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3화 (13/328)

제 13 화. 시체 없는 살인사건 (5)

빠르게 사건을 지휘한 강혁 아저씨가 깊은 침음을 낸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다.

1초, 10초, 1분, 10분. 평소엔 눈 깜짝할 시간에 지나가 버릴 찰나의 순간들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강혁 아저씨도, PC 앞에 있는 형사님도 모두 무전기만 바라보고 있다. 뚫어지게 무전기를 노려보던 강혁 아저씨가 팔짱을 풀고 한숨을 쉰다.

“방금 지시 내리고 벌써부터 뭐 하는 짓이냐, 난.”

스스로 한심하다는 듯 이마를 꾹꾹 누르던 아저씨가 나와 눈을 맞춘다. 날 가만히 바라보던 아저씨가 씩 웃으며 어깨동무를 해온다.

“새끼, 잘했다.”

잘하긴 개뿔. 아직 시신을 찾은 것도 아닌데 미리 설레발 놓고 싶지 않다.

“아직 모르는 걸요, 뭐.”

강혁 아저씨가 어깨동무를 한 채 몸으로 날 슬쩍 밀며 웃는다.

“내가 바보로 보이냐, 인마?”

응? 갑자기 아저씨를 왜 바보로 본다는 거지? 의아한 시선을 받은 아저씨가 취조를 받고 있는 신정희를 고갯짓하며 말했다.

“기억을 읽은 건 너지만 그것의 타당성을 인정한 건 나다. 믿어볼 만해서 지시를 내린 거란 뜻이지.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그건 네 책임이 아니라, 내 책임이다. 알았어?”

“·····················.”

강혁 아저씨가 더욱 강하게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가만히 아저씨를 바라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비싼 카페의 케이크를 사줬던 아저씨. 한번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던 최신 핸드폰도 사줬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내게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경찰을 만들겠다는 목적이 있긴 하지만 생면부지인 내게 이렇게 잘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강혁 아저씨를 향한 고마운 눈빛. 아저씨는 내 눈빛에서 그것을 읽었는지 움찔 하더니 계면쩍게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는 딴청을 부린다.

“경찰청에 오는 건 쉬운 경험이 아닌데. 뭐 궁금한 거 없냐? 시간도 남는데 구경이라도 시켜주랴? 여긴 웬만한 계급이 아니고는 구경도 어려운 곳인데.”

PC 앞에 있던 형사가 웃으며 말했다.

“감찰부에 끌려 와야 올 수 있는 곳이죠, 킥킥.”

감찰이라. 드라마에서 봤다. 뒷돈 받아 먹거나 직무상의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경찰들이 조사를 받는 곳이라고 했지. 음, 여긴 좀 무서운 곳이었구나. 강혁 아저씨가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구경하고 싶은 곳 있어?”

“···············..”

뭐가 있는지 알아야 구경하고 싶다고 하죠, 아저씨.

“별로 없어요.”

“허, 좋은 기회 그냥 날리네, 이 녀석. 그럼 뭐 질문 같은 것도 없어?”

어떡하든 경찰이 되고 싶게 만들려는 속내를 가진 아저씨 답게 계속 질문을 유도한다. 진짜 궁금한 게 없는데. 차라리 이번 사건에 대한 것이면 모를까. 잠깐 고민하던 내가 물었다.

“아까 시신이 백골화 되려면 7년에서 10년이 걸린다고 하셨죠? 그건 일반적인 건가요?”

“·····················..”

중학생답지 않게 사건에 대해 파고드는 질문을 하자 멍한 얼굴이 된 강혁 아저씨. 하지만 곧 크게 웃으신다.

“으하하! 이 녀석! 벌써 경찰이 다 됐네, 하하! 아주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어!”

웃긴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엄청 크게 웃는 아저씨. 흐뭇한 눈으로 웃던 아저씨가 웃음기 있는 얼굴로 말했다.

“좋아, 어차피 경찰대 가면 다 배우겠지만 미리 예습한다 치자.”

솔직히 공부는 자신 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배우는 것보다 책으로 배우는 것이 더 쉬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대학을 가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학교 공부를 해야 되니까. 조금 맛보는 정도로만 이해해보자. 강혁 아저씨가 눈을 빛내는 날 힐끔 보며 팔짱을 낀다.

“시신 부패(腐敗)의 원인은 세균이다. 인체의 혈관 내에 있는 혈액에 번식하는 세균이지.”

“사망 후에 생기는 건가요?”

강혁 아저씨기 실소를 지으며 검지로 내 가슴을 쿡쿡 찌른다.

“아니? 지금 여기도 있다.”

“··················”

가만히 가슴을 바라보는 날 보곤 껄껄 웃은 아저씨가 자기 가슴을 두드린다.

“물론 나도 있고, 저기 형사 아저씨한테도 있다. 모든 사람의 혈액 속엔 세균이 번식하고 있지.”

아, 그런 거구나. 강혁 아저씨가 말을 잇는다.

“사람이 죽으면 인체의 모든 기능이 정지한다. 하지만 이 세균은 인체 기능과 무관한 녀석들이라 계속 번식해 가스를 발생시킨다. 생전에는 자연스럽게 피부나 구강으로 가스가 배출되지만 인체 기능 정지 후엔 가스가 배출되지 않아 부패가 진행되는 거다.”

우와, 경찰이 이런 것까지 아는 사람들이구나. 마치 의학지식을 훔쳐 듣는 기분이다. 강혁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대기 중에 1주일간 있던 시체의 부패 정도는 물속에서는 2주일간, 땅속에서 8주일간 경과된 것과 유사하다. 공기 : 물 : 흙 속에서의 부패 비율이 1:2:8로 된다는 뜻이지.”

음, 그러니까 부패가 가장 빠른 건 대기 중이고, 그 다음이 물속, 마지막이 흙 속이구나.”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는 쪽이 제일 부패가 빠른 건가요?”

“음, 그것도 변수가 있어. 너무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는 오히려 부패가 느리다. 또는 너무 덥거나 뜨거운 태양 아래 방치된 시신은 급격히 수분을 빼앗기기 때문에 부패가 매우 느릴 때도 있지.”

“음, 복잡하네요.”

“그래, 그래서 과학수사가 필요한 거다. 시신이 있는 환경을 철저히 분석해야 시신이 살해된 날짜를 알아낼 수 있으니까.”

시신의 부패에 대한 아저씨의 강론은 그 후로 30분간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재미 있다. 시신의 부패 정도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나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벌레나 수분으로 인한 부패가속이나 사천왕 상으로 발견되는 시신 이야기를 들을 때는 속이 좀 안 좋았지만 나름 괜찮았다.

어쩐지 반 애들이 핸드폰으로 CSI 관련된 미국 드라마에 빠져 있다 했더니 이거 엄청 재미 있구나. 강혁 아저씨는 흥미로운 표정이 된 날 힐끔 보곤 손가락을 딱 튕긴다.

“자, 여기까지는 KCSI가 할 일이고, 이제 경찰이 할 일을 알려주마.”

강혁 아저씨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말했다.

“자, 이번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시신이 발견되었고, 네 말처럼 저수지 물속이 아니라 갈대숲에서 발견되었다면? 과학 수사대가 시신의 상태를 보고 사망시점을 알아낼 거다. 추석 후에도 생활반응이 있었으니 아마 추석이 지나고 며칠 뒤일 확률이 높다.”

당연하다. 아마 실종시점이 곧 사망시점일 것이다. 강혁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어떻게 죽였는가? 무엇으로 죽였는가? 이건 과학 수사대가 밝혀줄 거다. 그럼 경찰은 뭘 할까?”

음, 어떻게 죽였고, 뭘로 죽였는지를 다 알려준다.. 그럼 경찰은 뭘 해야 되지? 갑자기 멍해지는 기분이 들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날 보곤 실소를 지으며 이마에 손가락 딱밤을 날리는 아저씨.

“뭘 고민해, 인마. 과학 수사대가 누가 죽였는지 밝혀내진 못할 거 아니냐.”

아! 그게 있었지. 그게 제일 중요한건데. 바보 같이.

“그러네요.”

강혁 아저씨가 검지를 까딱이며 말했다.

“누가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 어떤 방식으로 범행을 은닉하려 하였는가? 여기에 더해 실제 범인을 검거해 검찰에 송치하는 것까지. 그것이 경찰의 일이다.”

음, 그렇구나. 연구실에서 시신을 분석하는 일보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이런 일이 더 어렵겠다. 강혁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PC 앞 형사에게 눈짓한다.

“남편의 사정을 확인해 보면 범행동기를 알 수 있지.”

형사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 후 남편에 대한 정보를 읊는다.

“신정희의 남편 박세준. 자동차 부품 공장을 다니다 해외 직구로 부품을 구입해 직접 차량을 수리하는 센터를 열고, 휘하 세 명의 직원을 두었으나, 재작년부터 경쟁업체가 업계에 뛰어 들며 사업 하락세. 어떡하든 사업을 이어가려 버텼으나 결국 은행에 막대한 빚을 지고 현재는 무직 상태입니다.”

강혁 아저씨가 날 보며 말했다.

“박세준이 처음 막대한 빚을 진 은행은 1금융이다. 하지만 점점 빚이 늘어가며 대출한도가 발생하지 않자, 2금융과 3금융에서까지 돈을 빌렸다. 같은 1억을 빌리더라도 이자가 낮은 1금융권 은행에 낼 돈과 3금융에 낼 돈은 큰 차이가 난다. 결국 빚이 빚을 낳았고 그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상태였다.”

강혁 아저씨가 몸을 빙글 돌리며 말했다.

“자, 여기서 강력한 동기가 발생한다. 그 동기가 발생한 연결점은 어머니가 5년 전에 가입한 생명보험이다. 결혼도, 구직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앉아 게임만 하고 자빠진 큰아들이 걱정된 어머니는 자신이 죽고 나서 아들이 살 방도를 마련하기 위해 보험을 들었다.”

음, 그렇구나. 근데 좀 이상하다. 사망보험은 어머니와 큰아들 모두 들었던 걸로 아는데. 내 표정을 본 강혁 아저씨가 웃음을 짓는다.

“이상하지? 어머니 사후에 큰아들이 살 방도를 주기 위해 보험을 들었는데, 왜 큰아들도 보험을 들었을까?”

“음, 좀 이상해요.”

“그래, 우리도 이상했다. 그래서 보험 담당자를 만났더니 작년에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동시에 찾아와 생명보험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보험금 납입은 작은 아들이 다 해주는 조건으로.”

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그럼 그때부터 계획된 범죄라는 뜻인가요?”

“아마도.”

와, 진짜 개새끼구나. 자기 형을 죽이려고 작년부터 지금까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다니. 이게 정말 사람 새끼가 맞을까? 강혁 아저씨가 분노한 듯 보이는 날 지그시 보며 말했다.

“도경아.”

이를 으드득 갈고 아저씨를 바라보자, 그가 빙긋 웃는다.

“여긴 안 이상해?”

음? 뭐가 또 이상하지?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작은 아들이 자기 생명 보험도 들었다.”

“·····················..”

이상할 일인가?

“형만 가입하게 하면 의심을 살까 싶어 그런 거 아닐까요?”

그때, 웃고 있던 아저씨의 눈빛이 매서운 칼날처럼 느껴진다. 순간 멈칫한 날 가만히 바라보던 아저씨가 말했다.

“네가 읽은 기억 속,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은 누구였지?”

아직은 모른다. 직접 두 사람을 죽인 건 아마 작은 아들이 아닐까? 어머니만이라면 모를까 힘없는 신정희가 큰아들까지 죽였다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 일이다.

“아마, 박세준 아닐까요?”

강혁 아저씨가 검지로 자기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린다.

“사건의 브레인을 말하는 거다. 이 사건을 계획한 인물.”

“그건 당연히 신···. 아!”

머리 속을 스치는 하나의 생각. 설마 인간이 이렇게 잔악할 수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 모든 사실은 하나의 진실을 가리킨다.

“설마.”

강혁 아저씨가 차갑게 웃으며 취조실의 신정희를 노려본다.

“그래, 저 여자는 자기 남편도 죽이려 했던 거다.”

“··················..”

진짜, 진짜 그랬다고? 놀란 얼굴로 신정희를 바라보는 나. 거울 뒤의 신정희는 여전히 시간을 끌고 있는 장 팀장 아저씨 앞에서 결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강혁 아저씨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 여기까지는 그저 추론일 뿐이다. 이제 시신이 발견되면 우린 한 가지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뭘까? 가만히 아저씨의 말을 기다리는 나. 신정희를 노려보던 아저씨가 팔짱을 풀고 입을 열려는 찰나. 무전기가 다급한 음성을 토해낸다.

[치익! 용인 처인구 금성 저수지 주변 갈대숲에서 시신 두 구가 발견됐습니다!]

순간 몸이 굳었다. 정말로, 정말로 시신이 나왔단 말이야? 놀란 날 보며 차가운 웃음을 지은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시신을 옮기려면 반드시 이동수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미궁 속이지. 저 두 사람이 어떻게 시신을 금성 저수지까지 옮겼는지. 그걸 밝혀내면 끝나는 거다.”

강혁 아저씨가 무표정한 얼굴로 신정희를 노려보며 무전기를 든다.

“시신은 즉시 CSI로 이동, 소지품이 없을 것이므로 거기서 신원확인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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