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화 (2/328)

제 2 화. 진실을 읽는 소년 (1)

나는 보육원에 산다.

부모가 왜 나를 버렸는지, 내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보육원에 제일 오래 계신 노 수녀님께 물어봤지만 그분도 별로 아시는 건 없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더니 보육원 앞에 포대기에 쌓인 아기가 사력을 다해 울고 있었다는 것과, 포대기 속에 든 메모지에 내 이름이 남아 있었다는 단편적 정보가 전부였다.

상관없다. 이제 와서 내가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건 중요치 않다. 수녀님은 부모님께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라 위로하셨지만 뭐가 됐든 내가 보육원에 버려졌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고아라는 사실은 친구들의 부모로 하여금 나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 당부하게 하는 원인이었으니까. 이제와 내가 버려진 이유를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따돌리고 괴롭히는 녀석들보다 동정심 섞인 눈빛으로 안쓰럽게 보는 시선들이 더욱 싫었다. 그들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뭔가를 더 챙겨주고 좋은 말을 해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모든 악의는 내 열등감에서 나온다. 그들의 시선이 고깝게 보여지는 것도, 애정이 동정으로 느껴지는 것도. 거울 속 내가 삐뚤어진 만큼 각도를 기울여 삐딱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 때문이다.

처음 ‘그것’을 본 건 여덟 살 때였다.

이렇게 말하면 귀신 따위처럼 대단한 것을 본 줄 알겠지만 사실 첫 경험은 허무할 만큼 별 것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에서 보였던 ‘그것’이 내 시작이었다.

동네 유일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50대의 중년 부부가 팔짱을 끼고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보인다. 저 나이의 다른 부부들은 서로 남처럼 걷던데. 저렇게 걷는 걸 보니 어지간히 사이 좋은 부부인가 보다. 등산복을 입은 중년 아저씨가 설설 기어 다니는 차들을 보며 혀를 찬다.

“어린이 보호구역 설정하는 건 좋은데 시속 30km는 좀 너무하네. 저거 보여, 여보? 젠장, 신호 떨어졌는데 차가 열 대도 못 지나네. 저 놈의 카메라 때문에 속도를 낼 수가 있나 어디.”

꽤나 뚱뚱해 보이는 아내가 남편 팔을 꼭 끌어 안으며 빙긋 웃는다. 인상이 참 좋은 아주머니다.

“불편해도 아이들 안전을 위해 필요한 거야, 여보.”

남편이 씩 웃으며 아내를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를 살짝 튕긴다.

“선한 생각하네, 우리 마누라. 누구 아내야?”

“헤, 당신 아내?”

“하하!”

누가 보면 참 보기 좋아 보이는 광경. 그리고 그들 옆에 작은 아이가 책가방의 끈을 붙잡고 함께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남편은 여덟 살 가량의 작은 아이가 자신을 힐끔 바라보자 싱긋 웃어준 후 다시 아내에게 시선을 돌린다.

“사랑해, 여보.”

남편의 사랑고백이 처음도 아닐 텐데 무척 기뻐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내가 남편 팔을 바짝 끌어 안으며 웃는다.

“나도, 여보.”

두 부부가 팔짱을 꼭 끼고, 아내의 머리가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진다. 그리곤 아내가 속삭인다.

“여보.”

“응?”

“작게 말해.”

“왜?”

“옆에 아이 보이지?”

“어.”

“좀 이상하지 않아? 주눅든 것 같은 눈빛으로 자꾸 힐끔거리잖아.”

“뭐 어때. 우리가 좋아 보여서 그런 거지.”

“가방 봐, 가방.”

“···············..?”

남편이 안 보는 척 슬쩍 뒷머리를 긁으며 주변을 훑어보다 아이가 든 가방을 본다. 보육원 이름이 써 있는 책가방을 확인한 남자가 짧은 한숨을 쉰 후 아내를 보며 자신도 봤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가 안쓰러운 얼굴로 속삭인다.

“부모 없는 아이 앞에서 우리가 너무 주책 떨었나?”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자신이 저 아이를 고아로 만든 건 아닌데.

“안쓰럽긴 한데, 뭐 지 팔자지.”

아내가 남편의 등을 딱 소리 나게 때리며, 아이 눈치를 본다.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

그때였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의 눈빛이 일그러진다.

그날, 그 곳에 서 있던 내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저씨도 날 그런 시선으로 보는 구나. 이 사람도 다른 친구들처럼 내게 잘못이 없는 걸 알지만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구나. 어린 마음 속에 악의(惡意)가 솟구치던 바로 그때. ‘그것’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신호등 앞을 기어가듯 지나는 차들이 점차 느려 지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서서히 멈춘다. 흑백이 되어 버린 세상 속에 혼자 남은 나는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빙글빙글 도는 짧은 찰나에 구토가 나올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내 몸은 이상하게도 전혀 비틀거리지 않는다. 어느 집인지 모를 가정집. 나는 바지 버클을 채우고 양말을 신고 있다.

‘어? 내 몸이 아닌데.’

어린이의 몸이 아니다. 성인 남성의 몸이다. 검은 정장 바지에 검은 양말. 맹세코 한번도 입어 본 적이 없는 차림새다. 그때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기야, 언제 이혼할 거야? 도대체 난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반라로 누워 있는 예쁜 누나가 보인다. 내 손이 슬그머니 다가가 그녀의 볼을 슬쩍 꼬집는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도연아. 조금만 더 기다려. 장인이 오늘 내일 하거든. 알지?’

침대에 누운 여성이 삐친 얼굴로 말했다.

‘당신 아내가 외동딸인 건 알겠는데, 장인 죽었다고 그 재산이 당신에게 온다는 보장 있어?’

‘하하! 걱정말라고. 내 아내는 나라면 그냥 껌뻑 죽으니까. 상속 받은 부동산들 공동 명의로 돌린 후에 자연스레 이혼하면 되는 거야. 한국 법 몰라?’

‘쳇.’

‘외도로 인한 이혼 귀책사유가 생기면 위자료 청구나 재산분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그때까지 조금만 더 참아.’

‘짜증나. 언제까지 이렇게 몰래 만나야 돼? 당신 오늘도 등산 간다고 나왔지?’

‘뭐 어쩌냐? 마누라가 유일하게 안 따라다니는 게 등산인데.’

여성의 얼굴이 펴지지 않자, 내 얼굴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볼에 짧은 키스를 하고 양 손바닥으로 그녀의 볼을 꾹꾹 누르자, 인상을 쓰고 있던 여성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을 찰싹 때린다.

‘이런다고 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

‘하하, 벌써 웃고 있는데?’

‘아 놔! 아하하, 간지러워.’

‘사랑해, 알지? 난 너밖에 없어.’

한참 여성과 침대에서 장난을 치던 내가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세 시다. 일어나 등산복 상의를 입고 현관문으로 나오자 이불을 둘둘 말아 몸에 감은 예쁜 누나가 마중을 나온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누나를 바라보다 현관문을 나서는 것과 동시에 또다시 극심한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또다시 빙글빙글 도는 세상.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꿈에서 빠져나와 현실감이 돌아오기도 전에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들려온다.

쾅!! 와장창!

“저, 저 새끼가!”

“어머, 여보! 저거 우리 차 아니야?”

“젠장! 당신은 여기 잠깐 있어!”

뭐였을까? 방금 본 건 환상이었을까? 잠시간 어지러움에 눈을 꼭 감은 내 귀로 아까 들었던 중년 부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자전거 탄 형이 건널목 너머 불법 주차된 차에 부딪혀 뒹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두 부부의 차였나 보다. 헐레벌떡 뛰어간 아저씨가 고등학생 형이 뒹굴든 말든 자기 차부터 살피는 모습이 보인다. 보행신호가 떨어져 남편이 길을 건너 갔지만 아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입을 가리고 있다.

“어머머, 저걸 어째?”

이 아주머니는 저 형이 다쳤을까 걱정하는 걸까? 아님 자기 차에 흠집이 났음을 걱정하는 걸까? 수녀님이 말했었다. 악의를 악의로 갚는 방법이 가장 저급한 복수라고. 무시하고 내 할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복수라고. 아까 저 아저씨의 말에 화가 나긴 했지만 아주머니한테 잘못은 없으니까 그냥 내 갈 길을 가자.

그때 아직 보행신호 중이라 보육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 걸음을 걸었던 내 귀에 아주머니의 나직한 말이 날아와 꽂힌다.

“쯧, 일주일 전에 산 새 차인데. 하, 짜증나.”

그 말이 귀에 와 꽂혔을 때 다시 한번 악의가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쓰러져 있는 고등학생 형에게 다가가 고함을 치는 아저씨의 목소리도 들린다.

“너 이 새끼! 자전거 타는 놈이 앞도 제대로 안 보고 다녀?! 너 자전거 타면서 핸드폰 봤지, 이 새끼야!”

그때 알았다. 방금 전에 본 환상이 저 아저씨의 목소리였다는 걸.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교복 바지 위 무릎에서 피가 나고 있는 고등학생 형이 허리를 숙이며 굽실거리는 것이 보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회전 하는데 차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뭐, 이 새끼야? 그럼 차를 여기다 주차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인마!”

“아니.. 여기 원래 주차하면 안 되는 곳이긴 한데.”

아저씨가 쌍심지를 켜고 삿대질을 한다.

“뭐? 이 새끼가 촉법소년이라고 대한민국 법이 아주 우습지? 불법주차를 해도 주차된 차량에 사고를 내면 사고 낸 쪽에 책임이 있는 거다. 핸드폰 없으면 죽는 줄 아는 나이니 한번 검색해 보던가!”

“아니··· 죄송합니다.”

“너 이게 얼마짜리 차인 줄이나 알아? 여기 뒤에 기스 난 거 보여 안 보여?”

“··················”

고래고래 소리 치는 아저씨. 그 모습을 보는 아내가 한숨을 쉰다.

“거렁뱅이 집 아이면 골 아픈데. 이 달에 건물 보수도 해야 되는데 이거 저거 다 빼면 이달에 천만원도 안 남겠네. 차 수리비까지 나오면 빽 하나도 못 살 거야. 하, 짜증나.”

구시렁거리던 아내가 힐끔 날 바라본다.

“애, 넌 아까부터 왜 그렇게 쳐다보니?”

“························”

“보육원 사람들이 그렇게 가르치든? 어른 그렇게 빤히 보라고?”

아까 잠깐 남편에게 애 앞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고 말했던 아주머니의 좋은 인상마저 싹 사라졌다.

“아줌마.”

아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줌마? 너 어디서 처음 보는 어른한테 그런 말 쓰라고 배웠어? 학교야, 보육원이야?”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가 아줌마라고 불렀다고 불 같이 화를 내는 아내.

“나 아줌마 아니거든? 아줌마 그거 아주 나쁜 말이거든!”

아줌마가 왜 나쁜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보육원 가서 찾아보면 되겠지. 그녀가 고함을 치든 말든 건널목 너머의 아저씨를 눈짓한 내가 말했다.

“저 아저씨 맨날 등산 가죠?”

“어?”

아내의 눈이 동그래진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로 고등학생에게 화를 내는 남편을 바라보던 그녀는 남편이 등산복을 입고 있다는 걸 알고 도끼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게 뭐?”

책가방의 끈을 손으로 꼭 잡은 내가 말했다.

“저 아저씨 등산 간다고 거짓말하고 맨날 딴 여자 만나요.”

“············뭐?”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그래서 알려 드리는 거예요.”

아내는 황당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런 것도 보육원에서 가르치는 거야? 모르는 사람한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거니? 너 어느 보육원에 있는 애야? 거기 원장님 낯짝 한번 봐야겠네.”

“도연이래요.”

“························.”

아내의 눈이 커진다. 팔짱을 푼 아내가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누, 누구?”

“도연이요. 저 아저씨가 그 누나한테 도연이라고 불렀어요. 침대에서 다 벗고 있는 누나한테.”

“·····················..”

제대로 충격 받은 얼굴.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그녀를 보니 뭔가 마음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마침 보행신호로 바뀌는 신호등을 힐끔 본 내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전 다 말씀드렸어요.”

석상처럼 굳어 있는 아내. 그녀의 눈동자만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날 따라오고 있다. 작은 복수에 성공했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 꿈에서 본 거라는 말을 안 했네.”

그런 게 진짜일리 없으니까.

실컷 부부싸움이나 해라, 나쁜 아줌마,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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