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8화 (18/328)

제 18 화. 종로 경찰서 강력 3반 (2)

정복을 입고 종로 경찰서 앞에 선 나.

대학 졸업 후 순환보직을 돌고, 드디어 강력계로 왔다. 눈 앞에 보이는 종로 경찰서. 사실 이름이 주는 어감은 그리 좋지 않다. 고등학교 때 일제 강점기에 대해 배울 때면 수많은 우리 독립투사들이 이곳에서 일본 경찰들에게 고문을 받고 죽어갔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새삼 책에서나 보던 경찰서에서 근무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초소에 도착하니 내 계급장을 본 의경이 경례를 한다. 가볍게 경례를 받아준 난 가죽가방을 들고 건물로 들어갔다. 맨 처음 보이는 건 민원봉사실. 저기 가서 형사강력팀 위치를 좀 물어볼까? 몇 층인지도 모르고 왔는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도경 경위?”

뒤를 돌아보자 얇은 점퍼를 입은 50대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턱 수염이 까칠한 걸 보니 영락없는 강력계 형사가 분명하다.

“충성.”

경례를 붙이자 날 위아래로 바라보던 남자가 간단히 경례를 받아준 후 손을 내민다.

“정지훈이다. 계장이고.”

계장. 팀장 위의 책임자 직급이다. 아마 계급은 나보다 한 단계 위인 경감일 것이다. 악수를 하고 나서 함께 걷자는 듯 눈짓하는 정지훈 계장. 복도를 걸어가 건물 반대편 끝에 도착한 그는 다시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간다. 아, 흡연 구역이구나.

벤치에 털썩 앉은 그가 담배를 내민다.

“하나 해.”

“담배 안 태웁니다.”

“오, 그건 잘했네.”

담배 불을 붙인 그가 옆 자리를 눈짓하며 말했다.

“앉아.”

“예, 계장님.”

내가 자리에 앉자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낸 정지훈이 말했다.

“순환보직 해봤으니 경찰들 생리는 잘 알 거야.”

“···············.”

“여기 너 반기는 사람 없다.”

“···············.”

알고 있다. 사실은 순환보직 시절부터 느꼈다. 이제 막 경찰이 된 주제에 경위 계급을 달고 있으니 시기 질투하는 눈빛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강력계도 마찬가지다. 물론 처음이니 당장 직급을 주진 않겠지만 일단 경위라는 계급은 팀장급의 계급이다.

순경으로 들어와 10년 넘게 현장에서 굴러먹은 사람들도 따로 경찰간부 시험을 보지 않는 한 올라갈 수 없는 계급. 내 밑으로 경사, 경장, 순경이 있다. 특히 경사들 중에는 40대 후반도 있어 대하기가 쉽지 않다.

정지훈 계장이 담배를 물고 말했다.

“너보다 계급 낮다고 막 대하지 말고. 다 배울 게 있는 선배들이다 생각해.”

“예.”

“군대 어디 나왔냐?”

“707 나왔습니다.”

“오, 특임대 출신이야? 음, 어디 보자··· 이정호가 707 출신이었지, 아마.”

혼잣말을 중얼거린 정지훈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네가 소속될 강력 3반에 팀장이 이정호라는 녀석이다. 꽤 거친 녀석이긴 하지만 좋은 놈이야.”

“예, 계장님.”

“근데 애매하게 계급이 같네.”

상관없다. 계급이 같다고 경험이 같은 건 아니니까.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어, 그건 당연한 거고. 같은 팀 다른 형사들 역시 잘 대해줘. 잡음 나지 않게.”

“예, 계장님.”

“가봐, 강력반은 2층이야.”

“감사합니다.”

내가 어떤 녀석인지 파악하려는 듯 뚫어보는 그의 시선. 첫 날이니 저런 시선은 당연할 거다. 다시 건물로 들어와 2층으로 가자, 형사강력팀 현판이 보인다. 거칠어 보이는 조직 폭력배들이 수갑을 차고 끌려 들어가기도 하고, 다른 사무실에서 두어 명이 튀어나와 바람 같이 날 스쳐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도 하는 현장.

나는 문이 열려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 3반을 찾았다. 하지만 반을 가리키는 현판은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문 앞에 있는 형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실례합니다.”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던 형사가 눈만 들었다가 정복 어깨에 붙은 견장을 보고 흠칫 놀란다.

“죄송하지만 3반이 어디 있습니까?”

“아, 예. 저기 가운데 근처입니다. 잠시만요.”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곳을 가리킨다.

“저기 양말 벗어서 털고 있는 양반 보이시죠?”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더러운 양말을 벗어 냄새를 맡아 보더니 털어서 다시 신고 있는 노숙자가 보인다.

“예, 보입니다.”

“저 자립니다.”

“고맙습니다.”

형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자리로 가는 동안 빠르게 3반 사람들을 살핀다.

맨 먼저 보이는 건 복도 쪽 자리에서 의자를 젖히고 잠들어 있는 뚱뚱한 남자다. 배가 책상에 닿을 만큼 나와 있지만 반팔 티셔츠 아래로 보이는 어깨와 팔이 무식하게 굵다.

그 옆자리엔 여성경찰이 있다. 야상 자켓을 입고 팔을 살짝 걷은 단발 머리에 화장기 하나 없는 여성 형사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자린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현재 비어 있고, 나머진 빈 자리다. 맨 안쪽 자리에 조금 전에 봤던 노숙자가 앉아 있다. 밖에 봤다면 그저 노숙자로 알았겠지만 지금 저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는 반장 자리다. 저 사람이 정지훈 계장님이 말씀하신 이정호 반장인 모양이다.

뚜벅뚜벅 걸어 3반의 좌석에 들어가니 일을 하던 여성 경찰이 돌아본다. 날 보더니 흠칫하는 표정을 짓는 여성. 일단 첫 날이니 반장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먼저다. 나머지 인원과는 나중에 인사 나누자. 이반장에게 다가가자 그가 날 보지도 않고 손사래를 친다.

“아무데나 앉아.”

“··················..”

아직 내 소개도 안 했는데. 주춤거리는 날 보지도 않는 이정호 반장. 뭐라고 해야 되지? 안 반긴다는 건 알고 왔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첫 날부터 당황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자. 괜히 우습게 보여 좋을 건 없으니까.

이정호 반장을 중심으로 두 줄로 나뉘어진 자리. 복도에 가까운 자리는 이미 누군가 있는 것 같고, 바로 옆자리가 좋을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고 형사수첩과 펜, 내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정리했다. 그리고는 반장이 말을 걸 때까지 정자세로 앉아만 있었다.

하지만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갈 때까지 반장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니 그 만이 아니라 자고 있던 뚱땡이도, 여성경찰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몇 시간이나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앉아만 있었던 나. 그래도 점심은 같이 먹겠지. 밥 먹으며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면 될 거야.

점심시간 십 분 전이 되자 이정호 반장이 아우터를 입으며 말했다.

“연주야.”

모니터를 보던 여성경찰이 돌아본다.

“네, 반장님.”

“나 계장님이랑 점심 약속 있어서 나간다. 무슨 일 있으면 콜 해.”

“네.”

이정호가 날 힐끔 보며 말했다.

“어이.”

드디어 말을 걸어줬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며 답했다.

“예, 반장님.”

“뭐해?”

“대기 중입니다.”

이정호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한참 째려본다.

“이건 뭐··· 충원해 달라고 했더니 계급 높은 병신이 왔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초면에 병신이라니. 이건 좀 심했다. 이정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새끼야, 전출 왔으면 총무과 가서 컴퓨터부터 받아와서 세팅을 해야 될 거 아니냐? 오전 내내 멍 때리고 있어? 국민세금 받아 처먹는 새끼가 시간을 헛되게 써? 제 정신이냐?”

나 오늘 처음 왔다. 총무과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혼자 헤매고 다녀야 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말은 조목조목 맞는 말이다.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였다면 듣지 않아도 될 소리다.

“죄송합니다.”

“빨리 세팅해, 인마.”

“예, 반장님.”

얼른 자리를 벗어나 일단 사무실을 벗어나기로 한다. 총무과가 어디인지는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복도를 나서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형사가 큰 박스를 어깨에 메고 오는 것이 보인다. 포장지를 보니 PC인 것 같다. 저 사람에게 물어보면 총무과가 어디 인지 알겠지?

“저기 실례합니다.”

박스를 지고 가던 형사가 날 바라보다가 어깨의 견장을 확인하곤 반색한다.

“현도경 경위님?”

응? 날 어떻게 알지, 이 사람?

“예, 맞습니다만.”

박스를 어깨에서 내린 젊은 형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기다렸습니다, 경위님. 저 같은 3반에 있는 정관우 경장입니다.”

아, 이 사람이 비어 있는 자리 주인이었구나.

“반갑습니다, 경장님.”

정관우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 저보다 계급도 높으신 분이 경장님은 무슨. 그냥 편히 하시죠.”

나랑 연배가 비슷해 보인다. 짧은 머리에 몸도 날렵해 보이는 정관우. 첫 인상이 무척 살갑다. 몇 살일까?

“연세가 어찌 되십니까?”

“예, 저 27세입니다.”

“제가 두 살 많네요.”

“예, 그러니까 말씀 편히 하세요, 현경위님.”

여기도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그때 계장님과 약속이 있다던 이정호 반장이 복도로 나왔다가 다가와 정관우가 내려 놓은 박스를 발로 툭 차며 말했다.

“뭐냐, 이건?”

정관우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외근 갔다가, 경위님 PC 받아왔습니다.”

이정호가 입맛을 다시며 날 본다.

“조립이랑 연결은 할 줄 알지?”

“예, 반장님.”

이정호가 고개를 끄덕인 후 복도 끝으로 사라진다. 정관우가 웃으며 말했다.

“반장님 말투가 좀 퉁명스러워도 사람은 좋아요. 같이 일해보시면 금방 아실 겁니다.”

사람이 좋기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대뜸 병신이란 소리나 하는 사람 인성이 좋을 리가. 답없이 정관우가 내려 놓은 PC 박스를 짊어지자 그가 만류하며 말했다.

“경위님, 제가 하겠습니다.”

“아뇨, 제 PC인데 제가 들겠습니다. 들어가시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빠르게 PC를 연결하고 정리를 마치자,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빠르시네요.”

뒤를 돌아보자 반장이 연주라고 불렀던 여성 형사가 의자를 끌고 내 뒷자리에 있다.

“아, 예.”

“김연주입니다. 경장이고요.”

반장이 없으니 인사를 해주는 구나.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건네 본다.

“현도경입니다.”

“알아요, 오신다는 이야기 들었거든요.”

김연주가 아직도 자고 있는 돼지를 힐끔 본 후 의자를 질질 끌고 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친다.

“경사님.”

돼지가 흠칫 놀란 후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 씨. 깨우지 말라니까. 나 삼일 만에 자는 거다. 어?”

김연주가 말했다.

“새로 오신 경위님 오셨어요.”

돼지가 실눈을 뜨고 뒤를 돌아본다. 나와 눈을 맞춘 그가 건성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최영현이요.”

지 이름을 말한 건가?

“아, 예. 현도경입니다.”

“·····················”

그게 끝이다. 그는 다시 잠을 청한다. 김연주가 다시 그의 어깨를 밀며 말했다.

“점심 안 먹어요?”

“내버려 둬, 나 밥보다 잠이 급하다.”

이번엔 책상 위에 엎드리는 최영현. 김연주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식사는 저랑 관우와 함께 하시죠.”

“어디서 먹습니까?”

“구내식당이요.”

“예, 가죠.”

정관우와 김연주는 계급도 같고 꽤나 친해 보인다. 약간 소외되는 기분이 느껴졌지만 그때마다 정관우가 말을 걸어주어 그나마 대화에 낄 수 있었다. 구내식당으로 와 구석자리에 온 정관우가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

“경위님, 경찰대 수석 졸업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거 진짜예요?”

김연주도 소문으로 들었는지 귀를 쫑긋거린다.

“아, 뭐. 맞습니다.”

정관우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언제 위로 치고 올라갈지 모르는 분인데.”

이것이다. 사람들이 경대 출신을 배척하는 이유. 지금은 아랫사람이지만 언제 윗사람이 될지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강혁 아저씨가 그랬다. 절대 계급으로 밀고 들어갈 생각하지 말라고. 현장에서 구르던 인간들은 네 계급장 따위 신경도 안 쓴다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대하라고 했다.

내가 아는 겸손한 말 중에 적절한 단어를 조합해 답할 문장을 만들던 도중 김연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밥을 먹다 전화를 받은 그녀가 인상을 찌푸린다.

“예? 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가 수저를 던지며 말했다.

“출동이랍니다.”

정관우가 밥을 크게 한술 떠 입에 밀어 넣은 후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간다. 응?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어딘데? 무슨 일인데? 말을 해주고 가, 이 양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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