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0화 (20/328)

제 20 화. 종로 경찰서 강력 3반 (4)

6층의 안마시술소 건물 앞.

수많은 경찰차들과 지원 온 순경들만 백 명이 넘게 움직이는 현장에서 줄줄이 수갑을 찬 조폭들이 얼굴이 걸레가 된 상태로 비틀비틀 걸으며 체포되고 있다.

약 한 시간이 넘는 격투 덕에 약간 지친 나는 응급차에 앉아 손을 바라보고 있다. 주먹질을 잘못 했는지 피부가 꽤 많이 벗겨져 피가 나고 있지만 아드레날린의 영향 때문인지 이상하게 고통이 없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니 뼈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다.

하긴 중학교 때부터 웬만한 조폭들은 찜 쪄 먹을 형사님들과 대련해 왔는데 저런 건달들에게 질 리가 없지. 그때 손수건 한 장이 쑥 들어온다. 눈을 들어보니 김연주다.

“피 닦으세요.”

“괜찮습니다.”

“감염되면 어쩌게요.”

“여기 거즈 많습니다.”

김연주가 주변을 본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응급차 뒤 켠이란 걸 확인한 그녀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었다. 여긴 널린 게 구급 약품이었으니까. 그녀의 호의를 거절한 건 아니다. 단지 손수건에 피가 묻으면 빨기 힘들 테니 배려한 것뿐이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정관우의 얼굴이 쑥 튀어나온다.

“경위님! 무슨 운동하셨어요? 장난 아니던데요? 오늘 경위님 혼자 한 스물은 때려 눕혔죠 아마?”

그냥 씩 웃고 말았다. 수녀님이 그랬다. 자랑하는 건 못난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정관우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 그래요, 최선배님?”

차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최영현도 근처에 있나 보다. 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뭐, 건달 새끼들 몇 놈 잡은 걸로 호들갑은.”

“우와, 선배님보다 경위님이 더 잡으셨거든요, 다 보셨으면서.”

“내가 선두였으면 나도 그랬을 거다.”

“킥킥, 과연?”

“이 새끼가.”

그때 저 쪽에서 현장상황 지시를 마친 이정호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날 힐끔 보더니 내 손을 바라본다.

“다쳤냐?”

“아닙니다, 피부가 좀 까진 거 말곤 괜찮습니다.”

이정호는 날 살펴본 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707?”

그의 입에서 군 출신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해병대처럼 사회에 나와서도 선배에게 경례를 하는 문화는 없지만 일단 지금은 하는 쪽이 좋겠다. 응급차에서 뛰어내린 후 허리를 펴고 말했다.

“계장님께 들었습니다, 141기입니다.”

이정호 반장의 얼굴이 펴진다.

“94기다.”

“충성.”

“쉬어.”

이정호 반장의 얼굴이 한층 살가워진다. 역시 경례를 하길 잘했다. 내 어깨를 툭 친 그가 말했다.

“처음부터 말을 하지 그랬냐.”

말할 기회는 줘야 하지, 이 양반아. 오전 내내 한 마디도 안 걸어 놓고. 이정호가 김연주, 정관우, 최영현을 차례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 우리 팀에 새로 온 신참을 소개한다.”

빨리도 소개해 준다. 이미 통성명도 다 했는데. 이정호가 날 눈짓하며 말했다.

“현도경 경위다.”

정관우가 크게 박수를 친다. 김연주도 따라 박수를 쳐 준다. 최영현은 마지 못해 박수를 치는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첫 날부터 팀원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기분이 든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이정호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일단 복귀해서 조서 꾸미고, 저녁에 회식이라도 하자. 신입도 왔는데.”

회식 이야기가 나오자, 최영현이 얼른 나선다.

“오늘 소고기 먹는 겁니까?”

이정호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돈으로 사 먹어, 새끼야. 회식비 얼마 안 남았어.”

최영현이 인상을 구긴다.

“또 삼겹살 먹는 겁니까?”

“미친, 혼자 삼겹살 10인분씩 처먹는 새끼가 할 소리야? 우리 팀 회식비 70%는 네 뱃속으로 들어간다, 돼지야.”

“아,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게 그러지 맙시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주는 대로 처먹어.”

“칫.”

“빨리 가서 정리하고 한잔 빨러 가자.”

**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들을 검거한다고 경찰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서로 끌려온 녀석들의 기본신상정보를 확인 후 조서를 꾸미고, 진술을 받은 후 기소장을 검찰에 보낸 후 유치장에 넣어야 끝난다. 물론 거기가 진짜 끝은 아니다. 하루 이틀 후에 검찰이 송치할 죄인들을 데리고 가야 완전히 끝난다.

조서를 다 쓰고 유치장에 넣어둔 녀석들도 가만 있지 않는다. 남자 놈들이 뭐 그리 할말이 많은지 쉴 새없이 조잘거린다.

“어이, 형사님. 밥 좀 시켜 주시죠.”

“삼선 짬뽕 하나.”

“전복죽 배달 됩니까? 요즘 위가 안 좋아서.”

“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선짓국 좀 먹어야 되겠네.”

물론 난 그들 쪽은 보지도 않는다. 가끔 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 최영현이 순경의 곤봉을 빼앗아 감옥 철창을 두들기며 위협한다.

“너 이 새끼들,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인 줄 알아? 조용히 안 해? 확 아가리를 찢어버릴라.”

그렇게 처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린 조폭들이 비아냥거린다.

“이래도 됩니까?

“식사 제공은 인권에 보장된 겁니다, 형사님이 그것도 몰라요?”

최영현이 철창 사이로 곤봉을 마구 쑤셔 넣으며 말했다.

“씨발 새끼들아, 밥 때가 되야 밥을 주지, 지금 몇 신데 밥을 달래 또라이 새끼들이.”

“어어, 지금 반항도 안 하는데 때리는 겁니까? 변호사 불러요.”

최영현이 열이 잔뜩 받은 얼굴로 조폭을 노려보다 문을 따고 들어가려 하자 정관우가 달려와 그를 뒤에서 안는다.

“아이고, 선배님. 참으세요,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 매번 이러십니까?”

“놔, 내가 오늘 저 새끼 목 따고 옷 벗는다.”

“어어! 몸에 힘 빼요, 빼.”

조서를 쓰던 내 입가에 웃음이 맴돈다. 최영현 저 아저씨는 형사보다 조폭을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어쨌든 총 42명의 조직폭력배를 검거하고, 강력계 실적을 단단히 올린 후 근처 삼겹살 집에 도착한 우리. 막내라 그런지 고기 굽는 걸 도맡아 하는 정관우가 신나게 가위질을 하며 말했다.

“경위님, 환영합니다, 이거 한 점 드세요.”

내 그릇 위에 잘 구운 삼겹살을 한 점 놓아주는 정관우. 힐끔 보니 나보다 이정호 반장의 그릇에 먼저 한점을 올려 놓은 것이 보인다. 거참 눈치도 빠르고 싹싹한 게 참 괜찮은 친구다.

“고맙습니다.”

“말씀 편히 하세요, 제가 동생이고 계급도 낮은데.”

“그래도 강력계에선 선배신데.”

정관우가 손사래를 친다.

“선배는 무슨. 계급이 깡패죠. 사실 저보다 어렸으면 기분이 좀 그랬겠지만 형님이신데.”

“음, 정말 그래도 돼?”

“그럼 당연하죠, 형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예, 도경 형님! 이제부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

진짜 싹싹한 녀석이다. 장사를 해도 잘할 녀석 같구나. 말없이 쌈 무를 입에 넣고 씹는 김연주가 보인다. 아까 움직임이 생각나 편한 분위기에 편승해 물었다.

“김연주 경장님도 엄청 빠르시더군요. 운동 많이 하셨나 봅니다.”

김연주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만 살짝 저었지만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듯 얼굴이 살짝 펴진다. 정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연주는 복싱 선수 출신입니다, 형님. 올림픽도 나갔어요.”

“야, 창피하게. 조용히 해.”

김연주가 쏘아붙였지만 관우는 그저 웃는다. 음, 복싱 선출이었구나. 어쩐지 주먹이 보이지도 않더라. 문득 정관우의 발차기가 떠오른 내가 물었다.

“관우 넌? 태권도?”

“예, 형님. 저 아시안게임 특채로 들어왔습니다.”

“특채?”

“예, 순경 건너 뛰고 바로 경장으로 왔죠.”

“대단하네.”

“에이, 형님은 바로 경위로 오셨는데 훨씬 대단하시죠.”

정이 가는 녀석이다. 적당히 자신을 낮출 줄도 알고, 상대를 띄워 주는 법도 아는 녀석이구나. 구석에서 이정호와 최영현이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기 최영현 경사님은?”

정관우가 몸을 살짝 숙이며 말했다.

“최선배도 아시안게임 특채로 들어오셨어요.”

“무슨 종목?”

“유도요.”

어쩐지 어깨와 몸통이 무식하게 크다 했다. 최영현은 키가 190은 되는 거인이다. 물론 선수 때는 저렇게 체지방이 많은 몸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제일 높은 체급에서 뛰었겠지. 사람 체형은 바뀌지 않으니까.

김연주는 여성임에도 176쯤 되어 보이는 큰 키를 가지고 있다. 복싱을 할 당시 저 긴 리치 덕을 많이 봤을 거다. 정관우는 김연주보다 오히려 작다. 하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에 탄력 있는 코어로 팡팡 잘 뛰게 생겼다.

정관우가 계속 고기를 구우며 말했다.

“형님 키가 어떻게 되세요?”

“182.”

“호, 좋겠다. 나도 다시 태어나면 180 넘게 태어났으면 좋겠네요.”

이 녀석은 키 작은 게 불만인가 보다. 이정호 반장과 최영현은 구석에서 자기들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나는 김연주, 정관우와 술을 마시며 꽤 친분을 쌓았다. 한잔 두 잔 술이 들어가고 어느새 거나하게 취한 시간.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 되자, 관우 녀석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술이 약한 모양이다.

반면에 김연주는 멀쩡하다. 이 사람은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었을 것 같다. 소주를 마시기 전에 맥주로 시작해서 그런지 화장실이 가고 싶다. 동네 골목길에 있는 작은 삼겹살 집이니 아마 화장실은 밖에 있겠지.

“할머니, 화장실 어디예요?”

상추를 더 가져 오시던 주인 할머니를 붙잡고 물어보니 건물 밖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건물 안 반 층 위에 화장실이 있단다. 김연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그냥 들어가기 뭐해 삼겹살 집 앞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력계로 온 첫날.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처음 긴장했던 것에 비하면 팀에 비교적 잘 녹아 든 것 같아 기분이 괜찮다.

그때 삼겹살 집의 알루미늄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최영현이 날 내려 보고 있다.

“여기서 뭐합니까?”

“아, 화장실 좀 다녀오는 길인데 잠깐 바람 좀 쐬려고요.”

내가 계단에서 비켜주자, 그가 가게에서 나오며 주변을 본다.

“화장실 어디래요?”

“그쪽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최영현이 화장실로 간다. 열린 문으로 안 쪽을 보니 이정호 반장이 이번엔 김연주를 붙잡고 이야기 중이다. 얼굴이 벌건 것을 보니 최영현과 꽤나 마신 모양이다. 술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스타일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정감 가는 골목길을 바라보던 나.

종로 뒷골목이라 그럴까? 옛 동네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종로 근처를 몇 번 지나가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후미진 주택가가 있는지 몰랐다. 잠깐 짧은 산책이라도 해볼까 싶어 천천히 걸어가며 동네를 본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 이런 곳에 도둑이 들면 여러 집을 한꺼번에 털 수도 있겠다 싶다.

주택 몇 개를 지나자, 높은 언덕을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언덕 주변에도 집들이 있다. 경사로에 지어져서 그런지 대문도 찌그러지게 보이는 집들. 어떤 사람들이 사는 집일까? 가만히 집을 바라보다 다시 삼겹살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삼겹살 집까지 이어진 주택가들. 새벽 한 시였지만 아직도 불이 켜진 집이 많다. 모두 가족들과 TV를 보거나,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중이겠지. 나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다. 약간의 부러움이 느껴져 자꾸만 불 켜진 주택가들을 바라보게 된다.

삼겹살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화장실에서 나온 최영현이 보인다. 별로 마음에 드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일단 같이 마시고 있으니 함께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몇 걸음을 옮기려던 바로 그때. 다시 한번 주택가를 돌아보던 내 눈에 골목길 사잇길에 있는 아주 작은 골목의 끝 집, 초록색 대문을 턱으로 밀고 나오는 하얀 개가 보인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동네 개. 일명 백구라고 불리는 하얀 똥개였다. 하지만 나는 그 익숙한 광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입가에 저거··· 설마 피야?’

하얀 백구의 입가에 잔뜩 묻어 있는 붉은 피. 연신 혀로 입가를 핥고 있는 개가 날 보고 꼬리 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