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밀리언과 쿠루미를 시작으로 저녁 식사를 이어가며 음식의 맛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그 외에 잡담을 나누어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앉아 있으려니까 전혀 실감이 안 나. 여기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억을 잃고 영문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상황이라니.”
“거기에 멸망된 예정을 막으라고? 정말이지, 거창한 스케일의 이야기야. 뭐, 터무니없어도 정도껏 터무니없어야지 워낙 터무니없다 보니까 더욱더 그런 어마어마한 일에 휘말렸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거겠지. 켁!”
프로아와 고그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이렇게 태연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조금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선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세계를 멸망시키고 죽음을 맞이한 뒤로 아직 3일이라는 시간도 채 흐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니, 체감 상으로는 훨씬 더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기는 했다. 자신의 반신 인격이 근본 인격을 대신해 소멸하는 것으로 훨씬 긴 시간 속에서 정신이 거의 무너져 내린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는 정말로 3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만이 흘렀을 터.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처음 보는 세계에 떨어지고, 처음 보는 몬스터라는 이름의 괴물들과 싸우고, 또 처음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실감했다.
그렇게 밀도 있는 사건을 겪었기에 더욱더 체감 상으로는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본래라면 지구라는 세계와 함께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을 자신이 이렇게 살아서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서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솔직히 말해서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배는 고파. 이 감각은 분명히 현실이겠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재속 스텟이 바닥을 치고 있는 영향인지 아무리 입에 음식을 꾸역꾸역 넣어도 계속해서 배가 고팠다.
에너지 효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신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전신이 에너지를 요구하고 있는 결과인 것.
그리고 역으로 그로 인하여 찾아오는 허기가 실감하기 힘든 현재를 강하게 실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래, 도저히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이라고 해도, 자신이 경험해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해도 이것이 현실이었고, 세계였다.
애초에 언제 현실이 공선자가 상상하던 대로만 흘러가던가? 이미 익숙한 일 아닌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저녁 식사에 집중하며 파티원들의 대화를 흘러 들으면서도 어떻게든 이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원래부터 공선자의 성격은 소심한 것 같다는 인상이 적용된 것인지 공선자가 홀로 말수가 적은 상태로 대화에 제대로 끼어들지 못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는 것.
“흠, 고그의 말대로 너무나도 거대한 스케일에 자신들이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렸다는 실감이 없는 건 우리들뿐만 아니라 이 여관에 머물고 있는 챌린저들의 공통된 사항이겠지. 애초에 예정된 멸망을 막으라고 해도……, 당장은 생활 기반을 마련해야 하니 그쪽과 크게 관련된 일에 휘말린 것도 아니고 말이야.”
밀리언이 고그와 프로아의 대화에 끼어들어 이야기를 꺼낸 것처럼 오히려 자신들이 세계의 멸망을 막아야 한다! 라는 실감을 하고 있으면 그게 이상한 일일 터였다.
챌린저들은 휘말렸다고 해도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요소가 너무 적었다. 있다고 한다면 기억을 잃고 단체로 방치되어 있었다, 라는 것 정도와 에볼루션 시스템 정도인데 두 가지 모두 현실성이 너무 없는 현상이어서 제대로 된 실감을 가져다주기에는 무리였다.
일단 전자는 애초에 기억이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과거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기에 현실감이 없었다.
그리고 전자의 영향으로 에볼루션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할 수 없으니 후자 역시 체감하기 힘든 게 당연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세계 멸망이니 하는 거창한 일에 휘말린 것치고 현재 챌린저들의 처지는 당장 6일 뒤부터 먹고 잘 장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그러니 멸망을 막느니 마니, 하는 이야기에 제대로 된 현실감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거물일 터였다.
“하긴, 제대로 실감하고 있다면 이렇게 여유 있는 분위기일 리가 없었을 거임.”
“그다지 여유 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우리랑 마찬가지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다는 느낌이잖아?”
쿠루미의 발언에 프로아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반론을 하자 고그가 콧방귀를 뀌면서 입을 열었다.
“흥! 그렇다고는 해도 세계의 멸망을 앞둔 녀석들의 분위기도 아니잖아? 우리들을 포함해서 말이야. 애초에 빠른 시일 내에 멸망한다니……, 너무 불친절하잖아? 이왕이면 구체적인 시간을 알려달라고! 시간을!”
고그가 따지고 드는 것처럼 멸망이 정확하게 언제 예정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챌린저들의 체감을 저해하는 원인 중 하나인 것.
그렇게 그들이 어떻게든 공통된 화제를 찾아가며 저녁 식사 중에도 잡담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프로아가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입은 연 것은 말이다.
“실감……. 실감이라. 그러고 보니까 조금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살짝 무서워지는 부분이 있는데.”
“응? 무서워지는 부분 말임? 딱히 지금까지의 대화에 그럴 요소는 없다고 쿠루미는 생각하는데 말임?”
조금 맥락 없이 꺼내어진 프로아의 발언에 쿠루미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프로아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떠올린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 뭐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생명체를 목숨을 빼앗았는데 아무런 실감도 없는 게 마치 원래부터 내가 그런 쪽의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첨언이 붙은 프로아의 이야기에도 파티원들이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프로아가 한숨을 쉬며 좀 더 자세하게 자신이 떠올린 사실을 언급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기, 쌈닭을 사냥한 뒤에는 쫓겨서 도망치고, 또 앞날이 막막해서 제대로 실감할 수 없었는데 말이야. 우리 그 쌈닭이라는 몬스터를 사냥한 거잖아?”
저녁을 먹으며 내일부터의 파티 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프로아들이었지만 조금 냉정하게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이거다! 라고 이야기할만한 의견을 나오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대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구체적인 소목표를 정하기는 했지만 사실을 돌이켜보자면 저 소목표도 딱히 혁신적인 계획이라고 결코 말할 수도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이 결국 길에서 돌아오던 중에 꺼내던 희망 사항처럼 지금의 그들은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잡일 의뢰라도 서슴지 않고 달성하며 서서히 레벨을 올려 강해지는 것 외에는 딱히 떠올릴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동안 어느 정도 플라워 차원에 대한 기초 지식은 습득했다. 허나, 그것은 말 그대로 기초 지식. 5살 어린 아이도 알고 있는 수준의 지식들에 불과한 것.
심지어 모험가로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집중적으로 습득했기에 지식의 정보 자체가 편중된 상태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런 상황인 만큼 결국 그들이 떠올릴 수 있는 의견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하루하루 먹고살며 레벨 업과 스킬 습득 등을 통해서 챌린저로서 강해지는 것.
그 끝에서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간신히 입에 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야 당장 세계가 멸망한다고 해도 실감이 나지 않고 애초에 언제쯤 멸망할지 알 수가 없으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쪽 세계가 멸망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멸망을 막아야 한다고 해도 크게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
그런 이유로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도저히 희망차다고는 이야기하기 힘든, 결국에는 쌈닭의 서식지에서 돌아오던 길에서 나누던 것과 다를 게 없는 미래 설계.
아니, 그래도 조금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으니 아예 진전이 없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결국에는 근본적으로 쌈닭을 사냥하고 돌아오며 대충 입에 담았던 향후의 방침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계획이었다.
그런 계획 설계를 끝마친 그들을 결국 조금 막막하다는 느낌을 그대로 품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 조금 억지로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막막한 심정을 숨기기 힘든 분위기로 잡담을 하며 저녁 식사를 이어갔던 것.
그렇게 어떻게든 대화를 하며 저녁을 먹는 것에 집중하는 그들. 친한 사이라면 이것저것 잡담을 하는 사이에 분위기가 진짜로 밝아졌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고작해야 어제 처음 만난 사이.
그렇기에 잡담을 하며 친분을 쌓으려고 해도 꺼낼만한 화제가 그다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아 대화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엿보였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금 위태로운 느낌의 분위기였기에 프로아의 발언에 파티원들은 조금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차피 부리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서 토벌을 증명할 방법도 없는데 말이야.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시체가 있나 살펴보기라도 할까?”
그에 고그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프로아를 바라보며 따지고 드는 것.
괜히 사람을 짜증 내게 만들려고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는 거냐? 라는 의미가 담긴 그 시선에 프로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신이 이 화제에 대해 꺼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딱히 그런 의미로 쌈닭에 대해서 언급한 게 아니야. 그냥 다들 괜찮은가 하는 걱정에 이야기를 꺼낸 거지. 거기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너희들과는 다른 의미로……,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혹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이런 느낌으로. 그야……, 뭐가 되었던지 결국 우리가 한 짓은 한 생명체를 죽인 일이잖아? 그런데 거기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다는 건 사람으로서 어떨까 해서…….”
거기에 자신에 관한 건 그렇다고 치고 파티원들은 쌈닭을 죽인 것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 역시 조심스럽게 꺼내 드는 프로아.
프로아가 조금 조심스럽게 본론을 이야기하자 그녀가 어째서 그 말을 꺼낸 것인지 이해한 파티원들이 침묵 속에서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조금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쌈닭, 겉만 보기에는 덩치가 큰 몬스터.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쌈닭을 죽인다고 해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야 공선자가 살던 지구에서만 해도 닭은 식욕으로 대량으로 도축되던 생명체였으니 말이다.
요컨대 인간이란 생명체는 아무래도 닭이라는 생명 자체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지구에서는 평소에도 치킨 같은 것을 실컷 시켜먹거나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제 와서 덩치가 큰 닭 한 마리 때려잡은 게 뭐 어떤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 이쪽 플라워 차원에서도 길드 회관에 게시된 의뢰를 보면 쌈닭의 시체는 식용으로도 사용되기에 의뢰를 통해서 매입되기도 한다는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쌈닭의 시체를 가져오면 괜히 2만 원으로 사들이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 거기에 쌈닭은 몬스터, 어떤 방식으로도 사람과는 공존할 수 없는 존재.
그런 괴물을 죽인 것이니 딱히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크게 이상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허나, 사람이 어디 그런 이론대로만 움직이는 생명체이던가? 평소에는 치킨 같은 음식을 잘만 먹으면서 실제로 닭이 도살되는 광경을 지켜보면 한동안 트라우마가 되는 사람들도 충분히 많았다.
21세기 현대인들도 닭과 같은 생명체가 가축으로서 길러져 인간의 손에 대량으로 도축된다는 사실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고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테니깐 말이다.
아마도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어차피 도축될 닭이라고 해도 자신의 손으로 닭의 목숨을 끊게 된다면 여러 가지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될게 분명했다.
여기에 더불어 덩치가 크기까지 하다면 여러 가지로 더욱 실감이라는 게 날 수 있지 않겠는가?
벌레 같은 작은 생명체를 죽이는 것보다 덩치가 큰 개를 죽이는 게 ‘생명체를 죽였다!’ 라는 느낌을 줄 테니까.
그러니 프로아가 거기에서 아무런 실감도 얻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에 걱정을 하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상한 것은 프로아와 마찬가지로 파티원들 전원이 자신들이 쌈닭이라는 하나의 생명을 손수 거두어들였다는 사실에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대한 생명체를 죽인 것이었다. 여기 있는 다섯 명 중 한두 명 정도는 설령 자신들을 죽이려고 들었다고 해도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허나,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심지어 프로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쌈닭이라는 하나의 생명을 뭐가 되었던지 자신들의 손으로 거두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