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8화 (8/328)

제 8 화. 진실을 읽는 소년 (7)

강혁 아저씨의 말을 듣는 내내 난 혼이 빠져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초점 잃은 눈빛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사람이 죽었다고?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진실이었지만 경찰의 입으로 듣고 나니 또 다시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때 자기 차에 기스 났다고 고등학생 형에게 고함을 치던 그 아저씨가? 그것도 그렇게 사이가 좋아 보이던 아내가 죽였다고? 정말 나 때문에?

“왜··· 왜요?”

말까지 더듬는 날 보곤 혀를 차는 아저씨.

“그땐 네가 너무 어려서 말 못했지. 뭐, 지금도 어리긴 매 한 가지이긴 하지만.”

당신이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단지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죠. 강혁 아저씨는 지금도 이걸 벌써 말해주는 게 옳은 일인지 고민하는 눈치다. 어쨌건 난 아직 미성년자이니까. 몇 번이나 혀로 앞니를 핥으며 고민하던 아저씨가 말했다.

“살인사건이 나고 조사결과,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걸 의심한 아내가 사립탐정을 고용해 뒷조사를 했고, 그 결과 남편이 몇 년 전부터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에 더해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유산을 받고 이혼하려는 심산이란 것까지 알게 됐지. 아내는 화가 나 그 길로 내연녀에게 달려갔어.”

문득 든 생각. 그렇게 사이 좋은 부부관계에서 왜 의심이 생겼을까?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 의심을 내가 주었으니까. 내가 아니었다면 아내는 남편을 의심하지 않았을 테니까.

“제, 제, 제가 그런 말을 해서···”

강혁 아저씨가 죄책감이 깃든 내 표정을 읽고 손사래를 친다.

“그 사람들 잘못이다. 넌 상관없어. 뭐 하여간 네가 꿨던 꿈이 진짜였던 거지. 남편은 실제 바람을 피웠고, 그걸 안 아내가 내연녀에게 달려가 머리채를 붙잡았다. 당황한 남편이 달려와 말렸고 아내는 홧김에 남편을 화분으로 내리쳐 죽였다. 사실 처음엔 네가 정말 사람의 과거를 본다는 걸 믿지 않았다. 그저 혹시나 그런 능력이 정말로 있다면 경찰 수사에 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인연의 고리만 채워뒀지. 그런데 일년 전에 넌 다시 내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그때도 남의 과거를 봤었지.”

그때 그 여학생 사건 이야기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창피하다. 고작 드라마를 본 기억을 보고 경찰 차까지 얻어 타고 서울 경찰청까지 들어 갔다니. 얼굴에 불이 날 지경이다.

“그거 드라마 이야기라면서요.”

강혁 아저씨가 씩 웃는다.

“그래, 드라마 이야기였지.”

강혁 아저씨가 자기 관자놀이를 톡톡 친다.

“네 1학년 때 짝이었던 여학생이 당시 재미 있게 보고 있던 미국 드라마의 내용.”

“·····················.”

응? 그게 정말이었다고? 개꿈이 아니었다고? 그럼 내가 그 여학생이 본 드라마 내용을 읽었단 말이야? 그냥 어디선가 스쳐가며 본 TV드라마의 흔한 이야기가 보인 게 아니고? 강혁 아저씨가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발동하는 능력인지는 나도 아직 모른다. 너 스스로도 모르겠지. 하지만 발동 방법을 정확히 안다면 너는 남의 과거를 읽을 수 있어. 물론 그것이 꼭 범죄에 대한 기억은 아닐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 넌 강렬하게 남은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만큼 강렬한 기억은 없으니 네 앞에 범죄자가 있다면 사건에 대한 기억을 읽어내는 것이 가능할 지도 몰라. 난 그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거다.”

내게 능력이 있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아저씨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꽤 자주 보인다. 그렇다고 시도때도 없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가만히 강혁 아저씨를 바라보던 내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만약 그게 우연이었다면요? 사실 제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쩌실 건가요?”

강혁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너 공부 잘하잖아? 머리 좋은 경찰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뭘.”

“·····················”

이제 퍼즐이 맞추어 진다. 나는 그때 여덟 살이었다. 당연히 어린 내게 사건의 전말을 알려줬을 리 없다. 어린 아이에게 큰 충격이었을 테니까. 아저씨는 그때 내 말을 듣고 경찰을 시켜 보려 하는 것이다. 아저씨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안다. 나는 뭔가를 본다. 하지만 그것이 내 착각이라면? 아니, 부부사건도 그렇고 여학생 사건에서도 읽어낸 꿈이 그들의 기억이 맞다고 했었지. 그래,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내가 읽어낸 모든 기억이 진실이란 확신은 없잖아. 그렇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내 눈빛에서 생각을 읽어낸 강혁 아저씨가 씩 웃으며 이마를 주먹 끝으로 툭 때린다.

“뭔 생각을 하는 거냐? 지금 경찰 하는 사람들도 다 보통 사람들이다. 능력이 있건 없건 보통 사람들인 경찰들 사이에서 열심히 하면 그만이지, 안 그래?”

아, 그렇구나. 경찰들이라고 전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잖아. 그들도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걸 깜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뜻 경찰이 되겠다는 말은 안 나온다. TV에서 봤다. 사회에 나와 전공 살려 일 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지만 경찰대는 다르다. 졸업생 90%이상의 진로가 경찰이다. 거기 들어가면 중도 포기하고 다른 진로로 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가만히 중학교 2학년 아이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강혁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지금은 말해주기 어렵지만, 그때 그 남편과 바람을 피우던 여성의 이름이 김도연이었지. 도경이 네 말과 정확히 일치했다. 또 그녀가 사립탐정을 고용할 때 김도연을 지목해 조사해 달라고 할 수 있었던 건 그 여자가 자기가 하는 피부관리 센터에서 일하는 여자였기 때문이지. 넌 분명히 그때 꿈을 통해 남편의 과거 기억을 본 거야.’

이 녀석을 어떻게 꼬셔야 될까? 사실 어린 시절 반짝 능력이 발현되었다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사람은 많다. 이 아이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비록 일년 전에 다시 한번 발현되었다고 하지만 또 다시 나올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경찰대학교를 나와 경위부터 경찰 생활을 시작할 수 있으면 아이 미래는 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엔 전화가 아니라 문자다. 힐끔 도경을 보니 아직 고민하고 있는 눈치다. 액정을 바라본 강혁의 눈이 살짝 찡그려진다.

[강력 3팀장 : 작은 아들은 여전히 범행을 부인 중입니다. 최초 진술과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합법적 구류 시간은 앞으로 21시간 남았습니다.]

21시간. 골치 아프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검찰 놈들과 먹어야 할 것 같다. 친분으로 비벼서 라도 시간을 벌어줘야지. 그게 차장의 일이니까. 강혁이 핸드폰을 품에 넣고 다시 도경을 보았을 때 아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민할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아저씨.”

“왜?”

“아까 전화 통화하신 거요. 사건이죠?”

“들었냐?”

“바로 옆에서 통화하는데 제가 청각장애인도 아니고 어떻게 못 들어요.”

“하하, 그건 그러네. 맞다. 아주 골치 아픈 사건이지.”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안돼요?’

“안돼.”

“왜요?”

“미결사건은 외부에 비밀을 유지한다.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가 문제가 생길 줄 모르니까.”

“음.”

맞는 말이다. 하긴 나 같은 어린 녀석한테 사건 정보를 줄 리가 없지. 하지만 내겐 지금 확신이 필요하다. 내 인생을 결정해야 될 순간이니까. 정말 내가 읽어내는 것들이 사람들의 기억일까?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짓는 날 가만히 보던 강혁이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드라마’ 이야기다.”

응? 갑자기 뭔 드라마? 고개를 들자 강혁이 윙크를 한다.

“내가 드라마 시나리오를 하나 써볼까 하고 있거든. 범죄 수사 드라마인데 들어볼래?”

아! 사건 이야기 해준다는 거구나. 표정이 나아지는 날 보곤 키득거리는 강혁 아저씨.

“경찰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긴다면 드라마 시나리오 정도는 이야기 해줘도 되겠지. 안 그래?’

“네!”

득달 같이 답하는 날 보곤 눈을 찡긋한 강혁 아저씨. 잠시 머리 속에서 내용을 정리한 아저씨가 지금까지와 다른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달 전, 실종사건 전담팀에서 강력계로 사건 하나가 이관되었다. 처음에는 단순 실종사건이었지만, 조사 중 강력사건일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들었던 거지.”

“그걸 누가 결정해요?”

“일단 1차적으로는 실종사건 전담팀에서 결정하고, 강력계가 추가 확인 후 최종결정한다.”

“어떤 문제가 있었나 보죠?”

“음, 일단 가족관계를 설명해야 할 것 같네.”

가족관계? 실종사건이 강력사건으로 이관되었다. 드라마에서 봤다. 강력사건은 상해치사부터 살인사건까지 포괄적인 범위를 맡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설명함에 앞서 가족관계를 설명한다는 건 범인이 가족 중 한 사람이란 걸까? 강혁 아저씨가 말을 잇는다.

“70대 홀 어머니가 있다. 48세 큰 아들이 모시고 살고 있고, 이 아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겐 또 한 명의 아들이 있다. 45세이고, 결혼해 분가를 해 살고 있다.”

평범한 이야기다. 70대에 혼자 되신 할머니는 꽤 많다. 요즘은 의학이 발전해 평균 수명이 늘었지만 여전히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는 분들은 많으니까. 강혁 아저씨가 계속 설명을 한다.

“작은 아들 내외는 얼마 전 안부인사를 드리려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하지만 통화연결이 되지 않았지. 처음엔 다른 일을 하시느라 통화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삼일이나 연락이 닿지 않았고, 큰 형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걱정이 된 작은 아들이 어머니 집에 와 봤지만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둘을 기다리기 위해 일주일을 그 집에 머물렀지만 돌아오지 않아 결국 실종 신고를 했지.”

묻고 싶은 점이 몇 가지 있었지만 최대한 말을 아끼는 편이 좋다. 내가 뭘 안다고. 가만히 경청하는 자세를 본 강혁 아저씨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역시 좋은 경찰이 될 재목이다, 넌. 그 나이에 질문 참기 어려울 텐데.”

내가 질문을 참는 건, 내 주제에 무슨 질문을 하냐는 의미도 있지만 잡소리 하지 말고 빨리 그 이야기나 계속해 달라는 뜻도 있어요, 아저씨. 궁금하니까 빨리 좀 말해 봐요. 강혁 아저씨가 다시 숨을 고른 후 말했다.

“실종전담팀이 현장에 가서 주변을 조사했다. 실종사건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된다. 두 사람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납치되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범인이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기다렸지.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협박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협박전화를 기다리는 동시에 현장조사를 하던 와중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뭘까? 이야기만 들어서 그런지 자신은 뭐가 이상한지 잘 모르겠다. 끝까지 질문하지 않는 날 보며 다시 웃음 지은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실종자의 물건들이 고스란히 집에 남아 있었다는 점.”

응? 그게 뭐가 이상하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도경이 네가 학교 갔다 와서 요 앞에 잠시 나갈 일이 생겼다고 가정하고, 보육원에서 나갈 때 뭘 가져가지?”

“어.. 지갑이랑 핸드폰이요.”

“그렇지?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데 피해자의 핸드폰, 지갑, 평소에 들고 다니던 백도 전부 집에 있었다.”

“요 앞에 나갈 때 잠깐 놓고 갈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두 사람 다 그럴 확률은 매우 낮다. 아들의 소지품도 모두 제자리에 있었거든. 자, 그럼 어떻게 되느냐? 실종자가 집에서 나간 후 범행에 노출된 게 아니란 뜻이 된다. 범행장소, 혹은 납치장소가 집이란 뜻이지. 이해 돼?”

쉽게 말해줘서 그런지 쏙쏙 들어온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그런지 수녀님이 해주시는 옛날 이야기나 드라마 보다 백배는 더 재미 있다. 물론 피해자가 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강혁 아저씨가 다리를 바꿔 꼬며 말했다.

“자, 그럼 납치장소가 집이란 걸 알게 되면 뭐가 달라질까?”

잠시 고민해 본다. 납치장소가 집이다. 남의 집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나?

“집 잠금 장치는 확인하셨어요?”

강혁 아저씨가 빙긋 웃는다.

“확인했지. 파손 흔적은 없다.”

“잠금 장치가 뭐였어요?”

“디지털 잠금 장치.”

음, 디지털이라면 번호 키를 누르는 거다. 그렇다는 건 범인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는 뜻이구나.

“작은 아들?”

강혁 아저씨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래, 비밀번호를 알고,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사람이 우선 조사대상이지. 물론 CCTV도 분석했다. 택배기사나 가스점검원도 범인이 될 수 있고, 얼굴을 알고 사는 이웃도 범인이 될 수 있으니까. 결론은 범인이 직접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거나, 집 주인이 스스럼 없이 스스로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거다. 피해자와 얼굴을 아는 면식범이거나, 배달원, 혹은 뭔가의 점검을 위해 들락거리는 사람이란 뜻이지.”

아, 그래서 아까 통화할 때 작은 아들을 심문하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가 나왔구나.

“그럼 작은 아들이 왜 두 사람을 납치했는지 확인하고 계신 건가요? 만약 배달원 같은 타인이 아니라 진짜 작은 아들이 범인이라면 납치된 그 사람들은 큰일이잖아요, 먹고 마실 것을 줄 사람이 경찰서에 잡혀 있으면.”

강혁 아저씨가 진중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납치사건이 아니다.”

응? 방금 작은 아들이 범인이라고 했는데, 왜 납치사건이 아니란 거지? 강혁 아저씨가 날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살인사건일 확률이 매우 높다.”

놀란 내가 숨을 들이켰다. 아들이 형과 엄마를 죽인다고? 도대체 왜?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래, 이건 경찰들도 추측한 걸 거야. 가족이 왜 서로 죽여? 방금 이 아저씨도 확률이 높다고 했지, 그게 진실이라고 말한 건 아니잖아.

강혁 아저씨가 허리를 숙여 손 깍지를 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아저씨의 입이 마침내 열린다.

“현장인 어머니 집 화장실에서 강한 락스 냄새가 났다.”

락스 냄새? 그게 무슨 의미인데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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