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화. 진실을 읽는 소년 (6)
핸드폰 속 세상은 신세계였다.
보육원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꺼내자, 같은 방을 쓰는 형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헐, 현도경. 너 그거 어디서 났어?”
비록 신형 핸드폰은 아니었지만, 이런 게 없는 건 나와 같은 처지인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부러움 섞인 눈빛을 받으며 한껏 치솟은 어깨로 형들에게 인심 쓰듯 한번씩 만져 보게 해줬다. 다행히 어린 시절부터 수녀님들의 교육을 받은 형들이라 핸드폰을 빼앗거나 하는 나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같이 생활하는 보육원생들의 기억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에이, 뭐 어때? 괜히 그런 거 보이면 서먹서먹 해지기만 하지.
누운 채로 다리를 꼬아 건들건들 흔들며 학교 애들이 하는 것처럼 게임도 해보고, 인터넷 검색도 하니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살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 딱 두 번 밖에 보지 못한 아저씨에게 받은 선물이라고 하긴 과분하지만 뭐 어때, 돈 내라는 것도 아닌데.
해가 바뀌고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의 보육원.
일요일은 자원봉사자들이 오는 날이다. 수녀님들의 힘으로 한계가 있는 대청소나 침구 빨래도 해주고, 식당을 하는 아주머니가 요리를 하러 와 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온 사람들은 평소와는 좀 다르다.
아침부터 2~30대의 젊은 형, 누나들이 잔뜩 몰려왔다. 그것도 양손에 먹을 것을 가득 들고. 친절한 미소로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젊음이 주는 힘으로 오래 되어 비가 새는 지붕까지 고쳐주는 형, 누나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 보다. 오후 네 시쯤 되자 일이 마무리되고 하루 종일 봉사를 했던 형 누나들과 거실의 TV앞에 앉아 그들이 사온 과자를 먹고 있던 시간. 문 쪽에 앉아 있던 봉사자 형이 열리는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곤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외친다.
“충! 성!”
TV를 보던 아이들이 놀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아이들을 자기 무릎에 앉혀 놓고 TV를 보던 형, 누나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나 경례를 한다.
“충! 성!”
여러 명이 동시에 내지르는 고함 소리에 보육원에서 제일 어린 다섯 살 진숙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으아아앙!”
근데 방금 이 형, 누나들이 충성이라고 했다. 그냥 자원봉사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현관문에서 불쑥 머리를 들이민 아저씨. 그를 본 내 눈이 동그래졌다.
“강혁 아저씨?”
내 입에서 아저씨 이름이 나오자 주변에 있던 누나가 몸을 흠칫하며 쳐다본다. 강혁 아저씨가 맨 먼저 경례를 한 형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기들 놀라서 울잖아, 인마.”
“죄송합니다!”
“죄송은.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텐데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국민 세금 빨고 사는 경찰이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건 당연하니까 비번에 봉사활동 시켰다고 뒤에서 욕하기 없기다?”
“제, 제가 그럴 리가요.”
“하하, 쉬어.”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들어온 강혁 아저씨가 아이들을 쭉 돌아보다 어깨를 으쓱한다.
“나 연예인 아닌데. 사인이라도 해줘?”
뭐야, 저 개그는. 보육원생들이 웃기지도 않는 개그를 하는 아저씨를 빤히 바라보다 금세 관심을 잃고 TV를 보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일은 가끔 있었다. 물론 지금처럼 경례 구호를 붙이진 않았지만 회사에서 단체 봉사활동을 나올 때면 오후 늦게 높은 사람이 얼굴을 비추고, 그때 모두가 달려 나와 인사하기 바쁜 장면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니다.
강혁 아저씨는 자기 말을 씹는 아이들을 보곤 머리를 긁적이다, 아직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날 확인하고는 씩 웃으며 밖으로 나가자는 듯 고갯짓을 한다. 애들 앞에서 아는 척 하기 그런 걸까? 뭐 상관은 없겠지.
신발을 신고 보육원 앞, 자그마한 놀이터 그네로 간 아저씨가 두 개의 그네 중 하나에 걸터앉으며 주머니를 뒤지다 멈칫한다.
“아, 여기 애들 있는 곳이었지, 참.”
뭐냐, 설마 보육원 놀이터에서 담배라도 태울 셈이었던 걸까? 내가 빈 그네에 앉자 강혁 아저씨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이, 현도경이.”
“예.”
“넌 인마. 어째 전화 한통 안 하냐? 전화기도 줬는데.”
“꿈 꾸면 전화하라면서요.”
“안 꿨어?”
꿨다. 아니 봤다. 하지만 말해 뭐하겠는가?
“네.”
“쩝, 그래도 인마. 안부 전화 좀 하고 살자. 뭐 하고 사는지, 여전히 공부 잘하는지 이런 거 궁금하다고.”
아저씨가 그게 왜 궁금한데요? 라는 질문이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핸드폰도 주고 아랫사람들 시켜 봉사활동도 하게 보내준 고마운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 아까 보니 오래 수리하지 못한 지붕 수리를 했다고 루이사 수녀님이 엄청 기뻐하시는 모습도 봤으니까.
“공부는 여전히 잘해요.”
“오, 여전히 1등해?”
“예, 기말고사도 전교 1등이요.”
“허허, 이 자식. 이거 경찰 하기 아까운 인재일 수도 있겠는데?”
“이제 겨우 중2인데요 뭘.”
“중2병은 괜찮냐?”
“저 그런 병 안 걸려요.”
째려보며 내뱉은 말이 귀여웠던 걸까? 실실 웃는 강혁 아저씨가 그네를 흔들기 시작한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내가 물었다.
“봉사활동 확인하러 오신 거예요?”
“뭐, 겸사겸사.”
“겸사겸사? 그럼 딴 볼일은 뭔데요?”
“너 보러.”
음? 날 왜 보러 오지. 일년 동안 연락 한번 안 했는데. 반대로 말하면 이 아저씨도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안 했다. 강혁 아저씨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원래 인마. 이번 봉사활동은 성남에 있는 보육원으로 가는 거였다고. 여기로 바꾸느라 과장 놈 눈치를 얼마나 봤는데.”
“차장이 무슨 과장 눈치를 봐요?”
“쯧쯧, 아랫사람 눈치 안 보는 차장들이 욕 먹고 일찍 옷 벗는 거다. 난 아주 가늘고 길게 해먹을 거야.”
넉살 좋은 아저씨. 이번 개그는 좀 웃겼다. 보통 경찰이라고 하면 사명감으로 일 하던데. 이 아저씨는 생계형 경찰인가?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이 차장까지 될 리는 없고. 그냥 농담이겠지? 그래도 약간 웃음기 있는 얼굴이 된 날 확인한 강혁 아저씨가 물었다.
“생각 좀 해 봤어?”
“뭘요?”
“경찰대학교 이야기.”
“아, 뭐. 사정 되면 가고요.”
강혁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린다.
“뭐야, 작년엔 경찰 하고 싶다며.”
“애들 꿈은 원래 자주 바뀌잖아요.”
“쳇.”
뭔가 더 설득하려 하는 것 같았지만 그 순간 아저씨 품에서 전화가 울린다. 검지를 들어올린 아저씨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통화 좀 하게.”
아저씨가 전화를 받는다. 상대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아저씨 목소리를 보아 좀 골치 아픈 일인가 보다.
“어, 3팀장. 어, 어. 시간 얼마나 있어? 음, 일단 계속 취조해. 헛수고 될 확률도 있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니까. 작은 아들놈 그거 분명히 수상한 점이 있다며? 끝까지 파, 시간 모자라면 내 선에서 어떡하든 더 끌어 볼 테니까. 알지? 시체가 없으면 사건도 없어. 반드시 시체 찾아내.”
대수롭지 않게 통화를 듣고 있던 내 눈이 번쩍 떠진다. 시체? 살인사건일까? 문득 드라마에서 멋지게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대단한 형사들 이야기가 떠오른다. 전화를 끊고 다시 날 보는 아저씨. 잠깐 무슨 이야기 중이었는지 까먹었던 모양새로 눈동자를 굴리던 아저씨가 손가락을 튕긴다.
“아! 너 이씨. 경찰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때 나랑 이야기 했던 거 기억 안나? 잘만 하면 너 무시하던 놈들도 설설 기게 할 수 있다니까?”
내가 가자미 눈을 뜨고 말했다.
“저 이제 중2예요. 청소년한테 꿈을 줘야 할 어른이 꿈을 꾸는 이유를 그런 걸로 대면 어떡해요? 나중에 커서 경찰 되어서 저 무시한 인간들 전부 감옥 보낼까요? 무슨 죄목으로요, 인격모독? 명예훼손?”
“·····················.”
강혁 아저씨는 눈을 깜빡이다, 뒤통수를 긁는다. 이런 허술한 아저씨가 어떻게 차장이 된 거지?
“음, 그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번엔 내가 뒤통수를 긁는다. 이 아저씨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그냥 이상한 게 아니었다. 다른 어른들과 다르다. 다른 어른들은 내가 이런 식으로 조목조목 따지면 맞는 말을 해도 버릇이 없다는 둥, 네가 보육원에서 부모교육 없이 커서 그렇다는 둥 까 내리려 사력을 다하던데. 아이한테 지기 싫어 못할 소리 다 하는 어른들과 이 아저씨는 좀 다른 것 같다. 지금도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가.
강혁 아저씨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 가방을 뒤져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내민다.
“자.”
“이게 뭐예요?”
“선물이다. 이거 주려고 왔지. 네가 잘 몰라서 그런 건데 차장쯤 되면 이런 곳 안 온다. 과장이면 몰라.”
어깨를 쭉 펴는 아저씨. 자세히 보니 귀여운 면도 있네. 아, 물론 선물을 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근데 이런 거 자꾸 받아도 되나? 수녀님이 대가 없이 잘해주는 사람을 제일 조심하라고 했는데. 잠깐 의심을 했지만 포장된 선물상자에 자꾸만 눈이 간다.
강혁 아저씨가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선물은 받은 자리에서 열어보는 게 예의다, 인마.”
“··················”
“내가 열어줘?”
강혁 아저씨가 상자를 덥석 붙잡는다. 나도 모르게 빼앗기지 않으려 손에 힘을 꽉 주고 상자를 감싸니 씩 웃는 아저씨.
“새끼, 좋으면서.”
좀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선물이 뭔지 궁금하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어보니 이번엔 정말 최신형 핸드폰이다. 그것도 새 박스 그대로 있다. 놀라 아저씨를 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전에 작전 때 쓰던 구형 핸드폰 준 게 좀 미안해서. 그거 내 돈으로 산 거다? 미안하지만 포장지는 제거했어. 개통을 해야 되니까.”
그런 것쯤은 아무 상관없다. 이거 우리 반에서 제일 잘 사는 애가 가지고 있는 폰인데. 내가 이런 걸 써도 될까?
“저, 아저씨. 이건 좀.”
“됐어, 인마. 부담 가지라고 산 거 아니다. 아, 부담 조금은 가져라. 미래의 경찰 동료에게 주는 일종의 뇌물이니까.”
“························.”
강혁 아저씨가 그네에 앉은 채로 게걸음으로 걸어 내게 찰싹 붙은 후 어깨동무를 한다.
“그러니까 경찰대학교 오는 거다?”
“·····················.”
이 아저씨는 도대체 나의 뭘 보고 이러는 걸까? 난 그냥 발에 채이는 중학생일 뿐인데. 공부 잘하는 거? 전국에 학교가 몇 개인데. 전국의 학교 수만큼 전교 1등이 있다. 난 그저 공부 좀 하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다. 남의 기억이 보이는 거? 사실 잘 모르겠다. 내 눈에 보이는 게 전부 진실인지도. 지난 번에도 여학생이 드라마를 본 시시한 기억을 읽었다. 그런 걸 읽어내는 게 경찰 생활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아저씨.”
“음?”
“솔직히 말해 주실래요?”
“뭘?”
“왜 저한테 자꾸 경찰 하라고 하시는 건지.”
“·····················..”
아저씨가 순간 멈칫한다. 고민하던 강혁 아저씨가 잠깐 주변을 돌아본 후 결심한 듯 말했다.
“중2면 몇 살이지?”
“열 다섯이요.”
“음, 그 정도면 알 거 아는 나이긴 한데.”
“뭘 알아야 되는데요?”
조금 더 고민하는 듯한 아저씨가 숨을 한번 고르고 나서 말했다.
“너 여덟 살 때 건널목 사건 기억 나?”
그걸 어떻게 잊을까? 내 짧은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네, 기억해요.”
강혁 아저씨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네가 그때 꿈에서 부부 중 남편이 도연이라는 여자와 바람 피우는 걸 봤다고 했지?”
“네.”
강혁 아저씨가 잠시 뜸을 들인다. 눈치를 보는 듯한 아저씨. 이제 경찰의 입으로 그 날의 진실을 들을 때다. 정말 수녀님들의 이야기처럼 아내가 남편을 죽였을까?
“그냥 이야기해 주세요.”
강혁 아저씨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결국 입을 연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에 아내가 남편을 죽였다.”
혹시.. 했던 마음이 역시.. 로 바뀌었다. 정말 그 사건 때 살인이 일어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