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운이 좋았음. 트라우마가 만들어지지 않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니 말임. 적어도 쌓인 경험에 의해서 다음에 쌈닭과 같은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해도 정신적인 충격에는 어느 정도 내성이 쌓여 있을 테니 말임.”
설령 실감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들이 쌈닭을 한 마리라도 ‘사냥’한 것은 명백한 ‘현실’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현실로 인하여 정신에 깊숙이 박힌, ‘나는 몬스터를 죽인 적이 있다,’ 라는 기억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행위’에 대한 정신적인 내성을 질러줄 터.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다, 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설령 제대로 실감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쿠루미는 오히려 제대로 실감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쌈닭을 죽였다는 명백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그, 그럼 과거의 내가 막 뭘 죽이거나 하는 것에 익숙했던 무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라는 이야기네? 다행이다!”
“아니, 이제 와서 논리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네 녀석 정도로 호구……, 큼큼! 사람이 좋아 보이는 녀석이 그런 살벌한 계열의 인간이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호, 호구라고 하려고 했지?!”
밀리언이 말실수를 했다는 느낌으로 말을 정정했지만 이미 전부 들어버린 프로아가 따지고 들자 밀리언은 철판을 깔고 모른 척을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호구 맞구만, 뭘.’ 이라고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고그.
……여하튼 그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른 파티원들 역시 쿠루미가 이야기한 것처럼 운이 좋았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고그만이 끝까지 ‘그래 봤자 실질적인 소득은 0원이잖아!’ 라고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도 이번 사냥에서 아예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에 조금은 분위기가 누그러진 가운데 이어지는 식사.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공선자는 집중해서 먹던 식사를 멈추고 그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게 난 확실하게 쌈닭의 죽음을 실감하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 않는 이유. ……간단하잖아? 난 이제 와서 어떤 생명체를 죽이든 어떤 감흥도 느끼지 않을 수준까지 와 있는 거야.’
……밀리언이 화제를 전환하여 유야무야 넘어간, 그렇다면 가장 쌈닭의 죽음을 실감해야 할 공선자는 어째서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았는가.
그와 같은 쿠루미의 질문에 처음에는 그저 당황하느라 제대로 된 대답은커녕 그 이유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허나, 어떻게든 정신을 진정시킨 직후 공선자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간단한 이유를.
애초에 ‘세계를 하나 멸망시킨 공선자가 고작해야 커다란 닭 한 마리를 죽인다고’ 충격을 받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현재의 공선자가 근본 인격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고 해도 반신 인격의 영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설령 반신 인격의 영향을 배제한다고 해도 공선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너무나도 익숙한’ 현상인 것이었다.
그가 자아를 가지고 있을 때부터 죽음은 언제가 공선자와 함께 했다. 설령 그가 정신세계에서 자신의 반신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고 해도 그는 자신의 반신이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함께 체험하고 있었다.
지켜보기만 했다. 지켜지기만 했다. 간섭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경험했다. 그렇기에 근본 인격을 변할 수 없었다.
성장할 수 없었다. 늘 겁쟁이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죽음만큼은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죽음도, 타인의 죽음도.
그런 공선자가 ‘이제 와서 닭 한 마리를 살해한다고 어떠한 감흥’이라도 느끼게 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그와 같은 의미에서 공선자는 이미 망가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순수한 부분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이미 치명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고 있기도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모순적인 존재. 겁쟁이인 주제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는 주제에 ‘죽임이라는 현상’에 만큼은 누구보다 익숙한 이.
그리고 다시금 그런 자신의 ‘모순’을 실감한 공선자는 순간적으로 울고 싶어졌다. 자신은 아니었다. 자신은 죽인 적이 없었다.
그럴 것이 그의 반신이, 그를 위해서 모든 결과를 대신 짊어져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본래라면 죽음에 익숙한 것은 이상했다.
그런데 익숙했다. 이것은 그와 다시금 하나가 된 반신의 영향이 아니었다. 공선자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성질이었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뻔하지 않은가? 수많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거기에 간접적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행한 것은 ‘공선자 자신의 육체’였다.
거기에 무엇보다 공선자는 결국 ‘세계의 멸망’이라는 최악의 선택지를 고른 것이었다. 반신이 제안했지만 결정한 것은 근본이었다.
그 결과, 어딘가 망가져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그 사실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자각했을 뿐인 이야기.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울고 싶어졌다. 어째서 자신이 망가져야 했는지, 망가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자신과 프로아를 비롯한 네 사람의 차이점을 자각하게 된 순간 찾아온, 자신이 정녕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공포심에 울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꾸역꾸역 눌러 담았다. 혼자라면 모를까 오늘 만난 네 사람의 앞에서 울어 이상한 오해를 받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속이려고 하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다시금 빵과 수프를 억지로 입에 쑤셔 넣는 것이었다.
‘전부 짊어지자. 짊어져야 해. 그러면서도 살아갈 의무가, 그런 의무가 나한테는 있어. 결코 후회하지 않고 모든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할…….’
설령 불가능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확률이지만 자신이 멸망시킨 세계에서 그 멸망이 원인이 되는 공선자에게 복수하고자 찾아온 이가 있다고 해도 공선자는 그렇게 찾아온 이를 짓밟고 살아남을 ‘의무’가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세계를 길동무로 삼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 그러지 않았다면 공선자가 그 어떤 발악을 하더라고 결국 남은 선택지는 평생을 모르모트이자 정부의 개로써 사용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토사구팽되는 운명이었으니까.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좀 더 노력했으면 전 세계의 무고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충분히 복수를 달성하거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을 거라고?
웃기는 소리도 정도껏 해라. 상대는 거대 국가 조직. 그것도 그중에서도 한 줌의, 까놓고 말해서 평범한 인가의 범주를 벗어난 ‘엘리트’들이 모인 조직이었다.
거기에 어디 그들뿐인가? 말했다시피 거대한 국가 조직인 것이다. 그 외에도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의 숫자가 이미 무량 대수에 가까운 수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 무량대수’에 가까운 인력에 도대체 어떻게 대응한다는 건가?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혼자의 힘으로 조직만을 전멸시키고 유유히 사라진다, 라는 선택지가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공선자와 똑같은 초능력자(권능사용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인재들이 넘쳐났다.
공선자가 아무리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본다고 해도 그의 전략, 전술을 전부 뛰어넘는 계책을 내놓는 천재들도 즐비했다.
그런 조직을 상대로 도대체 공선자가 어떻게 ‘자유’를 되찾고, 어떻게 핀 포인트로 자신의 ‘복수’를 달성한다는 것인가?
애초에 지구를 멸망시켰다는 결과조차도 수십, 수백 번의 ‘기적’이 겹친 끝에 달성할 수 있었던 ‘위업’인 것이었다.
Z바이러스라는 ‘무량대수’의 인력에 대응할 수 있는 ‘무한으로 증식하는 미생물’이 존재했다는 기적.
그리고 그 Z바이러스를 입수하고 배양하여 세상에 살포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겪었던 ‘기적’들.
목숨을 걸어서 노력하고, 몇십 번, 몇백 번의 기적이 일으켰다고 해도 공선자가 해낼 수 있는 한계는 고작해야 ‘세계와 함께 자멸’하는 선택지뿐이었다는 이야기.
아무리 공선자가 노력을 한다고 해도 0에 무한을 곱한다고 해봤자 0이었다. 단 0.00000000001%의 가능성이라도 좋았다.
그 가능성이 있었다면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론도 통할지 몰랐다. ……그러나 극히 미량에 가까운 가능성조차 무한에 가까운 인력 앞에서는 존재할 수조차 없었던 것.
공선자가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과연 그를 개로 부리던 정부 조직 내의 인간들이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인간은 자신의 안위가 걸린 문제에는 한없이 비정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생물. 그런 그들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대비를 해두었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온갖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해둔 이들인 것. 폼으로 몇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직을 유지해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정부를 유지해오며 쌓아온 시간과 그에 따라 쌓인 노하우. 그 모든 것이 공선자를 옥쇄는 족쇄가 되어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가 떠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는 그 어떤 방법도 없었다.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공선자로써는 떠올릴 수도, 실행할 수 없는 모종의 수단’뿐이라는 소리.
그리고 그런 수단이 ‘공선자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찾아올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공선자로서는 결코 0%의 가능성을 단 0.0000001%로조차 끌어올릴 수 없었다. 누군가의,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도움이 찾아올 확률 또한 한없이 0%에 가까운 상황. 그 0%에 가까운 상황이 찾아오길 기다리며 그저 언제쯤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자신이 토사구팽당할 그 순간을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웃기지는 소리는 정도껏 해라.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죽어주마.
그리고 그 결과가 자신과 함께 멸망한 지구라는 이야기. 심지어 이조차 원래는 ‘공선자가 선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조차 아니었다.
피가 나는 노력? 아니, 말 그대로 매초마다 목숨을 거는 노력을 지속한 결과, 거기에 수백 번의 기적이 겹친 결과 달성할 수 있었던, ‘본래라면 존재했을 리가 없을 선택지’라는 이야기.
본래라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불가능을 돌파하는 노력 끝에 쟁취해낸 것이었다. 설령 그 결과가 비극 중의 비극이었다고 해도 그것을 후회할 것 같은가?
설령 그 결과 자신이 비틀릴 대로 비틀렸다고 해도, 자신의 목숨마저 바쳤어야 했다고 해도 후회만큼은 하지 않는다. 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공선자라는 인간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발버둥이었으니까. 발버둥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최선의 발버둥이었으니까.
그러니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후회해서는 안 되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살아온 이유조차, 자신의 삶의 가치조차 잃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저 모르모트로 살아오다가 세계 그 자체와 함께 자폭해버린 인생. 거기서 스스로가 비틀렸다는 이유로 자신이 발버둥쳤던 사실마저 후회하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의 유일한 가치마저 자기 자신이 부정하는 것 아닌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가치는 스스로밖에 부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적어도 여태까지의 공선자의 인생에서 공선자 자신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단 하나뿐이었다.
다름 아닌 ‘절망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발버둥을 쳐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결과 설령 비극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예정되어 있던 결말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런데 그 결말마저 후회한다면 과연 공선자의 인생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파티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어떻게든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 자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공선자의 내부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가 어떻게든 후회라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치솟던 당장이라도 울부짖고 싶었던 감정이 처음에는 서서히, 그리고 그 속도를 급격하게 가속시키며 가라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