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화. 시체 없는 살인사건 (3)
나는 입을 잘못 놀려 사람을 죽였다.
아니, 평범한 가정의 아내로 하여금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죽이도록 종용했다. 강혁 아저씨가 말하는 나의 능력은 무엇 하나 증명된 것이 없다. 제3자에게 확인 받았던 사건은 단 두 건. 그 중 하나는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고, 나머지 하나는 고작 여학생이 전날 본 드라마 내용을 읽어낸 것이 전부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또 다시 나 때문에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드는 본능적 두려움이 나를 뒷걸음질 치게 한다. 하지만 내 주변의 상황은 나의 내면과 관계없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거울 너머 취조실로 강혁 아저씨가 장 팀장이라고 불렀던 깍두기 머리 아저씨가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피의자(被疑者)로 확신하고 있지만, 아직 용의자(容疑者)일 뿐이라 그런지 장 팀장 아저씨는 강압적 분위기로 진술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아니다.
취조실에 설치된 마이크가 내가 있는 방에 연결되어 있는지 며느리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형사님, 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돼요?”
장 팀장 아저씨가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놓고 앉으며 말했다.
“아아, 조사 끝나면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 끝나는지 묻는 거예요. 지금 몇시간 째인지 알고 계세요?”
시계가 없는 취조실이라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장 팀장 아저씨가 노트북 속 문서 프로그램을 열며 말했다.
“아직 법적 구류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때까지는 협조 부탁드리죠.”
“하··· 미치겠네.”
서류작성 준비 중인 장 팀장을 빤히 보는 며느리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전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고요. 아니, 무슨 경찰이 신고자를 용의자로 몰아요? 이래도 돼요?”
장 팀장 아저씨는 무척 노련한 형사인지 오히려 씩 웃으며 말했다.
“신정희씨. 전 당신을 용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만?”
신정희? 저 며느리 이름이 신정희인가 보다. 그녀는 황당한 표정을 한 채 테이블을 검지로 쿡쿡 찌르며 말한다.
“그럼 여기가 참고인 조사받는 사람이 불려올 곳이예요? 참고인 조사를 누가 취조실에서 해요? 사무실에서 진술 간단히 듣고 보내거나, 집에 찾아와서 몇 가지 묻는 게 참고인이죠.”
순간 내 머리를 스쳐 가는 하나의 기억.
‘15일이에요, 알죠? 우린 그 안에 일을 끝내야 되는 거고.’
‘알아,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내가 잊을까? 당신 명문대 나왔다고 나 무시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그리고 왜 자꾸 대학 이야기를 해요?’
그때 남편은 분명히 열등감이 깃든 표정을 지었었다. 신정희는 참고인 조사와 용의자 조사 간의 대우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정말 고학력자일까? 내가 강혁 아저씨를 슬며시 바라보자, 아저씨는 이미 날 바라보고 계신다. 서로 눈을 마주쳤지만 쉽사리 질문하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경찰들의 일이다. 나 같은 일반인이 괜히 입을 나불거렸다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내 눈빛을 보곤 실소를 지은 강혁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한다.
“도경아.”
“예.”
“묻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인데.”
“··················..”
“괜찮다. 여기까지 온 이상 너도 관계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턴 내가 책임지마. 일반인에게 수사내용을 공개한 부분에 대한 책임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 넌 그것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마음껏 질문하고 의견을 말해.”
“·····················”
아직 고민이 된다. 그때 날 데리러 왔던 젊은 형이 시간을 보며 말했다.
“여덟 시간 남았습니다.”
강혁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손톱을 깨문다.
“일단 서울, 경기 소재 저수지 37곳에 모두 경찰인력 파견해. 수중 탐사 인력은 얼마나 배치할 수 있지?”
다른 형사 아저씨가 재빨리 PC 앞에 앉으며 말했다.
“37곳 모두에 동시 파견해야 한다면 저수지 당 1명이 한계입니다.”
강혁 아저씨가 미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일단 민간 단체에 협조요청해.”
“예, 차장님.”
민간 단체? 그건 또 뭐지? 온갖 것이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런 걸 해주는 민간 단체도 있는 모양이구나. 형사 두 명이 강혁 아저씨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아저씨가 다시 거울 속을 보며 말했다.
“도경아.”
“예?”
“방금 들은 바와 같이 우리가 조사해야 될 저수지는 서른 일곱 곳이나 된다. 수중을 탐사해 시신을 찾아낼 수 있는 탐사인력은 숫자가 한정되어 있고 8시간 안에 모든 곳을 조사하려면 저수지 당 한 명의 인력 밖에 보낼 수 없다. 그 인력으로는 시간 안에 저수지를 조사할 수 없어.”
당연하다. 개울도 아니고 물이 깊은 저수지를 조사하는데 한 명이 뒤진다면 이틀은 줘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예, 들었어요.”
강혁 아저씨가 거울 안을 눈짓하며 말했다.
“그래서 널 부른 거다. 만약 여기서 저 여자가 나가게 되면 그나마 용의자들이 놓친 단서까지 은닉될 위험이 있어. 반드시 용의자가 석방되기 전에 시체를 찾아야 된다.”
“··················.”
아무 말 없이 거울 속을 보는 나. 강혁 아저씨는 그런 날 지그시 바라보더니 옆으로 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때 그 사건 생각하는 거지?”
“·····················..”
“여덟 살 때의 그 사건 말이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강혁 아저씨가 어깨 위에 올린 손의 손가락을 움직여 토닥거려 주신다.
“세상에는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될 진실이 분명히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나와 상대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말하는 거지.”
그랬다. 그때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재수 없는 인간들이라 해도 나 때문에 누군가 죽는 건 싫다. 안 그런 척 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그때의 죄책감이 무척 크게 남아 있다. 강혁 아저씨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도경아.”
강혁 아저씨가 옆에서 날 바라보신다. 가만히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자 진중한 눈빛의 아저씨가 말한다.
“세상에 말할 게 좋을 것 없는 진실이 있는 것처럼 드러내고 파내야 할 진실도 있는 법이다.”
드러내고, 파내야 할 진실이 있다. 강혁 아저씨의 말을 듣는 순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 다시 뇌리를 스친다.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니까.'
강혁 아저씨가 어린 내게 했던 말. 하지만 나는 아직 내 능력으로 누군가를 살려내 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미 죽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미션. 찾아낸다고 해도 나는 사람을 살릴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강혁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경찰이 살인자를 잡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왜?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은 없는데.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 아닌가?
“범법자가 처벌받도록 체포하는 게 경찰의 일이 아닌가요?”
강혁 아저씨가 팔짱을 끼며 짧은 한숨을 쉰다.
“경찰 중에 그런 생각을 하며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음, 물론 있긴 하겠지. 월급이나 받아서 공무원 철밥통 끼고 살 생각하는 녀석들도 간혹 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우리 경찰 중 대부분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
사명감. 내가 아저씨를 처음 봤을 때 그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던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 거울 뒤에 서서 용의자를 쏘아보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은 어떤가? 지금까지 봤던 유들유들한 아저씨의 모습과 다르다. 반드시 잡겠다는 집념이 느껴지는 진짜 경찰의 눈빛이다.
강혁 아저씨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범법자는 꼭 살인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기나 강도, 절도도 있다. 우리가 범인들을 검거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이유는 단지 그 놈들 잡아서 콩밥 먹이려는 이유가 아니다, 도경아.”
위법을 저지른 자를 범의 심판대에 세운다. 경찰들이 할 일은 그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잠시 고민해 본 내가 말했다.
“피해자들, 혹은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잡는 건가요?”
강혁 아저씨가 나직하게 웃은 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옳은 말이지. 하지만 살인이라면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무슨 이유인가요?”
강혁 아저씨가 팔짱을 풀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잠시 거울 뒤 신정희를 노려보던 그가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서다. 사기나 강, 절도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피해자들을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범인을 잡는다.”
내 눈썹이 꿈틀거린다. 또 다른 살인을 막기 위해서. 또 다른 미지의 피해자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래, 한번 살인을 저지르고도 죗값을 받지 않은 사람이 두 명, 세 명을 살해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가 본 신정희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은 남편이 진 빚 때문에 살인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자기 부모도 죽이는 사람들이 앞으로 삶에서 만난 사람들 중 방해가 되는 또 다른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강혁 아저씨가 내 표정 변화를 보며 등을 어루만진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 부탁하는 이 사건은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다, 도경아.”
“·····················”
마음 속을 헤집어 놓고 있던 죄책감 속에 푸른 싹 하나가 솟아오른다. 아직 너무 작은 새싹일 뿐이지만 괜찮다.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던 암흑 속에 튼 푸른 싹 한줄기는 무척 소중하니까. 입술을 바짝 깨물고 거울 뒤 신정희를 노려본다.
저 여자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다면 나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한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대신 몇 명을 살려야 속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포기해도 늦지 않는다. 내 눈빛이 달라진 것을 눈치 챈 강혁 아저씨가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질문이 있으면 하고 싶은 만큼 해라. 아는 만큼 답해주마. 그리고 네가 본 것과 퍼즐이 맞는 것이 나오거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되면 즉시 알려줘.”
가만히 신정희를 노려보던 내가 물었다.
“신정희는 고학력자인가요?”
강혁 아저씨가 고개를 돌리자, 취조실에 들어간 장 팀장님과 강혁 아저씨의 지시를 이행하러 간 두 명의 형사 덕분에 혼자 남아 있던 형사가 PC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서울 4년제 대학교 석사 출신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혁 아저씨가 물었다.
“그건 왜?”
아직도 거울 뒤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하고 있는 신정희를 노려보고 있는 내가 입을 연다.
“기억 속의 남편이 아내에게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걸 느꼈어요.”
강혁 아저씨의 눈썹이 꿈틀하며 모니터 앞의 형사를 보자, 그도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남편, 박세준은 고졸입니다.”
형사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느냐는 눈빛. 하지만 난 그저 본 대로 말할 뿐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수사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형사님?”
모니터 앞에 있던 형사가 강혁 아저씨를 바라본다. 아무리 차장이 들였다고 해도 일반인에게 수사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강혁 아저씨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나를 고갯짓한다.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전부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