나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것이지 실제로 그 문제를 해결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지금까지 나눈 문제들 말고도 다른 문제들 역시 많았다. 당장 6일 뒤부터 머물 숙박시설을 물색해야 했고, 거기에 그들의 계획했던 대로 식비를 아끼려면 적어도 기초적인 요리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프로아가 기본적인 요리 방법 정도는 알고 있기에 요리는 우선 그녀가 담당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녀 혼자에게만 삼시세끼를 전부 맡길 수도 없으니 남은 파티원들 역시 일단 기본적인 요리법은 배워 로테이션을 돌려야 했고 말이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알아볼 것도 많았고, 또 해결해야 할 일도 많았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처리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대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갈 길이 너무나도 먼 것.
“그래도 일단 당장의 행동방침이 정해진 것만큼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네 녀석은 꽤 괜찮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냐하하,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니깐 말이지? 뭐, 다른 사람이 못하면 나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니깐 말이야.”
그렇다고는 해도 일단 걸어갈 방향이 정해진 것만큼은 다행스러운 일.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프로아가 나서서 먼저 괜찮은 의견을 제시해준 덕분이었다.
공선자들이 각각 다른 파티원들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그녀만이 유일하게 책임을 질 각오를 하고 나서서 그들에게 길을 제시해준 것이었으니 말이다.
“칭찬이 아니다.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그녀가 우리들을 이끄는 일종의 리더, 요컨대 파티장이 되어줬으면 하는군. 시스템적인 의미로도, 조직적인 의미로도 말이야.”
“에?”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밀리언이 갑작스럽게 프로아를 파티장으로서 추천하자 당사자인 프로아는 물론 다른 파티원들 역시 생각지도 못한 허를 찔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앞으로도 함께 파티로써 활동을 할 것이라면 파티장을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에볼루션 시스템적인 조직의 장은 해당 조직에 원하는 대로 챌린저를 가입시키고 탈퇴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이 맡는가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기능이었다.
그런 만큼 시스템적인 조직의 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는 확실히 중요한 이야기인 것. 당장 고정세의 섹션의 경우에는 고정세가 섹션장을 맡는 것으로 조직적인 의미뿐 아니라 시스템적인 의미로도 상당한 권력을 지니게 만들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대부분의 챌린저가 속해있는 섹션에서 개인을 탈퇴시킬 수도 있는 것.
그런 만큼 고정세의 권력이 절대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강력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수의 파티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터. 그렇기에 파티장을 정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였다.
당장은 대충 프로아가 파티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것을 밀리언이 확실하게 그녀에게 파티장을 맡기자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시스템적인 파티장뿐 아니라 조직적인 의미에서의 리더에 해당하는 역할까지.
“잠깐?! 도대체 뭘 믿고 저런 새파란 어린 계집애한테 파티를 이끄는 역할을 맡겠다는 거야?! 그런 역할이라면 당연히 여기서 가장 연장자인 내가 맡는 게 당연하지!”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만, 한 조직의 리더라는 건 둘 중 하나다. 그 조직 구성원의 인정을 받거나, 혹은 무력과 같은 모종의 수단으로 강제적으로 해당 조직을 장악하거나. 우리 다섯 명의 실력은 대충 거기서 거기이니 무력적인 수단으로는 장악이 불가능할 터이니 남은 건 조직 구성원의 인정을 받는 것인데…….”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이 이상은 굳이 내가 이야기해야겠느냐는 시선으로 고그를 바라보는 밀리언.
그리고서는 직후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다른 파티원들을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 시선에는 ‘네가 이 녀석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증명하는 것처럼 쿠루미와 프로아는 고그가 자신들의 리더가 된다는 상상을 한 것인지 질색을 하는 얼굴이 되었고, 공선자는 그저 밀리언에 이어 자신에게 향해진 고그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었다.
“크으으윽!!!!!!”
밀리언을 제외한 세 사람의 반응에 확실히 자신이 파티장이 되는 것은 무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고그가 얼굴을 토마토처럼 만들며 당장 정수리로 열기를 뿜어댈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폭발하지는 않았다.
일단 도저히 프로아가 파티장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나이를 빌미로 나서고는 보았지만 그 자신도 자기가 누군가를 이끌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성인도 안 된 여자애의 쫄따구가 될 바에는 자신이 파티장이 되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인 것은 무리인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나이를 빌미로 삼을 생각은 아니겠지? 아무리 오래 살아왔다고 해도 애초에 우리들은 전원이 기억상실자다. 즉, 경험이라는 게 죄다 증발했다는 거지. 그런데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그래도 그렇지 저런 어린 계집애의 명령에 따르라고?!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무리라고!”
“……어린 계집애여서 미안하네요. ……하지만 고그의 이야기도 일리는 있어. 갑자기 파티장이라니 나한테는 너무 부담스러운데.”
밀리언이 나이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에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심정적으로 프로아가 파티장이 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고그가 다시 한 번 따지고 들자 당사자인 프로아 역시 거부감을 표하는 것이었다.
프로아 역시 자신이 파티장이 되는 것에는 상당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 그에 밀리언이 지적하는 것.
“부담감을 느끼기에 오히려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부담감도 느끼지 못하는 녀석은 그냥 책임감이 없다는 거니깐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추진력이 있으면 금상첨화지. 그럼 의미에서 나는 오늘 하루 파티원들 전원이 보여준 모습을 토대로 네 녀석이 가장 파티장에 적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거다.”
고그는 강압적이어서 해봤자 그가 그렇게 욕했던 고정세와 다를 게 없는, 어쩌면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더 심한 타입의 리더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밀리언은 말을 이어갔다.
그에 자신이 그 고정세와 다를 게 없다는 말에 길길이 날뛰려는 고그였지만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점에서 다를 게 뭐가 있냐는 정곡에 이를 박박 갈며 침몰할 수밖에 없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