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솔직한 심정으로는 ‘돌멩이를 모으러 다니는 게 귀찮음!’ 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쿠루미지만 적어도 그 발언을 꺼내면 프로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시선까지 날카로워질 것을 알았고, 또 뺨도 잡아 당겨지고 있어 그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
여하튼 그런 식으로 고그가 몰매 맞는 이유에 대한 화제에서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오늘 있었던 쌈닭과의 전투에 대한 반성회에 돌입한 프로아들.
그에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프로아가 파티장이 되는 것을 반대했던 공선자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정색하고 거부할 일은 아니다, 라던가. 내가 그렇게 파티장을 하는 게 싫었냐? 라던가, 하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던 공선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반대가 받아들여진 뒤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그들의 대화를 쉽게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
“뭐냐 그 반응은? 너도 일단은 잘못 했던 점이 있을 텐데? 무기가 단검이어서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었던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좀 더 많은 횟수를 공격하여 쌈닭을 견제해줄 필요가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공선자의 반응을 밀리언은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인지 이번에는 공선자의 잘못을 짚는 것이었다.
그에 더욱더 패닉에 빠지는 공선자.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 밀리언의 지적에 사과를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묻게 되는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 최대한 있는 힘껏 싸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 그런데 제가 반대를 표한 것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요?”
공선자가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프로아가 파티장을 하는 것에 자신이 반대를 표한 일이 넘어가 버리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묻자 밀리언을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은 오히려 왜 그런 걸 묻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대답해주었다.
“뭐, 고그처럼 약속에 환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쪽에 예민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덕분에 난 맡고 싶지 않았던 역할을 맡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응, 오히려 날 대신해서 반대해줘서 고맙다는 느낌이려나? 냐하하…….”
“거기에 기억이 없는 것은 어차피 피차일반. 네 녀석 자신도 어째서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대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아니냐? 그런 것을 굳이 따지고 들 이유가 없지. 논리적으로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고 말이야.”
프로아가 쑥스러워하는 태도로 이야기했고, 밀리언은 딱히 아무래도 좋다는 어조로 설명하였다.
“내 입장에도 어린 계집애 밑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감사한 일이지. 오히려 따질 이유는 없거든!”
“쿠루미는 프로아가 파티장이 아니라고 해도 프로아에게 떠맡길 거니 문제없음.”
“아니, 그 부분은 문제가 많으니까?! 도대체 오늘 본 나의 뭘 믿고 그렇게 죄다 떠넘기는 건데?!”
고그 역시 고맙다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지만 따질 이유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으며 쿠루미로 넘어와서는 이거나 저거나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인 모양.
그로 인하여 프로아가 다시금 쿠루미의 뺨을 잡아당기기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쿠루미는 이것만큼은 뭐라고 해도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결의(?)를 내보이는 것이었다.
‘……기억이 없는 건 피차일반이라, 큭!’
그러나 그런 파티원들의 태연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공선자의 표정을 결코 펴질 수가 없었다.
그들이 자신의 조금 격정적으로도 느껴졌던 반대에 별 반응이 없었던 이유가 자신 역시 그들과 같이 ‘기억’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그로 인하여 마치 자신이 그들을 속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죄책감이 심장 언저리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선자는 그런 죄책감을 최대한 억누르는 것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은 죄책감을 느낄 만큼 죄가 없는 이가 아니었으니까.
공선자에게 그것 외에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혼자 죽는 대신 세계를 멸망시켜 길동무로 끌고 가겠다는 선택은 결국 공선자 자신이 내린 것이었다.
그러니 그 죄는 공선자가 오롯이 짊어지고 가야 했다. 그런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든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다니 지나가던 개가 비웃을 노릇이었다.
때문에 공선자는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울상이 되어버린 얼굴을 숙여 파티원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며 어떻게든 자신의 가슴을 잠식하는 죄책감을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저기? 블러드? 괜찮아? 왜 그래? 쌈닭과 싸울 때 어디 다쳤어?”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게요. 그, 그냥 뭔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게 아닐까 하고 창피해서…….”
그런 공선자의 반응에 뒤늦게 공선자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프로아가 걱정하며 그녀의 상태를 묻자 공선자는 허겁지겁 대충 떠오르는 거짓말을 입에 담는 것이었다.
“말했다시피 논리적으로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고, 실제로도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으니 딱히 과민반응이라고 이야기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지금은 내일 있을 쌈닭과의 재전을 생각해도 오늘 있었던 각자의 잘못을 계속해서 반성하도록 하지.”
“반성한다고 해도, 결국 조금 더 조심하고 주의 깊게 싸운다, 라는 것 외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잖아?”
그런 공선자의 거짓말에 밀리언이 오히려 이 이상 그쪽 화제를 꺼내는 게 과민반응이라는 의미를 담아 입을 여는 것으로 화제를 다시금 쌈닭과의 전투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에 고그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쿠루미가 한심하다는 어조로 대꾸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 주의 깊게 싸우는 게 중요한 거임. 요컨대 오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거임.”
“그러려면 결국 실전 경험이 필요한 거잖아?”
“그 실전 경험을 겪을 때 제발 말한 수준만큼만 제대로 싸워주면 고맙겠는데 말이야. ……우리들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지만.”
고그가 잔소리도 참 시끄럽다는 생각을 그대로 자신의 얼굴로 표현하며 쿠루미의 발언에 다시 반박하자 프로아가 한숨을 내쉬며 조금 자조 어린 기색으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오늘 쌈닭과의 싸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한심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반 성인 남성조차 장비가 제대로 갖추면 어려울 게 없이 ‘혼자서’ 사냥할 수 있는 쌈닭을 상대로 제대로 장비를 갖춘 파티 5명이서 덤볐는데 온갖 고생 끝에 간신히 쓰러트릴 수 있었다.
거기에 뒤이어 등장한 쌈닭을 상대로는 그야말로 부리나케 도망을 쳤으니 이게 한심하지 않으면 뭐가 한심하겠는가?
그렇기에 조금 자신감이 사라진 어조로 자조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파티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공선자는 간신히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그럴 의무가 있었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으로 어떻게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것.
이미 저지른 일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것도 무려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킨 일을. 무엇보다 공선자 자신이 그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할 것 같은가? 오히려 속이 후련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했을 정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크게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으로 죄책감에 침몰되는 것을 그를 위해서 희생해준 반신 인격과 욕보이는 짓이며, 또한, 공선자 때문에 멸망해버린 지구를 다시금 능욕하는 행위였으니까.
지구가 정말로 싫었던 공선자지만 그렇다고 이미 멸망해버린 세계를 일부로 다시금 욕보일 정도로 성격이 나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의무감을 기반 삼아서 죄책감을 짓누른 공선자가 다시금 파티원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정신상태가 되었을 때 파티원들은 이미 쌈닭에 대한 반성회를 끝마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일단 모험가 활동이 끝나고 그 뒤에 잡일 의뢰도 끝나면 남는 시간에 각자 자신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다루는 방식을 연습하는 거네? 설령 아무리 피곤해도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만큼은 꼭 연습하는 거다?”
“네 녀석은 무슨 우리들의 엄마냐? 왜 그렇게 잔소리가 심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할 거라고!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니깐 말이지.”
“나,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 아저씨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 구역질이 올라오는 줄 알았잖아?!”
“아저씨 아니거든?! 20세 후반이면 아직 젊다고! 아저씨는 30대부터다! 그것도 3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는 형이나 오빠니까?!”
프로아와 고그가 투닥거리를 하고 있을 때쯤 어떻게든 정신을 수습한 공선자는 이게 뭔 상황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누구 하나 설명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고그가 아저씨인지, 아닌지는 일단 제쳐놓고 오늘 고그의 전투를 보고 깨달은 사실인데 때마침 좋은 타이밍이니 말해두도록 하지. 스테이터스의 세부 스텟 수치는 웬만해서는 건드리지 마라.”
그 대신 밀리언이 공선자 역시 직접 체감하고 있는 사실 하나를 언급하여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세부 스텟이라면……? 그 퍼센트 수치로 표시되는, 기본 2스텟의 아래에 표시되는 스텟들 말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까 분명히 24시간마다 한 번씩 조절할 수 있다고 했지?”
“그래, 보아하니 고그는 현재 다른 세부 스텟을 희생시켜서 근력 스텟을 상승시키는 것으로 그 거대한 대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된 모양이다만……. 그래 봤자 다른 세부 스텟의 수치가 낮아서 오늘 봤던 것처럼 제대로 쌈닭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즉, 하나의 세부 스텟을 극대화시키면 파티원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도저히 커버를 칠 수 없을 만큼 단점도 극대화된다는 이야기를 밀리언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밀리언은 웬만해서는 세부 스텟을 건드리지 말고 건드린다고 해도 지금의 고그처럼 극단적일 수준으로는 건드리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그에 따른 예시로 자신의 전투 스타일에 따라 주력으로 사용될 스텟을 최대 40%까지만 상승시키고, 그 외의 스텟을 골고루 10%씩 하락시키는 식으로 최대한 단점을 최소화시키며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을 입에 담는 것이었다.
공선자 역시 밀리언의 설명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필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재속과 체력 스텟을 희생시켜 그 외의 스텟들을 극대화시켰는데 의외로 두 스텟은 암습이 주된 공격방식인 밤의 공선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 스텟들이었던 것.
다른 3개의 세부 스텟들보다는 그 영향력이 적을지라도 아예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만큼 공선자 역시 직접 체감을 해보았으니 밀리언의 설명에는 지극히 공감이 간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칫!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근력을 극대화시키지 않으면 무기도 제대로 휘두를 수 없다고!”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무겁고 큰 무기를 선택하라고 했음? ……이라고 따지고 싶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임. 본인 일이니 어떻게든 해결해 보셈.”
그리고 당연하게도 공선자처럼 세부 스텟을 조절했던 고그 역시 결국에는 24시간이 지나면 세부 스텟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다시금 대검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게 되기에 고그가 불만을 토해내자 쿠루미가 자업자득이라는 어조로 대꾸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
“하지만 확실히 고그가 대검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상태는 파티 차원에서도 큰 리스크야. 그러니까 적어도 대검을 어느 정도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만 근력 스텟의 수치를 건드리는 걸로 하자.”
“그럼 내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근력 수치를 140%로 설정하고 그 외의 스텟을 90%로 설정해라. 그러면 최소한의 속도는 확보되니 오늘처럼 제대로 쌈닭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허공에 칼질할 일은 없겠지.”
프로아와 밀리언이 고그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자 고그가 ‘재속은 크게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재속에서 전부 빼버리면 안 되냐?’ 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
그에 듣다 못 한 공선자가 나서서 ‘제가 재속 스텟을 건드려봤는데 의외로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텟이에요.’ 라고 이야기해오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프로아와 밀리언이 말했던 대로 근력 스텟을 140%로 올리는 대신 나머지 스텟을 10%씩만 깎기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그가 간신히 대검을 휘두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자 이번에는 각자 다른 파티원들 역시 자신들이 다루는 무기에 알맞게 세부 스텟을 조절하기 위한 토론을 시작하는 것.
밀리언을 말을 통해서 극단적으로 한쪽 스텟을 줄이고 다른 한쪽 스텟을 높이는 것은 단점이 너무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다르게 이야기하면 ‘너무 극단적’으로만 수치를 조절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고그가 대검을 휘두르기 위해서 근력 수치를 140%로 조절하는 대신 다른 스텟들에서 균등하게 10%씩 수치를 하락시킨 것을 교과서 삼아 자신들의 스텟을 조절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