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화. 진실을 읽는 소년 (3)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블루베리 크림치즈 케이크. 뭐 이런 맛이 다 있지? 그냥 케이크는 먹어 봤다. 아니, 꽤 자주 먹는 편이다. 적어도 한 달에 한번씩은 먹는다. 이 달에도 생일인 애가 둘이라 같은 날에 생일 파티를 했다. 조금씩 나눠 먹어야 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었다. 그런데 눈 앞에 이건 보육원에서 먹는 케이크와는 차원이 달랐다. 큰 케이크도 아니고 달랑 한 조각이었지만 먹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이 꼭 감겨질 만큼 맛있다.
맛있게 간식을 먹을 때 날 바라보던 흐뭇한 어른들의 얼굴이 아닌, 뭔가 관찰하는 눈빛으로 날 지그시 바라보는 형사 아저씨. 눈빛이 좀 신경 쓰였지만 괜찮다. 이런 걸 사주는 아저씨가 나쁠 리 없으니까. 케이크를 반쯤 먹고 나니 너무 달아서 얼굴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너무 달아서 자주 먹을 순 없을 것 같다. 아, 어차피 돈이 없어서 또 먹을 일은 없으니 괜찮나?
케이크 먹는 속도가 줄어들자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도경아.”
“네?”
“아저씨가 보고서를 좀 봤는데 말이야.”
“보고서가 뭔지 몰라요.”
“아, 음.. 어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처리 되었는지 쭉 써 놓은 문서야.”
“네, 그런데요?”
“네가 건널목에서 만난 여자한테 해준 이야기 있잖아.”
하, 그거 또 이야기 해야 돼? 내 표정이 안 좋아지자 형사 아저씨가 얼른 물었다.
“그거 정말이니?”
음, 다행이다. 정말이냐고 묻는 걸 보니 이미 다 알고 왔구나.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훨씬 좋네.
“네, 맞아요.”
“꿈에서 봤다는 이야기도 진짜야?”
“네.”
“꿈에서 언제? 밤에 잘 때?”
“아뇨.”
“그럼?”
왜 그런 게 궁금할까? 잠깐 망상 같은 걸 할 수도 있지.
“그냥 건널목 건너다 아저씨를 뚫어지게 봤어요. 그리고 약간 어지러워지면서 그런 게 보였어요.”
“························”
“그리고 그 아주머니한테 말해준 거예요. 그게 다예요.”
“왜 말해줬는지 물어도 돼?”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니까.”
“무슨 거짓말?”
“사랑한다고 했어요. 수녀님이 말씀하셨어요. 짐승이 아닌 이상 사람은 한 여자에게만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그래서 말했어요.”
“네 꿈이라며. 그게 진짜라는 법 없잖아.”
“네.”
“네? 뭐가 네야?”
“진짜라는 법 없다고요. 그냥 말했어요. 짜증나서.”
“짜증이 나? 왜?”
그날 있었던 일과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설명하자, 형사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면 두 부부가 지들이 불법주차를 해놓고 차가 긁히니 성질을 냈다.. 고등학생이 다친 것 같은데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차만 생각하고 애가 거렁뱅이 자식이라 보상도 못 받을까 걱정했다 이거야?”
“네.”
“그래서 넌 그 꿈이 사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말해줬다는 거고?”
정리를 해보니 참 나쁜 짓이었구나. 말을 하다 보니 알았다. 속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 속 양심이 말한다. 그건 나쁜 짓이었다고.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형사 아저씨가 고개 숙인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맞아?”
수녀님이 말했다. 잘못한 것보다 더 나쁜 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거라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네, 제가 나쁜 행동을 했어요.”
“························”
형사 아저씨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민하는 표정이 된다. 가만히 형사 아저씨의 반응을 기다리던 내가 물었다.
“그··· 아저씨, 아줌마. 많이 싸웠대요?”
“·····················..”
“저 때문에 많이 싸웠으면 제가 가서 사과 드릴게요. 그냥 꿈이었다고 말하면 돼요. 몇 대 맞아도 괜찮아요. 학교에서도 친구들이랑 싸우는데요, 뭐. 몇 대 맞는 건 아무렇지 않아요. 잘못을 했으니까.”
형사 아저씨의 눈썹이 꿈틀한다.
“설마, 너 보육원에서 맞는 거냐?”
“아뇨, 수녀님들은 잘해줘요.”
“························”
눈 앞에 있는 사람이 경찰이라서 였을까? 죄 없는 수녀님들이 의심을 받을까 걱정이 된다.
“진짜 잘해주세요. 한번도 때린 적 없어요. 루이사 수녀님은 진짜 잘해주세요. 맨날 밤마다 찾아와 동화책도 읽어 주시고, 로사 수녀님은 얼굴을 찡그리는 것도 본 적 없는 천사 같은 분이세요.”
필사적으로 수녀님들을 변호하는 나.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사 아저씨가 손을 들어 말을 멈춘다.
“됐다. 그 정도 이야기하면 알아 들었어.”
휴, 다행이다. 하마터면 나 때문에 수녀님들이 고생하실 뻔 했다.
“그분들 어디 계세요? 제가 찾아가서 말씀드릴게요.”
“·····················”
“저 걱정 마세요. 진짜 괜찮아요.”
“도경아.”
“네, 아저씨.”
“························..”
복잡한 얼굴로 내 얼굴을 뜯어보던 형사 아저씨가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찾아가서 사과 같은 거 안 해도 돼.”
“그, 그래도.. 아저씨한테 나쁜 말 했으니 직접 사과해야..”
“됐어, 어차피 그 사람 이제 없어.”
“··················네?”
무슨 말일까? 이제 없다니? 어디 먼 곳으로 간 걸까? 형사 아저씨가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도경아 잘 들어.”
“··················..”
작은 손에 쥐어 진 명함을 큰 손바닥으로 감싼 아저씨가 말했다.
“그게 또 보이면 바로 아저씨한테 연락하는 거야. 알았지?”
“그거요?”
“응, 꿈 말이야. 밤에 자면서 꾸는 꿈 말고 그때 건널목에서 봤던 꿈. 그런 게 또 보이면 바로 아저씨한테 전화 해줄래?”
“왜요?”
아저씨가 빙긋 웃는다.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예요?”
아저씨가 내 이마를 만져주며 말했다.
“아니. 일단 그게 진짜인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그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기억해, 꼭 연락하는 거다. 알았지?”
남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다 먹고 가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아저씨. 손에 남겨진 아저씨 명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눈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보인다.
‘총경 강혁.’
강혁이 이름인 것 같은데. 총경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살면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 작은 만남.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저 그렇게 지나치고 잊어 버리는 일들. 하지만 잠시 후 생긴 일로 인해 나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를 만나고 경찰 형, 보육원에 돌아온 건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다들 잠자리에 들 무렵 보육원에 도착한 나는 친구들이 깨지 않게 소리를 죽이고 문을 열었다. 살금살금 신발을 벗고 중문을 여는 순간, 내 귀에 루이사 수녀님과 로사 수녀님의 작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수녀님. 정말이요? 도경이와 대화를 나눈 부부가 살인사건에 휘말렸다고요?”
내 이름이 나왔다. 그런데 살인사건이라니. 아무리 어려도 고등학생 형들이 보는 뉴스에서 나오는 살인이란 단어는 알 수 있다. 그런데 나와 관계가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루이사 수녀님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경찰 말로는 우리 도경이가 남편이 외도하는 걸 알려주는 바람에 아내가 앙심을 품고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 심지어 외도 상대가 아내가 하는 사업체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아내의 부모님 유산을 받고 나서 이혼하려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야.”
“아니, 도경이가 그걸 무슨 수로 알아요?”
“모르겠어, 나도. 꿈에서 봤다고만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어쨌든 로사, 아이들 동요하지 않도록 절대 비밀 지켜야 돼. 특히 도경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큰 충격을 받을 거야. 알았지?”
“그럼요, 수녀님. 우리 불쌍한 도경이. 말도 안 되는 사건에 휘말려 버렸네요. 어떡해..”
걱정이 가득한 두 수녀님의 음성.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진실된 걱정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리가 마구 후들거린다. 어느 순간부터 쥐고 있던 작은 주먹도 바들바들 떨린다.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여덟 살. 어린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잠깐 품었던 나쁜 마음. 골탕이나 먹으라는 심정으로 했던 말.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 세상에는 감춰야 할 진실도 있는 것임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 사건으로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아 걸었다. 학교에서 고아라고 괴롭히는 일진 녀석들에게 폭행을 당할 때도 날 밟아 대는 녀석들의 기억이 보였다. 하는 짓마다 쓰레기 같은 녀석들. 도저히 학생이라 볼 수 없는 짓거리를 태연하게 행하는 기억들이 뻔히 보였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녀석들이 한 짓을 증명해 징벌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 후엔? 부모들이 불려오고, 일부는 소년원에 가겠지. 누군가는 퇴학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생을 비관해서 그 중 하나가 그때의 아저씨처럼 죽어버린다면? 또 다시 내 입이 누군가를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뻔히 보이는 것들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강혁 아저씨도 내 기억에서 천천히 잊혀졌다.
**
강혁 아저씨를 다시 만난 건 의외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중학생이 된 나는 그때도 전교 1, 2등을 다투었다. 수녀님이 어느 정도 큰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부모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없으니 스스로 성공해야 한다고. 그러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수녀님은 내게 엄마 같은 존재이다. 그녀의 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수녀님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그런 날 고깝게 보는 시선은 중학생이 되어도 여전했다. 남녀공학인 학교. 옆 자리에 앉은 여학생은 처음엔 살갑게 굴었지만 곧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턴 말도 걸지 않았다. 특별히 괴롭히진 않았지만 마치 날 투명인간 취급했다. 괜찮다. 이제 이런 시선은 익숙하니까.
첫 중간고사 성적이 발표되고, 전교 1등이라는 성적표를 받고 얼른 보육원에 가서 수녀님께 자랑하려고 들뜬 나. 하지만 그 기분은 곧 와장창 깨져버렸다.
“공부는 잘해서 뭐하게?”
고막에 꽂히는 뾰족한 말투에 고개를 돌려보니 팔짱을 끼고 날 흘겨보는 여학생이 보인다.
“공부 잘해야 성공한다고 했어.”
“하? 누가?”
“수녀님이.”
“보육원 수녀님 말하는 거야?”
“··················..”
“야,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세상은 말이야, 공평해 보여도 각자 시작선이 다르다고 했어. 같은 속도로 달려도 너보다 한참 앞에서 출발한 사람이 도착 지점에 먼저 도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너 같은 애가 공부 잘 하는 게 싫어서.”
“·····················.”
뭐 이런 싸가지 없는 여자가 있지? 내가 노려보자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뭘 봐? 왜, 한대 치게? 깽값 물어줄 돈 있어? 수녀님이 부자인가 보지?”
여학생을 노려보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성적표를 힐끔 보았다. 반 석차 3등. 이 아이도 공부를 꽤 하는 모양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머리까지 타고 태어난 아이. 부럽다. 하지만 이 아이는 뭐가 모자라 아무것도 못 가진 내게 이렇게 대하는 걸까?
이럴 땐 무시하는 편이 낫다. 말없이 성적표를 필통에 접어 넣고 하교하기 위해 가방을 싸는 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노려보는 여학생. 가방을 챙기고 일어나려 하는 찰나 그녀가 말했다.
“재수없어. 공부 좀 잘하면 다야? 어차피 넌 사회 나가면 내 아래야.”
멈칫한 내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제야 반응이 있구나 하는 표정으로 비웃음을 흘리는 그녀.
“공부 잘해서 열심히 판, 검사 돼. 어차피 한국은 돈이면 다 되는 나라야. 판, 검사? 웃기지 말라 그래. 기업인들 뒤나 봐주는 게 공무원이야. 돈 없고 빽 없어서 그거 만들어 보려고 용 쓰는 것들이 공무원 되는 거라고. 그래야 돈 많은 사람들이 사람으로 봐주니까.”
차라리 고아라고 깔보고 때리기라도 하면 마주 주먹이라도 날려줄 텐데 저렇게 입만 나불대며 마음에 상처를 주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주먹이 부르르 떨렸지만 수녀님이 그랬다. 여자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이를 악물고 화를 참은 내가 말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다시 돌아섰을 때 또 뒤에서 그녀의 비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래, 당연히 알아서 하겠지. 부모가 없는데 네가 알아서 해야지 뭐 어쩔 건데?’
마음 속에 불쑥 악의가 솟구친다. 확 한대 쳐서 주둥이를 뭉개 버리고 싶다. 충혈된 눈으로 획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을 때. 그때 다시 내게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극심한 어지러움.
나도 모르게 비틀거리며 눈을 감는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강렬한 느낌의 끝. 그것은 또 다시 긴 어지러움 따윈 없었다는 듯 선명하게 보여진다. 여긴 어디일까?
시커먼 물. 조용한 곳에 울려 퍼지는 뱃소리.
나는 어두운 밤바다를 조명 하나 없이 달리는 작은 배 위에 서 있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한참 밤바다를 가르던 배의 선실에 들어가 조종을 하던 내가 천천히 배를 멈춘다. 그리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창을 열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투들이 어창 속에 들어 있다. 밧줄을 가져와 비닐봉투 속 물건들을 묶은 후 사람 머리통 만한 바위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비닐들을 바다에 던진다. 하나, 둘, 셋, 넷··· 각기 크기가 다른 비닐봉투들 다섯 개를 던지고 남은 마지막 하나의 봉투.
가만히 마지막 남은 봉투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장갑 낀 손으로 비닐을 연다. 뭘까? 검은 털 같은 것이 보인다. 미역 같은 건가? 내 손이 봉투 속에 들어가 털 뭉치를 들고 밖으로 빼낸다.
사람의 머리다.
40대쯤 보이는 남성의 잘린 머리.
충격적인 모습이었지만 아무렇지 않다. 나는 이런 짓을 자주 한 모양이다. 주머니 속에서 면도칼을 꺼내 머리의 눈 아래를 살짝 절단하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잘린 머리에서 약간의 피가 나온다. 손가락만한 아크릴 판에 피를 받아 조심스럽게 다른 판으로 덮은 후에 다시 비닐을 봉하고 바다에 던지는 나.
그리고 다시 극심한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또 다시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빨려 가는 나.
“헉!! 허억, 허억!!!”
현실로 돌아온 내가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붙잡은 채 숨을 몰아쉬자, 앞에서 비웃고 있던 여학생이 약간 당황한 얼굴이 된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멍하게 있다가 헐떡거리고.”
“헉, 헉! 헉!”
뭐지?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쓰레기 일진 놈들의 더러운 꿈을 본 것 같이 기분 나쁘고 끈적한 기억의 조각들. 하지만 매번 보는 그런 시시한 기억들과 달라. 살인이야. 그것도 사람을 토막내 바다에 던지는 극악무도한 살인이라고! 고개를 들어 당황하고 있는 여학생을 바라본 내가 눈을 가늘게 떤다.
“너 뭐야?”
여학생이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묻는다.
“뭐가, 뭐야?”
여덟 살 때 봤던 꿈. 나의 경솔한 말로 인해 두 부부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수녀님의 말씀을 훔쳐 들은 것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그때 자신이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건 후에 찾아온 형사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설마 이것도 사실이라고?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중학교 1학년 여자애가 힘 좋아 보이는 남자를 토막 내 죽일 수 있다고? 설마, 이건 진짜 꿈이겠지. 이번엔 정말 개꿈인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