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0화 (10/328)

제 10 화. 시체 없는 살인사건 (2)

놀란 표정의 아저씨가 내가 들고 흔드는 보고서를 빼앗아 펼쳐 본다.

“아오.. 이게 왜.”

정말 실수일까? 그런데 실수한 표정이 아닌데. 마치 옳다구나 하는 표정이다. 일부러 흘린 걸까? 강혁 아저씨가 나를 힐끔 본 후 보고서를 갈무리하고 말했다.

“확실해?”

“뭐가요?”

“꿈 꾼 거 확실해?”

이젠 모르겠다. 이게 진짜 꿈인지, 아니면 내가 뭔가를 정말 보는 건지. 꿈은 잘 때 꾸는 거 아닌가? 난 잠을 자지 않았다. 심지어는 걷는 도중이었다. 나는 내가 만든 환상을 보는 걸까, 아니면 정말 남의 기억을 보는 걸까?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명한 영상이 보였어요.”

강혁 아저씨의 표정이 바뀐다.

“말해 봐.”

꿈에서 본 것을 최대한 사실 그대로 전하자, 듣는 내내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아저씨. 지금까지 보았던 어수룩한 모습은 사라지고, 형사들이 가진 날 것 그대로의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인다. 한번도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내 말을 듣고 있던 아저씨. 이제 무슨 말을 할까? 내가 도움이 되긴 한 걸까?

그런데 가만히 날 바라보던 아저씨는 내 예상과 다른 말을 꺼낸다.

“그거 보기 전에 무슨 생각했어?”

음? 그거 보기 전에? 음, 아저씨를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랑.. 아, 범인 놈 꼭 잡아서 족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구나.

“그냥..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강혁 아저씨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해?”

왜 이러는 거지? 잠깐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정말 범인이 빨리 잡히길 바랐나? 아니구나. 내가 못 가진 걸 가진 사람의 행동에 질투와 분노를 느꼈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녀석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만히 아저씨를 올려 보는 나.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나한테 실망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는 고아라고. 가진 건 열등감 뿐인 아이라 손가락질 하지 않을까? 게다가 아저씨는 경찰인데. 사람 죽이는 상상하는 것이 죄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날 안 좋게 볼 것 같다.

“그게..”

아저씨가 내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춘다.

“무슨 생각을 했다 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난 네가 그런 걸 보는 발동 조건을 알고 싶을 뿐이야. 그래야 발전을 시킬 수 있으니까.”

발전. 이 아저씨 진심이구나. 날 경찰로 만들겠다는 생각. 에라,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

“악의였어요. 범인을 죽이고 싶다는.”

“·····················왜?”

“나는 못 가진 걸 다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해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음.”

아저씨의 눈치를 본다. 실망하셨을까? 아저씨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긴다.

“일단 알겠다.”

아저씨가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탄 후에 창문을 열었다.

“도경아.”

솔직하게 말하자 마자 가버리는 아저씨. 나에게 실망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때 아저씨가 날 부른다.

“예···”

아저씨가 차 안에서 날 바라보다 씩 웃으며 머리에 꿀밤을 콩 먹인다.

“나는 인마, 오늘만해도 사람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게 다섯 번도 넘는다. 아까 보육원 오다 난폭 운전하는 놈한테도 그 생각했다니까? 확 큰 사고나서 죽어야 저렇게 운전을 안 하지! 이러면서.”

“·····················.”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 그걸 행동으로 옮기면 범죄가 되는 거고, 거기서 멈추면 정상인 거야. 네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네가 고아라서, 부모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마라.”

정말?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한다고? 아저씨는 경찰인데. 그것도 경찰의 정점에 가까운 곳에 있는 경찰청 차장인데 이런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루에 다섯 번이나?

“정말 다른 사람들도 그래요?”

“하하, 당연하지.”

“··················..”

날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지,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아, 보육원 형들도 장난처럼 죽여 버린다는 소리를 하곤 한다. 그게 장난이 아니라 진짜 화가 나서 할 때도 있긴 했지. 물론 행동에 옮기진 않았지만. 그렇구나,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구나.

내 표정이 나아진 걸 본 강혁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까, 난 사건 현장에 좀 가보마. 오늘 본 건 잊어. 아무리 실수라지만 너 같은 일반인에게 사건 보고서 내용을 유출한 게 알려지면 난 옷 벗어야 되니까.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알았지?”

검지를 입 위에 올리고 윙크를 하는 아저씨. 당연히 비밀을 지킨다. 이런 말을 한다고 좋을 사람은 없으니까.

“네, 아저씨.”

“그래, 난 간다.”

떠나는 아저씨의 차를 물끄러미 보는 내가 머리를 긁는다.

“이번에 보인 건 아무 것도 아니었나 보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내가 본 것 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더 보였겠지.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하셨으니 그랬겠지? 아니었다면 내가 본 것에 대해 더 자세히 물으셨겠지. 휴, 내 이럴 줄 알았다. 보이긴 개뿔.

다음 날. 월요일이라 학교에 간 나는 평소처럼 공부에 열중했다. 내 공부 방법은 별 거 없다. 오늘 배울 건 어제 미리 예습을 해 두었다. 귀로는 수업을 듣지만 눈은 다음 수업 시간에 공부할 것을 예습하고 있다. 이게 내 공부 방법이다. 오후 네 시가 되어 모든 수업이 끝나고 아직 야간자율학습을 할 나이가 아닌 중학생들은 학원이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 앞 문구점을 지나,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나. 그때, 내 앞에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정차하는 차가 보인다. 어떤 개념 없는 인간이 횡단보도에 정차를 하는 걸까? 어떤 놈인지나 보려고 고개를 든 내 눈에 창문을 여는 운전자가 보인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형이다.

“현도경?”

응? 처음 보는 형인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맞아?”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그러자 형이 얼른 신분증을 보여준다. 어? 경찰 형이네?

“강혁 차장님 알지?”

“어?”

“알아, 몰라?”

“알아요.”

“차장님이 너 빨리 데려오라고 보냈다. 타.”

내가 미쳤냐? 모르는 사람이 타라고 한다고 얼른 타게. 슬금슬금 물러나 도망갈 길을 물색하는 찰나, 품 안에서 새로 선물 받은 폰이 울린다. 잘됐다, 이걸로 시간을 끌자. 품 안에서 전화기를 꺼내 차 안의 형에게 보여준 내가 말했다.

“잠깐 전화 좀.”

전화 받는 척하다 형의 시선이 떨어지면 무조건 뛰자. 루이사 수녀님 전화겠지? 수녀님께만 전화번호를 알려 드렸으니까. 하지만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다른 사람의 것이다.

‘강혁?’

아저씨다. 아, 아저씨가 자기 전화번호 입력해 뒀다고 했었지.

“여보세요?”

-도경아, 나다.

진짜 아저씨다.

“예, 아저씨”

-내가 차 보냈다. 그 차 타고 빨리 이쪽으로 와줘.

뭐야, 진짜 아저씨가 보낸 거였어? 갑자기 날 왜?

“무슨 일 있어요?”

-시간이 없다, 일단 와. 설명은 얼굴 보고 해줄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저씨인데. 가긴 가야겠다.

“알았어요.”

전화를 끊자, 차 안의 형이 거보라는 듯 고갯짓한다.

“빨리 가자, 시간이 없어.”

“예.”

경찰 형은 운전자 쪽 창문을 열고 사이렌을 차 지붕에 붙이더니 질주를 시작한다. 와, 경찰이 이런 난폭 운전도 하는 구나. 난 경찰은 교통신호 다 지키며 다니는 줄 알았는데. 경찰들이 왜 법을 안 지키는 걸까? 운전에 집중하던 형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급한 일 아니면 운전 이 따위로 안 한다. 그렇게 보지 마. 사이렌 걸어 놔서 다 공무집행 중인 거 알고 비켜 주는 거 보이지?”

그러고 보니 차들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듣고 알아서 비켜주고 있구나. 경찰 대단하네. 앞에 있던 엄청 고급 차도 비켜주는 구나. 강혁 아저씨 말처럼 날 개돼지쯤으로 보는 부자들도 사이렌 소리 한번에 비켜서게 할 수 있구나. 뭔가 멋지다.

한 20분쯤 시원한 질주를 마치고, 커다란 건물로 들어간 차는 주차장을 돌아 건물 정문에 정차한다. 시동을 끄지 않고 내린 경찰 형이 주변에 있던 제복 차림의 경찰에게 키를 던지며 말했다.

“미안, 주차 좀 해줘. 급해서.”

“예!”

경례를 붙이는 경찰. 와, 멋있다. 급하면 이런 것도 해주는 구나. 저 형도 높은 사람인가?

“도경아, 뛰자. 3층이다.”

먼저 뛰는 형을 따라 얼결에 따라 뛴다. 바람처럼 계단을 오르는 형. 와, 엄청 빠르다 이 형. 나도 운동 신경은 뒤지지 않는다. 체육점수도 내신에 들어가기 때문에 평소에 운동을 꽤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형의 속도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순식간에 반 층 이상 앞질러 간 형이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본다.

“얼른.”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다. 최대한 발을 빠르게 놀려 3층에 도착하자, 다시 뛰는 형. 복도 중간에 있는 방 앞에 도착한 형이 노크를 한 후 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벌컥 연다.

“데려왔습니다.”

강혁 아저씨가 이 방에 있나? 문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자, 강혁 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서 있고, 여러 명의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이 서 있다. 그리고 유리 창문으로 되어 있는 한쪽 벽 안에 4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강혁 아저씨가 날 보자 마자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미안하다, 갑자기. 우리가 시간이 없어서.”

강혁 아저씨와 함께 방에 있던 아저씨 한 명이 시간을 확인 후 말했다.

“아홉 시간 남았습니다.”

강혁 아저씨가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춘 후 말했다.

“들었지? 아홉 시간 남았다. 그 안에 시신을 찾아야 된다.”

응? 이게 다 무슨 말이야? 영문을 모르는 날 보며 씩 웃은 아저씨가 유리 창 안 쪽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본 그거 말이다. 저 여자 맞아?”

내가 본 그거? 아, 꿈을 말하는 거구나. 유리창을 바라본 내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내 시점은 여자 시점이었어요. 내 모습을 보진 못했어요.”

“음. 범인이 거울을 보는 기억을 읽은 것이 아니라면 얼굴은 모른다. 한계가 확실하구나.”

형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보인다. 아마 그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거다. 강혁 아저씨가 다시 입을 연다.

“저수지가 범람하는 걸 두 번 지켜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지?”

“네.”

“신고는 15일에 한다고 했고.”

“네, 맞아요.”

강혁 아저씨가 유리창 앞에 컴퓨터 모니터에 떠오른 달력을 고갯짓한다.

“실종신고가 접수된 날짜는 15일. 그리고 사건 접수 전 9일과 13일에 각각 비가 왔다.”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눈을 깜빡이는 날 어깨로 툭 밀친 아저씨가 말했다.

“네가 본 게 맞아 떨어졌다고, 이 놈아.”

어, 어? 정말이라고? 강혁 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저수지가 범람하는지 확인한다. 그건 시신을 저수지에 숨겼다는 뜻이다. 9일과 13일 두 날짜에 모두 비가 온 건 서울, 경기다. 이곳에 있는 저수지 중 한 곳에 시신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지.”

저수지에··· 시신을 숨겼다고? 어안이 벙벙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날 힐끔 본 강혁 아저씨가 주변에 있던 다른 경찰들에게 물었다.

“서울, 경기 저수지들 다 파악했어?”

우락부락한 형사 아저씨가 말했다.

“총 37곳입니다.”

강혁 아저씨가 한숨을 쉰다.

“아홉 시간에 37곳을 언제 다 뒤져, 젠장.”

형사 아저씨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37곳 전수 조사를 하고, 구류시간이 끝나면 훈방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24시간 애들 붙여서 감시하겠습니다.”

강혁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서른 일곱 곳에 물 다 빼고 확인 한다고?”

“일단 수중 탐사팀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고 못 찾으면 물 빼야 될 거 아냐? 서른 일곱 곳 다 그렇게 할래?”

“························..”

갑자기 야단 맞기 시작하는 형사 덕에 움찔해 물러난 나. 사람 좋아 보이던 강혁 아저씨였는데 경찰들 사이에서 실제 사건을 지휘하는 모습엔 카리스마가 넘친다. 아저씨가 날 지그시 바라본다.

“도경아.”

“······. 네?”

“부탁 하나만 하자.”

“뭐··· 를요?”

강혁 아저씨는 고민스러움과 난감함을 동시에 얼굴에 담은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다 결국 입을 연다.

“장팀장.”

강혁 아저씨가 형사 아저씨들 중 꽤 나이 있는 자를 부르자, 깍두기 머리를 한 아저씨가 나선다.

“예, 차장님.”

“신문 들어가.”

“예.”

노트북을 든 형사가 방을 나서는 것을 힐끔 본 강혁 아저씨가 날 보며 말한다.

“도경아.”

“네.”

“마음 같아서는 저 방에 널 데리고 들어가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중학생을 살인 용의자와 대면 시키는 건 불가능해.”

순간 마음이 움찔거린다. 아마도 난 나도 모르게 겁이 난 모양이다. 강혁 아저씨는 그런 날 보며 팔짱을 끼고 말했다.

“부탁한다. 여기서 지켜봐. 그리고 그게 뭐든 보이는 게 있으면 내게 바로 알려줘.”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여자. 그 기억에서 봤던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저 여자는 최소 공범, 혹은 종범이다. 과연 내가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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