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1화 (21/328)

제 21 화. 박제(剝製) (1)

O tic he mostri per sibestial segno

Odio sovra colui tu ti mangi

Dimmi’l perche, diss’ io···.

‘오, 그 자를 그렇게 짐승처럼 씹어 먹으며

강렬한 증오를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보라’ 내가 물었다.

나를 보고 웃는 듯 혀를 내미는 백구를 뚫어지게 보았다. 거뭇거뭇한 털이 중간중간에 섞여 있는 걸 보니 영락없는 잡종이다. 나이는 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인다. 검은 코 주변에 잔뜩 묻은 붉은 액체. 개의 코 끝에 묻을 붉은 액체가 피 말고 뭐가 있을까?

고개를 돌려 보니 화장실을 다녀온 최영현이 삼겹살 집 앞에서 날 보며 담배 불을 붙이는 것이 보인다. 일단 개를 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이리와. 쭈쭈.”

쪼그리고 앉아 손을 내밀자, 누가 키우는 개인지 쪼르르 달려와 꼬리를 엉덩이로 말고 몸을 낮추곤 애교를 부리는 백구. 손이 닿기도 전에 발라당 몸을 뒤집더니 손을 앞으로 모으고 바닥에 등을 비비며 좋아한다.

“잠깐만 보자.”

백구의 주둥이를 만져 보자, 미끌미끌한 감촉이 느껴진다. 냄새를 맡아 본 난 그것이 피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최영현을 보자,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며 날 물끄러미 보고 있다. 그의 시선에서 보기엔 내가 그저 개를 좋아하는 인간인가 보다 할 것이다. 슬쩍 손을 들자 담뱃재를 털던 그가 멈칫한다. 수신호를 보내 다가오라 전하자. 경험 많은 강력계 형사답게 담배를 버린 후 소리 없이 다가온다.

지금 내 주변에 평소와 다른 것은 애교를 부리는 개 밖에 없음을 직감한 최영현이 다가오며 개를 관찰한다. 그 역시 개의 주둥이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본 모양인지 눈짓으로 묻는다.

‘피가 맞습니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쪼그리고 앉아 개의 주둥이를 만진 후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나온 개냐 눈으로 묻는 최영현. 손가락으로 골목 끝에 있는 초록 대문 집을 가리키자, 그가 품을 뒤지더니 머리를 긁는다.

회식이니 당연히 총을 안 가지고 온 것이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눈짓으로 가보자는 신호를 보낸다. 역시 경험 많은 형사다. 허리를 납작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초록 대문의 양 옆 기둥에 각자 몸을 기댄 나와 최영현. 술이 약간 취해 보이지만 역시 노련함은 숨길 수 없는지 그의 눈빛이 날카롭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본 최영현이 덩치답지 않게 빠른 몸놀림으로 열린 문 틈을 슬쩍 보고 다시 몸을 튼다. 그의 얼굴을 보니 안에 무엇인가 있는 모양이다.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처음 겪는 강력사건일 지도 모르는 현장. 너무도 우연히 발견하게 된 현장에는 과연 뭐가 있을까?

최영현이 내게 눈짓하며 골목길 바깥 쪽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다시 허리를 숙이고 빠르게 골목길 밖으로 나온 후, 벽을 돌아 초록 대문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내려온 그가 허리를 펴며 인상을 쓴다. 날 잠깐 바라보던 그가 물었다.

“걷다가 피 묻은 개를 보고 확인하자고 한 겁니까?”

“예. 최경사님.”

최영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삼겹살 집을 힐끔 본다.

“일단 팀원들에게 알리죠.”

응? 먼저 확인을 하는 쪽이 순서 아닌가?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 이 사람이 방금 문 틈으로 안을 보긴 했지. 바로 지원을 불러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인가?

“안에 뭐가 있었습니까?”

최영현이 손짓하며 말했다.

“두 번 말하기 귀찮으니 안에 가서 한번에 이야기하죠.”

앞서 가는 최영현을 따라 삼겹살 집에 도착하자, 널브러져 잠에 빠진 관우가 제일 먼저 보인다. 이 녀석은 지금 도움이 안 되겠다. 너무 취해 있다. 얼굴이 굳은 최영현을 본 이정호 반장이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김연주와의 대화를 끊고 물었다.

“뭐야?”

최영현이 자리에 앉은 후 날 힐끔 보며 말했다.

“현경위님이 잠깐 근처를 산책하다가 입가에 피 묻은 개를 발견했습니다.”

김연주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개?”

최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심에 개가 나온 집을 확인했습니다. 약 네 평쯤 되는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입니다. 마당 바닥은 시멘트 재질이고,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문 옆에 큰 닭장이 있습니다.”

이정호의 눈썹이 일그러진다.

“닭장? 시골도 아니고 주택가 한복판에 사는 사람이 닭을 키워? 새벽에 닭이 울면 주민민원 들어갈 텐데.”

“글쎄요, 자세한 건 알아 봐야죠.”

“그래서?”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안을 확인해 보니 닭장 속에 있는 닭이 전부 죽어 있었습니다.”

김연주가 끼어 든다.

“개가 그런 거 아니고요?”

최영현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개 키워 봤어. 집에서 키우는 개는 절대 가축을 먼저 공격하지 않아. 아까 보니 애교 많은 보통 애완견이었어.”

“그건 개마다 다르지 않아요?”

안을 보지 못한 나는 그저 최영현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최영현이 다시 말했다.

“슬쩍 봤지만 개에게 먹힌 닭은 한 마리. 나머진 모두 날카로운 흉기로 목이 따였어. 그 후에 닭을 거꾸로 들고 흐르는 피를 주변에 뿌린 것 같아.”

이정호와 김연주의 입이 닫힌다. 그저 주택가에서 키우는 닭이 죽은 사건이 아니다. 애견과 달리 닭은 동물보호협회의 보호도 못 받는다. 같은 생명이지만 닭은 ‘음식’취급을 받기 때문에 키우던 닭을 도살해 먹는다고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굳이 닭의 목을 자르고 그 피를 사방에 뿌렸다. 이건 제정신이 박힌 사람의 소행이 아니며, 개가 칼을 썼을 리도 없으니 짐승의 소행도 아니다. 이정호가 일어나며 자고 있는 관우를 고갯짓한다.

“연주 넌 여기서 관우 보고 있어. 셋이 간다.”

자기도 가겠다 조를 만도 한 상황이지만 김연주는 사건 지휘를 하는 이정호에게 토를 달지 않는다. 이정호가 최초 발견자인 날 보며 말했다.

“안내해.”

삼겹살 집에서 가까운 집이라 금세 집 앞에 도착한 우리. 이정호가 몸을 낮추고 문 틈을 바라본다.

“인기척이 없다. 내부에 불도 모두 꺼져 있어.”

이정호 반장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영현, 구조 확인해.”

최영현은 190이 넘는 거구다. 서서도 충분히 남의 집 담벼락 안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최영현을 본 이정호가 검지와 중지로 자기 눈을 가리킨 후 문틈 쪽을 손짓한다. 나도 내부상황을 확인하란 뜻이다.

그와 자리를 바꾼 후 문 틈으로 눈을 들이민 나는 안의 상황을 보고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바닥이 굳은 피로 흥건하고, 갈기가 그대로 붙어 있는 닭의 깃털이 흩어져 있다. 바닥에 배가 열려 파 먹힌 닭 한 마리가 보인다. 이게 최경사가 말한 개에게 먹힌 닭인 모양이다.

닭은 모두 여덟 마리. 수탉이 한 마리, 나머지 일곱은 암탉이다. 최경사의 말처럼 모두 칼로 당한 닭들이다. 다리를 곧게 펴고 굳어 있는 모양새를 보니 다리가 잡혀 거꾸로 뒤집힌 상황에서 피를 모두 밖으로 쏟아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엉거주춤 서서 담벼락 안을 확인하고 있는 최영현을 보았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이걸 다 파악했다고?’

나처럼 오랜 시간 관찰한 것이 아니다. 정말 짧은 순간 스쳐 지나며 본 것으로 이만큼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그가 매우 능력 있는 형사란 방증이다. 최영현이 다시 몸을 숙이며 이정호 반장에게 말했다.

“현관문을 통해 왼쪽으로 거실이 있고,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동일한 크기의 옆집과 비교했을 때 거실 뒤로 방 세 개가 더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정호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나와 영현이는 집으로 들어간다. 도경이는 집 주변을 빠르게 돌아 지하실이 없는지 확인한 후 들어와.”

“예.”

“예, 반장님.”

경찰대 시절 모의작전 훈련 시엔 집의 설계도면을 보며 한다.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기 위함이다. 하지만 진짜 현장엔 그런 것 따윈 없었다. 그저 몸으로 부딪히고 경험으로 아는 수 밖에 없다. 첫날부터 내가 얼마나 모자란지 여실히 깨닫게 된다.

이정호가 손가락으로 숫자 셋을 센 후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두 사람이 빠르게 현관문 쪽으로 뛰어가는 걸 본 나는 허리를 숙이고 집을 크게 한바퀴 돈다. 집 뒤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담벼락 사잇길이 있다. 하지만 지하실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부엌으로 통하는 것 같은 작은 문이 있지만 위치를 보니 지하실로 통하는 곳 같진 않다.

다시 마당으로 돌아오자, 문이 열려 있었는지 현관문이 열려 있고,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 이정호는 부엌에 있고 최영현은 방들의 문을 열며 확인 중이다. 그의 말처럼 집은 세 개의 방이 있는 집이었다. 오래된 집인지 나무로 된 벽과 바닥을 가지고 있는 집. 오래된 가구들과 전자기기들을 보니 아마도 노인이 사는 집이었던 모양이다.

두 개의 방을 확인한 최영현이 가장 먼 방의 문 앞에 선 후 나와 이정호 반장을 힐끔 본다. 반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고리를 잡고 강하게 여는 최영현. 방으로 뛰어 들어간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이정호 반장과 눈빛을 교환한 후 방 쪽으로 다가가자 최영현의 넓은 등이 보인다. 마치 얼음처럼 굳어버린 그의 등 뒤에서 고개를 내민 나.

“헙!”

내 눈이 커진다.

지금 눈 앞에 벌어진 일이 정말 현실일까?

경찰대를 다니며 많은 범죄현장 사진을 보았다. 그 중엔 손목 동맥이 절단 되어 모텔에서 발견된 여성 살해 현장 사진도 있었는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천장에 맞고 떨어지다 굳어 모텔 방 안에 지옥도가 펼쳐진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맹세코 지금과 같은 상황의 예시는 본 적이 없다.

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현장.

하지만 시체가 있다. 그것도 무척 충격적인 모습으로.

최영현이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중얼거린다.

“미친.”

일단 위급한 상황이 없다고 판단한 이정호가 후방지원으로 대기하다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이런 현장을 많이 봤을까? 강력계 짬이 오래되면 이런 걸 보고도 안 놀랄 수 있는 걸까? 이정호 반장의 표정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내 짐작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시신을 본 이정호가 소매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지원 불러. 살인사건이다.”

최영현이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는다. 전화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나간 최영현. 혼자 남은 내가 멍하게 시신을 바라보다 물었다.

“반장님.”

“왜?”

“이런 거 자주 보십니까?”

“미친, 본 적이 있을 리가.”

“이게··· 도대체 뭡니까?”

단순히 살해된 시신을 본 것으로 이런 질문을 한 건 아니다. 시신의 모습이 어떤 교재에서도 본 적 없는 기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시신은 원통 안에 있다.

원통 안은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고, 뚜껑이 닫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시신이 물 속에 떠 있다. 시신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온 몸의 근육이 투명화 되어 내장과 골격이 방사선 촬영을 한 것처럼 훤히 보인다. 마치 화학시간에 봤던 인체해부도 같은 시신이다.

원통에 가까이 다가간 내가 떨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사람이··· 사람한테 이런 짓을 한다고요? 이게 정말 사람의 시신이 맞긴 한 겁니까?”

마음 속으로 빌었다. 제발 이것이 누군가의 악취미가 발휘된 인체 해부 모형이기를 빌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악마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떨리는 눈빛으로 원통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에 원통 속을 가득 채운 물 뒤로 일그러진 문양이 보인다. 원통에 담긴 시신에 온 정신이 빼앗겼던 내가 통 뒤로 돌아가 벽을 본다. 그리고 내 몸은 바위처럼 굳어 버렸다. 벽에 피로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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