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럴 것이 자신을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금의 공선자는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반대로 ‘아침의 자신’이 ‘정산이라는 점’을 밤의 공선자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그럴 것이 사람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성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이 아니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그저 기계에 불과했을 테니깐 말이다.
이성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감정도 존재한다. 이성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감정에 휘말리거나, 역으로 감정이 외쳐도 오로지 이성이 계산한 결과만을 받아들이기도 하는 게 사람이라는 존재인 것이었다.
이성과 감정, 이 두 가지 모순된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여 그 두 가지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고민하며 그러면서도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존재였다. 이성만 있으면 그것은 단순한 인공지능에 가까운 무엇인가에 불과하며 감정만 있으면 그것은 단순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감정과 이성, 두 가지 전부를 가지고 있는 아침의 공선자쪽이었다.
오히려 감정이 극한까지 억제되어 오로지 이성만으로 움직이는 지금의, 밤의 공선자는 그저 목표를 위해서 나아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기계’에 가까운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밤의 공선자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침의 공선자가 ‘어리석다고 판단’하면서도 그것이 ‘비정상적인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은 ‘현재의 자신’이라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렇기에 아침의 자신이 한 선택을 그저 ‘비효율적’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
비정상적인 것은 현재의 자신이었고, 그렇기에 때문에 그저 효율만을 따지고 움직인다면 분명히 정상적인 자신, ‘아침의 공선자’가 언젠가는 효율만 따진 그 선택에 의해서 ‘후회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정이라는 것은 불합리한 녀석이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이쪽이 옳다고 외치는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감정을 우선시 하여 누가 보아도 정답이 아닌 선택지를 고르게 만들곤 한다.
반대로 설령 그런 감정을 무시하고 이성에 따라 선택을 했다고 해도 훗날 감정에 의해서 그 선택 자체를 후회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그저 이성에 따라 효율적인 선택만을 내려서는 언젠가 자신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사실을 밤의 공선자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물론 감정을 따른다고 해서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적어도 감정을 그저 무시하기만 하는 게 아닌, ‘고려를 해본 뒤’에 이성을 선택한다면 후회를 하게 된다고 해도 적어도 ‘덜’ 후회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기에 밤의 공선자는 아침의 공선자의 행동을 ‘골치 아픈, 그러면서도 비효율적인 사고를 저질렀다고’ 판단하면서도 그 선택을 내린 자기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아침의 공선자가 감정에 따라 내린 판단. 오히려 그 판단이야말로 ‘정상적인 자기 자신’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이라고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그 판단이 옳다고 긍정해줄 수도 없지.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 설령 미래시를 가지고 미래를 엿본다고 해도 그렇게 엿본 미래마저 어떤 방식으로 도달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기도 하니 말이야.’
그러니 설령 감정에 따라서 선택을 내린다고 해도, 이성에 따라서 선택을 내린다고 해도 훗날 그 선택이 ‘옳았던 것’으로 찾아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아침의 자신의 선택을 지금의 공선자는 부정하지 않았다. 허나, 동시에 긍정하지도 않았다.
‘정’에 연연하여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한 아침의 공선자의 선택을 ‘이해’는 하였지만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효율적이지 않다고 해도 일단 아침의 나와 지금의 나는 따로 떨어트려서 활동할 수밖에 없나.’
그렇게 밤의 공선자는 결국 타협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자신의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조차 정답일지 알 수 없는 만큼 일단 자신의 방식을 조금 양보하는 식으로 ‘아침의 공선자의 선택과의 타협점’을 만들어내는 것.
이렇게 되면 조금 어중간해질 수 있었지만 어느 쪽의 선택이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적어도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큼은 남겨두는 쪽이 좋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밤의 공선자라고 해도 공선자는 공선자였다. 인격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 만큼 설령 이성인 판단‘만’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감정에 의한 선택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소망’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도 하니 말이다.
오히려 이성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무’를, 살아남는다는 ‘의무’를 행하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고를 뿐.
공선자의 감정이 고른 선택지야말로 오히려 공선자의 진정한 ‘소망’이라고 말하기 어울릴 터였다.
물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고른 선택지에 의해서 이후 어떤 결말이 닥칠지는 그때 가봐야 아는 것으로 그때 가서 그런 선택을 하면 안 되었다고 후회할 수도 있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오로지 ‘이성만’으로 사고하고 있는 지금의 공선자가 자신의 감정에 의해서 떠오른 자신의 ‘소망’을 그저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
‘아침의 나와 같은 상태가 정말로 가끔씩 전환되는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늘 아침의 나와 같은 상태고 해가 지고 있을 때는 늘 밤의 나와 같은 상태겠지. 그런 상황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부정하는 건 바보 같은 짓거리야.’
아침이나 밤의 공선자 모두 결국에는 공선자의 각각 다른 일면에 불과했다.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의 생살을 파먹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이야기.
그렇기에 공선자는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서 결코 아침의 자신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아침의 자신이야말로 ‘본래의 자신’이라는 사실을 결코 혼동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만큼 자신의 진짜 ‘소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그 ‘소망’에 의해서 자신의 ‘의무’가 뒷전으로 밀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애초에 그 소망이라는 것도 생존이라는 의무가 달성되어야지만 이룰 수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살아남지 않으면 소망이고 뭐고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밤의 공선자는 아침의 자신과의 합의점을 찾아냈다. 아침의 공선자는 아침의 공선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자.
비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밤의 공선자가 나아가는 길과 완전히 반대쪽의 길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은 아침의 공선자는 아침의 공선자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단지, 밤의 공선자와 다르게 감정이라는 것이 상당한 방해를 하여 그 과정이 비효율적이었지만 그게 ‘본래의 정상적인 자신’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기에 굳이 억지로 아침의 자신의 행동을 제한할 생각은 없었다.
밤의 공선자는 제대로 아침의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그 한계 이상의 결과를 원하는 것은 그저 무모한 짓일 뿐. 그러니 오히려 공선자는 아침의 자신이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할 일은 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한테 파티원들은 그저 걸림돌에 불과하지만 아침의 나에게 있어서는 꼭 그렇다고 만도 할 수 없겠지.’
당장 밤의 공선자에게 파티원들은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고 거기에 공선자라는 인물의 정보가 누출될 수 있는 구멍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침의 공선자에게 있어서는 분명히 전력으로 도움이 되는 인물들인 것. 같은 챌린저인 만큼 서로의 능력에 대해서 이해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의 공선자가 파티원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아무리 한계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힘을 빌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건 훗날 약점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밤의 공선자는 아침의 자신이 파티원들과 함께 활동한다는 사실이 역시 못마땅하기도 하였다.
파티원들 때문에 자신이 행동이 제약당한다, 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이미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아냈으니 말이다.
밤에는 그들 역시 잠을 자야 할 테니 실제로 공선자의 행동에 그렇게까지 큰 제약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파티원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으로 공선자가 자신의 한계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도움을 통해서 극복해낸다는 점’이었다.
……숫자는 곧 힘이었다. 공선자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경험’을 통해서 숫자라는 힘이 얼마나 ‘뚜렷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고 있었다.
숫자는 힘이다. 그 말 그대로 사람은 모이면 모일수록 그 인원수를 통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당장 나라라는 숫자를 앞세운 힘 앞에서 과거 개인으로써는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섰던 힘을 가지고 있던 공선자가 정면에서는 결코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숫자의 폭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기에 공선자는 그 숫자의 폭력이 가지는 ‘약점’ 또한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선자가 혼자서 세계를 멸망시키는 게 가능했었던 것.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었다. 그렇기에 서로 뭉쳐서 서로의 약점을 서로가 보완해주었다.
당장 공선자가 합류한 프로아들이 각자의 포지션에 맞춰 자신들의 전력을 특화시키는 것으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처럼.
이것이 숫자의 폭력. 이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뭉친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의 한계는 더욱더 커져갈 것.
……허나, 그렇기에 공선자는 결코 ‘단체의 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럴 것이 결국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뭉쳐서 만들어낸 힘은 ‘자기 자신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의지대로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아니며 동시에 ‘뭉쳐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공선자는 이 숫자의 폭력이라는 게 약점이 뚜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힘이 아니기에 정작 자신이 원할 때 휘두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개인의 힘이 아닌 단체의 힘이기에 단체로써 성립된 상태여야만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것이 바로 공선자가 생각하는 숫자의 폭력.
……조금 더 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뭐, ‘인연의 힘’이니 하는 것에 대한 치명적일 정도의 약점인 것이었다.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것처럼 혼자만의 힘이 아닌 타인과의 인연을 통해서 타인의 힘을 빌려 강력한 적을 무찌르는 주인공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공선자는 일단 이런 존재를 상대할 때 당연하게도 결코 주인공이 ‘타인과 함께 싸울 수 없는 환경’을 구성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수작’을 부려서.
뭐, 그거야 누구나 생각하는 거라고? 그런 수작조차 인연의 힘으로 뛰어넘으니까 주인공인 거라고?
그렇게 반박한다면 공선자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그건 인간이 얼마나 더러워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할 수 있는 ‘모든 수작’을 부린다고. 인간관계라는 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튼튼한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요소’로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튼튼한 관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공선자 역시 그런 관계를 갖은 이들은 수없이 봐왔으니까.
가장 큰 예로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모·자식 간의 인연만큼 튼튼한 인연은 드물 것이다.
가끔씩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고, 자식을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건 드문 일이고 대부분의 부모와 자식을 서로를 끔찍하게 생각한다.
특히나 이 정도가 심한 이들은 ‘어떤 수작’을 부려도 정신적인 관계를 끊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정도로.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인연’에 해당하며 ‘물리적인 인연’은 또 다른 이야기.
간편한 예로 아무리 정신적으로 끈끈한 관계라고 해도 ‘한쪽이 죽어버리면’ 그런 끈끈한 정신적인 인연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