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화. 시체 없는 살인사건 (4)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눈치만 보던 형사 아저씨는 강혁 아저씨의 호통을 한 차례 더 듣고 난 후에 겨우 수사보고서를 펼쳐 사건을 읊는다.
“어··· 최초 신고는 추석 연휴가 끝난 10월 15일, 신고는 어머니 집이 있는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남현 파출소다. 실종신고를 받고 파출소 소속 순경 두 명이 집을 방문했고, 집 수색 결과 납치 피해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소지 물건이 모두 집 안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순경들이 관악 경찰서 실종사건 전담팀으로 이관, 담당 팀이 현장조사 중 화장실에서 나는 락스 냄새를 맡고 신고자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청소를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강력계에 보고했다.”
형사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정희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는 내가 물었다.
“최초 신고자는 신정희였나요?”
“아니, 남편이자 작은 아들인 박세준.”
“신고 당시 혼자 왔나요?”
“그래, 아내인 신정희는 당시 자택에 있었다.”
“자택이 어디예요?”
“용인.”
“음.”
잠시 내 말을 기다리던 형사 아저씨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만약 박세준이 살인을 하고 시신을 유기했다면 그의 자동차에 뭔가 흔적이 남아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 그의 네비게이션과 블랙 박스 기록을 확인하려 시도했으나, 네비게이션에는 이동 흔적이 없었고, 블랙 박스는 얼마 전에 고장이 나 구청 분리수거장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게 궁금했다. 저수지에 시신을 유기했다면 반드시 차가 필요했을 거다. 경찰이 바보가 아니라면 반드시 차를 조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안 나왔구나. 형사 아저씨가 말을 잇는다.
“박세준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살펴보면 두 사람과 연락이 두절된 것은 추석이 지난 9월 말부터 였다.
“추석 때 집에 안 왔고요?”
“왔다, 그때는 박세준, 신정희가 모두 왔었고 당일 날 들러 점심, 저녁을 함께 먹고 밤에 집으로 돌아갔다. 도로교통 CCTV로도 확인했고, 어머니의 생활반응 확인 결과 두 사람이 다녀간 후에 생존해 있었던 것도 확인됐다.”
“음.”
앞으로 경찰들 무능하다고 욕하면 안 되겠다. 앞 뒤가 꽉 막혀 있는 이런 사건을 어떻게 해서는 해결하는 사람들이 무능할 리가 없지 않는가? 자, 그럼 또 뭘 확인해야 되지? 그때 강혁 아저씨가 나선다.
“도경아.”
“예, 아저씨.”
“새끼.”
“음?”
씩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치는 아저씨.
“네가 형사냐, 이 놈아?”
“·····················.”
“수사 진행 상황을 듣다가 네가 읽어낸 기억과 맞는 조각만 찾으면 되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나도 모르게 주제 넘은 짓을 했구나. 내가 수사상황을 전부 알고 질문을 한다고 뭘 알 리도 없는데. 내 기억과 대조하는 작업이란 것을 깜빡했다. 강혁 아저씨가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분명히 네 기억 속에 뭔가 있다. 네가 읽은 기억을 떠올려. 작은 단어 하나라도 좋다.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보는 거야. 귀만 열어. 수사진행 상황은 계속 알려주마. 듣다가 기억의 퍼즐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그때 이야기해라.”
옳은 말씀이다. 내가 조목조목 사건수사 진행 상황을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내가 뭘 안다고. 내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계속하라는 듯 형사 아저씨에게 눈짓하는 강혁 아저씨.
형사 아저씨가 다시 진행상황을 읊는다.
“초동 수사 시 화장실에서 강한 락스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 KCSI에 의뢰 결과 유효염소 농도 수치 100 ppm의 클로락스(Clorox)였으며, 적어도 3L 이상이 사용되었다는 결과가 도출, 이 내용으로 화장실 파이프와 하수도를 검사했으나 혈흔반응 없었으며···”
강혁 아저씨의 말처럼 귀는 열어 두고 생각은 내가 보았던 기억을 되짚어 본다. 아저씨가 말했다. 작은 단어 하나라도 좋다고. 분명 그 속에 뭔가 있다고. 신정희와 박세준은 어떤 대화를 나눴었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그때의 대화가 다시 떠오른다.
남편 박세준과 대화를 하다 고개를 돌려 벽에 붙은 달력을 확인한 신정희가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15일에 실종 신고하는 거예요, 예보가 정확하다면 그 안에 비가 두 번 올 거예요. 저수지가 범람하지 않는 걸 확인 후에 신고해야 돼요. 알았죠?’
‘알았다고.’
‘당신 사업 빚 다 갚으려면 이 길 밖에 없어요. 알죠? 이거 잘못되면 우린 거리로 나 앉게 될 거예요. 정신 똑바로 차려요.’
‘아, 알았다고!’
그리 긴 기억이 아니었기에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 강혁 아저씨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귀를 파고 든다.
“무엇인가를 추적할 때는 널려 있는 증거들을 단순화하는 작업이 제일 중요하다, 도경아.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우선 버려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단어들만 남기는 거다.”
필요하지 않은 단어들을 버린다. 두 사람의 대화 중 뭐가 불필요한 대화였을까? 일단 대학 이야긴 이미 증명이 됐으니 지우자. 그럼 뭐가 남지?
사업 빚 그래, 이게 남는다. 하지만 이미 조사를 했으니 박세준이 용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도 드라마를 봐서 안다. 확실하지 않지만 사업 빚이 있을 것이고, 부모님 명의의 유산이나 혹은 보험금을 노렸을 거다. 또 뭐가 있지?
정확히 15일 후에 신고한다. 그래, 이건 두 번의 비 예보 후에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에 신고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왜? 꼭 그래야 하는 이유는? 내가 범인이라면 시신이 발견되지 않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그랬다면 산 속 깊숙한 곳, 누구의 발걸음도 닿지 않는 곳에 매장하는 편이 훨씬 좋다. 고학력자인 신정희가 그걸 몰랐을까?
‘어쩌면 신정희는 시신이 발견되길 바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언제 발견이 되느냐, 거기 있는 거야.’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이럴 땐 질문을 해야 된다.
“아저씨.”
수사진행상황을 읊던 형사 아저씨가 고개를 돌린다.
“응?”
“어머니 명의 재산이 얼마나 돼요?”
“음, 자택 말고는 없다.”
“가치는 얼마나 돼요?”
“전세라 전세금 1억 2천이다. 다세대 주택이라 크지 않아. 대신 사망 보험금이 어머니, 형 명의로 각각 3억씩이야.”
내 눈에 이채가 깃든다. 강혁 아저씨를 본 내가 물었다.
“아저씨. 사망보험을 든 자가 실종되면 어떻게 돼요?”
강혁 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음, 실종기간 5년이 지나면 사망으로 간주한다. 그 안에 보험금 납입을 꼬박꼬박 할 경우에 한해 5년 후에 보험금 수령이 가능하지.”
눈이 번쩍 뜨인다. 사업 빚에 허덕이는 사람. 그가 5년이나 어머니, 형의 사망보험금 납입을 꼬박꼬박 하며 기다릴 여유는 없다. 결국 그는 자신들이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즈음에 시신이 발견되고, 보험금을 즉시 수령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뭔가 대단한 추론을 해낸 것 같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경찰들이 이걸 몰랐을까? 그랬다면 처음부터 박세준, 신정희를 용의선상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거울 속 취조실에 신정희가 앉아 있다. 아마 이곳 어딘가에 박세준도 조사를 받기 위해 감금되어 있을 것이 뻔하지.
또 뭐가 있었지?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였지? 나는 범인이 두 사람이란 걸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잖아. 나는 시신이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 여기 있는 거였지, 참. 내가 놓친 게 또 뭐가 있지?
다시 그들의 대화를 떠올려 보자. 박세준은 대답만 했다. 모든 것은 신정희가 계획했을 확률이 높으니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해 보자.
‘정확히 15일에 실종 신고하는 거예요, 예보가 정확하다면 그 안에 비가 두 번 올 거예요. 저수지가 범람하지 않는 걸 확인 후에 신고해야 돼요. 알았죠?’
두 번 비가 온다. 저수지가 범람하지 않는 걸 확인 후 신고한다. 조사 결과 두 번 비가 왔다. 하지만 시신이 저수지 위로 떠올랐다면 당연히 접수되어야 할 신고는 없다. 지난 번 여학생의 꿈을 읽었던 것처럼 바위에 묶어 저수지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 뒀던 걸까?
‘그럼 발견이 늦어.’
시신은 썩는다. 예를 들어 시신의 발목을 묶어 뒀다고 해도 시신이 썩으며 백골이 드러나면 밧줄이 헐거워진다. 그럼 사체가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를 노린 거였나? 물 속에 있는 시신이 얼마나 빨리 썩는지는 나도 모른다. 사업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 기다릴 만한 시간일까?
“강혁 아저씨.”
“그래.”
“시신이 부패해서 백골화 되려면 얼마나 걸려요?”
“성인의 경우 7년에서 10년.”
음, 이건 말도 안 되지. 5년도 못 기다릴 인간이 7년에서 최대 10년까지 기다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 어디일까? 신정희의 말, 그 속에 내가 찾지 못한 단서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다. 강혁 아저씨의 말은 틀렸을까? 다시 한번 신정희의 말을 떠올려 보자.
‘정확히 15일에 실종 신고하는 거예요, 예보가 정확하다면 그 안에 비가 두 번 올 거예요. 저수지가 범람하지 않는 걸 확인 후에 신고해야 돼요. 알았죠?’
하, 도저히 모르겠다. 저수지가 범람하지 않는 걸 확인 후에 신고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잠깐.’
범람? 저수지가 범람하지 않는 걸 확인한다고 했다. 재빨리 강혁 아저씨를 돌아보자 아저씨는 지금까지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날 보곤 직감적으로 뭔가를 잡아냈다고 생각했는지 눈빛에 희망이 깃든다.
“아저씨.”
“이야기 해봐.”
“저수지가 범람하면 어떻게 돼요?”
“응?”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해서였을까? 아저씨가 잠시 말을 잃었다.
“물이 넘치는 거지. 평소 뭍이었던 곳까지 물이 찬다.”
“범람을 하면 물이 뒤집어져서 아래에 있던 것이 위로 올라오나요?”
“진흙이 뒤집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에 있던 바위들이 떠오르진 않아. 시신은 바위보다 무겁···.”
이야기를 하던 강혁 아저씨의 눈이 번쩍 떠진다. 뭔가를 눈치 챘는지 눈이 커진 아저씨가 내 어깨를 와락 붙잡았다.
“신정희가 저수지가 범람하지 않는 걸 확인하고 신고한다고 했었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친다.
“예! 맞아요!”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뒤엉킨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외친다.
“저수지 속이 아니다!”
“시신이 물 밖에 있는 거예요!”
내 어깨를 꽉 붙잡고 나를 바라보는 강혁 아저씨. 눈을 크게 뜨고 내게 시선을 주고 있지만 그의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린다. 순간적으로 맞아 떨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게 진짜 경찰의 눈빛이구나. 집념 섞인 무서운 집중력이 전해진다. 내 어깨를 잡은 아저씨의 손아귀 힘 때문에 어깨가 아파올 무렵 그가 중얼거리듯 말한다.
“저수지 근처는 보통 갈대밭이나 잡초더미가 있다. 시신을 은닉하기 좋은 곳은 얼마든지 있어.”
“범람을 걱정했어요. 그건 물이 넘쳤을 때 시신이 자연스럽게 물에 떠밀려 저수지로 밀려 들어갈 수 있는 위치라는 뜻이예요. 하지만 당연히 용의선상에 있을 것이 뻔한 시기에 시신이 발견되면 안 되기 때문에 범람확인 절차를 기다린 거예요.”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에 시신이 발견될 수 있는 곳, 예를 들면 갈대밭 같은.”
“맞아요, 높은 갈대가 있는 곳일 확률이 높아요. 하나 추가해 범람으로 인해 시신이 저수지로 밀려 나오면 안 되니까 수풀이 우거진 나무 덤불이 많은 곳을 찾아야 돼요.”
강혁 아저씨가 즉시 고함을 친다.
“즉시 서울, 경기 소재 저수지 중 갈대밭을 끼고 있는 곳을 추려!”
PC 앞에 있던 형사 아저씨는 우리 대화를 듣고 이미 검색 중이었는지 즉시 외친다.
“모두 세 곳입니다! 각각 용인, 성남, 평택에 있습니다!”
강혁 아저씨가 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나다! 즉시 용인, 성남, 평택 소재한 의무경찰 대대에 협조요청해! 최소 9개 중대 이상을 동원해서 저수지 주변을 수색한다! 저수지는 총 세 곳이다! 한 지역당 3개 중대 배치하고 저수지 반경 300미터까지 집중 수색한다!”
해냈다. 아니 해낸 게 맞나? 아직 시신이 발견된 게 아니니까 속단은 이르다. 하지만 만약 발견되면 지금껏 느꼈던 죄책감에서 조금이나 해방될 수 있을까? 지지부진한 수사가 갑자기 급 물살을 타기 시작하는 현장.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내 마음에도 희망이라는 소용돌이가 세차게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