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화. 시체 없는 살인사건 (7)
변호사의 날 선 목소리에 형사 아저씨들이 일제히 강혁 아저씨를 돌아본다. 하지만 아저씨도 수가 없는지 구둣발로 경찰청 입구 초소의 디딤돌을 차는 모습이 보인다.
강혁 아저씨가 옆의 형사에게 눈짓하자, 그가 전화기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나와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전화를 거는 형사 아저씨의 음성이 들린다.
“예, 아직 시신 신원 안 나왔습니까? 아니, 뭔 지문인식 프로그램 돌리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요? 훼손되지도 않은 시신인데. 지금 여기 상황 급합니다, 최대한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아저씨는 거칠게 머리를 털어내며 짜증을 낸 뒤 얼른 강혁 아저씨에게 달려가 보고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강혁 아저씨의 표정이 구겨진다.
“젠장, 할 수 없나.”
할 수 없다고? 일단 풀어준다는 뜻이구나. 변호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형사들을 쏘아보다 박세준, 신정희 부부에게 말했다.
“차로 모시겠습니다.”
저 족제비 같이 생긴 변호사가 살인범들을 풀어주고 있다. 저 둘이 밖으로 나가 이번 사건을 다시 되짚어 보고 혹시 지우지 못한 흔적들을 지울 수도 있는데. 도대체 이놈의 세상은 왜 합리적인 구석이 없을까?
뭔가 불안해 보이는 박세준이 자꾸 형사들을 돌아보며 주춤거리자, 신정희가 그런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눈치를 주는 모습이 보인다.
“이대로 보내면 안돼.”
나도 모르게 나오는 혼잣말. 시어머니도 장모님도 모두 어머니다. 그럼에도 저 여자는 자기 남자로 하여금 친모를 살해케 했다. 저런 인간은, 아니 저런 쓰레기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경찰이 벌을 주지 못한다면 지옥에 보내서라도.
순간 마음 속에서 악의가 솟구친다.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연신 옆에 선 남편을 곁눈질하며 수상한 행동을 할 때 마다 팔꿈치를 쑤셔 대는 여자. 전봇대 뒤에 숨어 눈만 내민 내게 그녀의 눈빛이 보이는 순간. 온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거대한 경찰청 건물부터 서서히 회색 빛으로 물들어가는 세상.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도, 행인들도 모두 서서히 멈춘다. 변호사를 따라 가는 두 사람도, 청의 정문 앞에서 두 사람의 감시 계획을 세우던 형사 아저씨들도 모두 정지한 세상. 왔다! 다시 기억이 보이는 거다!
나는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두 눈을 찢어져라 떴지만 빙글빙글 도는 세상은 도저히 눈을 뜨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어지럽다. 결국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어지러움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내 시야엔 좁은 골목길에 주차된 청록색 트럭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 차예요?’
수십 번 마음 속으로 되뇌어 익숙한 이 목소리. 이건 신정희의 목소리다. 나는 지금 팔짱을 끼고 트럭 뒤에 서 있다. 시야 속에 박세준이 나타나 트럭의 트렁크 부분을 손으로 툭툭 두들기는 모습이 보인다.
‘어.’
‘얼마 줬어요?’
’30.’
‘아니, 이 화상! 그냥 잠깐 쓴다고 빌려 달라고 하지!’
박세준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원래 이런 트럭 한 대 빌리려면 그 정도는 줘야 돼. 이것도 평소 알고 지내던 철물점 김씨 차라서 싸게 빌린 거야.’
‘하, 내가 당신 믿다가 심장마비 걸리고 말지. 돈은? 돈은 현금으로 줬죠?’
‘당연하지, 증거 남기지 말라며.’
‘그건 잘했네요.’
내 눈에 작은 미니백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손이 보인다. 날짜는 10월 2일 토요일. 핸드폰을 박세준에게 보여주고 다시 내 몸에서 음성이 울린다.
‘오늘 밤.’
박세준이 움찔하다 말했다.
‘오늘 당장 하라고?’
‘추석 연휴 끝나고 꽤 지났어요. 지금이 적기예요.’
‘하.. 알았다.’
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한 박세준. 하지만 그의 입에서 알았다는 말이 나왔다. 바로 그때 다시 온 세상이 돌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트럭 뒤를 보는 신정희. 나는 사력을 다해 트럭의 넘버를 기억한다. 또 다시 토악질이 나올 듯한 강한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전봇대를 붙잡고 있던 나는 앞으로 몸을 숙인 후 헛구역질을 한다.
“우웩!’
허리를 숙여 양 무릎을 잡고 속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을 하는 내 시야에 구둣발 한 쌍이 보인다. 사력을 다해 아직 어지러운 몸을 바로 세우자, 족제비 같은 변호사가 약간 놀란 얼굴로 내 앞에 서 있다. 전봇대를 지나는 중에 갑자기 내가 튀어나와 헛구역질을 해 놀란 모양이다.
당황했는지 안경을 여러 번 밀어 올린 그는 날 위 아래로 본 뒤 가타부타 말없이 박세준, 신정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계속 가시죠.”
박세준, 신정희. 두 악마가 나를 힐끔 본 뒤 스쳐 지나간다. 자꾸만 올라오는 토악질을 필사적으로 참는 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콜록, 콜록. 173 바 7525.”
처음에는 혼잣말을 하나보다 했는지 계속 갈 길을 가던 세 사람. 몇 걸음을 더 가서야 박세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춘다. 급히 뒤를 돌아보는 그의 눈에 경악이 머물러 있다. 신정희가 그런 박세준의 팔 소매를 끌었다.
“여보, 빨리 가요. 왜 자꾸 돌아봐요?”
“잠깐.”
박세준이 놀란 얼굴로 내 앞으로 주춤거리며 다가온다.
“방금··· 뭐라고 했지?”
극심한 멀미가 나는 듯한 느낌에 전봇대를 붙잡고 거친 숨을 토해내는 나. 하지만 나는 끝까지 박세준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경악과 당황. 그의 얼굴에 머무른 두 가지 감정. 반응이 있다. 내가 읽어낸 거다. 신정희가 따라와 박세준을 몸으로 민다.
“여보, 빨리 가자니까.”
박세준은 자신을 노려보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자기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친다. 그때 내 입이 다시 열린다.
“173 바 7525, 파란색 트럭.”
박세준의 발걸음이 다시 멈춘다. 이번엔 신정희의 눈도 커진다. 그녀는 넘버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변호사가 뚜벅뚜벅 걸어와 경악한 두 사람과 나를 번갈아 본다.
“무슨 일입니까? 아는 학생입니까?”
“··················..”
“··················..”
둘 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두 사람의 상태가 좋지 않자 변호사가 신정희에게 다가가 물었다.
“신정희씨?”
신정희가 움찔 놀라며 변호사를 보자, 그가 다시 묻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신정희가 나와 변호사를 번갈아 보다 얼른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 그만 가시죠. 여보, 빨리 가자.”
아내 목소리가 들렸지만 박세준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다. 신정희가 그의 옷을 잡아 끌었지만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박세준.
“너··· 너···”
신정희가 박세준의 어깨를 찰싹 때리며 언성을 높인다.
“여보! 정신 차려!”
아내의 뾰족한 목소리를 듣자 멍하게 날 보던 박세준의 깨어난다.
“어··· 어.”
“빨리 가자고요.”
“아, 알았어.”
신정희가 박세준을 끌다시피 해 주차장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변호사가 날 가만히 바라본다. 뭔가 있다는 걸 알아챈 변호사가 내게 질문을 하려 했지만 난 지금 족제비 변호사 따윈 안중에도 없다. 저 둘을 잡아 둬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를 죽이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죠?”
신정희에게 끌려가던 박세준의 몸이 또 다시 멈춘다. 나를 보고 있던 변호사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이 보인다. 냉소를 지으며 셋을 바라보던 내가 말했다.
“형을 죽이는 기분은요? 그건 어떤 기분이었어요?”
신정희가 날 돌아보지 않고 몸으로 남편을 밀었지만 이번엔 박세준도 힘으로 버티며 날 노려본다. 주먹이 하얗게 질리도록 꽉 쥐고 당장이라도 달려와 한대 먹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야 어지러움에서 벗어난 내가 전봇대에 의지해 몸을 세우고 그런 박세준을 노려본다.
그러자 박세준이 아내를 힘으로 비켜 세운 후 내게 걸어온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변호사가 박세준과 나사이를 막아 서며 말했다.
“진정하시죠, 여기서 폭행이 일어나면 저도 도와 드리기 어렵습니다.”
박세준이 충혈된 눈으로 날 쏘아본다. 그래, 여기가 그래도 대한민국 경찰청 앞인데 설마 치겠냐 싶은 마음이 든 나는 좀 더 용기를 냈다. 물론 그렇다고 거창한 짓을 한 건 아니고 그냥 냉소적으로 피식 웃어준 정도지만 박세준에게는 충분한 도발이었다.
내 웃음을 보고 달려드는 박세준. 변호사가 어깨를 밀어 넣어 그를 막아 세운다.
“박세준씨! 왜 이러십니까!”
“놔! 저 새끼, 저 새끼 누구인지 알아야 돼!”
변호사가 그를 저지하며 날 돌아본다.
“그냥 학생 같은데 아는 사이십니까?”
박세준이 흥분해 변호사의 얼굴을 밀며 외친다.
“몰라, 처음 보는 새끼라고!”
“아니, 그런데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날 향해 덤벼드는 아저씨. 무섭다. 저 사람은 그냥 깡패가 아니다. 살인범이다. 눈 앞에서 흥분한 살인범이 날뛰자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어릴 적부터 고아라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일진 녀석들에게 맞고 큰 나는 맷집 하난 자신 있었다. 때릴 테면 때려봐. 몇 대 맞는 거 하나도 안 무서워. 설마 경찰청 앞에서 사람 죽이기야 하겠냐?
마음 속에 깡이 생기자,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나는 더욱 짙은 웃음을 띄며 말했다.
“철물점 김씨 아저씨 알죠?”
히죽거리는 내 말을 들은 박세준이 더욱 날뛴다.
“이거 놔! 저 새끼 죽여야 돼!”
하지만 변호사는 그럴 수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향후 대처방안을 논의하던 형사들이 이쪽 상황을 보고 달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세준씨! 더 이상 날뛰시면 저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이거 놔! 저 새끼 죽여야 된다고!”
신정희는 내 입에서 철물점 김씨라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때 형사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와 내 앞을 막아 선다. 모두 취조실에서 봤던 형사 아저씨들이다. 하, 일단 맞진 않겠구나.
형사들은 앞의 상황을 몰라 현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일인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흥분해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드는 박세준에게서 날 지키려 나를 등 뒤에 놓고 그를 주시하고 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뒤에서 교복 카라를 훅 당기는 손길이 느껴진다. 억센 힘에 몇 걸음을 주춤거리며 물러나 뒤를 돌아보니 굳은 표정의 강혁 아저씨가 보인다.
강혁 아저씨가 날 보며 속삭인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말없이 검지와 중지로 내 눈을 가리킨 후 박세준, 신정희 부부를 가리키자 강혁 아저씨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읽었어?”
“네.”
“···············..”
강혁 아저씨가 순간적으로 뭔가 계획하는 눈빛을 보인다. 바로 그때, 아까 과학수사대에 전화를 했던 형사님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핸드폰을 흔들며 뛰어온다.
“차장님! 시신 신원 확인됐습니다! 실종자가 맞습니다!”
신정희가 얼굴을 감싸 쥔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날 뛰는 박세준은 여전히 날 죽이겠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그녀는 상황 파악이 빠른 듯 하다. 저러니 범죄를 계획할 수 있었겠지. 강혁 아저씨가 천천히 걸어가 박세준을 말리고 있는 변호사 앞에 서자,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차장님! 이 분 말리는 것 좀 도와 주시죠!”
강혁 아저씨가 능글맞게 웃으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제가 돕길 바라십니까?”
변호사는 이제 힘에 부치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예! 도움이 필요합니다!”
강혁 아저씨가 씩 웃은 후 눈짓하자, 내 앞에 있던 형사 아저씨가 바지 뒤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박세준에게 채우는 것이 보인다. 형사가 자기를 잡았다는 것도 모르고 날 노려보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박세준.
“이거 놔!! 저 새끼 혀를 잘라야 돼!”
그러자 형사 아저씨가 빙글 돌아 그의 뒤를 점한 후 다리를 걸어 바닥에 넘어뜨리고 양손을 수갑으로 결박한다. 황당한 얼굴의 변호사가 단정했던 처음과 달리 잔뜩 흐트러진 옷 매무새로 강혁 아저씨를 바라본다.
“제가 도와 달라고 했지, 언제 체포하라고 했습니까? 아직 제 클라이언트는 아무 범법 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에게 했던 폭언은 벌금으로 처리될 수 있는 일인데 왜 수갑을 채우시죠?”
강혁 아저씨가 빙긋 웃는다. 변호사는 그런 강혁 아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한 후 안경을 밀어 올린다.
“당장 수갑을 풀어 주시죠, 차장님.”
강혁 아저씨는 변호사를 보지도 않고 수갑을 차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박세준에게 다가간 뒤 쪼그리고 않아 말했다.
“박세준씨. 시신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참고인이 아닌 용의자입니다.”
변호사의 얼굴이 굳어진다. 강혁 아저씨가 일어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신정희에게 말했다.
“신정희씨 당신도 마찬가집니다.”
강혁 아저씨가 주변 형사들에게 눈짓한다.
“연행해. 아, 변호사님 앞이니까 미란다 원칙 읊는 거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