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4화 (14/328)

제 14 화. 시체 없는 살인사건 (6)

경찰청 앞 설렁탕 집.

강혁 아저씨는 무전을 마치자 마자 밥이나 먹자고 날 끌고 청을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설렁탕 그릇 앞에 우두커니 앉은 나. 머리 속에서 사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강혁 아저씨가 대파를 내 그릇에 넣어주며 말했다.

“여기서부턴 경찰의 일이다. 오늘 도와준 건 잊지 않으마.”

솔직히 내가 도운 것보다 도움을 받은 것이 훨씬 더 많다. 이 정도야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다. 재미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꽤 아쉽다.

“끝까지 견학하게 해주시면 안돼요?”

강혁 아저씨가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지금까지 네가 관여한 것만 해도 난 충분히 감찰반에 끌려가고도 남는다.”

음, 하긴. 난 일반인이니까. 수긍하는 날 보며 씩 웃은 아저씨가 말했다.

“그런데 네가 경찰이 되면 이걸 끝까지 지켜볼 수 있지.”

경찰이 되면. 음, 이 아저씨 사람 꼬시는 데 일가견이 있구나. 경찰이 아니라 피라미드 회사에 다녔다면 충분히 다이아몬드는 딸 수 있었겠다.

“생각해 볼 게요.”

강혁 아저씨가 한숨을 쉰다.

“또 생각해? 도대체 그 생각은 언제까지 하는 거냐? 인마, 생각이 모자라면 일을 망치지만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일을 시작하지도 못 한다는 말도 모르냐?”

모른다. 그런 말도 있었나? 음, 옳은 소리이긴 한 것 같네. 웃음을 지은 내가 설렁탕 그릇을 휘적대며 물었다.

“질문은 해도 돼요?”

“무슨 질문?”

“사건이요.”

“하, 이제 신경 끊으라니까.”

“·····················.”

강혁 아저씨는 내가 사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걸 싫어하면서도 날 꼬시기 위해 더 없이 좋은 패임을 아는지 머뭇거리다 설렁탕에 소금을 넣으며 말했다.

“한 가지만 해, 그럼.”

됐다. 씩 웃은 내가 말했다.

“범인들은 어머니 집에서 범행 후 시신을 용인에 있는 금성 저수지까지 옮겼어요. 거기가 어딘지 몰라도 집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은 아니겠죠?”

강혁 아저씨가 날 째려보며 말했다.

“그게 질문이냐?”

“아뇨, 혼잣말인데요.”

“·····················.”

아저씨 반응을 보니 맞는 것 같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은 내가 말했다.

“그럼 반드시 이동수단이 있다는 건데, 그건 어떻게 찾으시려고요?”

강혁 아저씨가 날 째려본다.

“이번 건 질문이냐?”

“네.”

“이게 마지막이다.”

“네, 아저씨.”

“대답 듣고 설렁탕 뚝딱 한 그릇 비우고 돌아가는 거야, 약속해라.”

“약속해요.”

아저씨가 팔꿈치를 식탁에 기대고 설렁탕을 한입 먹은 후 말했다.

“커, 국물 죽이네. 나 이거 오늘 첫 끼다.”

응? 지금 밤 9시인데 첫 끼라고?

“하루 종일 못 드셨어요?”

숟가락을 휘휘 돌린 아저씨가 말했다.

“방금 상황 못 봤냐? 현장 나간 애들도 다 굶었지, 뭐.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냐?”

와.. 경찰들 진짜 힘들게 일 하는 구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자기도 모르게 푸념을 하던 아저씨가 몸을 굳히고 급히 내 눈치를 보더니 얼른 변명을 한다.

“아! 맨날 이러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일이 있는 거다. 우린 나라에서 밥 값도 나와. 영수증 처리하면 다 준다고. 너 밥 공짜로 주는 직장이 흔한 줄 알아? 구내 식당 갖춘 대기업 아니면 밥 주는 직장 별로 없어.”

이 아저씨. 좀 귀여운 구석이 있네.

“그래요?”

강혁 아저씨가 자기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그럼! 게다가 대한민국 경찰이란 거 아니냐! 동네 조폭들? 다 나오라 그래. 신분증만 보여줘도 다 도망가, 그런 놈들은. 게다가 순직이라도 하면? 국가가 관장하는 국립묘지에 묻히는 거야. 자식들 연금도 나와, 학비도 지원해 줘. 이런 꿀 직장이 또 어디 있냐? 너 경찰대 나오면 바로 경위부터 시작이야. 경위 월급이 얼만지 알아? 엉?”

또 한참이나 경찰의 위대함에 대해 떠벌리는 아저씨. 사실 경찰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저 막연히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아직 난 돈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체득할 나이가 아니니까. 한참을 떠들다 자기가 좀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헛기침을 한 아저씨가 슬그머니 묻는다.

“어험, 그러니까 이동수단을 어떻게 찾는지가 질문이란 거지?”

드디어 위대한 경찰 자랑이 끝난 모양이다.

“예.”

강혁 아저씨가 수저로 한 곳을 가리킨다.

“저거.”

그가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자, 식당 천장에 붙어 있는 검은 원통형 CCTV가 보인다.

“CCTV요?”

강혁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질문 하나 하지.”

“네.”

“너 오늘 학교 다녀왔냐?”

당연하지. 학교 정문에서 날 태우고 왔으면서 당연한 걸 왜 묻지?

“네.”

“학교 갈 때 뭐 타고 가냐?”

“걸어가요.”

“좋아, 보육원에서 학교까지 얼마나 걸려?”

“걸어서 20분쯤이요.”

“음, 한 3KM쯤 되겠네. 혹시 등굣길에 산길 같은 거 있어?”

“아뇨, 주택가, 상가 밀집 지역을 지나요.”

“흠, 그럼 하교 후에 바로 여기 온 거지?”

“네.”

강혁 아저씨가 손깍지를 끼고 몸을 내민 후 히죽 웃는다.

“자, 그럼 넌 오늘 하루, 국가가 관장하는 CCTV 중 몇 곳에 모습이 찍혔을 것 같으냐?”

응? CCTV에? 누가 그걸 일일이 세고 다니지? 대충이라도 계산을 해보자. 내가 아는 주택가 CCTV는 한 다섯 개쯤 된다. 학교 앞에도 CCTV가 있고, 상가에도 있겠지? 대충 열 번쯤 찍혔을까?

“한 열 번?”

강혁 아저씨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까 널 데리러 간 형사 기억나지? 말끔하게 잘 생긴 녀석.”

“그 달리기 엄청 빠른 형이요?”

“뭘 빨라. 그 놈 발 느려서 맨날 욕 먹는 녀석인데.”

하, 도대체 다른 형사님들은 얼마나 빠른 거야? 내 눈엔 바람 같아 보이던 형이 느려서 욕 먹는 사람이라고? 강혁 아저씨가 턱을 괴며 말했다.

“너희 학교에서 여기까지 차로 13분. 그 도로를 오는 동안 속도, 신호위반 카메라와 방범용 CCTV, 도로교통 실시간 상황CCTV까지. 총 31개의 CCTV가 있다. 넌 오늘 단 13분 동안 31번 찍힌 거다.”

“·····················”

우리나라에 그렇게 CCTV가 많았나? 강혁 아저씨가 몸을 내밀며 말했다.

“보육원에서부터 너희 학교까지 설치된 CCTV를 직접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주택, 상가 밀집 지역이라면 3KM 내 CCTV는 평균 20개 이상이다. 즉, 넌 오늘 하루 51회 이상 촬영된 거야.”

와.. 우리 나라 치안은 CCTV가 지킨다더니. 진짜 엄청나게 많구나. 그저 일상을 소화했을 뿐인데 하루만에 51회? 아니지. 집으로 돌아갈 땐 그보다 더 많이 찍힐 거다. 그럼 진짜 하루에 100번 찍힐 수도 있겠구나. 근데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찍히는 CCTV를 일일이 다 확인한다고?

“그걸 누가 다 확인해요?”

강혁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까 다 봤잖아? 그 방에 있던 녀석들이 해야지.”

응? 잠깐. 아저씨 지시를 듣고 뛰어나간 아저씨가 둘. 취조실에 있던 장 팀장님과 끝까지 방에 남은 아저씨 하나. 총 네 명인데? 그 사람들이 그 많은 걸 다 본다고? 강혁 아저씨가 턱을 괴며 말했다.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 시작되겠지. 하지만 해야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을 막고, 죽은 이들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

경찰. 진짜 대단한 일이구나. 정말 멋진 사람들이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렇게 고생하는 사람들이었구나. 사실 시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경찰들은 보통 파출소 순경 형들이다. 친절하게 사람들을 안내해주고, 가끔 취객들을 제압하는 정도 밖에 보지 못했는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렇게 수고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조금 감동적이다.

정말 나. 경찰이 되어볼까? 이런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 속에 있는 기분은 어떨까? 나도 모르게 경찰대학교에 가겠단 소리를 하려던 바로 그때, 아저씨의 핸드폰이 울린다.

“잠깐만. 여보세요? 어. 어, 그런데? 뭐? 지랄 말라 그래. 아씨, 내가 간다. 기다려.”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툭 던진 아저씨가 급히 설렁탕 두 세 숟갈을 퍼 먹은 후 입을 닦는다.

“넌 다 먹고 가.”

지갑에서 삼만 원을 꺼내 내민 아저씨가 말했다.

“계산하고 갈 테니 이걸로 택시 타고 가라. 도착하면 바로 전화하고. 원래 보육원까지 태워 주려고 했는데 일이 좀 짜증나게 돌아가네.”

“왜요?”

아저씨가 삼만 원을 내 앞에 내려 놓은 후 말했다.

“변호사가 와서. 아 짜증나.”

응? 변호사가 왜 짜증나지? 아··· 드라마에서 보면 범인도 인권이 있네 뭐네 하면서 다 잡은 범인 빼 가는 양복쟁이들이 있었지. 이번에도 그런 건가 보다. 아저씨는 급한 기색으로 얼른 일어나며 뛰어나간다.

“못 태워줘서 미안하다. 집 가면 꼭 전화해!”

혼자 남은 나. 멀건 설렁탕 그릇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경험한 일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정말 경찰이 되어 볼까? 저렇게 멋진 일이라면 한번 걸어 볼만 한데. 후, 아직 결정을 못하겠다. 하긴 내 진로인데 이렇게 금방 결정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뜨거운 설렁탕을 후후 불어가며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택시를 잡으러 나왔다. 사실 돈을 아끼려 버스를 타고 싶었지만 처음 와보는 경찰청에서 보육원까지 가는 노선을 알 리가 없다. 슬슬 취객들이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 그런지 택시를 잡는 사람들이 꽤 많은 밤거리.

우두커니 그들을 보다 건너편에 보이는 경찰청 건물을 바라본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마치 꿈만 같다. 다시 저기에 갈 수 있을까? 경찰이 된다고 해도 저기 들어가는 건 어렵다고 했으니 아마 먼 훗날에나 갈 수 있겠지. 남의 일이었던 경찰이 어느새 서서히 내 꿈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경찰서 정문을 나서는 세 사람이 보인다. 한 명은 정장을 입고 있고, 나머지 둘은 남녀로 보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이는 셋을 확인하는 나.

“어··· 뭐야, 저거.”

신정희와 박세준이다. 나머지 한 명은 변호사일까? 아니,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밖으로 나와? 나와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설마 도주한 건 아니겠지? 아냐, 그렇다면 저렇게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 나올 리가 없잖아. 그때 고성이 들려오며 뒤에서 강혁 아저씨와 형사들이 뛰어나온다.

변호사 앞이라 그런지 몸싸움을 벌이진 않았지만 형사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법적 구류 시간이 남았다고!”

“이봐요, 변호사 양반. 우리가 뭐 강압수사 했습니까? 법적 절차 다 밟아서 하는 건데 뭐가 문젭니까?”

형사님들의 고성. 강혁 아저씨는 잔뜩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이래서 그렇게 짜증을 내며 급히 돌아가신 거구나. 마침 건널목에 보행신호가 켜진 걸 확인한 내가 재빨리 길을 건너 전봇대 뒤에 숨었다. 날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비하게 얇은 테를 쓴 변호사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박세준, 신정희 클라이언트께서는 사건의 참고인입니다. 도주의 위험이 없는 피해자의 가족들입니다. 게다가 박세준씨는 평소 당뇨를 앓고 계시며, 신정희씨는 협심증 진단을 받은 환자입니다. 이미 진단서는 보여드렸습니다만.”

형사 아저씨가 나서며 말했다.

“이봐요! 도주 위험이 없는지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변호사가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민다.

“박세준, 신정희씨의 여권입니다. 두분 다 3개월 전에 여권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즉, 해외도피의 염려가 없다는 뜻입니다. 도주 위험이 없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클라이언트를 지키는 것이 변호사의 임무입니다. 만약 이에 대해 이의가 있으시면 법무법인 ‘화정(花井)’으로 연락 주시죠. 여기 제 명함입니다.”

형사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이보쇼! 이 사람들 나가서 증거 은닉할 시간 다 주고 난 뒤에 이의 제기해서 도대체 뭘 하겠단 겁니까?”

변호사가 인상을 쓰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제 클라이언트를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보고 계신 겁니까? 그래서 취조실에서 20시간 가까이 참고인 진술을 받은 겁니까? 이거 경찰의 공식 발언 맞습니까? 증거는 보유하고 계십니까?”

형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숙인다. 전봇대에 숨은 난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이대로 나가게 둬선 안 된다. 반드시 잡아 둬야 해. 저 두 사람이 진범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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