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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3화 (3/328)

제 3 화. 진실을 읽는 소년 (2)

며칠 뒤, 일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고 보육원에서 미사를 드린 후 TV를 보고 있을 무렵, 두 명의 아저씨가 보육원을 찾아왔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 재미 있게 보던 참에 힐끔 그 쪽을 바라보니 수녀님과 이야기를 하던 두 아저씨가 날 자꾸만 바라본다. 뭘까?

잠시 후, 수녀님이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눈을 맞춘 수녀님이 말했다.

“도경아.”

“네, 루이사 수녀님.”

“며칠 전에 학교 끝나고 요 앞 건널목에서 여자분이랑 대화한 적 있니?”

“여자 분이요?”

“응.”

기억이 난다. 찝찝한 기분으로 보육원에 돌아와 다시 생각해보니 꽤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마지막에 봤던 아줌마의 당황한 표정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네.”

루이사 수녀님의 눈이 커진다.

“정말이야?”

“네, 했어요.”

그때 수녀님 뒤에서 두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험악하게 생긴 아저씨들은 꼭 깡패들 같이 생겼지만 말투는 다정했다.

“제가 이야기 좀 나눠도 될까요, 수녀님?”

수녀님이 황망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아직 아이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예요. 도경이는 이제 여덟 살 밖에 안 됐어요.”

“아아, 압니다. 저희도 조사차원에서 나온 거지, 꼬마한테 무슨 책임을 지우려고 왔겠습니까? 그저 이야기만 좀 나누면 됩니다. 잠시만 양해해 주시죠.”

수녀님은 나와 아저씨들을 번갈아 보다 내 손을 꼭 잡으셨다.

“허락하겠습니다만 제가 동석하겠습니다.”

“아, 그건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좀 그렇네요.”

아저씨가 주위를 눈짓하자, TV를 보고 있던 보육원 친구들의 시선이 전부 집중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수녀님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자, 애들아. TV보고 있으면 이따 로사 수녀님이 과자를 주실 거야. 얌전히 기다릴 수 있지?”

과자 이야기가 나오니 아이들 눈이 빛나며 한 목소리로 답이 나온다.

“네, 수녀님!”

빙긋 웃어준 루이사 수녀님이 내 손을 꼭 잡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사 시간이 아니라 텅 비어 있는 식당 구석에 날 앉힌 수녀님. 맞은 편에 앉은 아저씨 두 명이 수첩을 꺼내며 눈을 맞춰온다. 좀 더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씩 웃으며 말했다.

“녀석, 똑똑하게 생겼네. 공부 잘해?”

“네.”

“허허, 잘해? 보통 이렇게 물으면 그냥 좀 해요, 뭐 이러던데.”

“거짓말은 나빠요. 잘하는 건 잘하는 거고,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아저씨가 웃음을 터뜨린다.

“으하하! 이 녀석 말하는 것 좀 봐. 아주 딱 부러지네. 수녀님, 이 녀석 정말 공부 잘합니까?”

수녀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어려서 석차 같은 건 안 나오지만 항상 시험에서 백 점을 받아 와요. 학교 선생님께서도 도경이는 크게 될 거라고 칭찬해 주셨답니다.”

수녀님께 확인을 받은 아저씨가 웃으며 나를 본다.

“그렇구나, 도경이라고? 성은 뭐야?”

“현.”

“음, 현도경. 여덟 살이라고?”

“네.”

수첩에 메모를 한 아저씨가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꺼내 식탁 위에 놓는다.

“자, 우리 도경이. 여기 뭐라고 써 있어?”

사진이 있는 목걸이 형태의 신분증. 글씨를 읽어본 내가 말했다.

“경찰 공무원이라고 써 있어요.”

“그래, 아주 잘 읽네.”

이 아저씨 뭘까? 한글도 못 읽는 여덟 살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저씨가 신분증을 들며 말했다.

“자, 아저씨는 경찰이야. 경찰이 뭐하는 사람이지?”

“나쁜 사람들 잡는 사람이요.”

“그래, 맞아. 이 아저씨는 나쁜 사람 잡는 사람이야. 멋지지?”

소매를 걷어 알통을 보여주는 아저씨. 솔직히 형사보단 범인처럼 생겼다. 옆에 있는 형사가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자, 슬그머니 소매를 바로 한 아저씨가 말했다.

“흠, 미안하다. 아저씨한테도 아들이 있거든. 아저씨 아들은 세 살이야. 너보단 한참 어리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왜 부르셨어요?”

“아, 미안하다. 혹시 이 사람 기억나?”

수첩 사이에 끼워 두었던 사진을 꺼내는 아저씨. 사진 속에 그때 건널목에서 봤던 여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네, 알아요.”

“오, 확실해? 다시 봐. 이 사람이 맞아?”

“네.”

두 아저씨가 눈빛을 교환한다. 그러더니 조금 낮은 어투로 말했다.

“이 분 말이 네가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말해줬다고 하던데. 맞아? 건널목 CCTV 봤더니 진짜 뭔가 대화를 하긴 하는 것 같던데 말이야.”

“바람이 뭔데요?”

“··················”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막힌 두 형사. 아이한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하는 두 사람 대신 수녀님이 나섰다.

“두 아저씨는 이분에게 네가 이분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말해줬냐고 묻고 계신 거야.”

루이사 수녀님을 바라보던 내가 다시 형사 아저씨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맞다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맞아요.”

침을 꿀꺽 삼키는 형사들. 놀란 얼굴의 형사가 중얼거린다.

“그 여자 진술이 진짜였네.”

뭐가 진짜라는 걸까? 궁금했지만 수녀님이 그랬다. 어른들 말씀하실 땐 끝까지 들으라고.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만 있자, 형사 아저씨가 몸을 내밀며 물었다.

“혹시 직접 본 거야?”

“뭘요?”

“그 있잖아. 그때 그 아저씨가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아뇨.”

“응? 못봤어? 그럼 어떻게 알았어?”

“꿈에서 봤어요.”

“························.”

형사들이 수녀님을 본다. 수녀님이 약간 당황한 얼굴로 끼어든다.

“도경아, 장난 치지 말고 제대로 말씀드려.”

제대로 말한 건데.

“진짜예요. 꿈에서 봤어요.”

형사들이 눈썹을 약간 찌푸리며 펜으로 수첩을 톡톡 두들긴다.

“도연이란 이름도 꿈에서 본 거야?”

“네.”

“·····················”

“꿈에서 본 거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네.”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냥 꿈인데 뭐. 그날 봤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니 한참 고심하며 듣던 형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장소가 김도연씨 집인 거 같은데. 애가 거길 들어가 봤을 리가 없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진짜 그냥 꿈인데 우연히 맞은 건가?”

이게 무슨 말일까? 도무지 이 아저씨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한참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형사들. 수녀님이 시간을 확인 후 일어나신다.

“질문이 끝나셨으면 그만 돌아가 주세요. 아이들 간식 시간입니다. 도경아, 얼른 들어가서 TV 봐. 이따 과자 먹을 때 보자.”

“네, 수녀님.”

형사들이 엉거주춤 일어난다.

“아니, 잠깐만 더..”

수녀님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건 저와 이야기 하시죠. 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 주시지 않으면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습니다.”

강단 있는 수녀님의 얼굴을 보고 고민하는 두 형사 아저씨들. 수녀님이 얼른 가보라는 듯 눈짓하신다. 궁금했지만 괜찮다. 이따 수녀님이 말씀해 주시겠지.

거실에 옹기종기 앉아 TV를 보는 아이들 옆에 앉아 보던 프로그램을 한참 보고, 로사 수녀님이 가져다 주신 과자를 다 먹은 후가 되어서야 루이사 수녀님이 돌아오셨다. 수녀님의 표정이 무척 안 좋으신 것을 본 내가 손을 잡으며 물었다.

“수녀님.”

“··················.”

“수녀님?”

“아, 미안 도경아.”

“무슨 일이래요?”

루이사 수녀님은 잠시 고민하시는 듯 하더니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신다. 뭔가 말을 하시려 입을 달싹이다 결국 고개를 저은 수녀님은 밝은 척 웃으시며 내 머리를 만져 주신다.

“아니야, 도경아. 아무 일도 아니야. 저녁 먹고 씻고 자자, 동화책 읽어 줄게.”

헤, 수녀님이 동화책 읽어줄 때가 제일 좋다. 동화 속에선 부모 없는 아이도, 그보다 더 못한 아이들도 공주가 되고, 기사가 되고, 왕자가 되니까.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네, 수녀님.”

바로 그때, 예능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른 채널을 돌리고 있던 중학생 형이 리모컨을 멈춘다. 그리고 TV 속에서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오늘 서울 쌍문동 모 아파트에서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에서는 치정에 얽힌 살인으로 발표했으나, 주변 이웃들의 증언에 의하면 두 부부의 평소 금슬이 매우 좋았으며, 매일 같이 산책을 하는 등 치정에 얽힌 살인이 일어날 가정이 아니었다는 진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살인사건? 아내가 남편을 죽여? 와, 그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내 고개가 TV로 돌아갔다.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점퍼를 눌러 쓰고 수갑을 찬 여성이 차에서 내리자, 모자이크 처리 된 얼굴이 나온다. 바로 그때 루이사 수녀님이 내 눈을 가리셨다.

“도, 도경아. 우리 놀이터 가서 놀까?”

답답해서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수녀님이 날 돌려세웠다. 눈을 맞춘 수녀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수녀님이 그네 태워 줄게. 우리 도경이 그네 좋아하잖아, 그렇지?”

TV를 좀 더 보고 싶다. 그렇지만 대충 알겠다. 흉측한 뉴스가 나올 때면 채널을 돌려버리던 루이사 수녀님이니 이런 소식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네, 수녀님. 그래요.”

“호호, 우리 착한 도경이. 그럼 나갈까?”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학교를 마치고 다시 보육원에 돌아가는 길. 그 부부를 만났던 건널목에서 언제나처럼 신호를 기다리던 내 앞에 ‘그’가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가 건널목에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날 뚫어지게 바라본다.

하도 뚫어지게 보니 신경이 쓰인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아저씨, 아줌마도 내가 저렇게 쳐다보는 게 신경 쓰였겠구나. 생각해 보니 좀 미안하네.

“네가 현도경이냐?”

“··················..”

뭐, 뭐야? 왜 말을 걸지? 키가 큰 모르는 아저씨가 말을 걸자, 절로 다리가 후들거린다. 게다가 내 이름까지 알고 있다.

“누구세요?”

“어어, 겁 먹지 마라.”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낸다. 그때 그 형사 아저씨들과 같은 신분증이다. 제대로 확인하라는 듯 내 손에 신분증을 쥐어 주는 아저씨. 내 앞에 쪼그리고 앉은 아저씨가 말했다.

“나쁜 사람 아니야. 경찰이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

“묻고 싶은 게 좀 있는데.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지난 번에 다 말했는데요.”

“어, 알아. 보고서 봤으니까.”

보고서? 그게 뭘까? 형사 아저씨가 건너편 카페를 눈짓한다.

“너 저기 가 본적 있니?”

내 눈이 카페로 돌아간다. 가봤을 리가 없지. 저긴 부잣집 애들이나 가는 곳이니까.

“아뇨.”

형사 아저씨 눈이 초승달처럼 그려진다.

“저기 블루베리 크림치즈 케이크가 진짜 맛있거든. 아저씨랑 저거 먹을까?”

침이 꼴깍 삼켜졌지만 수녀님이 모르는 사람이 뭐 사준다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 필사적으로 유혹을 참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호? 왜, 저거 먹기 싫어?”

“수녀님이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

“응? 으하하!! 그래, 맞아. 근데 아저씨는 경찰이잖아.”

“·····················..”

“게다가 저기 카페 봐.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고 사람도 엄청 많잖아. 저기서 무슨 일이 있겠어? 아저씨가 이상한 낌새 보이면 소리 질러버려. 그럼 주변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안 그래?”

음,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다. 잠깐 고민하던 내가 카페와 아저씨를 번갈아 보다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거··· 블루 무슨 케이크. 진짜 맛있어요?”

아저씨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며 윙크한다.

“그럼! 내가 보장한다. 갈래?”

“·····················..”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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