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러나 공선자는 이내 이것이 자신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럴 것이 단순히 후회라는 감정만 억눌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감정이 사라지는 것에 가깝게 억눌러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것에 감정이라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 감정이 없는 인간은 기계나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감정이 없기에 사람은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감정이 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되는 법.
그렇기에 감정이 억제되는 순간 공선자의 시야는 순식간에 반전하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색깔로 가득 차 있었던 세계가 흑색으로 변한다.
물리적으로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흑색으로 변했다는 게 아니었다. 너무나도 무미건조해지는 스스로의 시선에 본래라면 색깔이 넘쳐났을 시각 정보조차 무미건조해졌다.
그 결과 실제로는 색깔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야가 완전히 흑색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외부가 변한 영향이 아니었다. 자신이 변해버린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심하고 겁쟁이에, 그럼에도 비틀려 있었던 공선자라는 ‘인간’은 이 시점을 기계로 무엇을 보더라도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기계’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바라 봐 보는 것만으로도 각종 감정을 자극하던 풍경을 지금은 그저 흑색 화면의 너머에서 비추어지는, 자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보는 것과 같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밤이 왔군. 그리고 제대로 저질러 버렸어. 아침의 나.”
자신도 모르게 불편해진 심기에 순간적으로 공선자는……, ‘밤의 공선자’는 혀를 찰 것 같은 것은 억지로 억누르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아직 완전히 감정이 억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황혼. 해가 완전히 가라앉기 직전, 그렇기에 완전한 상태였다면 결코 입에 내지 않았을 말을 자신도 모르게 흘리고 말았다.
냉철한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지금이기에 올라오는 불쾌한 감각. 방금 전까지의 자신의 행태를 돌아보니 올라오는 안일함에 의한 불편한 심기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진 것이었다.
물론 그 불편한 심기마저 황혼이 끝나고 완전한 밤이 찾아오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허나, 적어도 공선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만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아버린 말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프로아와 고그의 귀에도 들어가는 것.
“응? 밤? 아, 확실히 밖이 완전히 어두워져 버린 모양이네. 이렇게 되면 밖으로 나가서 이것저것 조사하는 건 힘들까나? 오늘은 일찍 쉬는 게 좋겠어.”
“그래, 확실히 밤은 위험하니깐 말이야. 식사가 끝나면 잽싸게 방으로 돌아가서 아침까지 잠이나 자라. 괜히 오늘의 피로가 안 풀렸니 하면서 내일 모험가로서 활동할 때 민폐를 끼치지 말고.”
공선자의 중얼거림을 듣게 된 프로아와 고그가 각자 로비에서 내다볼 수 있는 창밖을 바라보더니 완전히 어두워진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과학 문명만큼은 중세 시대인 세계였다. 여기에 마법 문명이 곁들어지는 것으로 어느 정도 밤의 어둠을 극복했다고 21세기 지구만큼의 밝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어둠은 인간이 오감 중에서 가장 의지하는 감각인 시각을 빼앗아 가는 환경. 그런 만큼 밝은 환경보다 어두운 환경이 더 위험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니 완전히 어두워진 상황에서 도시 안이라고 해도 바깥을 나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아와 그그가 더 이상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무리라는 의미에서 고개를 흔들었던 것.
그런 이유로 이후에 더 이상 외부 활동을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 프로아들은 오늘 자신들의 일과가 이 시점에서 종료되었음을 깨닫고 각자가 여러 가지로 감정이 닮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
쿠루미는 그저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방으로 돌아가서 자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고 밀리언이 냉정한 표정을 가장하면서도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아마도 챌린저로서 깨난 뒤 두 번째 날이 지났음에도 무엇인가 상황에 진전이 있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아 조금 초조해하는 것 같았다.
프로아는 그저 어딘지 걱정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고그 역시 최대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해하는 것이 다리를 떠는 등의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다시금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것 같았던 하루가 지났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다시금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게 된 것.
그 때문에 조금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과연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파티원들과의 새로운 삶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누구라도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단지…….
‘실수했군. 나도 모르게 떠올린 걸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거기에 집중하느라 그다음 발언은 그냥 넘긴 모양이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
……공선자 만큼은 밤이 되어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에 완전히 다른 감상을 품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니, 그것은 감상조차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의 공선자는 그런 것을 품을 위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공선자와 파티원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에게는 지금부터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은,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지금부터가 ‘제대로 된 활동시간인 것’이었다.
‘일단 피로도는……, 견딜만하군. 아침의 내가 기절하는 김에 잠도 푹 자두어서 그런 건가? 이대로라면 오늘 밤 정도는 활동하는 것에 지장은 없겠어. 미리 수면을 취해둘 필요 없이 아침이 밝기 전에 돌아와서 잠을 자두면 될 일이겠지.’
지금부터 활동하기 위해서 일단 자신의 몸 상태와 정신 상태를 체크하는 공선자. 그리고 ‘지금 당장 사냥을 나가도 문제없다,’ 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아침의 자신은 정신적인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기에 정신적인 피로가 조금 심했지만 이 정도야 견딜 만했다.
과거 지구에서의 삶은 막바지에 이것보다 더한 상태에서도 활동해야 했으니 이 정도 정신적인 피로도는 견딜 만한 수준인 것.
그렇게 자신이 활동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공선자는 그 뒤 슬쩍 자신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슬슬 저녁 식사를 마무리 짓고 있는 파티원들을 훑어보는 것이었다.
“고그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방에서 잠이나 잘 거임. 오히려 고그 쪽이야말로 밤놀이 같은 거 나아 내일 활동에 지장이 생기지 않게 하는 거임.”
“켁! 그럴 여유가 있으면 너희들하고 파티를 하고 밤에는 잠이나 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냐?”
거의 다 먹어치운 그릇들을 정리하며 티격 대는 고그와 쿠루미를 포함해 자신이 먹은 그릇을 정리하는 것에 여념이 없는 프로아와 밀리언까지.
전혀 의도치 않았던 네 사람과의 인연에 공선자는 골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아침의 공선자의 예상대로 밤의 공선자는 지금 이 상황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고작해야 해가 완전히 저물었을 뿐인 상황.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도 공선자는 몇 분 전까지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사고하고 있는 것.
자신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는 오로지 효율적인 생존만을 추구하는, 기계에 가까운 사고방식.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는 밤의 공선자의 입장에서 눈앞의 꽤 인간미가 넘치는 장면은 자신이 플라워 차원이라는 완전히 별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에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일야몽의 영향. 정말로 그저 해가 저물었을 뿐인데 그 현상을 트리거로 한 사람의 사고력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이능.
인격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감정이 극한까지 억제되고 있을 뿐. 그러나 감정이라는 것은 사람의 사고 회로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는 요소.
아무리 이성적인 사고를 하려고 해도 감정이 넘쳐나면 제대로 이성이 돌아가지 않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정신 활동에 큰 영향을 주는 한 요소가 해가 저물었다는 사실을 트리거로 완전히 억제된 상황이니 공선자라는 인간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돌변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인격은 그대로지만 그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으로 완전히 다른 인격처럼 느껴지는 ‘냉철한 사고’가 실시간으로 공선자의 뇌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같은 라면이라고 해도 수프의 종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종류의 라면이 되는 것처럼.
‘……대충 그럴듯한 변명이라도 지어내서 지금이라도 파티에서 빠져나가야 하나? 아니, 그래서야 너무 수상해.’
그와 같이 아침의 공선자와 같은 인격이라고 해도 거의 다른 인격처럼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공선자는 냉정한 사고가 가능해진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파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밤의 공선자가 보기에는 당장 잡담을 나누며 자신들이 먹어치운 저녁 식사의 뒷정리를 하는 네 사람의 모습이 그저 시간 낭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이들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한정된 시간이라는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그러니 당장 그들과 따로 행동할 생각부터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그러나 세상일은 역시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일까?
공선자라는 인물의 대외적인 성격과 그가 처해있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생각해도 자연스럽게 파티원들과 결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야 당장 힘을 합쳐서 살아가도 앞날이 막막한 상황에 다짜고짜 혼자서 행동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낸다고?
어떻게 봐도 수상하지 않은가? 심지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하하호호 웃으며(실제로는 딱히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향후에 대한 계획을 짜고 있던 이가 갑작스럽게 안면 몰수하고 결별을 선언한다?
과연 어떤 사람이 그런 영문 모를 사태를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고 받아들이겠는가? 공선자는 자신을 최대한 숨기고 싶어 하는 타입이었다.
어두운 세계에서 살아오며 정보 하나하나 때문에 목숨이 오락가락했던 경험이 다수 존재하는 만큼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만큼 공산자라는 인물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경우에도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은 모종의 의문을 불러오기 마련이고, 의문이라는 것은 ‘의심’을 낳게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낳게 된 의심은 공선자라는 인물이 숨기고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어버리는 것.
그렇기에 공선자는 애초에 의심이라는 계기 자체를 낳지 않기 위해서 거의 병적일 수준으로 자연스러움을, 개연성을 맞추기 위한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공선자는 아무리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도저히 현재의 공선자라는 인물이 눈앞의 챌린저들과 결별하고 혼자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골이 아파오는 것.
효율을 생각한다면 설령 이들에게 의문을 남긴다고 해도 그들과 결별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러나 말했다시피 공선자 자신은 자연스러움을 병적으로 챙기는 타입이었다. 그렇다 보니 결국 어느 효율을 선택할 것인지 쓸데없는 의심을 만들지 않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니 골이 아프게 되는 것.
‘설령 이 네 사람을 납득시킨다고 해도 혹시라도 나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사람이 생길 경우 이 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될 수 있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었지만 실제로 공선자는 이처럼 징검다리 식으로 사소한 정보를 모아서 자신에게까지 도달하는 경우를 몇 번이나 경험해봤다.
심지어 정말로 사소하게 남긴 정보로 자신의 능력의 한계까지 때려 맞추는 이들까지 경험해본 것.
그런 만큼 아무리 이쪽 세계에 자신에게 적대적인 존재가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정말로 사소한 정보조차 남기는 것이 석연치 않은 것.
그렇기에 그저 효율을 위해서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저 효율만을 계산하고 그 계산대로 움직일 뿐이지. ……하지만 아침의 나한테는 감정이 존재해. 그리고 이들과 함께 행동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 감정에 의한 결과. 아무리 이성만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그저 효율만을 따져서 아침의 내가 내린 결론을 무시할 수는 없어.’
감정이 없는, 아니, 오히려 감정이 없기에 밤의 공선자는 더욱더 아침의 자신이 만들어낸 이 상황을 그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