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화. 시체 없는 살인사건 (1)
나도 중학교 2학년이다.
처음 화장실에서 락스 냄새가 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생각을 잠깐하긴 했지만 수많은 드라마에서 봤다. 범죄현장에서 락스 냄새가 난다는 것은 시신을 깔끔하게 유기하기 위한 행위이거나, 혈흔을 지우기 위한 은폐수법임이 떠올랐다.
“음···”
머리 속 계산을 끝내고 침음을 흘리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씩 웃는 강혁 아저씨.
“머리 좋은 녀석. 바로 알아채네. 설명을 더 해줘야 할 줄 알았는데.”
그네에 앉아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본다. 물론 나보다 현장에서 닳고 닳은 형사들의 추론이 옳을 확률이 높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런 사건을 접하면 각자의 추론을 대기 바쁘고, 그것이 옳다는 착각으로 강한 주장을 하기 마련이다.
“혹시 현장사진 같은 거 없어요?”
살인현장이라고 했지만 현장에 증거가 남지 않았다. 내가 좀 어리긴 해도 피로 점철된 현장이 아닌 이상 사진쯤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강혁 아저씨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드라마 이야기라고 했잖아.”
“하하..”
그렇지, 아저씨는 내게 진짜 사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당연하지, 난 일반인인데 그런 걸 알려줄 리가 없지.
“그럼 그냥 이야기로 해주세요. 현장에 또 이상한 건 없었나요?”
“음, 나도 가본 건 아니라서.”
“왜요? 아저씨도 경찰이잖아요.”
“인마, 어떤 차장이 현장을 다니냐? 그건 일선 경찰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경찰직무에 위 아래가 어디 있어요? 경찰이면 응당 그래야죠.”
강혁 아저씨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인마, 경찰청 차장이 뭐 하는 사람인 줄 모르냐? 밑에 부서가 몇 개인데 애들 담당 사건 현장에 다 가려면 몇 천 군데야. 그걸 다 어떻게 다니냐?”
음, 하긴 경찰서도 아니고 경찰청 차장이면 밑에 형사만 몇 백이겠지. 순경까지 다 합치면 몇 천이 될 수도 있고. 아저씨 말이 맞다.
“보고서에 나온 내용 중에 이상한 점은 없고요?”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쉰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음, 별다른 건 없어. 현장감식 결과 혈흔은 없었고, 화장실은 배관공을 불러 파이프까지 전부 검사했지만 혈흔은 나오지 않았어.”
“그건 락스 냄새와 살인과 연관이 없다는 뜻인가요?”
“아니, 제대로 지웠다는 뜻이지. 우리가 배관까지 열어볼 수 있다는 걸 눈치채고 미리 손을 쓴 거야.”
대단하다. 자 다시 정리해 보자. 범인은 면식범이다. 현관문 잠금 장치를 파손하지 않았다는 건 어머니와 큰 아들이 손수 문을 열어줬거나 직접 열고 들어왔다는 뜻이니까. 게다가 매우 지능범이다. 일반인이 살인을 했다면 당황한 마음에 화장실 배관까지 청소할 정신은 없었을 것이다.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이다.
강혁 아저씨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 외에, 피해자들의 물건들이 모두 집에 있었다는 점. 평소 신고 다니는 신발도 모두 신발장에 있다는 점 외에는··· 아, 주방에 붙이는 달력이 있었는데, 이 달 15일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는 거 말곤 없어.”
빨간색 동그라미?
“무슨 뜻인지는 알아보셨고요?”
강혁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한다.
“작은 아들의 아내 말로는 어머니 친구 생일이라서 표기해 둔 거라고 하더군.”
음, 그건 별 거 아니지. 수녀님도 맨날 거실에 붙어 있는 은행에서 준 달력을 이 달 달력으로 바꿀 때 중요한 날들을 체크해두곤 하시니까. 특히 보육원에는 아이들이 많고 아이들 생일을 다 챙겨주려면 달력에 표기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들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강혁 아저씨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용의자로 구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드라마에서 봤어요. 그거 몇 시간이에요?”
“48시간, 이제 21시간 남았다. 그 안에 기소하거나, 석방해야 돼. 하지만 시체를 찾지 못하면 사건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시간까지 시체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돼요?”
“석방이지, 일이 복잡해 지는 거야. 범인이 풀려나면 도주의 위험도 있고, 제3의 단서를 은닉할 수도 있다. 물론 경찰이 24시간 밀착 감시하겠지만 감시가 느슨해 질때까지 기다렸다 결정적 증거를 은닉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어. 범인 입장에선 목숨 걸고 하는 짓이니까.”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강혁 아저씨가 그네에서 일어난다.
“좀 더 있고 싶지만 검찰 관계자를 좀 만나 봐야 하니, 오늘은 그만 가마. 그리고 네 말도 맞는 것 같다.”
응? 뭐가 맞다는 거지? 물끄러미 올려 보는 날 바라보곤 씩 웃은 아저씨가 말했다.
“차장이라고 현장 안 가보는 거 말이야. 직무 유기 맞다고. 마침 멀지 않은 곳에 현장이 있으니 한번 들려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골치 아픈 사건이니까.”
역시 아저씨는 다른 어른들과 다르구나. 어린 애 말이라고 무시하기 보다, 인정하고 빠르게 행동을 교정하는 사람. 이래서 이 사람이 차장이구나. 그런데 나도 따라가 보고 싶다.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니까.
“혹시···”
강혁 아저씨가 바로 말을 막는다.
“안돼.”
“···············..”
“어떤 미친 경찰이 중학생을 살인현장에 데려 가냐? 그냥 여기 있어.”
나도 모르게 실망한 표정이 밖으로 드러난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안 될 거다. 아저씨가 제대로 된 경찰이라면 내게 현장을 보여줄 리가 없지.
강혁 아저씨가 아우터를 살짝 털며 말했다.
“그럼 난 가보마. 전화기 준 거, 내 전화번호 입력해 놨으니까 또 꿈을 꾸게 되면 전화해. 아니, 꿈 안 꿔도 가끔 전화 좀 하고 살아라, 인마.”
“·····················.”
“그리고 경찰대 꼭 가는 거다? 약속 했다?”
사실 나 꽤 자주 꿈을 꿔요, 현장 데려가면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수녀님이 그랬다. 억지를 쓰는 건 콩을 팥이라 우기는 것과 같다고. 그건 몰상식한 인간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될 순 없지. 아저씨가 안 된다고 하는 건 내가 너무 어리고,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라는 합리적 이유 때문이니까. 아저씨를 배웅하려고 그네에서 일어나자, 그가 만류하며 말했다.
“나 그냥 저 앞에 주차해둔 차 타고 가면 된다. 그냥 여기 있던가, 들어가던가 해. 춥다.”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 준 후 뒤로 돌아 차 쪽으로 간다. 그러다 전화를 하려고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것이 보인다.
“어?”
아저씨 뒷주머니에서 핸드폰과 함께 두 번 접은 A4 용지 같은 것이 떨어졌다. 중요한 걸까? 주워서 가져다 드려야 할 것 같다. 그네에서 일어나 같은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아저씨를 따라가 종이를 주워 들었다. 별 거 아니면 그냥 버리면 되겠지.
단 한장이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걸까? 메모 같은 것이라면 당장 가져다 주면 되고. 종이를 펼친 내 눈이 커졌다. 어? 사진이네? A4 용지 한 장에 두 개의 사진이 프린트 되어 있고, 사진 아래에 설명이 써 있다. 첫 번째 사진은 화장실 사진이고, 두 번째 사진은 주방 사진이다. 첫 사진 아래는 ‘범행현장으로 추정되는 화장실의 모습’이라고 써 있고, 두 번째 사진에는 ‘설거지는 물론 청소까지 깔끔하게 되어 있는 주방’이라는 말이 써 있다. 이거 혹시 방금 말한 사건의 현장 사진인가? 자세히 사진을 보았지만 별다른 이상한 점이 없다. 가만, 이거 보고서라는 건가? 이거 떨어뜨리고 가면 안 되는 것 같은데. 고개를 들어 아저씨를 보자, 저 멀리 길을 건너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길 건너에 주차를 하셨나 보다.
아저씨를 쫓아가는 도중 문득 생각 하나가 파고든다.
나는 엄마 얼굴 한번 보는 게 소원인데. 어떻게 자기 엄마를 죽일 수 있지?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누가 범인일지는 아직 모르잖아? 꼭 아들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면 안돼. 하지만 만약에 아들이 엄마와 형을 죽였다면? 개새끼, 그럴 가족 있으면 나나 주지. 행복하게 잘 살 자신 있는데.
순간 열등감에 기초한 악의(惡意)가 솟구친다. 명절 때 친지나 가족들과 함께 어딘가 간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무척 부러웠는데. 만약 내게 그럴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잘해줄 텐데. 세상엔 가족이 있어도 그 가족을 죽이기까지 하는 미친놈들이 있구나. 그런 놈들은 다 잡아서 죽여야 된다. 그의 일상이 나 같은 이에겐 평생 꾸는 꿈인데. 그걸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놈이 있다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싫다.
꼭 잡혀라. 차라리 작은 아들이 범인이 아니었음 좋겠다. 그럼 이 뒤집어지는 속이 진정되지 않을 테니까. 바로 그때, 아저씨를 쫓아 가다 현장사진을 다시 한번 보았던 바로 그때, 내 눈이 커졌다.
저기 멀어지고 있는 아저씨도, 내 발걸음도 서서히 멈추어 가는 느낌. 온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이 느낌. 단 두 번 뿐이었지만 강렬한 이 느낌을 기억한다. 다시 꿈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빙글빙글 도는 세상 때문에 어지러워 구토가 나올 때쯤, 나는 화들짝 정신이 든다. 내 앞에 40대 남자가 있다. 불을 끄고 촛불만 켠 식탁. 저녁 식사자리는 아니다. 식탁 위에 아무것도 없다. 순간적으로 주변을 바라보았지만 이상하다. 방금 사진으로 본 현장이 아니다. 여긴 전혀 다른 집이다. 누구 집일까?
그때 내 입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나온다.
‘여보, 준비 다 됐어요?’
헉, 여자 목소리다. 내가 여자가 된 건가? 남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인다. 내 시선이 돌아가 식탁 위에 있는 작은 스탠드 달력을 본다.
‘15일이에요, 알죠? 우린 그 안에 일을 끝내야 되는 거고.’
‘알아,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내가 잊을까? 당신 명문대 나왔다고 나 무시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그리고 왜 자꾸 대학 이야기를 해요?’
남자의 표정이 바뀐다. 기분 나쁜 듯한 표정. 저 표정··· 안다. 열등감이다. 내가 제일 많이 짓는 표정이다. 내가 못 가진 걸 가진 남을 보면 기분이 나빠져 짓는 표정. 상대는 아무 뜻 없이 말 한 것이지만 그것이 날 무시하는 발언으로 들렸을 때 짓던 그 표정이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시 달력을 체크한 내가 말했다.
‘정확히 15일에 실종 신고하는 거예요, 예보가 정확하다면 그 안에 비가 두 번 올 거예요. 저수지가 범람하지 않는 걸 확인 후에 신고해야 돼요. 알았죠?’
‘알았다고.’
‘당신 사업 빚 다 갚으려면 이 길 밖에 없어요. 알죠? 이거 잘못되면 우린 거리로 나 앉게 될 거예요. 정신 똑바로 차려요.’
‘아, 알았다고!’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이 다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TV로 드라마를 보고 있다 날아온 돌이 화면을 깨어 버리는 듯한 충격에 눈을 질끈 감고 비틀거린다.
흑백이었던 멈춰진 세상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보도블록에 있던 나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헉! 헉, 헉!”
또 이런 느낌. 이건 가끔 남의 기억을 읽어냈을 때 느끼는 바로 그 느낌이다. 이번에도 진짜일까? 벌떡 일어난 내가 주차된 차의 문을 열고 있는 아저씨를 보았다.
15일에 실종신고를 한다.
사업 빚을 갚는다.
그리고 저수지가 범람하는지 테스트를 하고 신고한다.
단편적인 정보가 순간적으로 합쳐져 하나의 길을 만든다.
하지만 속단할 순 없다. 난 일반인이다. 내가 속단하면 사건이 틀어진다.
판단은 아저씨가 해야 된다.
차 문을 열고 몸을 밀어 넣는 강혁 아저씨. 나는 더 늦기 전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강혁 아저씨!”
차에 타려고 하다 멈칫한 아저씨가 뒤를 돌아본다. 손에 쥔 보고서를 마구 흔들며 뛰어가는 내가 소리쳤다.
“꿈! 꿈을 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