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3화 (23/328)

제 23 화. 박제(剝製) (3)

이정호 반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러니까, 생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이 짓을 했다는 말이요?”

목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시신의 모습을 봐서 알겠지만, 저건 생전의 모습이 아니다. 시신으로 골격염색표본 제작을 했다고 보는 쪽이 옳아.”

“그게 뭡니까?”

“음.”

목과장이 팔짱을 끼고 까칠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사람과 같이 몸을 지지하는 뼈가 몸의 내부에 있는 동물들의 골격구조를 알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하나는 해부, 하나는 골격표본 제작이지. 그러나 크기가 작은 어류와 같이 두개골을 구성하는 뼈가 많은 동물은 해부나 골격표본 제작이 쉽지 않기 때문에 뼈를 염색하고 근육을 투명하게 해서 관찰하지. 이 방법을 쓰면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 형태의 골격을 확인할 수 있어.”

나는 목과장의 설명을 들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물고기한테 사용하는 표본제작을 사람한테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목과장이 나를 힐끔 본 후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보통 민물고기를 교육용으로 전시하기 위한 방법이야. 사람에게 하는 건 나도 처음 봤다.”

시신의 충격적인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저절로 꽉 쥐어지는 주먹을 떨며 말했다.

“몸 내부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던 이유가 골격염색을 통한 단백질 투명화 때문이란 말씀입니까? 정말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다고요?”

목과장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그러게 말이다.”

목과장이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아무튼 방금 예시로 들었던 일본의 사건보다 더 극악한 사건이야. 그때는 아이 시신 형상을 보존하는 정도였지만, 이번 시신은 동, 식물에게 하는 표본제작을 한 케이스다. 고생 좀 해야 될 거야.”

이정호 반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신 위장 속 내용물은 남아 있습니까?”

목과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있어, 하지만 포르말린의 영향으로 정확한 사망시점 추정은 불가능해.”

“그 포르말린에 절이면 소화되다 만 음식물들도 사라집니까?”

“아니, 오히려 보존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추정치야. 아마 실종 후 하루 안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 속에 미역과 흰쌀, 배추와 멸치 등이 검출 됐어. 아직 식사한 음식물들이 소화되기 전에 죽었다.”

이정호 반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혼자 사는 노인인데. 실종 시점을 정확히 알아내려면 고생 꽤나 하겠군요.”

일단 이건 피해자의 지인이나 가족들을 탐문 중인 김연주가 돌아와야 진도가 나갈 것 같다. 그들 중 누군가가 피해자 강상원씨와 마지막 연락을 주고 받은 시기가 나올 것이다. 목과장이 서류를 넘겨 보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정호야.”

“예, 형님.”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뭡니까?”

지푸라기 같은 단서라도 간절한 것이 형사다. 이상한 점이란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이는 이정호. 하지만 목과장의 표정을 보니 단서 같은 건 아닌 모양이다. 잠시 서류를 골똘하게 보던 그가 말했다.

“마당에 죽어 있었다는 닭 말이야. 그거 범인이 한 짓이 맞아?”

“모릅니다,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으니 또라이 범인 새끼가 저지른 일인가 보다 하는 거지.”

목과장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수사 혼선을 주게 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 그냥 참고만 해라.”

“뭔데 그래요?”

목과장이 나와 이정호 반장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현장에서 사체로 발견된 닭의 사체는 개가 먹다 만 것까지 총 여덟 마리다. 개가 잡아 먹은 닭이 수탉이고 나머진 모두 암탉이었다.”

“그런데요?”

목과장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나와 이정호 반장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 녀석들이 죽은 건 지금부터 24시간이 안된 시점이다.”

이정호 반장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범인이 24시간 내에 이곳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CCTV 강국인 한국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동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이건 결정적인 힌트가 될 수 있다.

눈빛을 교환하고 있는 우릴 본 목과장이 얼른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말이다, 물고기 한 마리를 골격염색 표본으로 제작하기 위해 육에서 칠일이 걸린다. 물고기의 몇 백 배나 되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려면···”

잠시 생각해 본 목과장이 말했다.

“선례가 없어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단백질이 투명화 되는 시간과 인체의 평균 단백질 보유량을 계산하면 적어도 30일 이상 걸린다고 봐야 된다.”

30일. CCTV 저장 기간에 꼭 맞다. 만약 30일 전에 살인이 일어났다면 범인의 행적을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닭을 죽였다면 범인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이정호 반장의 눈빛이 달라진다. 고심하는 듯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목과장이 말했다.

“두 가지 가설을 염두에 두고 수사진행 해야 될 거야.”

“음··· 일단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형님. 도경아, 서로 복귀한다.”

목과장에게 인사를 하고 복도를 걷는 중에도 계속 고심하고 있는 이정호 반장. 한참을 걷던 그가 물었다.

“도경아.”

“예.”

“목과장이 이야기한 두 가지 가설이 뭔지 알겠냐?”

“··················”

사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눈치채진 못했다. 하지만 목과장과 일별하고 복도를 걷는 동안 그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었다.

“예, 알 것 같습니다.”

이정호 반장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말해봐.”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한 후 말했다.

“첫번째 가설, 73세 강상원씨를 살해한 범인과 닭을 죽인 자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이정호 반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주택가 밀집 지역이었다. 분명 새벽마다 우는 닭 때문에 주변 민원이 있었을 거야. 민원을 넣어도 해결되지 않는 울음 소리 때문에 앙심을 품은 이웃이 그랬을 수도 있다. 이러면 사건이 꼬이는 거야. CCTV 뒤져서 찾아낸 이웃이 범인이라면 사건이 해결되겠지만 어쩌면 고생해서 잡은 범인이 고작 닭 살해범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럼 두번째 가설은?”

절로 갈리는 이빨을 간신히 참아낸 내가 입을 열었다.

“두번째 가설, 범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시신을 예술작품으로 생각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와 감상하고 있다.

이정호 반장이 한숨을 쉰다.

“그래, 아까 목과장이 말한 것처럼 30일이 지난 후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집 안에서 감상 중에 이웃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닭이 너무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소리를 듣고 없애 버린 것일 수도 있지. 만약 이쪽 가설이라면 일이 좀 더 쉬워진다. 적어도 24시간 내에 현장에 왔었다는 뜻이 되니까.”

만약 후자라면. 이놈은 진짜 악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시신으로 장난을 치고, 그걸 예술이라 생각하고 감상하는 놈이라니. 이정호 반장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눈짓한다.

“넌 부임 첫 날, 첫 사건부터 재수 더럽게 없구나. 일단 서로 복귀하자.”

**

종로경찰서로 돌아온 건 오전 아홉 시반 무렵이다. 최영현이 의자에 널브러져 자고 있고 이정호 반장도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잠이 들어 있다. 아까 좀 자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던 나도 결국 한시간쯤 지나자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꿈에서 눈이 하나에 이빨이 아귀 같은 악마에게 쫓기는 악몽을 꿨다. 악마가 손바닥에서 긴 뼈다귀 창을 뽑아 내 심장을 찌르기 직전 뾰족한 목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일어나세요!”

화들짝 놀라 깬 나. 언제 잠든 것인지도 몰라 어리둥절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이정호 반장과 최영현도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고 있고, 옆구리에 수첩을 낀 김연주와 커다란 박스를 들고 나타난 정관우가 서 있다. 아마 김연주가 깨운 모양이다.

이정호가 정관우가 든 박스를 바라본 후 눈짓한다.

“회의실로.”

잠이 깨지 않아 잠깐 비틀거린 난 겨우 회의실로 들어가 착석했다. 정관우가 박스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인근 CCTV 싹 걷어 왔습니다. 혹시 빠뜨린 게 있나 싶어 세 번 체크하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이정호 반장이 수고했다는 눈빛을 보낸 후 말했다.

“연주부터 보고해.”

김연주가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피해자 강상원 73세, 20세에 육군에 입대해 53세에 상사로 제대. 국가보훈처 제대군인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전역 후 경비업체에서 일했으며 62세에 퇴임했습니다.”

최영현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33년간 군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고?”

“네.”

“경비회사란 건 뭐야? 아파트 경비 같은 건가?”

“아닙니다, 수원 소재 반도체 공장 경비팀을 총괄하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음, 반도체 공장이라. 그런 곳은 경비가 삼엄하지 않나?”

“보통 그렇습니다.”

“병력은?”

“당뇨가 있었습니다만, 그 외엔 치과진료 기록과 경증 진료기록 밖에 없습니다.”

최영현이 턱을 괴고 말했다.

“평생 군생활을 했고, 건강을 오래 유지했다고 해도 경비업체 은퇴 후 9년이나 놀았으면 몸이 많이 노쇠했겠군.”

“네.”

“말 끊어서 미안, 계속해.”

김연주가 다시 수첩을 보며 말했다.

“슬하에 딸이 있고, 아내와는 몇 년 전에 사별했습니다. 딸은 결혼을 해 현재 제주도에 거주 중이며 아들 둘이 있습니다.”

이정호 반장이 고갯짓하며 물었다.

“강상원씨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시점은?”

“평소 무뚝뚝한 성격이라 자주 연락하는 걸 싫어했다고 합니다. 볼일이 있을 때만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하는데 한달에 한번도 할까 말까 였다고 합니다.”

부모님께 한달에 한번도 전화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최영현이 목 뒤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난 울 엄마한테 전화한지 세 달이 넘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지.”

아, 부모님이 계셔도 연락을 잘 안 드리며 사는 사람도 있구나. 이정호 반장이 물었다.

“지인은?”

“독불장군 같은 성격이라 이웃과도 별로 교류가 없었고, 군 출신 전역자들과 일년에 한번쯤 만나서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마지막 모인 시점은?”

“8개월 전입니다.”

“젠장. 딴 건?”

“더 알아보겠습니다.”

“하.”

아무것도 건진 게 없다. 물론 난 몇 시간 만에 저 만큼이나 알아내 온 것이 대견하다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드는지 고개를 숙이는 김연주. 이정호 반장이 정관우의 박스를 보며 말했다.

“하드 몇 개야?”

“61개입니다.”

“젠장, 61개면 몇 시간을 봐야 되는 거냐, 하.”

61개의 하드. 카메라가 61대라는 거다. 최대 저장용량인 30일씩 계산해보면 우린 총 1,830일치 영상을 확인해야 된다. 시간으로 따지면 43,920 시간 분량이다. 이정호 반장은 잠깐 계산이 안 되는지 머리를 긁다가 한숨을 쉰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이정호 반장이 김연주에게 말했다.

“연주는 일단 이웃 탐문해. 현장에서 닭장 발견된 거 알지? 민원센터 가서 혹시 그 주소로 신고된 민원 중 관련 있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민원인 만나봐.”

“네, 반장님.”

“관우.”

정관우가 손을 번쩍 든다.

“네, 반장님!”

“CCTV 분석 시작해.”

정관우가 울상을 짓는다.

“혼자요?”

“순경 넷 지원해 준다.”

정관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정호 반장이 최영현을 보며 말했다.

“영현이는 그 동네 교회, 성당 싹 뒤져서 교인 명단 가져와.”

아, 범행 현장에 성경구절로 보이는 글귀가 써 있었다. 거기도 조사해야 맞다. 최영현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이정호 반장이 날 바라본다.

“도경.”

“예, 반장님.”

“넌 뭐할래?”

젠장,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만 지시 내리더니 나한테는 왜 이래?

“··················..”

이정호 반장이 한숨을 쉰 후 말했다.

“넌 개 찾아와.”

응? 갑자기 무슨 개?

“예?”

이정호 반장이 서류를 정리해 회의실을 나서며 말했다.

“현장에서 봤던 그 개. 조사 중에 사라졌잖아. 찾아와.”

최영현이 실소를 지으며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김연주와 정관우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대는 것이 보인다. 젠장, 내 첫 사건인데 첫 임무가 고작 개를 찾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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