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9화 (19/328)

제 19 화. 종로 경찰서 강력 3반 (3)

긴급 출동 명령을 들은 건 우리 셋만이 아니었는지 종로 경찰서 건물에서 형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 많은 형사들이 뛰어 나가는 걸까? 계단을 보니 잠을 잔다던 최영현도 거대한 몸을 뒤뚱뒤뚱 움직여 내려오고 있다. 김연주가 손을 들며 소리친다.

“최 선배!”

최영현이 손을 들어 보인다. 급하게 뛰어 오다 아직 차를 기다리는 우릴 보곤 약간 속도를 늦추는 최영현. 천천히 걸어오며 기지개를 편 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 잠 좀 자자, 잠 좀.”

마침 정관우의 차가 우리 앞에 멈춘다. 은색 봉고차다. 최영현이 제일 처음에 타 맨 뒷자리를 차지했고, 내가 그 다음, 김연주가 마지막에 타며 문을 닫고 소리친다.

“출발!”

정관우는 운전이 꽤나 능숙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며 가끔은 신호무시도 했지만 위험한 상황은 한번도 없었다. 운전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시내에서 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안락한 차 속에 앉아 옆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고 있는 김연주를 바라보았다.

“저, 김연주 경장님. 저희 어디 가는 겁니까?”

김연주가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형사가 긴급출동 떨어지면 어디 가겠습니까, 현장이죠.”

내가 그걸 몰라서 물었겠냐? 그러니까 무슨 사건 현장이냐고. 뒷자리에 있던 최영현이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어디 식구들끼리 터진 거야?”

응? 어디 식구들? 뭐가 터져? 김연주가 핸드폰을 보며 답한다.

“동양이랑 향우요.”

“씁.”

최영현이 혀를 차며 등을 기댄다.

“연장은?”

“아직 지시 없어요.”

가만 보자. 어디 식구들, 그리고 연장. 어떤 일인지 대충 알겠다. 조직 폭력배끼리 다툼이 일어난 모양이다. 내가 슬쩍 뒤를 돌아보자 최영현이 날 빤히 보며 말했다.

“쌈질 좀 합니까?”

싸움이라. 고등학교 때 이후로 해본 적 없다. 대련이나 군 임무 상의 실전제압은 많이 했지만.

“싸움을 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최영현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실소를 짓는다. 하지만 반장처럼 병신이니 뭐니 하는 소린 하지 않는다. 계급이 깡패인데 그런 소리까진 못 하겠지. 어쨌던 내 아래이니까. 하지만 무시하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목 뒤로 깍지를 낀 최영현이 광배근을 풀며 말했다.

“현장 가서 쫄리면 뒤로 물러나 있어요, 괜히 칼 맞고 첫 날부터 입원하지 마시고.”

언제까지 참아줘야 되는 걸까? 강혁 아저씨와 정지훈 계장님이 신신당부를 하셔서 아직은 참고 있지만 슬슬 성질이 돋는다. 뒤를 노려보며 한 소리 해줄까 하는 찰나, 김연주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반장님 도착하셨답니다. 관우야, 얼마나 걸려?”

운전을 하던 정관우가 핸들을 틀며 말했다.

“도착!”

급정거를 하는 차량. 기우뚱한 몸을 바로 세우고 날 듯이 내리는 김연주를 따라 내리자,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했는지 함께 출발한 같은 서 형사들이 보이지 않고 6층짜리 안마 시술소 건물을 둘러싼 열 명 가량의 순경들만 보인다.

반쯤 부서진 검은 유리문 앞에 서서 담배를 꼬나 문 이정호 반장이 우릴 힐끔 보며 말했다.

“왔냐?”

최영현, 정관우, 김연주를 따라 이정호 반장 뒤에 자리한다. 최영현이 주먹을 풀며 물었다.

“동양이랑 향우 애들 맞아요?”

이정호가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어.”

“동양 새끼들 요즘 도박장 쪽으로 사업 틀었다더니 아직도 업소 정리 안 했나 보네요.”

이정호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비벼 끈 후 뒤를 돌아보는 순간, 종로경찰서 형사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서른 명이 넘는 형사들이 차에서 내리는 걸 보던 이정호가 눈에 걸리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신참.”

“예, 반장님.”

“괜히 나서서 처 맞지 말고, 뒤에서 보조나 잘해라.”

쌈질하는데 무슨 보조가 필요한 겁니까? 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일단 참자. 이정호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걸리적거리다 짐 되지 말고 자신 없으면 처음부터 후방에 있어, 알아 들었어?”

“·········.”

“대답?”

“예.”

이정호가 혀를 찬 후 달려오는 형사들과 보조를 맞추어 몸을 앞으로 쏘아 보낸다.

“들어가! 발포불가, 빠따, 각목은 대충 몸으로 막고, 칼 들어오면 그때 조준해, 발포는 불허한다. 위협만 하면서 제압해!”

형사들은 달려오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대답도 없이 빠르게 안마시술소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따로 대답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얼결에 따라 뛰던 나. 맨 앞에서 황소처럼 콧김을 뿜으며 밀고 들어가는 최영현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달려들던 검은 정장의 조폭이 붕붕 날아간다. 복도가 피로 물들어 있다. 적의 적은 공동의 적이란 걸까? 지들끼리 싸우던 조폭들은 형사들을 보자 마자 서로를 놓고 우리에게 달려 들기 시작했다.

복도를 밀고 들어가는 최영현은 몇은 때려 눕히고 몇은 목을 잡고 뒤로 넘긴다. 뒤 따라가던 정관우의 발차기가 작렬하는 모습도 보인다. 모양새를 보니 태권도를 꽤 오래한 모양이다. 자기도 모르게 태권도 발차기 자세가 나오는 걸 보니.

김연주는 손에 핸드폰을 쥐고 폰 아랫부분으로 상대를 가격하는 중이다. 이 사람도 무지하게 빠르구나. 여자라서 이런 현장에서 무슨 힘을 쓸까 싶었는데 장난 아니다. 손과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일반인이라면 남자라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래서 강력계 형사구나.

그리고 이정호 반장.

역시 특임대 출신다운 싸움 방식이다. 정확히 상대의 혈을 짧게 타격해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격투 기술. 저건 707특임대들이 배우는 전투방식이다.

같은 팀 사람들의 능력치를 확인하며 달려가는 나. 아쉽게도 내 차례까진 안 온다. 최영현, 정관우, 김연주, 이정호 반장이 앞에서 다 정리를 해 버리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내 뒤의 형사들은 그저 쓰러진 건달들을 밟고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가며 뛰다, 문이 보이면 문을 발로 차고 안에 조폭이 없는지 확인하는 일 밖에 없다.

방금 이정호 반장이 지나간 복도 옆에도 문이 있다. 확인은 내 몫이다. 문을 벌컥 열자, 붉은 조명에 침대와 화장대가 보이고, 안 쪽에는 목욕탕 같은 곳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에 선한 구역질 나는 곳을 일별하고 다시 복도로 고개를 돌렸을 때 저 앞에 달려가는 이정호 반장의 뒤에서 옆 문이 열리며 칼을 든 조폭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순간적으로 이미 지나가 뒤를 보지 않는 이정호와 조폭 간의 거리를 계산하자, 팔을 쭉 뻗고 휘두르면 닿을 거리라는 셈을 마친 나는 바로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이미 이정호 반장에게 몸을 돌린 놈의 허리에 태클을 걸자,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친 신음을 내는 조폭.

“으헉!”

바닥에 쓰러진 놈을 전투 불가능 상태로 만들기 위해 한 대 더 먹이려고 했지만 이 놈 꼴을 보니 방금 태클로 이미 허리가 나간 모양이다. 강하게 쥐었던 주먹을 펴고 손바닥으로 녀석의 등을 두들긴 내가 말했다.

“운동 좀 하고 살아라, 새끼야.”

뒤 따라오던 형사들이 실소를 짓는 모습이 보이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팀원들이 앞서 나갔으니까. 이미 복도 끝으로 사라진 것을 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중인 모양이다. 뒤쳐지지 않게 재빨리 뛰어 올라가자 2층 복도와 계단이 이어지는 문 앞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세 명의 조폭이 문을 막고 칼을 들이미는 것을 보고 있는 최영현이 엉덩이를 조금 뒤로 빼고 말했다.

“야야, 그거 휘두르면 그냥 안 끝난다. 어차피 여기서 못 빠져나가. 그러니 얌전히 가자, 응?”

조폭들은 상당히 어려 보인다. 아마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놈들일 거다. 하지만 잔챙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저 때가 제일 무섭다. 시키는 일은 뭐든 다해서 위로 올라갈 생각 뿐인 애들이니까. 경찰이든 뭐든 일단 찌르고 빵에 다녀오면 자기 앞날이 창창할 거란 착각을 하는 때라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 명의 조폭들이 일제히 칼을 앞으로 뻗으며 위협을 한다.

“물러나, 이 새끼들아!”

“왜 남의 업소에 와서 지랄들이야!”

“들어와! 들어와 보라고!”

최영현이 할 수 없다는 듯 총에 손을 올리는 것이 보인다. 그때 뒤에 있던 이정호 반장이 튀어나가는 것이 보인다. 언제 벗었는지 점퍼를 손에 쥐고 맨 앞에 있는 조폭의 칼을 휘감은 그가 손을 강하게 뒤로 빼자 칼이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양 옆에 있던 조폭들의 칼이 그의 복부 쪽을 노린다.

“반장님!”

“안돼!”

최영현이 총을 꺼내 들었지만 이미 출발한 칼은 이정호 반장의 배에 닿기 직전이다. 이정호는 왼쪽에서 들이치는 칼을 점퍼로 휘감았지만, 오른쪽 칼날을 막기는 늦었다. 칼 한방을 먹을 각오로 배에 힘을 주는 것이 보인다. 바로 그때 오른쪽 조폭의 칼을 잡은 손목에 채찍 같은 것이 내리쳐 진다.

바닥에 떨어져 버린 칼. 이정호 반장은 순간적인 틈을 놓치지 않고 왼쪽 조폭의 칼 잡은 손을 붙잡은 채 오른발로 오른쪽 조폭의 얼굴을 차버린다. 그후, 왼쪽 조폭을 당겨 몸을 돌려 세운 후 뒤통수를 잡고 벽에 박아 버린다.

쾅!!

한방에 몸에서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조폭. 여전히 그의 뒤통수를 붙잡고 있는 이정호가 슬쩍 돌아본다. 내 손에 벗고 있었던 정복 아우터가 들려 있는 걸 본 이정호가 씩 웃었다.

“방금 너냐?”

최영현, 정관우, 김연주가 날 바라본다. 방금 왼쪽 조폭의 칼을 옷으로 후려친 건 나였다. 뭐 대단한 일 한 것도 아니라 가타부타 말없이 서 있었더니 이정호가 차갑게 웃으며 뒤통수를 잡고 있던 조폭을 옆으로 밀어낸 후 말했다.

“신참.”

“예.”

“병신이란 말은 취소한다.”

뭐.. 고맙다고 해야 되는 겁니까?

이런 걸로 칭찬받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병신 취급 면한 게 다행이다 생각할 무렵 또 다시 복도에서 우릴 보고 달려오는 조폭들이 보인다. 이정호 반장이 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신참 싸움 좀 하냐?”

최영현이 날 보며 끼어든다.

“싸움 안 한다고 했는데.”

사람이랑 안 싸운다고 했지, 내가 언제 쓰레기 청소도 안 한다고 했습니까? 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한번 맡겨 보시죠.”

이정호 반장이 씩 웃으며 눈짓한다.

“선두에 서.”

앞을 막고 있던 최영현이 비켜서자, 문 앞에서 달려오는 조폭들이 정면으로 보인다. 말없이 앞으로 나선 내가 복도 문턱을 붙잡고 바닥에 등을 대고 미끄러지자 달려오던 조폭들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날 찾기 위해 아래를 본다. 둘 모두 다리를 걸고 넘어뜨린 후 오른쪽 녀석의 팔을 붙잡고 부러뜨리자, 우두둑 하는 괴상한 소리가 난다.

“끄아아아아!!”

그새 일어난 왼쪽 조폭이 다시 달려드는 걸 보고 무릎을 차 버리자, 한쪽 다리가 뒤로 날아가며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녀석이 넘어지는 힘을 받아 무릎으로 얼굴을 깨 버리자, 공중에 조폭의 부러진 이빨이 비상하는 것이 보인다.

뒤에서 정관우의 박수가 들려온다.

“우와! 경위님, 대박!”

아직 안 끝났다. 내가 오늘 하루 받은 멸시와 수모를 여기서 다 풀어주마. 아주 합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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