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화. 시체 없는 살인사건 (8)
신정희, 박세준이 연행되고 혼자 남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변호사. 강혁 아저씨를 노려본 그가 말했다.
“두 분은 사망자의 친족입니다. 유가족에게 존속살해 혐의를 씌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십니까? 증거는 있습니까?”
강혁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한다.
“증거는 아직 찾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연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혁 아저씨가 품을 뒤져 명함을 내민다. 변호사는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는 얼굴로 강혁 아저씨를 바라본다. 아저씨가 능글능글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CCTV 분석 결과 추석 이후에 사망자의 집에 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택배, 가스 검침도 모두 없었죠. 또한 주변 조사 결과 두 사람을 살해할 동기를 가진 인물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들을 살해할 강력한 동기를 가진 사람은 사업 빚에 허덕이고 있는 박세준, 신정희 부부 밖에 없습니다.”
“그건 억측입니다!”
“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변호사님.”
강혁 아저씨가 변호사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친다.
“시신의 신원이 확인된 이상 저 두 사람은 이제부터 참고인이 아니라, 사건의 용의자로 전환되는 겁니다. 신분이 전환되었으니 법적 구류 시간은 달라지겠죠.”
“························..”
강혁 아저씨가 변호사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이의가 있으시면 그 명함의 번호로 정식 이의제기를 신청하시죠. 법무법인··· 뭐라고 했더라? 거길 통해 정식으로 요청해 주시면 고맙겠군요.”
변호사의 얼굴이 굳어진다. 조금 전에 자기가 했던 말이 고스란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강혁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클라이언트가 연행되었는데, 변호사님이 동석 하셔야죠? 여기서 이러고 계셔도 됩니까?”
변호사가 강혁 아저씨를 노려보다 급히 바닥에 던져 둔 서류 가방을 챙겨 청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됐다, 이제 시간을 벌었다. 긴장이 풀리자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잡은 내 심장이 미뤄두었던 숨을 토해낸다.
“후우, 후우.”
그때 심호흡을 하는 내 등을 짝 소리 나게 후려치는 손길이 느껴진다.
“악!”
오그라든 오징어처럼 몸을 뒤틀며 허리를 곧추세우자 웃음을 머금은 강혁 아저씨가 보인다.
“잘했다, 이놈아.”
잘했는데 왜 때려요, 젠장.
강혁 아저씨가 내 목에 팔을 두르며 경찰청을 바라본다. 어느새 능글맞은 표정을 지우고 날카로운 눈빛이 된 아저씨가 말했다.
“방금 읽은 기억. 하나도 빠지지 않고 말해봐.”
“··················.”
“어? 말해 달라고.”
내가 답을 하지 않자 목을 감은 팔을 풀고 날 보는 아저씨. 그런 아저씨에게 검지를 까딱이며 말했다.
“아저씨한테 빚진 건 아까 갚았어요. 이제부터는 대가를 받고 도와줄 거예요.”
강혁 아저씨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인마?”
“싫으면 마세요.”
“야, 야!”
내가 손을 뿌리치고 가려는 시늉을 하자 아저씨가 내 옷깃을 붙잡는다.
“허, 이 능구렁이 같은 놈이. 그냥 순진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호랑이 새끼였네, 이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살인범 박세준을 상대하고 난 직후여서 그랬던 걸까?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말과 표정을 짓는다.
“세상이 그렇게 살라고 하던데요.”
“·····················.”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아저씨가 할 수 없다는 듯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다.
“원하는 게 뭐냐?”
“진술. 그거 지켜보게 해주세요. 사건 끝까지.”
“안돼, 인마.”
“그럼 됐어요.”
“딴 건 없어? 야, 핸드폰 또 새로 사주면 어때?”
“지금 것도 충분히 좋아요.”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없어요.”
“미친 놈아! 이거 밖에 알려지면 난 징계라고!”
“이미 지켜보게 하셨는데 뭐가 더 달라져요?”
“························”
강혁 아저씨가 이를 간다. 날 째려본 아저씨가 말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음, 진짜 안 되는 건가? 아저씨가 저런 표정까지 짓는 걸 보니 진짜 더는 안 되나 보다. 강혁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청을 눈짓한다.
“방금 봤지? 변호사 들어간 거. 아깐 변호사가 없어서 가능했던 거다. 이거로 태클 걸리면 다 잡은 범인 놓치게 될 수도 있어.”
“·····················”
아, 변호사. 그 사람이 들어갔지. 음, 그냥 알려주긴 아까운데. 강혁 아저씨가 슬그머니 물었다.
“뭘 봤는지 대충만 말해 봐.”
호, 거래 조건을 보시겠단 뜻이군. 대충 미끼를 풀어야겠다.
“차량 넘버와 차 색깔, 차종, 누구 차인지까지 전부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던 강혁 아저씨가 눈동자를 굴리더니 어느 순간 눈썹을 일그러뜨린다.
“남의 차를 빌려서 시신을 은닉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혁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박세준 명의의 차는 한 대야. 자기 차량수리 센터에 법인 명의 트럭이 있었지만 사업이 휘청거린 후론 운행기록이 없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 렌트 카 업체의 기록도 확인했지만 렌트 흔적도 없었고 은행이나 카드사용 기록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내가 혀를 살짝 내밀며 말했다.
“현금 주고 아는 사람한테 빌렸어요.”
“·····················..”
강혁 아저씨가 다시 이를 악문다.
“그게 누구인지도 읽었다고?”
슬쩍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가 이마를 붙잡는다.
“젠장, 빼도 박도 못하겠네. 아악! 미쳐 버리겠다.”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는 아저씨. 답이 안 나오는 모양이다. 이쯤에서 슬쩍 물러나자.
“그··· 있잖아요. 보고서인가?”
머리를 마구 긁고 있던 아저씨가 움찔하며 멈추는 것이 보인다.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부린 내가 말했다.
“사건 마무리 되고 그거 보여주는 조건이라면 제가 한발 양보할 게요.”
아저씨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날 바라본다.
“사건 다 마무리된 후에?”
“네.”
“··················..”
강혁 아저씨가 날 한참 바라보다 물었다.
“너 혹시 아는 기자 있냐?”
기자?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어요.”
“보육원 졸업생 중에도 없고?”
“없어요. 스무 살 되자 마자 국가에서 오백 만원 주고 보육원에서 쫓아내는데 다들 돈 벌기 바쁘지, 언제 대학가서 돈 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
강혁 아저씨가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검찰 송치 끝나고 보여준다. 됐지?”
됐다. 직접 보는 것만 못하겠지만 수사보고서를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상황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도 난 중간까지 사건을 봤으니까. 악수하자는 뜻으로 손을 내밀며 빙긋 웃자 아저씨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손을 마주 잡는다.
“어릴 때가 귀여웠는데. 능구렁이 자식.”
“히히, 사자도 어릴 땐 귀여워요.”
“젠장, 빨리 본 거나 말해!”
내가 읽은 기억을 말해주자, 핸드폰을 꺼내 녹음하는 아저씨.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봐 녹음을 하는 모양이다. 내가 읽은 기억 속에 사건의 열쇠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아저씨가 급히 청으로 돌아가고, 혼자 택시를 타고 보육원에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차량 시계를 보자 벌써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택시가 보육원 앞에 서자, 문 앞에 서서 초조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루이사 수녀님이 보인다. 택시비를 내고 차에서 내리자, 수녀님이 날 확인하곤 득달같이 뛰어 오셔서 내 몸을 살피신다.
“도경아!”
“수녀님, 늦어서 죄송해요.”
“무슨 일이야, 전화도 안 되고!”
“전화하셨어요?”
아, 아까 진술실에 들어갈 때 날 데리러 온 형사 형이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두라고 해서 못 받은 모양이다. 품을 뒤져 전화를 보니 수녀님께 열 네 통이나 부재중 전화가 와 있는 것이 보인다.
“죄송해요, 무음으로 해 둔 걸 깜빡 했어요.”
수녀님이 내 몸을 살피며 말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또 학교 애들이 괴롭힌 거야?”
“아뇨, 그런 일 없어요.”
“그럼 왜 이렇게 늦었니? 엄청 걱정했잖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포근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신다. 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엄마가 있다. 따뜻한 루이사 수녀님이 바로 내 엄마다. 가만히 수녀님의 손을 잡은 내가 보육원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저도 정리가 안되네요. 너무 늦었어요, 들어가요.”
수녀님이 함께 걸으면서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무슨 위험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닌 거지?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린 거 아니지?”
“에이, 무슨···”
음, 살인범이 눈이 새빨개져서 내 입을 찢어버린다고 덤볐는데. 나 안 위험했던 거 맞나? 뭐··· 형사님들이 지켜줬잖아? 나도 그거 믿고 설친 거니까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순 없지. 수녀님의 손을 끌고 보육원 문을 연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뇨,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사람들이랑 있었어요. 걱정 마세요, 수녀님.”
**
일주일 뒤, 학교에서 돌아온 내 눈에 보육원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 강혁 아저씨가 들어온다. 연락도 없이 방문한 아저씨는 날 가만히 바라보더니 눈짓으로 옆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책가방을 바닥에 두고 옆 그네에 앉자 주변을 확인한 아저씨가 가죽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를 꺼내 내민다.
“여기서 읽어. 다 읽으면 가져 가야 된다.”
오! 드디어 사건 보고서가 나왔구나. 생각보다 좀 늦었다. 며칠간 그 생각만 하다 이제 서서히 잊어 갈 때가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나 보다.
“좀 늦으셨네요.”
강혁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린다.
“인마, 얼마나 개 고생을 했는데.”
보고서를 들춰본 내가 물었다.
“왜 고생을 해요? 다 알려드렸는데. 그 차 못 찾았어요?”
“찾았지.”
“빌려준 사람은요? 30만원 받고 빌려준 거 맞죠?”
“어.”
“저수지 CCTV에 그 파란 트럭 안 찍혔어요?”
“··················”
보고서 몇 장을 넘겨보던 내가 답을 하지 않는 강혁 아저씨를 보자, 인상을 잔뜩 쓴 아저씨가 한숨을 쉰다.
“찾았지, 다 찾았지. 근데 젠장, 갑자기 신정희가 자긴 아무 것도 모르고 남편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헉, 그 악마 같은 여자가 남편도 죽이려고 하더니 죄까지 뒤집어 씌우려고 했구나.
“그래서요?”
“박세준에게 제대로 진술하게 설득하는 게 오래 걸렸지.”
음, 박세준에게 신정희는 어쨌든 아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내라도 살리려고 했을 확률이 높겠지.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강혁 아저씨가 턱을 괴고 말했다.
“처음에는 네 아내가 일이 끝나면 너까지 죽이고 보험금 수령하고 큰아들과 함께 보험을 들게 했다고 했지. 그걸로 설득이 될 줄 알았고. 근데 이 새끼가 끝까지 잡아 떼더라. 어차피 자기 혐의는 못 벗을 걸 알고 자기가 다 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사업 빚 때문에 그랬다고. 자기가 죽일 놈이고, 모두 인정한다고.”
“헐, 그래서요?”
“그 망할 변호사 새끼가 둘 사이를 오가며 신정희 지시를 박세준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더라. 그렇다고 변호인 동석을 거부할 수도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지.”
음, 범인이 공범의 존재를 부정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CCTV에 신정희는 안 찍혔어요?”
“어, 시신 내릴 때 모자를 쓴 남자만 나왔다. 과학 수사대의 인체 비율 분석으로 박세준인 건 확인했는데 신정희는 없었어.”
“차에 없었던 건가요?”
“아니, 있었는데 안 내린 거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오면 혼자 빠져나갈 계획을 세운 거야.”
“와···”
진짜 머리 좋은 여자였구나.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 했다니. 강혁 아저씨가 관자놀이를 긁으며 말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신정희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어. 하지만 사건 전부를 계획했지.”
말하는 걸 보니 신정희를 송치하긴 했구나.
“어떻게 신정희가 진짜 브레인인 걸 밝혀 내셨어요?”
강혁 아저씨가 씩 웃으며 자기 가슴을 두드린다.
“과학 수사대는 절대 못 알아내는 걸 알아내서.”
“응? 그게 뭐예요?”
아저씨가 그네를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신정희의 내연남을 찾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