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화. 박제(剝製) (2)
KCSI(Korea Crime Scene Investigation). 우리가 보통 국과수라 부르는 이들. 하지만 통칭 NFS라 불리는 국립과학수사대와는 별도의 관계로 과학수사대는 경찰 소속이지만 국과수는 별개의 독립된 조직이다. 현장에 과학수사 또는 경찰이 적힌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전부 경찰 소속의 과학수사대로 보면 된다.
새벽 두 시에 갑자기 KCSI와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동네는 난리가 났다. 잠에서 깬 동네 사람들이 잠옷 위에 담요만 걸치고 사이렌 불빛을 받으며 기웃대고, 어린 친구들은 핸드폰부터 꺼내 현장을 촬영하다 순경들에게 저지당한다.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내부 조사를 하는 동안 폴리스 라인 근처까지 나와 있던 우리. 어느새 잠에서 깬 정관우가 김연주에게 상황에 대해 전달받고 있고, 나는 이정호 반장과 함께 서 있다. 집 안에서 통화를 마치고 온 최영현이 폴리스라인 근처 상황을 보곤 눈짓으로 신호한다.
어느새 냄새를 맡고 모여든 기자들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눈빛을 받고 집 뒤쪽의 작은 사잇길로 모인다. 최영현이 이정호 반장을 보며 핸드폰을 흔들었다.
“주민등록상 거주자는 강상원 73세, 남자. 혼자입니다.”
신원미상의 시신. 대충 연령대라도 맞춰 볼 수 있다면 강상원이 맞는지 예측이라도 될 텐데. 발견된 시신은 온 몸의 단백질이 투명화 되어 골격과 내장이 모두 보이는 상태다. 육안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정호 반장이 빠르게 지시를 내린다.
“관우.”
살인사건이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는지 아직 술기운이 남았지만 똘똘한 눈빛으로 돌아온 정관우가 말한다.
“예, 반장님.”
“이 집 반경 1km 내의 모든 CCTV, 사설 카메라까지. 지난 30일간 데이터 다 긁어와.”
“예!”
지시를 받자 마자 빠르게 움직이는 관우. 이정호 반장이 김연주를 바라본다.
“연주는 신원확인 되기 전까지 거주자 강상원을 피해자로 간주하고 그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확인해. 가족, 친지, 원한관계, 지인까지 전부.”
“예, 반장님.”
김연주도 얼른 뛴다. 이정호 반장이 최영현을 보며 말했다.
“영현이는 여기 남아서 조사 마무리되는 거 확인해.”
“예, 반장님.”
이정호 반장이 날 보며 말했다.
“도경이는 나와 KCSI로 간다.”
“예, 반장님.”
**
세 시간 후, KCSI. 새벽 네 시가 넘은 시각이라 당직 근무 중인 몇 명의 연구원만 오가는 휴게실에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이정호 반장. 기다리는 동안 짬을 내 잠시 눈을 붙이는 모양이다. 이 상황에서 잘도 잠이 오는 구나. 나는 1분에 한번씩 연구실 문을 힐끔거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그때 눈을 감은 이정호 반장이 말했다.
“자라.”
“·····················.”
이 상황에 잠이 오겠습니까? 저런 시신은 책에서도 못 봤다고요. 이정호가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벽에 기댄다.
“잘 수 있을 때 자라. 형사한테 중요한 능력이야. 머리 대면 잘 수 있어야 체력 안 딸린다. 저거 몇 시간 걸릴 거다.”
옳은 소리다. 하지만 경찰 임관 후 첫 살인사건이다. 피해자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일종의 설렘 같은 감정의 아드레날린 작용으로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자보려고 노력하느라 몇 번이나 의자에 앉아 자세를 바꿔 봤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난 그냥 포기하고 그저 눈만 감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잠이 들었던 걸까? 빛 때문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깼을 때 어느새 해가 떠 유리창을 통해 강한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눈을 잔뜩 찌푸리고 주변을 보니 머리 좋게 해를 등지고 앉아서 잠이 든 이정호 반장이 보인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자 아침 7시 50분이다. 아직 안 끝난 걸까? 이정호 반장이 깨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부검 연구실 자동문 앞을 기웃거리자,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누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놀라지 않도록 조금 물러나자, 자동문이 열리며 서류를 든 50대 남성이 나온다.
안경을 쓴 키 작은 아저씨.
척 봐도 법 의학관으로 보이는 남자는 날 보곤 물었다.
“누구?”
신분증을 꺼내 보여준 내가 말했다.
“종로 경찰서 강력 3반 현도경 경위입니다.”
내 신분증을 눈으로 확인한 남자가 다시 날 바라본다.
“처음 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제 부임했습니다.”
“어제? 바로 경위로 부임한 걸 보니 경대 출신이겠네요.”
“예.”
“음, 나 KCSI 목진원 과장이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 반장은?”
이정호 반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언제 일어났는지 의자에 앉아 이 쪽을 바라보며 손을 드는 것이 보인다. 목과장과 오래 본 사이인지 꽤 친근해 보이는 웃음을 짓는 이정호.
목과장이 한숨을 쉰 후 다가가 그의 앞에 의자 하나를 놓고 앉는다.
“형사는 밤 낮도 없냐?”
“킥킥, 형님도 마찬가진데 뭘.”
“나야 인마.. 에혀, 됐다.”
“신원 확인됐습니까?”
“여기.”
이정호가 서류를 받아 눈으로 읽은 후 내게 넘긴다. 서류 맨 앞장의 신원확인서를 보니 시신은 그곳의 거주자인 강상원이 맞다. 서류의 기본정보를 읽고 있는 내 귀로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사망시점은요?”
“미상, 추측은 가능해.”
“사망시점 미상? 왜요? 위 내용물 안 봤어요?”
“·····················”
갑자기 답이 없는 목과장. 서류에서 눈길을 돌리자 그가 한숨을 쉬며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따라와.”
먼저 일어나 해부실로 가는 목과장. 이정호가 그의 뒤를 따르는 걸 보고 따라간다. 이미 검시가 끝나고 시신을 옮겼는지 깨끗한 해부실로 온 목과장이 플라스틱 통에 든 알 수 없는 용액 몇 개와 비커를 부검대에 올려 둔다. 그러더니 부검대에 손목을 기대고 한숨을 쉰다.
“참나, 내가 부검 인생 30년 만에 이런 걸 다 보네. 그만 둘 때가 된 건가.”
이정호 반장이 팔짱을 끼며 부검대 위에 놓인 물건들을 눈짓한다.
“이게 뭔데요?”
목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플라스틱 병을 하나 집어 든 그가 말했다.
“포르말린.”
응? 포르말린이면 포르말린알데히드(Formaldehyde)를 말하는 것이다. 주로 개구리나 생쥐 해부를 할 때 이것을 채운 액체에 고정한다. 나도 경찰대 시절에 이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목과장이 다음 플라스틱 용기를 들며 말했다.
“에탄올(ethanol).”
저건 술의 주 성분이고 알코올이다. 목과장이 다음 용기를 들며 말했다.
“알시안 블루.”
응? 저건 뭐지? 이정호 반장도 모르는지 묻는다.
“알시안.. 블루? 그게 뭔데요?”
목과장이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쉰다.
“Alcian Blue Stain. 점액 특수 염색액이다. 낮은 PH 상에서 산성 점액물질의 산성기와 이온이 결합되어 염색이 되는 약품이지.”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염색약품인 모양이다. 포르말린, 에탄올과 이 염색약이 합쳐지면 뭘 할 수 있는 걸까? 당연히 사건에 관련이 있으니 설명을 하겠지. 일단 들어보자.
목과장이 나머지 세 개의 플라스틱 용기를 차례로 들어 보이며 말했다.
“수산화 칼륨, 알리자린레드S 염색약, 글리세린.”
설명을 마친 목과장이 해부실 바깥 쪽, 유리문 뒤에 있는 모니터 실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투명유리로 되어 있어 안에서도 그가 뭘 하는지 보인다. 모니터 실 벽 쪽에 있는 수조 앞에 선 그가 허리를 숙이고 물고기들을 유심히 보다 갑자기 물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는 것이 보인다.
물이 뚝뚝 흐르는 손을 빼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 이미 죽어 있는 작은 고기 한 마리가 보인다.
“수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자꾸만 애들이 죽어. 작아도 다 생명인데, 쯧.”
보육원에도 수조가 있다. 작은 구피들을 키웠는데 이 녀석들은 번식력이 무섭다. 밥을 조금만 많이 줘도 무섭게 늘어나 나중엔 수조가 비좁게 느껴질 만큼 많아졌다. 그때도 꽤 자주 죽은 구피들을 봤다. 왜 죽는지는 모르지만 신경을 안 써줘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목과장이 죽은 물고기를 깨끗하게 씻어 부검대에 올린 후 비커를 가지고 와 그 안에 포르말린 용액을 채운다. 그러더니 죽은 물고기를 그 안에 풍덩 넣는다. 물고기는 바닥으로 가라앉다 어느 순간 중간 부근에 멈춰 선다. 목과장은 물고기를 가만히 바라보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장갑을 끼고 집게로 꺼내 다시 세척한다. 물고기의 색은 연한 푸른색에서 허연 색으로 바뀌어 있다.
세척을 하는 동안 칫솔로 물고기 표면을 문질러 표피를 다 벗겨버리자, 이번엔 좀 전보다 더 하얗게 변색된 물고기 시체가 되었다. 용기에 가득 담긴 포르말린을 버리고, 새 비커를 가져온 목과장이 다른 용기의 액체를 비커에 부었다.
“에탄올.”
이정호 반장이 물었다.
“형님, 지금 뭐합니까?”
목과장이 눈을 감고 천장 쪽으로 고개를 든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말했다.
“정호야, 1957년도 사건 자료 본 적 있지?”
응? 1957년도 사건? 현장 경험에서는 당연히 일선 형사들보다 뒤쳐지지만 난 경대 수석이다. 책으로 본 자료는 달달 외우고 있다. 하지만 반장보다 먼저 나서긴 뭐해 이정호 반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기억 나지 않는 표정이다. 목과장이 내 표정을 보고 말했다.
“경위님은 아는 모양인데.”
이정호 반장이 날 보며 물었다.
“1957년도 사건이 뭔데?”
1957년에 일어난 사건 중 이번 사건과 관계된 것. 그것은 한 가지 사건 뿐이다.
“1957년 4월 2일, 일본의 실종된 소년이 살해되어 포르말린에 절여진 채로 발견된 사건입니다.”
이정호 반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사람을 포르말린 용기에 담갔다고? 정신 나갔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시 피해자는 12세였습니다. 납치 이틀 후 범인으로부터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있었지만 약속 장소에 아이도, 범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토막 난 시신이 포르말린에 절여져 발견되었고, 신원확인 결과 납치된 아이였습니다.”
이정호는 듣기 거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건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다.
“범인은 살인 전부터 소년과 아는 사이였고, 평소에도 폭력을 행사하거나 음란한 행위를 하는 등 이미 현행범 체포가 가능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건 당일에는 소년을 집으로 초대해 강제로 범하려 했으나 거부했기 때문에 때려 죽였다고 진술했으며 살해 후 시체를 토막 내고, 네 개 용기에 포르말린을 부은 뒤 자른 토막을 넣어 보관했습니다.”
“아까 먹은 삼겹살 도로 나오겠다, 그만 해라.”
이정호 반장이 목과장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게 그 사건과 무슨 관계입니까?”
목과장이 날 보며 말했다.
“경위님.”
“말씀 편히 하십시오, 과장님.”
나보다 스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아저씨다. 게다가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가 있다. 목과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돼?”
“예, 과장님.”
“좋아, 이름이 현도경이었지?”
“예, 목진원 과장님.”
“너도 그냥 형님이라고 해라.”
내가 이정호 반장의 눈치를 보자, 그가 헛웃음을 짓는다.
“형님이 올해 몇 인데 서른도 안 된 놈한테 형 동생 하잡니까?”
목과장이 눈을 찡긋한다.
“어때, 젊어 보이고 좋잖아. 도경아, 형님이라고 해봐.”
음, 뭐 상관없겠지.
“예, 형님.”
“허허, 듣기 좋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부르는 거다?”
“예..”
잠시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다. 목과장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도경아.”
“예.”
“1957년도 일본의 사건 당시 정신질환이 있던 범인의 일기장이 발견됐었다. 기억해?”
“예.”
“호, 그걸 기억해?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 시험범위도 아니었을 텐데.”
이정호 반장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이놈 경대 수석으로 나왔소.”
목과장이 놀란 얼굴로 날 본다.
“수석? 이야, 대단한 인재가 들어왔네. 그래, 범인 일기장에 뭐라고 써 있었는지 말해 볼래?”
이정호 반장과 목과장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잠시 죽은 물고기를 바라보던 내가 천천히 말했다.
“포르말린에 절여진 이 아이는 살아있을 때보다 더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